[오늘의 이슈] 그때 무슨 일이?…현대사 아픔 간직
입력 2014.04.04 (15:18)
수정 2014.04.04 (16: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故 김근태 의원 등 80년대 민주화 인사가 옥고를 치룬 곳이고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과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인 전경환씨가 거쳐간 곳이기도 합니다.
굴곡진 현대사의 상징이던 영등포교도소가 65년 만에 철거된다고 하는데요.
그 영등포 교도소에서 87년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을 세상을 알린 분이죠 이 사건은 이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는데요.
한 평도 안 되는 독방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요.
그 주인공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자리하셨습니다.
앵커 : "어서 오세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안녕하셨습니까?"
앵커 : "방금 뉴스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시겠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그렇습니다."
앵커 : "민주화운동으로 여러 차례 고초 겪으셨는데 87년에는 어떤 이유 때문에 수감이 되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86년에 지금은 뭐 먼 일이 됐지만 5.3인천민주항쟁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제야 아주 총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민통련의 사무처장으로 5.3민주항쟁을 배후에서 조정했다고 그래서 수배당했다가 구속이 됐어요. 그래서..."
앵커 : "그때 몇 년 형 받으신 거예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3년형을 받았는데 86년 10월부터 87년 6월 29일 6.29 나던 날까지 영등포 교도소에 있다가 그 뒤에 김천교도소로 옮겨져서 88년에 노태우 씨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니까 한 1년 반 정도..."
앵커 : "영등포교도소에?"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아니요."
앵커 : "아, 그때는 영등포교도소에서 나오셨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앵커 : "말씀 이어가겠습니다. 어제 영등포교도소 철거한다고 해서 시민 개방행사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많이 왔는데요. 사실 다시 보기 불편하시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좀 그렇죠."
앵커 : "지금 교도소 담을 철거하는 모습입니다."
앵커 : "6개의 수용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치사범들은 따로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경미한 사람들은 일반수도 있었지만 조금 좀 당국에서 보기에 중범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따로 가둬놨어요. 그 당시 저하고 유성환 국회의원 그분은 86년에 반공이 국시가 아니라 통일이 국시다라고 해서 현직 국회의원이 구속이 됐던 참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있었죠. 저하고 같이 독방에 옆에 있었어요."
앵커 : "그러면 유성환 전 의원과는 서로 두 분끼리는 대화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운동하러 나올 때 잠깐 보고 그러죠. 평소에는 따로 따로 방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대화를 못했죠. 그곳은 여성들을 가둬놨던 여사였는데 교도소 안에 담이 또 있었어요. 그 여성수감자들을 의정부교도소로 모두 옮겨버리고 저하고 유성환 의원을 그 안에 가둬놨습니다."
앵커 :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또 격리가 되신 거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습니다."
앵커 : "독방 크기가 어느 정도 됐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0.72평이니까 1평이 안 되죠. 딱 드러누우면 관 같았어요, 이렇게 길고. 뒤에는 화장실 변소가 있었고요."
앵커 : "당시에 계셨던 그 독방 어제 촬영해 왔습니다."
앵커 : "상당히 정말 참 좁아 보입니다. 어른 키 만한 것 같습니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죠."
앵커 : "저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지금 저기는 영등포교도소에만 있는 게 아니고요. 전국의 그 당시 정치범들을 가둬놨던 특별사동이라는 곳이 대전, 전주, 광주, 대구 이렇게 4개 교도소에 그런 방들이 36개씩 달린 특별사동이 있었는데 일반 구치소나 교도소에도 그 독방들이 몇 개씩 있었어요. 참 고통스럽죠. 사람들 체온이 있으니까 겨울에도 같이 잠을 자면 좀 나은데 시멘트 벽 속에 있는 독방은 밖이 영하 한 10도면 그 안에는 영하 한 12, 3도가 돼요. 왜냐하면 시멘트가 함께 뭐라고 할까, 얼어버리니까 그 안에는 마치 냉장고 같은 효과가 있어요."
앵커 : "안에 필기도구 같은 거, 책 같은 건 갖고 갈 수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당시는 물론 5공 치하나 유신 때는 필기도구 같은 건 언감생신 생각을 할 수 없었고요. 책도 사회과학 서적 이런 건 일체 안 넣어주고 성경, 불경 그리고 역사소설 이런 것만 넣어줬어요. 그래서 성경을 제가 여러 번 읽었습니다,그 덕택에요."
앵커 : "다른 사람과 심지어 옆방 사람과의 접촉도 철저하게 격리된, 차단된 상황에서 어떻게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내용을 알게 되신 거예요, 그 안에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87년 1월 17일경 새벽에 문이 덜커덩 열리면서 어떤 남자 두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독방에 좁은 데 넣어놨는데 그 사람들은 한 7, 8명이 생활할 수 있는 넓은 방에다 한 사람씩 넣더라고요. 저 사람들은 굉장히 잘 나가는 사람들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교도관들한테. 남영동 대공수사단 수사관들이라는 거예요."
앵커 : "경찰이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경찰관이죠. 우선 제가 그 이전에 86년도에 남영동 대공수사단에서 제가 조사를 받고 온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누군가 관심이 좀 있을 거 아니에요, 나를 조사했던 사람인가. 나중에 그 교도관들이 얘기를 해 주는데 특히 교도관들 가운데는 제가 하도 여러 번 들락날락 하니까 제가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 반대해서 들어왔다는 이유밖에 없고 그것도 고문당하고 그런 걸 아니까 그 교도관들이 그 안에 흉악범들도 있고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속으로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앵커 : "신뢰도 형성이 됐고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죠. 그래서 영등포교도소에서 그전에 70년대 제가 서울구치소에 들어가 있을 때 정말 형, 동생처럼 가까워진 친구들이 있었어요."
앵커 : "그분들이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신 겁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특히 안유 보안계장. 지금은 제가 이 사람 이름을 얘기합니다마는 한재동 교도관. 그런 사람들이 저하고는 거의 형제 같은 우애를 나눈 사람들이었어요."
앵커 : "그러니까 새로 들어온 2명의 수사관들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데 뭔가 진실이 숨겨져 있다라고 당시 교도소 보안계장이 귀띔을 해 준 겁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하루는 그 보안계장이 저를 면회를 하자고 그래요. 그 보안계장이라는 건 저 같은 정치범들을 주로 담당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더니 나를 만나서 커피를 한잔 주면서 형. 그 사람이 나더러 형이라고 했어요. 제가 요새 괴로워서 못살겠다고. 무슨 일이냐 그랬더니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면서 아니,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도 됩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랬더니 한참 한숨을 푹 쉬더니 저한테 박종철 군 고문해서 죽인 사람이 따로 있고 여기 온 사람들은 진범이 아니에요. 이건 정말 경천동지할 일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있나 그랬더니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도 돼요?"
앵커 : "지금 수감된 경찰들은 죄를 뒤집어써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눈물이 글썽글썽해가지고 저한테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는 같은 공직자지만 그 박청원 대공수사단장이 와서 자기 부하들을 면회해서 와서 1억원짜리 통장씩을 각각 한 사람한테씩 내보이면서 너희들 가족들 이걸로 다 뒷바라지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들이 거기서 조사한 대로 너는 답변을 해.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우리가 진범이 아닌데 왜 우리들만 구속합니까, 우리는 고문해서 죽인 사람도 아니고 옆에서 보좌했던 사람들입니다. 필요해서 그런 거고 너희들 빨리 나오게 해 줄 테니까 받아들여. 그러니까 우리가 고문해서 박종천이를 죽였다고 그러면 우리는 고문경찰이라고 대대손손 알려지면 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라고 합니까? 그걸 못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아, 빨갱이 하나 죽인 걸 가지고 뭘 그래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반항을 했어요."
앵커 : "죄를 뒤집어쓸 수 없다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러니까 그 박청원 단장이 너 그러면 밖에 나가서도 이 대한민국 안에서 살 수가 없어, 나오더라도. 그러고 회유하는 거, 그게 깨져버린 거예요. 그 얘기를..."
