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간다] 무능한 해경이 참사 키웠다

입력 2014.05.02 (23:14) 수정 2014.05.03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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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월호 침몰 사고를 초래한 청해진 해운의 불법 경영 배후에는 유 전 회장 일가가 있는데요,

또한 반드시 짚어 봐야 할 점은 초동 대처와 이후 구조. 수색 작업에서 무능함으로 일관한 해경입니다.

기자가 간다, 해경의 부실한 대응을 김대영 기자가 심층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배가 침몰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출동한 해경 경비정.

9시 35분, 현장에 도착한 경비정이 구조단정을 띄워 세월호에 접근합니다.

갑판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해경은 먼저 뱃머리 쪽에서 선장과 선원들을 탈출시킵니다.

속옷 차림의 이준석 선장에 이어 선원들이 줄줄이 구조됩니다.

해경 경비정은 세월호에 접근하지 못한 채 7인승 구조단정으로 구조작업을 벌였습니다.

해경 대원 한 명이 선체로 올라가 구명벌을 작동시키는데만 매달렸을 뿐 해경 대원 누구도 선박 내부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진교중(전 해군해난구조대장) : "이때 해경 대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호루라기, 메가폰, 육성으로 각 출입구 문에 가서 총원 이선하라 라고 지시를 하고 그 사람들 안전하게 배에서 탈출시키는 게 우선 해야 할 조치라고 봅니다."

해경은 당시 선체 경사가 심해서 내부 진입이 어려웠다고 해명했습니다.

<녹취> 김경일(해경 123경비정 정장) : "(경비정) 함내 경보를 이용해서 승객 총원 퇴선하라는,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방송을 수 회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경비함의 방송은 가라앉는 배에서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해경의 헬기는 경비정보다 먼저 도착해 구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첫 헬기가 사고 해역에 도착한 건 9시 27분.

승객 한 명씩 차례차례 구조됩니다.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한 게 10시 31분,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지만 헬기 3대가 구조한 인원은 35명에 불과했습니다.

구명벌 1개를 투하했을 뿐 헬기에 있던 해경 구조사들도 선체 내부로 진입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경비정과 어선들이 해역에 도착한 뒤로는 상공을 선회할 뿐이었습니다.

<인터뷰> 구조자 : "해경이 왔어도 이미 사람이 많이 탔으면, 구조할 때 사람이 어느 정도라도 왔어야 되는데 사람이 몇 사람이 안 왔어요. 해경 자체가."

해경이 초동대응에 동원한 장비는 경비정 한 척과 헬기 3대가 전부였습니다.

해경잠수부대는 세월호가 침몰한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인터뷰> 이재은(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 "현장 대응 능력이 부재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숙했고 매뉴얼 조차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었고 적용되지 않았고 하는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봅니다."

빠른 속도로 전남도 어업지도선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갑니다.

<녹취> "한 사람이라도 물에 빠지면 빨리 건져야되는 상황이네. 다른 배들은 못해. 그래서 급한 거야 이게."

어업지도선은 반쯤 잠긴 선미 쪽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한 남성을 재빨리 구조합니다.

세월호에 바짝 붙어 계단 쪽 있는 남성도 구해냅니다.

<녹취> "해양경찰! 해양경찰! 비켜! 비켜 ! 비켜!"

지도선은 구조를 시작한 지 불과 3분만에 8명을 구해냈습니다.

구한 사람들을 다른 배로 옮긴 뒤...

다시 세월호에 접근해 다른 배로 구조된 여학생들을 옮겨 태웁니다.

<녹취> "배가 많이 기운다. 배가 많이 기울어. 배가 많이 기운다고."

어업지도선 단정 2척과 민간 어선이 구조한 승객은 세월호 전체 구조자의 절반이 넘는 90여 명이었습니다.

해경보다 40분 정도 늦게 사고 해역에 도착했지만 더 많은 인원을 구조했습니다.

<인터뷰> 김홍명(구조자) : "현지 주민 어선들이 많이 도와줬고 그 사람들이 거의 다 구출한 거예요."

해경에겐 구조 매뉴얼이 있지만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배 난간이나 바다에 뛰어든 이들을 구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선박 내 승선자 구조작업이 신속하게 수행돼야 한다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겁니다.

