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24 이슈] 세월호 사고, ‘직언’ 못하는 한국의 거울

입력 2014.05.02 (18:09) 수정 2014.05.0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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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원칙과 신념이 아닌 부에 대한 욕망이, 그리고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는 권위주의적 문화가 낳은 비극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특히 상급자에 대해 직언을 잘 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되돌아봅니다.

국제부 기자와 자세한 얘기 나눠봅니다.

정창화 기자?

<질문>
상급자에게 직언을 하지 못해 벌어졌던 사고, 우리나라에도 있었나요?

<답변>
네,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지난 1997년 괌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사고인데요.

당시 블랙박스에 담겨있던 기장과 부기장, 기관사의 대화를 보면 우리 사회의 경직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97년 8월 6일 새벽 1시 42분.

괌 아가나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던 대한항공 801편....

부기장이 혼잣말로 ‘안 보이잖아?’ 라고 말합니다.

당시 괌 공항 인근엔 비가 오고 있었고, 비행기 고도는 500피트, 약 152미터로 활주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기관사도 잠시 뒤 ‘어!’ 하는 놀란 반응을 보였구요, 결국 부기장은 잠시 뒤 착륙을 포기하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기장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곧이어 2초 뒤, 부기장이 다급하게 말합니다.

<녹취> "안 보이죠? 착륙 포기!"

1초 뒤 기장이 대답합니다. ‘Go around.’ 착륙 포기를 지시한 겁니다.

하지만 이미 지표와 100피트, 약 3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기장이 대답하고 2초 후, 대한항공 여객기는 언덕을 들이받고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탑승자 254명 가운데 무려 228명이 숨졌는데요, 이런 급박한 상황에선 부기장이 조종권을 넘겨받고 비행기 고도를 올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부기장은 기장의 눈치만 살폈던 거죠.

<질문>
상명하복식 관계에서 괌 여객기 추락사고의 원인 중 하나를 찾아볼 수 있다는 거군요?

<답변>
그렇습니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의 저서에서 그 이유를 밝혔는데요.

꽤 흥미롭습니다.

글래드웰은 자신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네덜란드 사회학자 기어트 홉스테드의 가설인 '권력 간격 지수'라는 개념을 인용해 대한항공 추락사고를 설명합니다.

이 '권력 간격 지수', 줄여서 PDI라고 부르는데요, 권위주의적인 문화 때문에 하급자가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정도를 말합니다.

<녹취> 말콤 글래드웰('아웃라이어' 저자) : "윗사람에게 말한다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자, 제가 여러분의 상관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여러분이 저에게 "당신은 좋은 파일럿이 아니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척 힘들 겁니다."

여기 또 관심을 끄는 조사가 있는데요, 심리학자 로버트 헬름라이히와 그의 동료인 애슐레이 메리트가 전 세계 20개국 조종사들의 PDI를 측정한 겁니다.

1위가 브라질이었고, 바로 다음이 우리나라였습니다.

그 뒤를 모로코와 멕시코, 필리핀이 이었는데요, 우리나라 조종사들의 권력 간격 지수, 생각보다 높죠?

반대로 PDI가 가장 낮은 나라는 미국, 아일랜드, 남아공,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순이었습니다.

<질문>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우리 해상 교통 관제센터의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요?

이런 권력 중심 구조와 관련이 있나요?

<답변>
예, 글래드웰은 대형 사고를 낳은 주범 가운데 하나로 ‘완곡화법’을 꼽았는데요.

한 마디로 강한 명령투의 화법이 아닌, 에둘러서 표현하는 방식이 위기 순간에 피해를 더 키운다는 겁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관제구역 내 해양 사고를 통제할 책임이 있는 진도 해상교통관제가 세월호가 교신한 내용을 보면 완곡 화법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사고 당일 세월호와 진도 관제센터의 교신 내용을 보시면요, 구조를 부탁하는 세월호에 관제센터는 승객들을 탈출시키라고 무전을 보내는데요.

<녹취> 진도 VTS :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 바랍니다."

해양 사고를 통제할 책임이 있는 관제센터는 강하게 탈출 명령을 지시하지 않고, 선장의 결정을 기다립니다.

<녹취> 진도 VTS : "승객 탈출 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리십시오. 세월호: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번엔 이 교신 내용을 2년 전 발생했던 이탈리아 크루즈선 콩코르디아호 때와 한 번 비교해 보죠.

