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24 이슈] 생사를 가르는 30분 ‘골든타임’

입력 2014.04.24 (18:07) 수정 2014.04.2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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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골든타임, 재난 사고 때 삶과 죽음을 가르는 '초기 30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만큼 초동대처가 중요하다는 건데요.

하지만 세월호의 경우, 사고 초기의 무책임한 대처가 피해를 키웠습니다.

생사를 좌우하는 '골든타임'에 대해 국제부 기자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정창화 기자!

<질문>
세월호가 조난 신고를 한 뒤 침몰하기까지는 140분의 시간이 있었는데요.

탑승객들, 특히 학생들 대부분이 대피하지 못했어요?

<답변>
네, 정말 안타까운 점인데요, 사고 초기, 선실에 있으라는 안내방송... 이 잘못된 지시가 화를 키웠습니다.

<녹취>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이 안내방송만 믿고 있던 승객들은 바닷물이 밀려들면서 뒤늦게 대피에 나섰지만 대부분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승객 상당수가 기다리라는 지시와 상관없이 스스로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입니다.

<녹취> 양인석(승객) : "살아남으려고 막 기어나온 거에요. 어떻게 나온 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세월호 승객을 구출하기까지 구조대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이었습니다.

<녹취> 김홍경(구조된 승객) : "그 곳에 있어라, 움직이지 마라 했어요. 그때 대피하라고만 했으면...그러고 나서 30분 정도 시간이 있었거든요."

사고 초기, 생사를 가를 '골든타임'을 이렇게 놓쳤습니다.

<녹취> 차은옥(승객) : "구명조끼 입혀서 바다로 보내라! 그랬으면요 바다에서 다 구조했어요."

11년 전, 192 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승객들 모습인데요, 손으로 코와 입만 막은 채 그대로 좌석에 앉아 있죠?

연기 때문에 숨쉬기가 힘든 상황인데도 승객들은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객차 안에서 대기하라는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최남희(서울 내러티브연구소장) : "유리를 깨고 나온 사람이 있었어요. 강화 유리를..옆에 있는 여고생한테 같이 가자 그랬는데..." "'(가만히) 있으랬자나' 그러고 안 나왔다는 거에요."

결국 전체 사망자의 74%인 142명이 안내 방송을 따르다 객차 안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질문>
눈앞에 위기가 닥쳤는데 왜 스스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답변>
그게 인간 심리상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위급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의 행동을 실험으로 관찰해봤는데요, 결과가 놀랍습니다.

설문지 작성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자리입니다.

담당자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우는데요.

곧이어 화재 경보가 울립니다.

그런데 잠시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이 이내 무덤덤한 표정으로 설문지 작성을 이어갑니다.

밖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5분 30초가 지난 뒤... 하지만 실험이 끝날 때까지 이 방을 떠난 사람은 없었습니다.

<녹취> 피실험자 :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누군가가 곧 들어오겠지 생각했어요"

<녹취> 피실험자 : "실제 화재나 그런 것들이었다면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가라고 했을 거라 생각했죠"

자 그럼 똑같은 상황에 누군가 '대피 지시'를 내린다면 어떨까요?

설문지 작성을 위해 모인 또 다른 그룹인데요.

이전 그룹과 똑같이 처음엔 화재 경보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들어와 대피하라고 하자 상황이 급변하는데요.

<녹취> 소방 감독관 : "주목해 주십시오. 화재 경보가 작동했으니 비상구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비상구를 통해 탈출합니다.

<녹취> 피실험자 : "확실한 경고였어요. 잊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들어와 우리를 찾으려고 했죠."

<녹취> 피실험자 : "누군가가 통솔해서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안심이었어요. 안 그러면 저는 어쩔 줄 모르죠."

초기의 대피 지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조 실험입니다.

<녹취> 홍원화(경북대 건축공학과 교수) : "최악의 상황이 됐을 때, 인간에게 여러 가지 기본적인 행동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추종심리입니다. 내가 앞에 나서서 판단할 수 없을 때에는 옆 사람이나 주변사람을 따라가는 심리적인 작용이 일어납니다."

<질문>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판단이 나한테 영향을 미친다는 거군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또 혼자 있을 때와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인간의 반응도 달라지기 쉽습니다.

다른 실험영상 보시면서 설명드리죠.

방 안에 실험 참가자들을 있게 하고, 화재가 난 것처럼 방 안으로 연기를 조금씩 흘려 넣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문에서 연기가 나면 위험할까 판단해 서둘러 방을 떠났는데요. 평균 15초 안팎이었습니다.