앵커 : "그런 사실을 지켜본 보안계장과..."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리고 또 하나는 강진규 경사라는 사람이 부친이 그 사람들은 토요일날 오후에만 면회를 했어요. 면회시간이 아닐 때 면회를 했는데 부친이 와서 강진규 경사한테 너 정말 고문해서 사람 죽였냐, 학생을 죽였냐 그러니까 아버지 저는 죽이지 않았어요. 저는 억울합니다 이러고 아버지한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더라는 거예요. 저는 고문할 때 고문 당하는 학생이 괴로워서 소리지를 때 그 소리가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노래를 부르라면 노래부르고 이런 짓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더러 걔를 죽였다고 그러니 저는 억울합니다. 절대 아버지 저를 믿어주세요 이러고 울면서 호소를 하더라는 거예요. 그 면회실에서 이 강진규 형사가 아버지하고 면회하는 걸 봤던 그 교도관이."
앵커 : "한재동 교도관입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아닙니다. 안 교도관인데 교대로 들어와서 저한테 그런 얘기를 일러주는 거예요."
앵커 : "그런데 그런 얘기를 이제 들으셨단 말이에요. 정황을 아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밖으로 알리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안유 보안계장에게 그랬어요. 당신하고 이 얘기 나눈 걸 없었던 일로 하자. 내가 못 들은 걸로 하겠다. 그리고 그 사람 일단 거기서 끝난 걸로 했어요. 그리고 제가 한재동 교도관을 따로 불렀어요. 그 사람은 다른 데 있었는데 제가 다른 교도관을 시켜서 불러서 빨리 들어와라 그래서 그 친구한테 모나미 볼펜이라고 있었죠, 옛날에?"
앵커 : "저희가 준비한 화면이 있는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볼펜심을 하나 갖다 달래가지고 교도소 안에서 쓰는 재생갱지가 있어요. 갱지에 자세한 내용을 적어서."
앵커 : "화면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우촌에게. 우촌이라면."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김정남."
앵커 : "전 청와대 교육수석."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호해요, 아호예요. 메모를 써서 전달하게 했죠."
앵커 : "완전 조작극이다."
앵커 : "그 수사관들은 각본에 응한 것이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그래서 그것이 우촌 김정남하고 전병용이라고 그 두 사람도 다 저 때문에 장기표 씨 하고 저 때문에 도망을 다니고 있었어요. 서로 만나기도 어렵고 그래서."
앵커 : "그러면 또 교도소 안에서 전달한 분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 메모를."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한재동 씨라고."
앵커 : "앞서 말씀하신 그 교도관이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람이 전병용 씨한테 전달을 하는데 도망자를 만나기가 힘들잖아요. 그리고 또 김정남 씨도 도망자고요. 그러니까 전달을 하고 나서 이틀 뒤에 전병용 씨가 잡혔어요. 그런데 그때는 편지가 세 뭉치나 있었거든. 전달 못하고 또 자꾸 전달하라고 했는데 그걸 가지고 있었다가 전병용 씨한테 전달했고 전병용 씨가 김정남 씨한테 전달한 이틀 뒤에 잡힌 거예요. 나는 그 편지 세 통을 다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잡혔으면 어떡할 뻔했나."
앵커 : "마음 졸이셨겠네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건 나중에 들었으니까 그렇지."
앵커 : "때 잡혔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을 거 아니에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나중에 들었어요. 잡혔다는 얘기를."
앵커 : "한참 뒤에."
앵커 : "이렇게 어렵사리 메모가 전달이 됐고. 메모가 전달이 됐고요. 두 달 만에 정의구현사제단에 이 편지를 폭로하면서 진상이 드러납니다. 당시 검찰 발표 잠깐 보겠습니다."
당시 검찰 발표 : "탁 하고 억이란 말이 나온 원인은 죽음의 원인이 질식사가 아닌 심장마비라고 (하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이었다)."
앵커 : "그렇게 해서 6월항쟁까지 이어집니다. 이 사실도 한참 뒤에 아셨겠네요."
앵커 : "감옥 안에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때 당시는 뭐랄까요, 민주화운동이 한창 고조되어가니까 교도관들도 저희들한테 신이 나서 그 소식들을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은 5월 18일날 광주항쟁 7주기에 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명동성당에서 그걸 밝혔을 때 사태가 어떻게 되려나. 혹시 저분들이 잡혀가서 역추적이 되지 않을까. 그럼 저는 감옥 안에서 꼼짝을 못하는 게 아니에요. 그때는 고문해서 사람을 죽일 때인데. 참 다 지났으니까 그렇지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조마조마했어요. 역추적하면 나는 꼼짝 없잖아요. 어떻게 도망갈 데도 없고. 그런데 그게 발표되자마자 며칠 지나면서 박처훈 씨가 구속이 됐고, 수사단장인. 강민창이라고."
앵커 : "치안본부장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본부장도 구속이 돼요. 그리고 장세동 안기부장, 내무장관이었던 김종필 그 사람도 그만 두고. 내각이 바뀌고 이렇게 가더라고요."
앵커 : "그야말로 만천하에 드러난 거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제단에서 발표된 게 사실이 아니면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어요? 그걸 보고 안심을 했죠. 역추적은 이제 있기 힘들겠구나."
앵커 : "위원님이 그 정도였으면 그 사실을 처음에 귀띔해 준 안유 보안계장은 얼마나 걱정했겠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그 걱정을 할까 봐, 저는 하여튼 그 사람들은 보호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내가 당신한테 듣지 않은 걸로 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미리 했거든요."
앵커 : "20년 동안 실제 안 계장의 이름을 숨기셨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람은 아주 고위직까지 올라갔었어요. 서울지역 교정본부장까지 했었어요. 아마 거의 최고의 직까지 했는데 저는 안유 형 같은 사람이나 한재동 형 같은 사람들. 그 공분 때문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공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사람한테 그 얘기를 한 거란 말이에요. 그럼 저는 제가 국회의원을 하고 뭐 조금 출세를 하고 이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나는 그거 밝히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2007년까지 안 밝혔어요, 20년 지날 때까지. 그분들이 모두 정년퇴직 할 때까지. 그리고 25주년 됐던 2010년? 그때 안유 씨하고 한재동 씨가 커밍아웃 해서 남영동 대공수사단 거기서 25주기 박종철 군 추도식하는데 저하고 셋이 같이 나와서 그야말로 세상에 자기들의 얼굴을 다 알렸습니다."
앵커 : "그때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거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다 자세히 알려진 겁니다."
앵커 : "만약 그때 처음에 밝혀졌더라면 내부고발자였기 때문에 불이익을 크게 당했겠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저는 공직자들이 그런 용기를 가지고 한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앵커 : "영등포교도소 때문에 저희가 이 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김근태 씨도, 고 김근태 의원도 거기 수감됐었고요. 이번에 철거소식 듣고 기분이 어떠셨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착잡했죠. 그쪽에 지난번에도 한번 가보니까 아파트촌 한가운데 있더라고요."
앵커 : "헐고 또 아파트 짓습니다. 관공서도 짓고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런데 요새는 없는 증거도 또 만들어내는 시대기도 합니다마는 그 민주화운동으로 6월항쟁까지 갔던 그 곳에 박종철 군의 그 억울한 죽음이 조작됐던 것이 진실이 밝혀졌다고 그래서 민주화 운동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면 거기 표지석 하나 만들 수 없을까요? 무언가 하여튼 기념물이라도 만들어서 후세에 우리 후손들이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지만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졌었다라는 것은 기억할 만한 곳이 아닐까. 그 결정권은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데 기뻐할지 싫어할지 그건 두고 봐야 되겠습니다."
앵커 : "굴곡진 현대사일지라도 기억해야 할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억할 만한 어떤 상징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지금 위안부 문제 같은 거 일본 사람들이 조작하는 거 보세요.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역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모르겠습니다. 민주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억할는지."
앵커 : "우리 6.10항쟁의 작은 시발점이 됐던 그 장소에 의미 있는 표지석 하나. 알겠습니다. 우리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시죠. 이부영 전 의원과 사라지는 영등포교도소에서 지난 87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봤습니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감사합니다."