<녹취> 경비대장 : "배에 올라가서 구조자들에게 사다리를 내려주고 얼마나 많은 승객이 남아있는지 보고하세요."

<녹취> 선장 : "그런데 지금 배가 기울고 있는 데요…"

경비대장은 이렇게 한 시간 내내 선장에게 구조대를 도와서 승객을 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선장은 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텼거든요, 그러자 결국 경비대장이 화를 냅니다.

<녹취> 경비대장 :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 젠장! 어서 배로 돌아가라고!"

물론 콩코르디아호 사고 때도 선장이 먼저 배에서 탈출해 32명이 숨졌지만 당시 위기상황에서 경비대장이 선장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상황은 우리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
해외에선 사고의 위험이 있는 급박한 상황에 재난당국이 어떻게 대응합니까?

<답변>
네, 이번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특히 미국의 재난대응 시스템이 자주 거론되는데요.

윗사람들에게 보고를 중시하는 우리 모습과 참 많이 대비가 됩니다.

지난 2009년 1월,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US 에어웨이즈 여객기 1549편 얘기인데요.

급작스런 추락에도 불구하고 당시 승객 155명이 전원 구조된 데는 기장의 침착한 대응이 컸지만, 재난 당국의 대응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추락 후 3분만에 헬기와 구조선을 도착시켰던 뉴욕항만청, 특히 사고 발생 후 뉴욕항만청은 상부에 보고하고 승인받는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구조대를 투입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선 조치, 후 보고'라는 원칙과 현장 책임자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녹취> 로이 던(미국 연방재난관리청 직원) : "우리는 (재난 발생 시) 지휘 체계와 협력 구조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 국가 차원의 체제를 정립하고 있습니다."

중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라에 직언하는 신하가 없으면 그 나라는 필연코 멸망한다."

세월호 사고 당시 해상교통관제센터든, 세월호 승무원이든 누구 한 명이라도 직언을 했다면, 강하게 잘못을 지적했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생명들이 희생됐을까요?

그리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불신과 원망을 산 저희 언론들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한 번쯤 생각해 볼 화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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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24 이슈] 세월호 사고, ‘직언’ 못하는 한국의 거울
    • 입력 2014-05-02 19:08:20
    • 수정2014-05-02 19:25:22
    글로벌24
<앵커 멘트>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원칙과 신념이 아닌 부에 대한 욕망이, 그리고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는 권위주의적 문화가 낳은 비극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특히 상급자에 대해 직언을 잘 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되돌아봅니다.

국제부 기자와 자세한 얘기 나눠봅니다.

정창화 기자?

<질문>
상급자에게 직언을 하지 못해 벌어졌던 사고, 우리나라에도 있었나요?

<답변>
네,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지난 1997년 괌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사고인데요.

당시 블랙박스에 담겨있던 기장과 부기장, 기관사의 대화를 보면 우리 사회의 경직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97년 8월 6일 새벽 1시 42분.

괌 아가나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던 대한항공 801편....

부기장이 혼잣말로 ‘안 보이잖아?’ 라고 말합니다.

당시 괌 공항 인근엔 비가 오고 있었고, 비행기 고도는 500피트, 약 152미터로 활주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기관사도 잠시 뒤 ‘어!’ 하는 놀란 반응을 보였구요, 결국 부기장은 잠시 뒤 착륙을 포기하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기장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곧이어 2초 뒤, 부기장이 다급하게 말합니다.

<녹취> "안 보이죠? 착륙 포기!"

1초 뒤 기장이 대답합니다. ‘Go around.’ 착륙 포기를 지시한 겁니다.

하지만 이미 지표와 100피트, 약 3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기장이 대답하고 2초 후, 대한항공 여객기는 언덕을 들이받고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탑승자 254명 가운데 무려 228명이 숨졌는데요, 이런 급박한 상황에선 부기장이 조종권을 넘겨받고 비행기 고도를 올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부기장은 기장의 눈치만 살폈던 거죠.

<질문>
상명하복식 관계에서 괌 여객기 추락사고의 원인 중 하나를 찾아볼 수 있다는 거군요?

<답변>
그렇습니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의 저서에서 그 이유를 밝혔는데요.

꽤 흥미롭습니다.