<인터뷰> 이형래(해경 경비정 경사) : "사람들이 내려오니까 선 구조를 먼저 해야지 않습니까, 바다에 뛰어내리면 구조 못하면 춥고..."

그러나 매뉴얼을 보면 당시 수온에서 3시간 정도는 생존이 가능합니다.

결국, 생존 가능성이 높았던, 승객을 구조하느라 배 안에 갇힌 다수는 놓친 겁니다.

<인터뷰> 이재은(충북대 행정학 교수) : "최초의 구조단계에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대피 명령을 먼저 내리고 또 승객들을 밖으로 유도하는 게 가장 먼저 해야될 일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평소에 매뉴얼에 대한 숙지나 교육이나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해경 매뉴얼은 세월호 같은 대형 선박엔 적용할 수 없는 조항도 많습니다.

함정에서 확성기로 안내방송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전복된 선박은 연안으로 옮기라는 매뉴얼은 어선 등 소형선박에 관한 얘깁니다.

정작 대형 사고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동대처에 실패한 이후 수색과 구조 작업에서도 해경은 무능을 드러냈습니다.

사고 사흘째부터 대형 해상 크레인 4척이 사고 해역 부근에 모여들었습니다.

정부가 처음으로 동원한 특수장비입니다.

하지만 선체 인양에 쓰이는 크레인은 구조와 수색에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러는 사이 잠수 작업은 보트에서 이뤄졌습니다.

휴식을 위해 큰 배로 이동하느라 효율적인 구조작업이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바지선이 투입된 건 사고 닷새째나 돼서입니다.

이때부터 잠수부들이 바지선 위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습니다.

<녹취> 실종자 가족 대표 : "그제(17일) 해경청에 그렇게 부탁을 해도 안 해서 저희 학부모님들이 자비로 바지선을 띄워보려고.."

해경은 민관군 합동 구조를 공언해놓고도 민간잠수사 투입을 놓고 혼선을 거듭했습니다.

<녹취> 김명기 : "허가를 안 해줬다니까요? 잠수 허가를요? 네, 그래서 그냥 나와서 철수했어요."

<녹취> 고명석(해경) : "민간 잠수사들은 거센 물살과 제한된 시야로 인해 물속에서 10분도 안 돼 출수하거나 심지어는 입수도 안 한 채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분도 계셨습니다. 지금까지 지원봉사자 분들의 구조실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해경을 믿지 않았습니다.

<녹취> 성난 실종자 가족들 : "이 좋은 날 지금 2명이 들어가있대 다이버가"

결국 해경은 사고 열흘째 날, 민간잠수사들의 현장 투입을 다시 허용했습니다.

민간잠수사를 폄하했던 해경은 이후 최초로 선체에서 시신을 발견한 건 민간잠수사라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인터뷰> 배민훈(한국해상보안협회 본부장) : "통제하는 게 조금 미흡하지 않았나. 조금 더 지휘 통제를 제대로 했다면 민간 잠수사들도 격분하지 않았을 거고,구조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 체계에서도 갈등이 없었을 수도 있는데"

사고 직후부터 현장에서 민간을 대표해 구난에 참여한 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입니다.

신속한 구조와 수색이 실패하면서 해경과 언딘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고 첫날 선체 인도줄 설치에 성공한 건 해군특수전전단 요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지휘권을 가진 해경은 이튿날 아침 해군 최정예 요원 19명의 잠수를 막았습니다.

해경은 '언딘' 해경, 해군 순으로 잠수 순서를 정했고 해군은 이를 수용했습니다.

<녹취> 구조당국 관계자(음성변조) : "정부가 해경에게 지휘권을 줬으니까 해군은 해경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해군이 다시 구조작업에 투입된 시간은 사고 둘째날 밤 10시가 넘어서였습니다.

바지선 투입 과정도 석연치 않습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바지선은 경성호.

머구리 장비까지 갖추고 사고 사흘째 사고 해역에 도착했지만, 해경으로부터 대기 명령만 받았습니다.

해경은 그런데 닷새째인 지난달 20일에 다른 바지선 금호호를 투입했습니다.

22일 새벽에는 해양수산부로부터 출동 요청을 받은 2천2백톤급 초대형 바지선, 현대보령호가 사고 해역에 도착했습니다.