故 김근태 의원 등 80년대 민주화 인사가 옥고를 치룬 곳이고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과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인 전경환씨가 거쳐간 곳이기도 합니다.
굴곡진 현대사의 상징이던 영등포교도소가 65년 만에 철거된다고 하는데요.
그 영등포 교도소에서 87년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을 세상을 알린 분이죠 이 사건은 이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는데요.
한 평도 안 되는 독방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요.
그 주인공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자리하셨습니다.
앵커 : "어서 오세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안녕하셨습니까?"
앵커 : "방금 뉴스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시겠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그렇습니다."
앵커 : "민주화운동으로 여러 차례 고초 겪으셨는데 87년에는 어떤 이유 때문에 수감이 되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86년에 지금은 뭐 먼 일이 됐지만 5.3인천민주항쟁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제야 아주 총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민통련의 사무처장으로 5.3민주항쟁을 배후에서 조정했다고 그래서 수배당했다가 구속이 됐어요. 그래서..."
앵커 : "그때 몇 년 형 받으신 거예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3년형을 받았는데 86년 10월부터 87년 6월 29일 6.29 나던 날까지 영등포 교도소에 있다가 그 뒤에 김천교도소로 옮겨져서 88년에 노태우 씨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니까 한 1년 반 정도..."
앵커 : "영등포교도소에?"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아니요."
앵커 : "아, 그때는 영등포교도소에서 나오셨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앵커 : "말씀 이어가겠습니다. 어제 영등포교도소 철거한다고 해서 시민 개방행사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많이 왔는데요. 사실 다시 보기 불편하시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좀 그렇죠."
앵커 : "지금 교도소 담을 철거하는 모습입니다."
앵커 : "6개의 수용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치사범들은 따로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경미한 사람들은 일반수도 있었지만 조금 좀 당국에서 보기에 중범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따로 가둬놨어요. 그 당시 저하고 유성환 국회의원 그분은 86년에 반공이 국시가 아니라 통일이 국시다라고 해서 현직 국회의원이 구속이 됐던 참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있었죠. 저하고 같이 독방에 옆에 있었어요."
앵커 : "그러면 유성환 전 의원과는 서로 두 분끼리는 대화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운동하러 나올 때 잠깐 보고 그러죠. 평소에는 따로 따로 방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대화를 못했죠. 그곳은 여성들을 가둬놨던 여사였는데 교도소 안에 담이 또 있었어요. 그 여성수감자들을 의정부교도소로 모두 옮겨버리고 저하고 유성환 의원을 그 안에 가둬놨습니다."
앵커 :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또 격리가 되신 거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습니다."
앵커 : "독방 크기가 어느 정도 됐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0.72평이니까 1평이 안 되죠. 딱 드러누우면 관 같았어요, 이렇게 길고. 뒤에는 화장실 변소가 있었고요."
앵커 : "당시에 계셨던 그 독방 어제 촬영해 왔습니다."
앵커 : "상당히 정말 참 좁아 보입니다. 어른 키 만한 것 같습니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죠."
앵커 : "저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지금 저기는 영등포교도소에만 있는 게 아니고요. 전국의 그 당시 정치범들을 가둬놨던 특별사동이라는 곳이 대전, 전주, 광주, 대구 이렇게 4개 교도소에 그런 방들이 36개씩 달린 특별사동이 있었는데 일반 구치소나 교도소에도 그 독방들이 몇 개씩 있었어요. 참 고통스럽죠. 사람들 체온이 있으니까 겨울에도 같이 잠을 자면 좀 나은데 시멘트 벽 속에 있는 독방은 밖이 영하 한 10도면 그 안에는 영하 한 12, 3도가 돼요. 왜냐하면 시멘트가 함께 뭐라고 할까, 얼어버리니까 그 안에는 마치 냉장고 같은 효과가 있어요."
앵커 : "안에 필기도구 같은 거, 책 같은 건 갖고 갈 수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당시는 물론 5공 치하나 유신 때는 필기도구 같은 건 언감생신 생각을 할 수 없었고요. 책도 사회과학 서적 이런 건 일체 안 넣어주고 성경, 불경 그리고 역사소설 이런 것만 넣어줬어요. 그래서 성경을 제가 여러 번 읽었습니다,그 덕택에요."
앵커 : "다른 사람과 심지어 옆방 사람과의 접촉도 철저하게 격리된, 차단된 상황에서 어떻게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내용을 알게 되신 거예요, 그 안에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87년 1월 17일경 새벽에 문이 덜커덩 열리면서 어떤 남자 두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독방에 좁은 데 넣어놨는데 그 사람들은 한 7, 8명이 생활할 수 있는 넓은 방에다 한 사람씩 넣더라고요. 저 사람들은 굉장히 잘 나가는 사람들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교도관들한테. 남영동 대공수사단 수사관들이라는 거예요."
앵커 : "경찰이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경찰관이죠. 우선 제가 그 이전에 86년도에 남영동 대공수사단에서 제가 조사를 받고 온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누군가 관심이 좀 있을 거 아니에요, 나를 조사했던 사람인가. 나중에 그 교도관들이 얘기를 해 주는데 특히 교도관들 가운데는 제가 하도 여러 번 들락날락 하니까 제가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 반대해서 들어왔다는 이유밖에 없고 그것도 고문당하고 그런 걸 아니까 그 교도관들이 그 안에 흉악범들도 있고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속으로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앵커 : "신뢰도 형성이 됐고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죠. 그래서 영등포교도소에서 그전에 70년대 제가 서울구치소에 들어가 있을 때 정말 형, 동생처럼 가까워진 친구들이 있었어요."
앵커 : "그분들이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신 겁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특히 안유 보안계장. 지금은 제가 이 사람 이름을 얘기합니다마는 한재동 교도관. 그런 사람들이 저하고는 거의 형제 같은 우애를 나눈 사람들이었어요."
앵커 : "그러니까 새로 들어온 2명의 수사관들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데 뭔가 진실이 숨겨져 있다라고 당시 교도소 보안계장이 귀띔을 해 준 겁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하루는 그 보안계장이 저를 면회를 하자고 그래요. 그 보안계장이라는 건 저 같은 정치범들을 주로 담당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더니 나를 만나서 커피를 한잔 주면서 형. 그 사람이 나더러 형이라고 했어요. 제가 요새 괴로워서 못살겠다고. 무슨 일이냐 그랬더니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면서 아니,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도 됩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랬더니 한참 한숨을 푹 쉬더니 저한테 박종철 군 고문해서 죽인 사람이 따로 있고 여기 온 사람들은 진범이 아니에요. 이건 정말 경천동지할 일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있나 그랬더니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도 돼요?"
앵커 : "지금 수감된 경찰들은 죄를 뒤집어써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눈물이 글썽글썽해가지고 저한테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는 같은 공직자지만 그 박청원 대공수사단장이 와서 자기 부하들을 면회해서 와서 1억원짜리 통장씩을 각각 한 사람한테씩 내보이면서 너희들 가족들 이걸로 다 뒷바라지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들이 거기서 조사한 대로 너는 답변을 해.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우리가 진범이 아닌데 왜 우리들만 구속합니까, 우리는 고문해서 죽인 사람도 아니고 옆에서 보좌했던 사람들입니다. 필요해서 그런 거고 너희들 빨리 나오게 해 줄 테니까 받아들여. 그러니까 우리가 고문해서 박종천이를 죽였다고 그러면 우리는 고문경찰이라고 대대손손 알려지면 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라고 합니까? 그걸 못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아, 빨갱이 하나 죽인 걸 가지고 뭘 그래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반항을 했어요."
앵커 : "죄를 뒤집어쓸 수 없다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러니까 그 박청원 단장이 너 그러면 밖에 나가서도 이 대한민국 안에서 살 수가 없어, 나오더라도. 그러고 회유하는 거, 그게 깨져버린 거예요. 그 얘기를..."