반면에, 3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을 땐 방 안에 연기가 가득했지만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피하는 데 평균 13분 이상 시간이 걸렸습니다.

'동조효과'라는 건데요.

3명 이상의 다른 사람들이 사실과 다른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경우, 내가 이상한 건가 착각해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
만약 조난 신고가 이뤄진 바로 그 시점에 세훨호에서 대피지시에 따라 탈출이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답변>
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라 선채가 45도 기울어진 상황을 가정해 탈출 과정을 재현해 봤습니다.

당시만 해도 구명정이 있는 5층으로 올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비상 탈출 경로인 가운데 계단으로 탈출한다고 봤을 때 평소 사람이 기어가는 속도로 승객들이 탈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 봤는데요, 3,4층에 있는 승객들 모두가 구명정이 있는 옥상으로 대피하는 데 15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녹취> 박형주(가천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 : "15분이면 아마 이상 없이 구명보트를 타고 바다로 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물론 구명보트가 정상적으로 펴졌을 때를 얘기하는 겁니다."

<질문>
그런데, 초기에 신속한 대피 명령이 대형 인명피해를 막은 사례가 있다고요?

<답변>
네, 지난 2007년 캐나다 유람선이 남극 지역에서 침몰 위기를 맞았는데요, 당시 초기 대피명령으로 탑승자 전원이 구조된 사례가 있습니다.

2007년 11월 승객과 승무원 154명을 태우고 남극 지역을 지나던 캐나다 유람선 'MS 익스플로러'호입니다.

빙하와 충돌해 선체에 구멍이 생기면서 침몰위기를 맞았는데요.

선원과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구명보트에 올라탈 것을 지시했고 구명정을 타고 탈출해 인근 해역을 지나던 노르웨이 유람선에 모두 구조됐습니다.

<녹취> 후안 카를로스(임시대피소 관계자) : "일부는 저체온증이 있었고 이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선원과 승객들은 다친 곳 없이 구조됐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승무원들의 침착하고 신속한 대피 지시가 있었더라면, 해경과 해군의 초기 인명구조가 허둥대지 않았더라면 하는 점들인데요, 위기 상황 초기의 30분, 골든타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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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24 이슈] 생사를 가르는 30분 ‘골든타임’
    • 입력 2014-04-24 18:53:34
    • 수정2014-04-24 19:05:26
    글로벌24
<앵커 멘트>

골든타임, 재난 사고 때 삶과 죽음을 가르는 '초기 30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만큼 초동대처가 중요하다는 건데요.

하지만 세월호의 경우, 사고 초기의 무책임한 대처가 피해를 키웠습니다.

생사를 좌우하는 '골든타임'에 대해 국제부 기자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정창화 기자!

<질문>
세월호가 조난 신고를 한 뒤 침몰하기까지는 140분의 시간이 있었는데요.

탑승객들, 특히 학생들 대부분이 대피하지 못했어요?

<답변>
네, 정말 안타까운 점인데요, 사고 초기, 선실에 있으라는 안내방송... 이 잘못된 지시가 화를 키웠습니다.

<녹취>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이 안내방송만 믿고 있던 승객들은 바닷물이 밀려들면서 뒤늦게 대피에 나섰지만 대부분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승객 상당수가 기다리라는 지시와 상관없이 스스로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입니다.

<녹취> 양인석(승객) : "살아남으려고 막 기어나온 거에요. 어떻게 나온 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세월호 승객을 구출하기까지 구조대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이었습니다.

<녹취> 김홍경(구조된 승객) : "그 곳에 있어라, 움직이지 마라 했어요. 그때 대피하라고만 했으면...그러고 나서 30분 정도 시간이 있었거든요."

사고 초기, 생사를 가를 '골든타임'을 이렇게 놓쳤습니다.

<녹취> 차은옥(승객) : "구명조끼 입혀서 바다로 보내라! 그랬으면요 바다에서 다 구조했어요."

11년 전, 192 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승객들 모습인데요, 손으로 코와 입만 막은 채 그대로 좌석에 앉아 있죠?

연기 때문에 숨쉬기가 힘든 상황인데도 승객들은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객차 안에서 대기하라는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최남희(서울 내러티브연구소장) : "유리를 깨고 나온 사람이 있었어요. 강화 유리를..옆에 있는 여고생한테 같이 가자 그랬는데..." "'(가만히) 있으랬자나' 그러고 안 나왔다는 거에요."