금호호보다 10배 이상 크고 휴식시설과 식당 등을 갖춘 바지선이었지만 해경으로부터 내려온 지시는 역시 대기였습니다.

<녹취> 현대보령호 선사 사장 : "금호 바지선이 작업을 원활하게 하고 있으니까 우리 배가 들어가면 작업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까 대기 계속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해경은 그 다음 날 언딘의 리베로로 바지선을 교체했습니다.

먼저 온 경성호와 현대보령호는 사고 해역 부근에서 대기만 하다 그냥 돌아갔습니다.

<녹취> 윤종문(오션씨앤아이) : "바지선 위로 와이어들이 서로 엉킬 수가 있고 그 다음에 다이버 작업하는 생명줄이 도 엉켜서 작업에 지장을 줄 수가 있으니까..둘이 동시에 들어가서 작업하는 것에는 부정적이었어요. 해경이 결정을 내리는 사항이니까 저희들은 따랐을 뿐입니다."

<녹취> 000업체 사장 : "서로 엉킨다는 건 말이 안돼요. 4개 6개도 붙여놓고 하는데...특정업체를 배제하려고 핑계입니다."

금호호는 언딘 하청업체인 금호수중, 리베로호는 언딘이 청해진해운의 계열사인 천해지 조선소에서 새로 지은 바지선입니다.

더구나 언딘의 리베로호는 새로 건조돼 선박사용승인조차 받지 않은 상태였지만 해경은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인명과 재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해 1월 해양구조협회가 출범했습니다.

수난구호체계 구축을 위한 민관협력체로 여객선 선사와 해양 관련 기업 대표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습니다.

민간을 대표해 구조에 참여하고 있는 언딘의 김윤상 대표는 이 협회 부총재입니다. .

세월호 구조 작업에도 언딘의 용역을 받은 해양구조협회 회원사와 회원 위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언딘을 비롯한 구난 참여 업체들은 사고 수습 비용으로 선사가 가입한 선체 보험금 113억원을 받게 됩니다.

<녹취> 해상구난업체 대표: "선체보험비를 100% 다 가져갈거에요 조금이라도 자기들 장비로 더 오래하려고 그런 거죠."

해양구조협회는 해경의 산하단체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해경의 전현직 고위 간부들도 부총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해경과 관련 있는 업체와 개인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녹취> 해상구난업체 대표 : "해상구조협회에 해경이 참여하는 거 아시죠. 회장 부회장이 스폰서식으로 거기 들어간 것도 아시죠? 해경 직원들이 돌아다니면서 (가입을 시켰다는) 소리를 내가 들었어요. 서로 밀착관계가 있잖아요. 특정 업체도 우리 회원한테만 준다 이런 개념이죠."

세월호 구조현장에서도 해경은 언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습니다.

<녹취> 고명석 : "구조나 수색 이런 점에선 오히려 민간이 실력이 낫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간(언딘)이 장비나 인력교체를 하는데 정부가 하나씩 다 간섭을 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잠수사도 언딘에 일시고용형태로 계약된 사람 위주로 투입이 이뤄졌습니다.

<인터뷰> 김명기(민간잠수사) : "민간자원잠수사 민간고용용역잠수사, 지금 언론에서 얘기하는 민간잠수사는 다 (언딘이) 고용한 잠수사들이에요."

그렇다면 언딘이 민간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참여한 경위는 어떻게 될까?

해경은 사고 다음 날인 지난달 17일, 청해진해운이 언딘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구난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고명석 : "17일 청해진과 언딘이 계약한 것은 맞지만 인양인지 수색인지는 우리가 확인하지 않는다. 왜 언딘인가? 언딘이 우라나라에서 구조업무를 하기 때문에 청해진이 판단을 하고 계약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해경은 계약도 체결하기 전인 사고 다음 날 오전 7시, 해군 정예요원을 밀어내고 언딘을 가장 먼저 잠수에 참여시켰습니다.

언딘측에서도 해경에서 먼저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언딘 전무 : "해경에서 요청했던 거죠. 그러다보니까 내려가게 됐던 거죠."