앵커 : "그런 사실을 지켜본 보안계장과..."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리고 또 하나는 강진규 경사라는 사람이 부친이 그 사람들은 토요일날 오후에만 면회를 했어요. 면회시간이 아닐 때 면회를 했는데 부친이 와서 강진규 경사한테 너 정말 고문해서 사람 죽였냐, 학생을 죽였냐 그러니까 아버지 저는 죽이지 않았어요. 저는 억울합니다 이러고 아버지한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더라는 거예요. 저는 고문할 때 고문 당하는 학생이 괴로워서 소리지를 때 그 소리가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노래를 부르라면 노래부르고 이런 짓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더러 걔를 죽였다고 그러니 저는 억울합니다. 절대 아버지 저를 믿어주세요 이러고 울면서 호소를 하더라는 거예요. 그 면회실에서 이 강진규 형사가 아버지하고 면회하는 걸 봤던 그 교도관이."
앵커 : "한재동 교도관입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아닙니다. 안 교도관인데 교대로 들어와서 저한테 그런 얘기를 일러주는 거예요."
앵커 : "그런데 그런 얘기를 이제 들으셨단 말이에요. 정황을 아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밖으로 알리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안유 보안계장에게 그랬어요. 당신하고 이 얘기 나눈 걸 없었던 일로 하자. 내가 못 들은 걸로 하겠다. 그리고 그 사람 일단 거기서 끝난 걸로 했어요. 그리고 제가 한재동 교도관을 따로 불렀어요. 그 사람은 다른 데 있었는데 제가 다른 교도관을 시켜서 불러서 빨리 들어와라 그래서 그 친구한테 모나미 볼펜이라고 있었죠, 옛날에?"
앵커 : "저희가 준비한 화면이 있는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볼펜심을 하나 갖다 달래가지고 교도소 안에서 쓰는 재생갱지가 있어요. 갱지에 자세한 내용을 적어서."
앵커 : "화면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우촌에게. 우촌이라면."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김정남."
앵커 : "전 청와대 교육수석."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호해요, 아호예요. 메모를 써서 전달하게 했죠."
앵커 : "완전 조작극이다."
앵커 : "그 수사관들은 각본에 응한 것이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그래서 그것이 우촌 김정남하고 전병용이라고 그 두 사람도 다 저 때문에 장기표 씨 하고 저 때문에 도망을 다니고 있었어요. 서로 만나기도 어렵고 그래서."
앵커 : "그러면 또 교도소 안에서 전달한 분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 메모를."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한재동 씨라고."
앵커 : "앞서 말씀하신 그 교도관이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람이 전병용 씨한테 전달을 하는데 도망자를 만나기가 힘들잖아요. 그리고 또 김정남 씨도 도망자고요. 그러니까 전달을 하고 나서 이틀 뒤에 전병용 씨가 잡혔어요. 그런데 그때는 편지가 세 뭉치나 있었거든. 전달 못하고 또 자꾸 전달하라고 했는데 그걸 가지고 있었다가 전병용 씨한테 전달했고 전병용 씨가 김정남 씨한테 전달한 이틀 뒤에 잡힌 거예요. 나는 그 편지 세 통을 다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잡혔으면 어떡할 뻔했나."
앵커 : "마음 졸이셨겠네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건 나중에 들었으니까 그렇지."
앵커 : "때 잡혔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을 거 아니에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나중에 들었어요. 잡혔다는 얘기를."
앵커 : "한참 뒤에."
앵커 : "이렇게 어렵사리 메모가 전달이 됐고. 메모가 전달이 됐고요. 두 달 만에 정의구현사제단에 이 편지를 폭로하면서 진상이 드러납니다. 당시 검찰 발표 잠깐 보겠습니다."
당시 검찰 발표 : "탁 하고 억이란 말이 나온 원인은 죽음의 원인이 질식사가 아닌 심장마비라고 (하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이었다)."
앵커 : "그렇게 해서 6월항쟁까지 이어집니다. 이 사실도 한참 뒤에 아셨겠네요."
앵커 : "감옥 안에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때 당시는 뭐랄까요, 민주화운동이 한창 고조되어가니까 교도관들도 저희들한테 신이 나서 그 소식들을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은 5월 18일날 광주항쟁 7주기에 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명동성당에서 그걸 밝혔을 때 사태가 어떻게 되려나. 혹시 저분들이 잡혀가서 역추적이 되지 않을까. 그럼 저는 감옥 안에서 꼼짝을 못하는 게 아니에요. 그때는 고문해서 사람을 죽일 때인데. 참 다 지났으니까 그렇지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조마조마했어요. 역추적하면 나는 꼼짝 없잖아요. 어떻게 도망갈 데도 없고. 그런데 그게 발표되자마자 며칠 지나면서 박처훈 씨가 구속이 됐고, 수사단장인. 강민창이라고."
앵커 : "치안본부장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본부장도 구속이 돼요. 그리고 장세동 안기부장, 내무장관이었던 김종필 그 사람도 그만 두고. 내각이 바뀌고 이렇게 가더라고요."
앵커 : "그야말로 만천하에 드러난 거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제단에서 발표된 게 사실이 아니면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어요? 그걸 보고 안심을 했죠. 역추적은 이제 있기 힘들겠구나."
앵커 : "위원님이 그 정도였으면 그 사실을 처음에 귀띔해 준 안유 보안계장은 얼마나 걱정했겠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그 걱정을 할까 봐, 저는 하여튼 그 사람들은 보호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내가 당신한테 듣지 않은 걸로 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미리 했거든요."
앵커 : "20년 동안 실제 안 계장의 이름을 숨기셨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람은 아주 고위직까지 올라갔었어요. 서울지역 교정본부장까지 했었어요. 아마 거의 최고의 직까지 했는데 저는 안유 형 같은 사람이나 한재동 형 같은 사람들. 그 공분 때문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공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사람한테 그 얘기를 한 거란 말이에요. 그럼 저는 제가 국회의원을 하고 뭐 조금 출세를 하고 이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나는 그거 밝히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2007년까지 안 밝혔어요, 20년 지날 때까지. 그분들이 모두 정년퇴직 할 때까지. 그리고 25주년 됐던 2010년? 그때 안유 씨하고 한재동 씨가 커밍아웃 해서 남영동 대공수사단 거기서 25주기 박종철 군 추도식하는데 저하고 셋이 같이 나와서 그야말로 세상에 자기들의 얼굴을 다 알렸습니다."
앵커 : "그때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거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다 자세히 알려진 겁니다."
앵커 : "만약 그때 처음에 밝혀졌더라면 내부고발자였기 때문에 불이익을 크게 당했겠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저는 공직자들이 그런 용기를 가지고 한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앵커 : "영등포교도소 때문에 저희가 이 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김근태 씨도, 고 김근태 의원도 거기 수감됐었고요. 이번에 철거소식 듣고 기분이 어떠셨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착잡했죠. 그쪽에 지난번에도 한번 가보니까 아파트촌 한가운데 있더라고요."
앵커 : "헐고 또 아파트 짓습니다. 관공서도 짓고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런데 요새는 없는 증거도 또 만들어내는 시대기도 합니다마는 그 민주화운동으로 6월항쟁까지 갔던 그 곳에 박종철 군의 그 억울한 죽음이 조작됐던 것이 진실이 밝혀졌다고 그래서 민주화 운동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면 거기 표지석 하나 만들 수 없을까요? 무언가 하여튼 기념물이라도 만들어서 후세에 우리 후손들이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지만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졌었다라는 것은 기억할 만한 곳이 아닐까. 그 결정권은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데 기뻐할지 싫어할지 그건 두고 봐야 되겠습니다."
앵커 : "굴곡진 현대사일지라도 기억해야 할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억할 만한 어떤 상징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지금 위안부 문제 같은 거 일본 사람들이 조작하는 거 보세요.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역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모르겠습니다. 민주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억할는지."
앵커 : "우리 6.10항쟁의 작은 시발점이 됐던 그 장소에 의미 있는 표지석 하나. 알겠습니다. 우리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시죠. 이부영 전 의원과 사라지는 영등포교도소에서 지난 87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봤습니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감사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오늘의 이슈] 그때 무슨 일이?…현대사 아픔 간직
-
- 입력 2014-04-04 15:20:58
- 수정2014-04-04 16:00:45
<앵커 멘트>
故 김근태 의원 등 80년대 민주화 인사가 옥고를 치룬 곳이고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과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인 전경환씨가 거쳐간 곳이기도 합니다.