결국 전체 사망자의 74%인 142명이 안내 방송을 따르다 객차 안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질문>
눈앞에 위기가 닥쳤는데 왜 스스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답변>
그게 인간 심리상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위급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의 행동을 실험으로 관찰해봤는데요, 결과가 놀랍습니다.

설문지 작성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자리입니다.

담당자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우는데요.

곧이어 화재 경보가 울립니다.

그런데 잠시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이 이내 무덤덤한 표정으로 설문지 작성을 이어갑니다.

밖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5분 30초가 지난 뒤... 하지만 실험이 끝날 때까지 이 방을 떠난 사람은 없었습니다.

<녹취> 피실험자 :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누군가가 곧 들어오겠지 생각했어요"

<녹취> 피실험자 : "실제 화재나 그런 것들이었다면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가라고 했을 거라 생각했죠"

자 그럼 똑같은 상황에 누군가 '대피 지시'를 내린다면 어떨까요?

설문지 작성을 위해 모인 또 다른 그룹인데요.

이전 그룹과 똑같이 처음엔 화재 경보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들어와 대피하라고 하자 상황이 급변하는데요.

<녹취> 소방 감독관 : "주목해 주십시오. 화재 경보가 작동했으니 비상구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비상구를 통해 탈출합니다.

<녹취> 피실험자 : "확실한 경고였어요. 잊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들어와 우리를 찾으려고 했죠."

<녹취> 피실험자 : "누군가가 통솔해서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안심이었어요. 안 그러면 저는 어쩔 줄 모르죠."

초기의 대피 지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조 실험입니다.

<녹취> 홍원화(경북대 건축공학과 교수) : "최악의 상황이 됐을 때, 인간에게 여러 가지 기본적인 행동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추종심리입니다. 내가 앞에 나서서 판단할 수 없을 때에는 옆 사람이나 주변사람을 따라가는 심리적인 작용이 일어납니다."

<질문>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판단이 나한테 영향을 미친다는 거군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또 혼자 있을 때와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인간의 반응도 달라지기 쉽습니다.

다른 실험영상 보시면서 설명드리죠.

방 안에 실험 참가자들을 있게 하고, 화재가 난 것처럼 방 안으로 연기를 조금씩 흘려 넣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문에서 연기가 나면 위험할까 판단해 서둘러 방을 떠났는데요. 평균 15초 안팎이었습니다.

반면에, 3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을 땐 방 안에 연기가 가득했지만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피하는 데 평균 13분 이상 시간이 걸렸습니다.

'동조효과'라는 건데요.

3명 이상의 다른 사람들이 사실과 다른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경우, 내가 이상한 건가 착각해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
만약 조난 신고가 이뤄진 바로 그 시점에 세훨호에서 대피지시에 따라 탈출이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답변>
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라 선채가 45도 기울어진 상황을 가정해 탈출 과정을 재현해 봤습니다.

당시만 해도 구명정이 있는 5층으로 올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비상 탈출 경로인 가운데 계단으로 탈출한다고 봤을 때 평소 사람이 기어가는 속도로 승객들이 탈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 봤는데요, 3,4층에 있는 승객들 모두가 구명정이 있는 옥상으로 대피하는 데 15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녹취> 박형주(가천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 : "15분이면 아마 이상 없이 구명보트를 타고 바다로 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물론 구명보트가 정상적으로 펴졌을 때를 얘기하는 겁니다."

<질문>
그런데, 초기에 신속한 대피 명령이 대형 인명피해를 막은 사례가 있다고요?

<답변>
네, 지난 2007년 캐나다 유람선이 남극 지역에서 침몰 위기를 맞았는데요, 당시 초기 대피명령으로 탑승자 전원이 구조된 사례가 있습니다.

2007년 11월 승객과 승무원 154명을 태우고 남극 지역을 지나던 캐나다 유람선 'MS 익스플로러'호입니다.

빙하와 충돌해 선체에 구멍이 생기면서 침몰위기를 맞았는데요.

선원과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구명보트에 올라탈 것을 지시했고 구명정을 타고 탈출해 인근 해역을 지나던 노르웨이 유람선에 모두 구조됐습니다.

<녹취> 후안 카를로스(임시대피소 관계자) : "일부는 저체온증이 있었고 이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선원과 승객들은 다친 곳 없이 구조됐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승무원들의 침착하고 신속한 대피 지시가 있었더라면, 해경과 해군의 초기 인명구조가 허둥대지 않았더라면 하는 점들인데요, 위기 상황 초기의 30분, 골든타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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