해경의 공식 발표와 달리 언딘을 우선 참여시켜놓은 상태에서 청해진이 계약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사고 14일째인 지난 달 30일 김석균 해양청장이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무거운 표정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청장은 고개를 숙이며, 구조와 수색 작업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인터뷰> 김석균(해양경찰청장) : "수색작업이 지체되고 혼선을 초래한 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동안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수사에 적극협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와 감사원은 해경의 대응과 각종 의혹에 대해 수사와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재난대응시스템을 전면 점검하고 개선하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취재파일 K 다음주 이 시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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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가 간다] 무능한 해경이 참사 키웠다
    • 입력 2014-05-03 00:51:49
    • 수정2014-05-03 00:59:29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세월호 침몰 사고를 초래한 청해진 해운의 불법 경영 배후에는 유 전 회장 일가가 있는데요,

또한 반드시 짚어 봐야 할 점은 초동 대처와 이후 구조. 수색 작업에서 무능함으로 일관한 해경입니다.

기자가 간다, 해경의 부실한 대응을 김대영 기자가 심층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배가 침몰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출동한 해경 경비정.

9시 35분, 현장에 도착한 경비정이 구조단정을 띄워 세월호에 접근합니다.

갑판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해경은 먼저 뱃머리 쪽에서 선장과 선원들을 탈출시킵니다.

속옷 차림의 이준석 선장에 이어 선원들이 줄줄이 구조됩니다.

해경 경비정은 세월호에 접근하지 못한 채 7인승 구조단정으로 구조작업을 벌였습니다.

해경 대원 한 명이 선체로 올라가 구명벌을 작동시키는데만 매달렸을 뿐 해경 대원 누구도 선박 내부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진교중(전 해군해난구조대장) : "이때 해경 대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호루라기, 메가폰, 육성으로 각 출입구 문에 가서 총원 이선하라 라고 지시를 하고 그 사람들 안전하게 배에서 탈출시키는 게 우선 해야 할 조치라고 봅니다."

해경은 당시 선체 경사가 심해서 내부 진입이 어려웠다고 해명했습니다.

<녹취> 김경일(해경 123경비정 정장) : "(경비정) 함내 경보를 이용해서 승객 총원 퇴선하라는,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방송을 수 회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경비함의 방송은 가라앉는 배에서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해경의 헬기는 경비정보다 먼저 도착해 구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첫 헬기가 사고 해역에 도착한 건 9시 27분.

승객 한 명씩 차례차례 구조됩니다.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한 게 10시 31분,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지만 헬기 3대가 구조한 인원은 35명에 불과했습니다.

구명벌 1개를 투하했을 뿐 헬기에 있던 해경 구조사들도 선체 내부로 진입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경비정과 어선들이 해역에 도착한 뒤로는 상공을 선회할 뿐이었습니다.

<인터뷰> 구조자 : "해경이 왔어도 이미 사람이 많이 탔으면, 구조할 때 사람이 어느 정도라도 왔어야 되는데 사람이 몇 사람이 안 왔어요. 해경 자체가."

해경이 초동대응에 동원한 장비는 경비정 한 척과 헬기 3대가 전부였습니다.

해경잠수부대는 세월호가 침몰한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인터뷰> 이재은(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 "현장 대응 능력이 부재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숙했고 매뉴얼 조차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었고 적용되지 않았고 하는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봅니다."

빠른 속도로 전남도 어업지도선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갑니다.

<녹취> "한 사람이라도 물에 빠지면 빨리 건져야되는 상황이네. 다른 배들은 못해. 그래서 급한 거야 이게."

어업지도선은 반쯤 잠긴 선미 쪽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한 남성을 재빨리 구조합니다.

세월호에 바짝 붙어 계단 쪽 있는 남성도 구해냅니다.

<녹취> "해양경찰! 해양경찰! 비켜! 비켜 ! 비켜!"

지도선은 구조를 시작한 지 불과 3분만에 8명을 구해냈습니다.

구한 사람들을 다른 배로 옮긴 뒤...

다시 세월호에 접근해 다른 배로 구조된 여학생들을 옮겨 태웁니다.

<녹취> "배가 많이 기운다. 배가 많이 기울어. 배가 많이 기운다고."

어업지도선 단정 2척과 민간 어선이 구조한 승객은 세월호 전체 구조자의 절반이 넘는 90여 명이었습니다.

해경보다 40분 정도 늦게 사고 해역에 도착했지만 더 많은 인원을 구조했습니다.