굴곡진 현대사의 상징이던 영등포교도소가 65년 만에 철거된다고 하는데요.
그 영등포 교도소에서 87년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을 세상을 알린 분이죠 이 사건은 이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는데요.
한 평도 안 되는 독방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요.
그 주인공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자리하셨습니다.
앵커 : "어서 오세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안녕하셨습니까?"
앵커 : "방금 뉴스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시겠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그렇습니다."
앵커 : "민주화운동으로 여러 차례 고초 겪으셨는데 87년에는 어떤 이유 때문에 수감이 되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86년에 지금은 뭐 먼 일이 됐지만 5.3인천민주항쟁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제야 아주 총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민통련의 사무처장으로 5.3민주항쟁을 배후에서 조정했다고 그래서 수배당했다가 구속이 됐어요. 그래서..."
앵커 : "그때 몇 년 형 받으신 거예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3년형을 받았는데 86년 10월부터 87년 6월 29일 6.29 나던 날까지 영등포 교도소에 있다가 그 뒤에 김천교도소로 옮겨져서 88년에 노태우 씨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니까 한 1년 반 정도..."
앵커 : "영등포교도소에?"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아니요."
앵커 : "아, 그때는 영등포교도소에서 나오셨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앵커 : "말씀 이어가겠습니다. 어제 영등포교도소 철거한다고 해서 시민 개방행사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많이 왔는데요. 사실 다시 보기 불편하시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좀 그렇죠."
앵커 : "지금 교도소 담을 철거하는 모습입니다."
앵커 : "6개의 수용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치사범들은 따로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경미한 사람들은 일반수도 있었지만 조금 좀 당국에서 보기에 중범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따로 가둬놨어요. 그 당시 저하고 유성환 국회의원 그분은 86년에 반공이 국시가 아니라 통일이 국시다라고 해서 현직 국회의원이 구속이 됐던 참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있었죠. 저하고 같이 독방에 옆에 있었어요."
앵커 : "그러면 유성환 전 의원과는 서로 두 분끼리는 대화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운동하러 나올 때 잠깐 보고 그러죠. 평소에는 따로 따로 방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대화를 못했죠. 그곳은 여성들을 가둬놨던 여사였는데 교도소 안에 담이 또 있었어요. 그 여성수감자들을 의정부교도소로 모두 옮겨버리고 저하고 유성환 의원을 그 안에 가둬놨습니다."
앵커 :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또 격리가 되신 거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습니다."
앵커 : "독방 크기가 어느 정도 됐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0.72평이니까 1평이 안 되죠. 딱 드러누우면 관 같았어요, 이렇게 길고. 뒤에는 화장실 변소가 있었고요."
앵커 : "당시에 계셨던 그 독방 어제 촬영해 왔습니다."
앵커 : "상당히 정말 참 좁아 보입니다. 어른 키 만한 것 같습니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죠."
앵커 : "저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지금 저기는 영등포교도소에만 있는 게 아니고요. 전국의 그 당시 정치범들을 가둬놨던 특별사동이라는 곳이 대전, 전주, 광주, 대구 이렇게 4개 교도소에 그런 방들이 36개씩 달린 특별사동이 있었는데 일반 구치소나 교도소에도 그 독방들이 몇 개씩 있었어요. 참 고통스럽죠. 사람들 체온이 있으니까 겨울에도 같이 잠을 자면 좀 나은데 시멘트 벽 속에 있는 독방은 밖이 영하 한 10도면 그 안에는 영하 한 12, 3도가 돼요. 왜냐하면 시멘트가 함께 뭐라고 할까, 얼어버리니까 그 안에는 마치 냉장고 같은 효과가 있어요."
앵커 : "안에 필기도구 같은 거, 책 같은 건 갖고 갈 수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당시는 물론 5공 치하나 유신 때는 필기도구 같은 건 언감생신 생각을 할 수 없었고요. 책도 사회과학 서적 이런 건 일체 안 넣어주고 성경, 불경 그리고 역사소설 이런 것만 넣어줬어요. 그래서 성경을 제가 여러 번 읽었습니다,그 덕택에요."
앵커 : "다른 사람과 심지어 옆방 사람과의 접촉도 철저하게 격리된, 차단된 상황에서 어떻게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내용을 알게 되신 거예요, 그 안에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87년 1월 17일경 새벽에 문이 덜커덩 열리면서 어떤 남자 두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독방에 좁은 데 넣어놨는데 그 사람들은 한 7, 8명이 생활할 수 있는 넓은 방에다 한 사람씩 넣더라고요. 저 사람들은 굉장히 잘 나가는 사람들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교도관들한테. 남영동 대공수사단 수사관들이라는 거예요."
앵커 : "경찰이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경찰관이죠. 우선 제가 그 이전에 86년도에 남영동 대공수사단에서 제가 조사를 받고 온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누군가 관심이 좀 있을 거 아니에요, 나를 조사했던 사람인가. 나중에 그 교도관들이 얘기를 해 주는데 특히 교도관들 가운데는 제가 하도 여러 번 들락날락 하니까 제가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 반대해서 들어왔다는 이유밖에 없고 그것도 고문당하고 그런 걸 아니까 그 교도관들이 그 안에 흉악범들도 있고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속으로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앵커 : "신뢰도 형성이 됐고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죠. 그래서 영등포교도소에서 그전에 70년대 제가 서울구치소에 들어가 있을 때 정말 형, 동생처럼 가까워진 친구들이 있었어요."
앵커 : "그분들이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신 겁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특히 안유 보안계장. 지금은 제가 이 사람 이름을 얘기합니다마는 한재동 교도관. 그런 사람들이 저하고는 거의 형제 같은 우애를 나눈 사람들이었어요."
앵커 : "그러니까 새로 들어온 2명의 수사관들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데 뭔가 진실이 숨겨져 있다라고 당시 교도소 보안계장이 귀띔을 해 준 겁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하루는 그 보안계장이 저를 면회를 하자고 그래요. 그 보안계장이라는 건 저 같은 정치범들을 주로 담당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더니 나를 만나서 커피를 한잔 주면서 형. 그 사람이 나더러 형이라고 했어요. 제가 요새 괴로워서 못살겠다고. 무슨 일이냐 그랬더니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면서 아니,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도 됩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랬더니 한참 한숨을 푹 쉬더니 저한테 박종철 군 고문해서 죽인 사람이 따로 있고 여기 온 사람들은 진범이 아니에요. 이건 정말 경천동지할 일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있나 그랬더니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도 돼요?"
앵커 : "지금 수감된 경찰들은 죄를 뒤집어써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눈물이 글썽글썽해가지고 저한테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는 같은 공직자지만 그 박청원 대공수사단장이 와서 자기 부하들을 면회해서 와서 1억원짜리 통장씩을 각각 한 사람한테씩 내보이면서 너희들 가족들 이걸로 다 뒷바라지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들이 거기서 조사한 대로 너는 답변을 해.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우리가 진범이 아닌데 왜 우리들만 구속합니까, 우리는 고문해서 죽인 사람도 아니고 옆에서 보좌했던 사람들입니다. 필요해서 그런 거고 너희들 빨리 나오게 해 줄 테니까 받아들여. 그러니까 우리가 고문해서 박종천이를 죽였다고 그러면 우리는 고문경찰이라고 대대손손 알려지면 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라고 합니까? 그걸 못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아, 빨갱이 하나 죽인 걸 가지고 뭘 그래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반항을 했어요."
앵커 : "죄를 뒤집어쓸 수 없다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러니까 그 박청원 단장이 너 그러면 밖에 나가서도 이 대한민국 안에서 살 수가 없어, 나오더라도. 그러고 회유하는 거, 그게 깨져버린 거예요. 그 얘기를..."
