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해양 복마전 한국선급, 이대론 안된다

입력 2014.05.02 (21:32) 수정 2014.05.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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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배 모양을 한, 멋스러운 이 건물.

2년 전 새로 지은 한국선급 본사입니다.

선급은 배의 등급을 뜻하는 말입니다. 18세기에 보험료를 산정하기 위해 영국의 로이드 선급이 배의 안전 등급을 매긴 데서 유래 됐습니다.

한국선급은 지하 2층, 지상 18층 규모로, 직원 860여 명이 일하고 있는데요.

주요 업무는 선박 안전 점검입니다.

선체와 기관, 구명설비 등 20개시설, 200여개 항목을 상세히 검사한 뒤 합격 또는 불합격 판정을 내립니다.

이런 업무를 정부로부터 위임받아 독점한 덕분에 한국 선급은 창사 이래 단 한 해를 제외하곤 53년간 흑자를 기록했지만 부실검사와 각종 유착의혹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먼저 그 실태를 강지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한국선급은 지난해 세월호의 객실 증축을 승인하면서 평형수를 배로 늘리고, 화물 적재량은 절반 이하로 줄이도록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은 운항허가를 내주는 해양수산부나 과적단속을 하는 해경에 통보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세월호는 과적을 계속했지만 단속은 받지 않았습니다.

세월호와 쌍둥이 배로 불리는 청해진해운의 오하마나호.

세월호처럼 한국선급 검사에 합격했는데 최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점검한 결과는 달랐습니다.

구명정은 대부분 펴지지 않았고, 차량을 선체에 고정시키는 장치는 아예 없었습니다.

한국선급의 검사를 통과한 화물선이 시설 불량으로 외국 항만에서 출항 정지를 당한 경우만 최근 5년 새 3차례입니다.

지난해엔 한 선박 부품 업체가 다른 업체의 시험 성적서를 위조해 부품인증을 신청했는데도, 한국선급은 그대로 승인했습니다.

<녹취> 시험 성적서 도용 당한 업체 관계자 : "타사 물건을 가지고 우리 서류 양식하고만 베껴서 다 위조한 거죠. 사인하고..."

선주들에게서 급행료를 받고 검사 절차를 축소해준다는 의혹까지 수사 대상에 오른 상황, 수십 년 독점 검사의 폐해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기자 멘트>

정부가 한국선급에 안전 검사 독점권을 준 게 1975년입니다.

그 뒤로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해양대 학장 등 전문가들이 맡아왔던 회장직을,그때부턴 해양수산부 고위 관료 출신이 독차지했습니다.

무려 33년입니다.

회장직을 해수부에 내주면서 독점체제를 유지한 겁니다.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에 대한 로비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한국선급 임원들이 해수부 공무원들에게 상품권 수백만 원어치를 돌린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급은 또 회장의 지휘아래 조직적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돌렸다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는데요, 선박안전법 개정안을 한국선급 측에 유리한 조항을 끼워넣기 위해서였습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에 가까운 독점권을 지키기 위해 기술 개발보다는 로비에 더 치중한 겁니다.

이렇게 복마전 행태를 보여왔는데도 비영리 사단법인이라는 이유로 경영 공시 의무도 없어 관리 감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선박 안전 검사권, 이렇게 감시 사각지대에서 독점을 계속 보장해도 괜찮을까요?

이진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세계 선박 검사 시장에서 한국선급의 점유율은 5.6%,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 7위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해운업계 종사자들의 평가는 냉랭합니다.

<녹취> 외국 해운회사 직원 : "외국에 나가면 입항 수속을 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게 검사기관이 어디냐인데, 신용도 면에서 한국선급이 뒤떨어지죠."

지난 1월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그 이유가 담겼습니다.

한국선급은 선진 선급과 비교하면 수수료만 저렴할 뿐 선박 검사 기술과 능력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선주들이 한국 선급의 검사 독점체제를 깨 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돼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양 강국들이 소속된 국제선급연합회 13개 회원국 가운데 11곳이 선박 검사 부문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독점 체제는 우리나라와 중국 뿐입니다.

<인터뷰> 공길영(한국해양대 교수) : "이제 개방을 통해 독점 체제를 개선해야 합니다. 개방했을 때 장점은 우리나라 조선기자재 업체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게 장점일 수 있겠고"

국민 안전과 직결된 선박 검사 업무를 하는 만큼 철저한 경영 공시 등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고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도 서둘러 마련해야 합니다.