<인터뷰> 김홍명(구조자) : "현지 주민 어선들이 많이 도와줬고 그 사람들이 거의 다 구출한 거예요."

해경에겐 구조 매뉴얼이 있지만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배 난간이나 바다에 뛰어든 이들을 구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선박 내 승선자 구조작업이 신속하게 수행돼야 한다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겁니다.

<인터뷰> 이형래(해경 경비정 경사) : "사람들이 내려오니까 선 구조를 먼저 해야지 않습니까, 바다에 뛰어내리면 구조 못하면 춥고..."

그러나 매뉴얼을 보면 당시 수온에서 3시간 정도는 생존이 가능합니다.

결국, 생존 가능성이 높았던, 승객을 구조하느라 배 안에 갇힌 다수는 놓친 겁니다.

<인터뷰> 이재은(충북대 행정학 교수) : "최초의 구조단계에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대피 명령을 먼저 내리고 또 승객들을 밖으로 유도하는 게 가장 먼저 해야될 일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평소에 매뉴얼에 대한 숙지나 교육이나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해경 매뉴얼은 세월호 같은 대형 선박엔 적용할 수 없는 조항도 많습니다.

함정에서 확성기로 안내방송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전복된 선박은 연안으로 옮기라는 매뉴얼은 어선 등 소형선박에 관한 얘깁니다.

정작 대형 사고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동대처에 실패한 이후 수색과 구조 작업에서도 해경은 무능을 드러냈습니다.

사고 사흘째부터 대형 해상 크레인 4척이 사고 해역 부근에 모여들었습니다.

정부가 처음으로 동원한 특수장비입니다.

하지만 선체 인양에 쓰이는 크레인은 구조와 수색에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러는 사이 잠수 작업은 보트에서 이뤄졌습니다.

휴식을 위해 큰 배로 이동하느라 효율적인 구조작업이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바지선이 투입된 건 사고 닷새째나 돼서입니다.

이때부터 잠수부들이 바지선 위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습니다.

<녹취> 실종자 가족 대표 : "그제(17일) 해경청에 그렇게 부탁을 해도 안 해서 저희 학부모님들이 자비로 바지선을 띄워보려고.."

해경은 민관군 합동 구조를 공언해놓고도 민간잠수사 투입을 놓고 혼선을 거듭했습니다.

<녹취> 김명기 : "허가를 안 해줬다니까요? 잠수 허가를요? 네, 그래서 그냥 나와서 철수했어요."

<녹취> 고명석(해경) : "민간 잠수사들은 거센 물살과 제한된 시야로 인해 물속에서 10분도 안 돼 출수하거나 심지어는 입수도 안 한 채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분도 계셨습니다. 지금까지 지원봉사자 분들의 구조실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해경을 믿지 않았습니다.

<녹취> 성난 실종자 가족들 : "이 좋은 날 지금 2명이 들어가있대 다이버가"

결국 해경은 사고 열흘째 날, 민간잠수사들의 현장 투입을 다시 허용했습니다.

민간잠수사를 폄하했던 해경은 이후 최초로 선체에서 시신을 발견한 건 민간잠수사라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인터뷰> 배민훈(한국해상보안협회 본부장) : "통제하는 게 조금 미흡하지 않았나. 조금 더 지휘 통제를 제대로 했다면 민간 잠수사들도 격분하지 않았을 거고,구조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 체계에서도 갈등이 없었을 수도 있는데"

사고 직후부터 현장에서 민간을 대표해 구난에 참여한 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입니다.

신속한 구조와 수색이 실패하면서 해경과 언딘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고 첫날 선체 인도줄 설치에 성공한 건 해군특수전전단 요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지휘권을 가진 해경은 이튿날 아침 해군 최정예 요원 19명의 잠수를 막았습니다.

해경은 '언딘' 해경, 해군 순으로 잠수 순서를 정했고 해군은 이를 수용했습니다.

<녹취> 구조당국 관계자(음성변조) : "정부가 해경에게 지휘권을 줬으니까 해군은 해경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해군이 다시 구조작업에 투입된 시간은 사고 둘째날 밤 10시가 넘어서였습니다.

바지선 투입 과정도 석연치 않습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바지선은 경성호.

머구리 장비까지 갖추고 사고 사흘째 사고 해역에 도착했지만, 해경으로부터 대기 명령만 받았습니다.