앵커 : "그런 사실을 지켜본 보안계장과..."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리고 또 하나는 강진규 경사라는 사람이 부친이 그 사람들은 토요일날 오후에만 면회를 했어요. 면회시간이 아닐 때 면회를 했는데 부친이 와서 강진규 경사한테 너 정말 고문해서 사람 죽였냐, 학생을 죽였냐 그러니까 아버지 저는 죽이지 않았어요. 저는 억울합니다 이러고 아버지한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더라는 거예요. 저는 고문할 때 고문 당하는 학생이 괴로워서 소리지를 때 그 소리가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노래를 부르라면 노래부르고 이런 짓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더러 걔를 죽였다고 그러니 저는 억울합니다. 절대 아버지 저를 믿어주세요 이러고 울면서 호소를 하더라는 거예요. 그 면회실에서 이 강진규 형사가 아버지하고 면회하는 걸 봤던 그 교도관이."
앵커 : "한재동 교도관입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아닙니다. 안 교도관인데 교대로 들어와서 저한테 그런 얘기를 일러주는 거예요."
앵커 : "그런데 그런 얘기를 이제 들으셨단 말이에요. 정황을 아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밖으로 알리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안유 보안계장에게 그랬어요. 당신하고 이 얘기 나눈 걸 없었던 일로 하자. 내가 못 들은 걸로 하겠다. 그리고 그 사람 일단 거기서 끝난 걸로 했어요. 그리고 제가 한재동 교도관을 따로 불렀어요. 그 사람은 다른 데 있었는데 제가 다른 교도관을 시켜서 불러서 빨리 들어와라 그래서 그 친구한테 모나미 볼펜이라고 있었죠, 옛날에?"
앵커 : "저희가 준비한 화면이 있는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볼펜심을 하나 갖다 달래가지고 교도소 안에서 쓰는 재생갱지가 있어요. 갱지에 자세한 내용을 적어서."
앵커 : "화면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우촌에게. 우촌이라면."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김정남."
앵커 : "전 청와대 교육수석."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호해요, 아호예요. 메모를 써서 전달하게 했죠."
앵커 : "완전 조작극이다."
앵커 : "그 수사관들은 각본에 응한 것이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그래서 그것이 우촌 김정남하고 전병용이라고 그 두 사람도 다 저 때문에 장기표 씨 하고 저 때문에 도망을 다니고 있었어요. 서로 만나기도 어렵고 그래서."
앵커 : "그러면 또 교도소 안에서 전달한 분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 메모를."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한재동 씨라고."
앵커 : "앞서 말씀하신 그 교도관이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람이 전병용 씨한테 전달을 하는데 도망자를 만나기가 힘들잖아요. 그리고 또 김정남 씨도 도망자고요. 그러니까 전달을 하고 나서 이틀 뒤에 전병용 씨가 잡혔어요. 그런데 그때는 편지가 세 뭉치나 있었거든. 전달 못하고 또 자꾸 전달하라고 했는데 그걸 가지고 있었다가 전병용 씨한테 전달했고 전병용 씨가 김정남 씨한테 전달한 이틀 뒤에 잡힌 거예요. 나는 그 편지 세 통을 다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잡혔으면 어떡할 뻔했나."
앵커 : "마음 졸이셨겠네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건 나중에 들었으니까 그렇지."
앵커 : "때 잡혔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을 거 아니에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나중에 들었어요. 잡혔다는 얘기를."
앵커 : "한참 뒤에."
앵커 : "이렇게 어렵사리 메모가 전달이 됐고. 메모가 전달이 됐고요. 두 달 만에 정의구현사제단에 이 편지를 폭로하면서 진상이 드러납니다. 당시 검찰 발표 잠깐 보겠습니다."
당시 검찰 발표 : "탁 하고 억이란 말이 나온 원인은 죽음의 원인이 질식사가 아닌 심장마비라고 (하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이었다)."
앵커 : "그렇게 해서 6월항쟁까지 이어집니다. 이 사실도 한참 뒤에 아셨겠네요."
앵커 : "감옥 안에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때 당시는 뭐랄까요, 민주화운동이 한창 고조되어가니까 교도관들도 저희들한테 신이 나서 그 소식들을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은 5월 18일날 광주항쟁 7주기에 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명동성당에서 그걸 밝혔을 때 사태가 어떻게 되려나. 혹시 저분들이 잡혀가서 역추적이 되지 않을까. 그럼 저는 감옥 안에서 꼼짝을 못하는 게 아니에요. 그때는 고문해서 사람을 죽일 때인데. 참 다 지났으니까 그렇지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조마조마했어요. 역추적하면 나는 꼼짝 없잖아요. 어떻게 도망갈 데도 없고. 그런데 그게 발표되자마자 며칠 지나면서 박처훈 씨가 구속이 됐고, 수사단장인. 강민창이라고."
앵커 : "치안본부장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본부장도 구속이 돼요. 그리고 장세동 안기부장, 내무장관이었던 김종필 그 사람도 그만 두고. 내각이 바뀌고 이렇게 가더라고요."
앵커 : "그야말로 만천하에 드러난 거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제단에서 발표된 게 사실이 아니면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어요? 그걸 보고 안심을 했죠. 역추적은 이제 있기 힘들겠구나."
앵커 : "위원님이 그 정도였으면 그 사실을 처음에 귀띔해 준 안유 보안계장은 얼마나 걱정했겠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그 걱정을 할까 봐, 저는 하여튼 그 사람들은 보호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내가 당신한테 듣지 않은 걸로 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미리 했거든요."
앵커 : "20년 동안 실제 안 계장의 이름을 숨기셨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람은 아주 고위직까지 올라갔었어요. 서울지역 교정본부장까지 했었어요. 아마 거의 최고의 직까지 했는데 저는 안유 형 같은 사람이나 한재동 형 같은 사람들. 그 공분 때문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공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사람한테 그 얘기를 한 거란 말이에요. 그럼 저는 제가 국회의원을 하고 뭐 조금 출세를 하고 이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나는 그거 밝히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2007년까지 안 밝혔어요, 20년 지날 때까지. 그분들이 모두 정년퇴직 할 때까지. 그리고 25주년 됐던 2010년? 그때 안유 씨하고 한재동 씨가 커밍아웃 해서 남영동 대공수사단 거기서 25주기 박종철 군 추도식하는데 저하고 셋이 같이 나와서 그야말로 세상에 자기들의 얼굴을 다 알렸습니다."
앵커 : "그때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거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다 자세히 알려진 겁니다."
앵커 : "만약 그때 처음에 밝혀졌더라면 내부고발자였기 때문에 불이익을 크게 당했겠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저는 공직자들이 그런 용기를 가지고 한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앵커 : "영등포교도소 때문에 저희가 이 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김근태 씨도, 고 김근태 의원도 거기 수감됐었고요. 이번에 철거소식 듣고 기분이 어떠셨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착잡했죠. 그쪽에 지난번에도 한번 가보니까 아파트촌 한가운데 있더라고요."
앵커 : "헐고 또 아파트 짓습니다. 관공서도 짓고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런데 요새는 없는 증거도 또 만들어내는 시대기도 합니다마는 그 민주화운동으로 6월항쟁까지 갔던 그 곳에 박종철 군의 그 억울한 죽음이 조작됐던 것이 진실이 밝혀졌다고 그래서 민주화 운동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면 거기 표지석 하나 만들 수 없을까요? 무언가 하여튼 기념물이라도 만들어서 후세에 우리 후손들이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지만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졌었다라는 것은 기억할 만한 곳이 아닐까. 그 결정권은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데 기뻐할지 싫어할지 그건 두고 봐야 되겠습니다."
앵커 : "굴곡진 현대사일지라도 기억해야 할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억할 만한 어떤 상징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지금 위안부 문제 같은 거 일본 사람들이 조작하는 거 보세요.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역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모르겠습니다. 민주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억할는지."
앵커 : "우리 6.10항쟁의 작은 시발점이 됐던 그 장소에 의미 있는 표지석 하나. 알겠습니다. 우리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시죠. 이부영 전 의원과 사라지는 영등포교도소에서 지난 87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봤습니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감사합니다."