글래드웰은 자신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네덜란드 사회학자 기어트 홉스테드의 가설인 '권력 간격 지수'라는 개념을 인용해 대한항공 추락사고를 설명합니다.

이 '권력 간격 지수', 줄여서 PDI라고 부르는데요, 권위주의적인 문화 때문에 하급자가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정도를 말합니다.

<녹취> 말콤 글래드웰('아웃라이어' 저자) : "윗사람에게 말한다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자, 제가 여러분의 상관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여러분이 저에게 "당신은 좋은 파일럿이 아니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척 힘들 겁니다."

여기 또 관심을 끄는 조사가 있는데요, 심리학자 로버트 헬름라이히와 그의 동료인 애슐레이 메리트가 전 세계 20개국 조종사들의 PDI를 측정한 겁니다.

1위가 브라질이었고, 바로 다음이 우리나라였습니다.

그 뒤를 모로코와 멕시코, 필리핀이 이었는데요, 우리나라 조종사들의 권력 간격 지수, 생각보다 높죠?

반대로 PDI가 가장 낮은 나라는 미국, 아일랜드, 남아공,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순이었습니다.

<질문>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우리 해상 교통 관제센터의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요?

이런 권력 중심 구조와 관련이 있나요?

<답변>
예, 글래드웰은 대형 사고를 낳은 주범 가운데 하나로 ‘완곡화법’을 꼽았는데요.

한 마디로 강한 명령투의 화법이 아닌, 에둘러서 표현하는 방식이 위기 순간에 피해를 더 키운다는 겁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관제구역 내 해양 사고를 통제할 책임이 있는 진도 해상교통관제가 세월호가 교신한 내용을 보면 완곡 화법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사고 당일 세월호와 진도 관제센터의 교신 내용을 보시면요, 구조를 부탁하는 세월호에 관제센터는 승객들을 탈출시키라고 무전을 보내는데요.

<녹취> 진도 VTS :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 바랍니다."

해양 사고를 통제할 책임이 있는 관제센터는 강하게 탈출 명령을 지시하지 않고, 선장의 결정을 기다립니다.

<녹취> 진도 VTS : "승객 탈출 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리십시오. 세월호: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번엔 이 교신 내용을 2년 전 발생했던 이탈리아 크루즈선 콩코르디아호 때와 한 번 비교해 보죠.

<녹취> 경비대장 : "배에 올라가서 구조자들에게 사다리를 내려주고 얼마나 많은 승객이 남아있는지 보고하세요."

<녹취> 선장 : "그런데 지금 배가 기울고 있는 데요…"

경비대장은 이렇게 한 시간 내내 선장에게 구조대를 도와서 승객을 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선장은 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텼거든요, 그러자 결국 경비대장이 화를 냅니다.

<녹취> 경비대장 :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 젠장! 어서 배로 돌아가라고!"

물론 콩코르디아호 사고 때도 선장이 먼저 배에서 탈출해 32명이 숨졌지만 당시 위기상황에서 경비대장이 선장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상황은 우리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
해외에선 사고의 위험이 있는 급박한 상황에 재난당국이 어떻게 대응합니까?

<답변>
네, 이번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특히 미국의 재난대응 시스템이 자주 거론되는데요.

윗사람들에게 보고를 중시하는 우리 모습과 참 많이 대비가 됩니다.

지난 2009년 1월,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US 에어웨이즈 여객기 1549편 얘기인데요.

급작스런 추락에도 불구하고 당시 승객 155명이 전원 구조된 데는 기장의 침착한 대응이 컸지만, 재난 당국의 대응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추락 후 3분만에 헬기와 구조선을 도착시켰던 뉴욕항만청, 특히 사고 발생 후 뉴욕항만청은 상부에 보고하고 승인받는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구조대를 투입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선 조치, 후 보고'라는 원칙과 현장 책임자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녹취> 로이 던(미국 연방재난관리청 직원) : "우리는 (재난 발생 시) 지휘 체계와 협력 구조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 국가 차원의 체제를 정립하고 있습니다."

중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라에 직언하는 신하가 없으면 그 나라는 필연코 멸망한다."

세월호 사고 당시 해상교통관제센터든, 세월호 승무원이든 누구 한 명이라도 직언을 했다면, 강하게 잘못을 지적했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생명들이 희생됐을까요?

그리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불신과 원망을 산 저희 언론들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한 번쯤 생각해 볼 화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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