KBS 뉴스 이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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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02 21:35:43
    • 수정2014-05-03 08: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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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모양을 한, 멋스러운 이 건물.

2년 전 새로 지은 한국선급 본사입니다.

선급은 배의 등급을 뜻하는 말입니다. 18세기에 보험료를 산정하기 위해 영국의 로이드 선급이 배의 안전 등급을 매긴 데서 유래 됐습니다.

한국선급은 지하 2층, 지상 18층 규모로, 직원 860여 명이 일하고 있는데요.

주요 업무는 선박 안전 점검입니다.

선체와 기관, 구명설비 등 20개시설, 200여개 항목을 상세히 검사한 뒤 합격 또는 불합격 판정을 내립니다.

이런 업무를 정부로부터 위임받아 독점한 덕분에 한국 선급은 창사 이래 단 한 해를 제외하곤 53년간 흑자를 기록했지만 부실검사와 각종 유착의혹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먼저 그 실태를 강지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한국선급은 지난해 세월호의 객실 증축을 승인하면서 평형수를 배로 늘리고, 화물 적재량은 절반 이하로 줄이도록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은 운항허가를 내주는 해양수산부나 과적단속을 하는 해경에 통보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세월호는 과적을 계속했지만 단속은 받지 않았습니다.

세월호와 쌍둥이 배로 불리는 청해진해운의 오하마나호.

세월호처럼 한국선급 검사에 합격했는데 최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점검한 결과는 달랐습니다.

구명정은 대부분 펴지지 않았고, 차량을 선체에 고정시키는 장치는 아예 없었습니다.

한국선급의 검사를 통과한 화물선이 시설 불량으로 외국 항만에서 출항 정지를 당한 경우만 최근 5년 새 3차례입니다.

지난해엔 한 선박 부품 업체가 다른 업체의 시험 성적서를 위조해 부품인증을 신청했는데도, 한국선급은 그대로 승인했습니다.

<녹취> 시험 성적서 도용 당한 업체 관계자 : "타사 물건을 가지고 우리 서류 양식하고만 베껴서 다 위조한 거죠. 사인하고..."

선주들에게서 급행료를 받고 검사 절차를 축소해준다는 의혹까지 수사 대상에 오른 상황, 수십 년 독점 검사의 폐해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기자 멘트>

정부가 한국선급에 안전 검사 독점권을 준 게 1975년입니다.

그 뒤로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해양대 학장 등 전문가들이 맡아왔던 회장직을,그때부턴 해양수산부 고위 관료 출신이 독차지했습니다.

무려 33년입니다.

회장직을 해수부에 내주면서 독점체제를 유지한 겁니다.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에 대한 로비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한국선급 임원들이 해수부 공무원들에게 상품권 수백만 원어치를 돌린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급은 또 회장의 지휘아래 조직적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돌렸다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는데요, 선박안전법 개정안을 한국선급 측에 유리한 조항을 끼워넣기 위해서였습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에 가까운 독점권을 지키기 위해 기술 개발보다는 로비에 더 치중한 겁니다.

이렇게 복마전 행태를 보여왔는데도 비영리 사단법인이라는 이유로 경영 공시 의무도 없어 관리 감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선박 안전 검사권, 이렇게 감시 사각지대에서 독점을 계속 보장해도 괜찮을까요?

이진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세계 선박 검사 시장에서 한국선급의 점유율은 5.6%,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 7위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해운업계 종사자들의 평가는 냉랭합니다.

<녹취> 외국 해운회사 직원 : "외국에 나가면 입항 수속을 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게 검사기관이 어디냐인데, 신용도 면에서 한국선급이 뒤떨어지죠."

지난 1월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그 이유가 담겼습니다.

한국선급은 선진 선급과 비교하면 수수료만 저렴할 뿐 선박 검사 기술과 능력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선주들이 한국 선급의 검사 독점체제를 깨 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돼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양 강국들이 소속된 국제선급연합회 13개 회원국 가운데 11곳이 선박 검사 부문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독점 체제는 우리나라와 중국 뿐입니다.

<인터뷰> 공길영(한국해양대 교수) : "이제 개방을 통해 독점 체제를 개선해야 합니다. 개방했을 때 장점은 우리나라 조선기자재 업체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게 장점일 수 있겠고"

국민 안전과 직결된 선박 검사 업무를 하는 만큼 철저한 경영 공시 등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고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도 서둘러 마련해야 합니다.

KBS 뉴스 이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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