故 김근태 의원 등 80년대 민주화 인사가 옥고를 치룬 곳이고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과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인 전경환씨가 거쳐간 곳이기도 합니다.
굴곡진 현대사의 상징이던 영등포교도소가 65년 만에 철거된다고 하는데요.
그 영등포 교도소에서 87년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을 세상을 알린 분이죠 이 사건은 이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는데요.
한 평도 안 되는 독방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요.
그 주인공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자리하셨습니다.
앵커 : "어서 오세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안녕하셨습니까?"
앵커 : "방금 뉴스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시겠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그렇습니다."
앵커 : "민주화운동으로 여러 차례 고초 겪으셨는데 87년에는 어떤 이유 때문에 수감이 되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86년에 지금은 뭐 먼 일이 됐지만 5.3인천민주항쟁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제야 아주 총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민통련의 사무처장으로 5.3민주항쟁을 배후에서 조정했다고 그래서 수배당했다가 구속이 됐어요. 그래서..."
앵커 : "그때 몇 년 형 받으신 거예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3년형을 받았는데 86년 10월부터 87년 6월 29일 6.29 나던 날까지 영등포 교도소에 있다가 그 뒤에 김천교도소로 옮겨져서 88년에 노태우 씨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니까 한 1년 반 정도..."
앵커 : "영등포교도소에?"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아니요."
앵커 : "아, 그때는 영등포교도소에서 나오셨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앵커 : "말씀 이어가겠습니다. 어제 영등포교도소 철거한다고 해서 시민 개방행사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많이 왔는데요. 사실 다시 보기 불편하시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좀 그렇죠."
앵커 : "지금 교도소 담을 철거하는 모습입니다."
앵커 : "6개의 수용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치사범들은 따로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경미한 사람들은 일반수도 있었지만 조금 좀 당국에서 보기에 중범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따로 가둬놨어요. 그 당시 저하고 유성환 국회의원 그분은 86년에 반공이 국시가 아니라 통일이 국시다라고 해서 현직 국회의원이 구속이 됐던 참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있었죠. 저하고 같이 독방에 옆에 있었어요."
앵커 : "그러면 유성환 전 의원과는 서로 두 분끼리는 대화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운동하러 나올 때 잠깐 보고 그러죠. 평소에는 따로 따로 방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대화를 못했죠. 그곳은 여성들을 가둬놨던 여사였는데 교도소 안에 담이 또 있었어요. 그 여성수감자들을 의정부교도소로 모두 옮겨버리고 저하고 유성환 의원을 그 안에 가둬놨습니다."
앵커 :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또 격리가 되신 거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습니다."
앵커 : "독방 크기가 어느 정도 됐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0.72평이니까 1평이 안 되죠. 딱 드러누우면 관 같았어요, 이렇게 길고. 뒤에는 화장실 변소가 있었고요."
앵커 : "당시에 계셨던 그 독방 어제 촬영해 왔습니다."
앵커 : "상당히 정말 참 좁아 보입니다. 어른 키 만한 것 같습니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죠."
앵커 : "저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지금 저기는 영등포교도소에만 있는 게 아니고요. 전국의 그 당시 정치범들을 가둬놨던 특별사동이라는 곳이 대전, 전주, 광주, 대구 이렇게 4개 교도소에 그런 방들이 36개씩 달린 특별사동이 있었는데 일반 구치소나 교도소에도 그 독방들이 몇 개씩 있었어요. 참 고통스럽죠. 사람들 체온이 있으니까 겨울에도 같이 잠을 자면 좀 나은데 시멘트 벽 속에 있는 독방은 밖이 영하 한 10도면 그 안에는 영하 한 12, 3도가 돼요. 왜냐하면 시멘트가 함께 뭐라고 할까, 얼어버리니까 그 안에는 마치 냉장고 같은 효과가 있어요."
앵커 : "안에 필기도구 같은 거, 책 같은 건 갖고 갈 수 있었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당시는 물론 5공 치하나 유신 때는 필기도구 같은 건 언감생신 생각을 할 수 없었고요. 책도 사회과학 서적 이런 건 일체 안 넣어주고 성경, 불경 그리고 역사소설 이런 것만 넣어줬어요. 그래서 성경을 제가 여러 번 읽었습니다,그 덕택에요."
앵커 : "다른 사람과 심지어 옆방 사람과의 접촉도 철저하게 격리된, 차단된 상황에서 어떻게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내용을 알게 되신 거예요, 그 안에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87년 1월 17일경 새벽에 문이 덜커덩 열리면서 어떤 남자 두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독방에 좁은 데 넣어놨는데 그 사람들은 한 7, 8명이 생활할 수 있는 넓은 방에다 한 사람씩 넣더라고요. 저 사람들은 굉장히 잘 나가는 사람들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교도관들한테. 남영동 대공수사단 수사관들이라는 거예요."
앵커 : "경찰이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경찰관이죠. 우선 제가 그 이전에 86년도에 남영동 대공수사단에서 제가 조사를 받고 온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누군가 관심이 좀 있을 거 아니에요, 나를 조사했던 사람인가. 나중에 그 교도관들이 얘기를 해 주는데 특히 교도관들 가운데는 제가 하도 여러 번 들락날락 하니까 제가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 반대해서 들어왔다는 이유밖에 없고 그것도 고문당하고 그런 걸 아니까 그 교도관들이 그 안에 흉악범들도 있고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속으로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앵커 : "신뢰도 형성이 됐고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렇죠. 그래서 영등포교도소에서 그전에 70년대 제가 서울구치소에 들어가 있을 때 정말 형, 동생처럼 가까워진 친구들이 있었어요."
앵커 : "그분들이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신 겁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특히 안유 보안계장. 지금은 제가 이 사람 이름을 얘기합니다마는 한재동 교도관. 그런 사람들이 저하고는 거의 형제 같은 우애를 나눈 사람들이었어요."
앵커 : "그러니까 새로 들어온 2명의 수사관들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데 뭔가 진실이 숨겨져 있다라고 당시 교도소 보안계장이 귀띔을 해 준 겁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하루는 그 보안계장이 저를 면회를 하자고 그래요. 그 보안계장이라는 건 저 같은 정치범들을 주로 담당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더니 나를 만나서 커피를 한잔 주면서 형. 그 사람이 나더러 형이라고 했어요. 제가 요새 괴로워서 못살겠다고. 무슨 일이냐 그랬더니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면서 아니,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도 됩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랬더니 한참 한숨을 푹 쉬더니 저한테 박종철 군 고문해서 죽인 사람이 따로 있고 여기 온 사람들은 진범이 아니에요. 이건 정말 경천동지할 일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있나 그랬더니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도 돼요?"
앵커 : "지금 수감된 경찰들은 죄를 뒤집어써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눈물이 글썽글썽해가지고 저한테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는 같은 공직자지만 그 박청원 대공수사단장이 와서 자기 부하들을 면회해서 와서 1억원짜리 통장씩을 각각 한 사람한테씩 내보이면서 너희들 가족들 이걸로 다 뒷바라지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들이 거기서 조사한 대로 너는 답변을 해.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우리가 진범이 아닌데 왜 우리들만 구속합니까, 우리는 고문해서 죽인 사람도 아니고 옆에서 보좌했던 사람들입니다. 필요해서 그런 거고 너희들 빨리 나오게 해 줄 테니까 받아들여. 그러니까 우리가 고문해서 박종천이를 죽였다고 그러면 우리는 고문경찰이라고 대대손손 알려지면 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라고 합니까? 그걸 못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아, 빨갱이 하나 죽인 걸 가지고 뭘 그래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반항을 했어요."
앵커 : "죄를 뒤집어쓸 수 없다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러니까 그 박청원 단장이 너 그러면 밖에 나가서도 이 대한민국 안에서 살 수가 없어, 나오더라도. 그러고 회유하는 거, 그게 깨져버린 거예요. 그 얘기를..."
앵커 : "그런 사실을 지켜본 보안계장과..."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리고 또 하나는 강진규 경사라는 사람이 부친이 그 사람들은 토요일날 오후에만 면회를 했어요. 면회시간이 아닐 때 면회를 했는데 부친이 와서 강진규 경사한테 너 정말 고문해서 사람 죽였냐, 학생을 죽였냐 그러니까 아버지 저는 죽이지 않았어요. 저는 억울합니다 이러고 아버지한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더라는 거예요. 저는 고문할 때 고문 당하는 학생이 괴로워서 소리지를 때 그 소리가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노래를 부르라면 노래부르고 이런 짓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더러 걔를 죽였다고 그러니 저는 억울합니다. 절대 아버지 저를 믿어주세요 이러고 울면서 호소를 하더라는 거예요. 그 면회실에서 이 강진규 형사가 아버지하고 면회하는 걸 봤던 그 교도관이."
앵커 : "한재동 교도관입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아닙니다. 안 교도관인데 교대로 들어와서 저한테 그런 얘기를 일러주는 거예요."
앵커 : "그런데 그런 얘기를 이제 들으셨단 말이에요. 정황을 아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밖으로 알리셨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안유 보안계장에게 그랬어요. 당신하고 이 얘기 나눈 걸 없었던 일로 하자. 내가 못 들은 걸로 하겠다. 그리고 그 사람 일단 거기서 끝난 걸로 했어요. 그리고 제가 한재동 교도관을 따로 불렀어요. 그 사람은 다른 데 있었는데 제가 다른 교도관을 시켜서 불러서 빨리 들어와라 그래서 그 친구한테 모나미 볼펜이라고 있었죠, 옛날에?"
앵커 : "저희가 준비한 화면이 있는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볼펜심을 하나 갖다 달래가지고 교도소 안에서 쓰는 재생갱지가 있어요. 갱지에 자세한 내용을 적어서."
앵커 : "화면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우촌에게. 우촌이라면."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김정남."
앵커 : "전 청와대 교육수석."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호해요, 아호예요. 메모를 써서 전달하게 했죠."
앵커 : "완전 조작극이다."
앵커 : "그 수사관들은 각본에 응한 것이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네. 그래서 그것이 우촌 김정남하고 전병용이라고 그 두 사람도 다 저 때문에 장기표 씨 하고 저 때문에 도망을 다니고 있었어요. 서로 만나기도 어렵고 그래서."
앵커 : "그러면 또 교도소 안에서 전달한 분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 메모를."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한재동 씨라고."
앵커 : "앞서 말씀하신 그 교도관이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람이 전병용 씨한테 전달을 하는데 도망자를 만나기가 힘들잖아요. 그리고 또 김정남 씨도 도망자고요. 그러니까 전달을 하고 나서 이틀 뒤에 전병용 씨가 잡혔어요. 그런데 그때는 편지가 세 뭉치나 있었거든. 전달 못하고 또 자꾸 전달하라고 했는데 그걸 가지고 있었다가 전병용 씨한테 전달했고 전병용 씨가 김정남 씨한테 전달한 이틀 뒤에 잡힌 거예요. 나는 그 편지 세 통을 다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잡혔으면 어떡할 뻔했나."
앵커 : "마음 졸이셨겠네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건 나중에 들었으니까 그렇지."
앵커 : "때 잡혔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을 거 아니에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나중에 들었어요. 잡혔다는 얘기를."
앵커 : "한참 뒤에."
앵커 : "이렇게 어렵사리 메모가 전달이 됐고. 메모가 전달이 됐고요. 두 달 만에 정의구현사제단에 이 편지를 폭로하면서 진상이 드러납니다. 당시 검찰 발표 잠깐 보겠습니다."
당시 검찰 발표 : "탁 하고 억이란 말이 나온 원인은 죽음의 원인이 질식사가 아닌 심장마비라고 (하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이었다)."
앵커 : "그렇게 해서 6월항쟁까지 이어집니다. 이 사실도 한참 뒤에 아셨겠네요."
앵커 : "감옥 안에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때 당시는 뭐랄까요, 민주화운동이 한창 고조되어가니까 교도관들도 저희들한테 신이 나서 그 소식들을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은 5월 18일날 광주항쟁 7주기에 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명동성당에서 그걸 밝혔을 때 사태가 어떻게 되려나. 혹시 저분들이 잡혀가서 역추적이 되지 않을까. 그럼 저는 감옥 안에서 꼼짝을 못하는 게 아니에요. 그때는 고문해서 사람을 죽일 때인데. 참 다 지났으니까 그렇지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조마조마했어요. 역추적하면 나는 꼼짝 없잖아요. 어떻게 도망갈 데도 없고. 그런데 그게 발표되자마자 며칠 지나면서 박처훈 씨가 구속이 됐고, 수사단장인. 강민창이라고."
앵커 : "치안본부장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본부장도 구속이 돼요. 그리고 장세동 안기부장, 내무장관이었던 김종필 그 사람도 그만 두고. 내각이 바뀌고 이렇게 가더라고요."
앵커 : "그야말로 만천하에 드러난 거죠."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제단에서 발표된 게 사실이 아니면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어요? 그걸 보고 안심을 했죠. 역추적은 이제 있기 힘들겠구나."
앵커 : "위원님이 그 정도였으면 그 사실을 처음에 귀띔해 준 안유 보안계장은 얼마나 걱정했겠습니까?"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제가 그 걱정을 할까 봐, 저는 하여튼 그 사람들은 보호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내가 당신한테 듣지 않은 걸로 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미리 했거든요."
앵커 : "20년 동안 실제 안 계장의 이름을 숨기셨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 사람은 아주 고위직까지 올라갔었어요. 서울지역 교정본부장까지 했었어요. 아마 거의 최고의 직까지 했는데 저는 안유 형 같은 사람이나 한재동 형 같은 사람들. 그 공분 때문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공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사람한테 그 얘기를 한 거란 말이에요. 그럼 저는 제가 국회의원을 하고 뭐 조금 출세를 하고 이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나는 그거 밝히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2007년까지 안 밝혔어요, 20년 지날 때까지. 그분들이 모두 정년퇴직 할 때까지. 그리고 25주년 됐던 2010년? 그때 안유 씨하고 한재동 씨가 커밍아웃 해서 남영동 대공수사단 거기서 25주기 박종철 군 추도식하는데 저하고 셋이 같이 나와서 그야말로 세상에 자기들의 얼굴을 다 알렸습니다."
앵커 : "그때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거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다 자세히 알려진 겁니다."
앵커 : "만약 그때 처음에 밝혀졌더라면 내부고발자였기 때문에 불이익을 크게 당했겠군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저는 공직자들이 그런 용기를 가지고 한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앵커 : "영등포교도소 때문에 저희가 이 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김근태 씨도, 고 김근태 의원도 거기 수감됐었고요. 이번에 철거소식 듣고 기분이 어떠셨어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착잡했죠. 그쪽에 지난번에도 한번 가보니까 아파트촌 한가운데 있더라고요."
앵커 : "헐고 또 아파트 짓습니다. 관공서도 짓고요."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런데 요새는 없는 증거도 또 만들어내는 시대기도 합니다마는 그 민주화운동으로 6월항쟁까지 갔던 그 곳에 박종철 군의 그 억울한 죽음이 조작됐던 것이 진실이 밝혀졌다고 그래서 민주화 운동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면 거기 표지석 하나 만들 수 없을까요? 무언가 하여튼 기념물이라도 만들어서 후세에 우리 후손들이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지만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졌었다라는 것은 기억할 만한 곳이 아닐까. 그 결정권은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데 기뻐할지 싫어할지 그건 두고 봐야 되겠습니다."
앵커 : "굴곡진 현대사일지라도 기억해야 할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억할 만한 어떤 상징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지금 위안부 문제 같은 거 일본 사람들이 조작하는 거 보세요.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역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모르겠습니다. 민주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억할는지."
앵커 : "우리 6.10항쟁의 작은 시발점이 됐던 그 장소에 의미 있는 표지석 하나. 알겠습니다. 우리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시죠. 이부영 전 의원과 사라지는 영등포교도소에서 지난 87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봤습니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감사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