해경은 그런데 닷새째인 지난달 20일에 다른 바지선 금호호를 투입했습니다.

22일 새벽에는 해양수산부로부터 출동 요청을 받은 2천2백톤급 초대형 바지선, 현대보령호가 사고 해역에 도착했습니다.

금호호보다 10배 이상 크고 휴식시설과 식당 등을 갖춘 바지선이었지만 해경으로부터 내려온 지시는 역시 대기였습니다.

<녹취> 현대보령호 선사 사장 : "금호 바지선이 작업을 원활하게 하고 있으니까 우리 배가 들어가면 작업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까 대기 계속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해경은 그 다음 날 언딘의 리베로로 바지선을 교체했습니다.

먼저 온 경성호와 현대보령호는 사고 해역 부근에서 대기만 하다 그냥 돌아갔습니다.

<녹취> 윤종문(오션씨앤아이) : "바지선 위로 와이어들이 서로 엉킬 수가 있고 그 다음에 다이버 작업하는 생명줄이 도 엉켜서 작업에 지장을 줄 수가 있으니까..둘이 동시에 들어가서 작업하는 것에는 부정적이었어요. 해경이 결정을 내리는 사항이니까 저희들은 따랐을 뿐입니다."

<녹취> 000업체 사장 : "서로 엉킨다는 건 말이 안돼요. 4개 6개도 붙여놓고 하는데...특정업체를 배제하려고 핑계입니다."

금호호는 언딘 하청업체인 금호수중, 리베로호는 언딘이 청해진해운의 계열사인 천해지 조선소에서 새로 지은 바지선입니다.

더구나 언딘의 리베로호는 새로 건조돼 선박사용승인조차 받지 않은 상태였지만 해경은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인명과 재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해 1월 해양구조협회가 출범했습니다.

수난구호체계 구축을 위한 민관협력체로 여객선 선사와 해양 관련 기업 대표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습니다.

민간을 대표해 구조에 참여하고 있는 언딘의 김윤상 대표는 이 협회 부총재입니다. .

세월호 구조 작업에도 언딘의 용역을 받은 해양구조협회 회원사와 회원 위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언딘을 비롯한 구난 참여 업체들은 사고 수습 비용으로 선사가 가입한 선체 보험금 113억원을 받게 됩니다.

<녹취> 해상구난업체 대표: "선체보험비를 100% 다 가져갈거에요 조금이라도 자기들 장비로 더 오래하려고 그런 거죠."

해양구조협회는 해경의 산하단체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해경의 전현직 고위 간부들도 부총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해경과 관련 있는 업체와 개인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녹취> 해상구난업체 대표 : "해상구조협회에 해경이 참여하는 거 아시죠. 회장 부회장이 스폰서식으로 거기 들어간 것도 아시죠? 해경 직원들이 돌아다니면서 (가입을 시켰다는) 소리를 내가 들었어요. 서로 밀착관계가 있잖아요. 특정 업체도 우리 회원한테만 준다 이런 개념이죠."

세월호 구조현장에서도 해경은 언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습니다.

<녹취> 고명석 : "구조나 수색 이런 점에선 오히려 민간이 실력이 낫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간(언딘)이 장비나 인력교체를 하는데 정부가 하나씩 다 간섭을 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잠수사도 언딘에 일시고용형태로 계약된 사람 위주로 투입이 이뤄졌습니다.

<인터뷰> 김명기(민간잠수사) : "민간자원잠수사 민간고용용역잠수사, 지금 언론에서 얘기하는 민간잠수사는 다 (언딘이) 고용한 잠수사들이에요."

그렇다면 언딘이 민간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참여한 경위는 어떻게 될까?

해경은 사고 다음 날인 지난달 17일, 청해진해운이 언딘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구난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고명석 : "17일 청해진과 언딘이 계약한 것은 맞지만 인양인지 수색인지는 우리가 확인하지 않는다. 왜 언딘인가? 언딘이 우라나라에서 구조업무를 하기 때문에 청해진이 판단을 하고 계약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해경은 계약도 체결하기 전인 사고 다음 날 오전 7시, 해군 정예요원을 밀어내고 언딘을 가장 먼저 잠수에 참여시켰습니다.

언딘측에서도 해경에서 먼저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언딘 전무 : "해경에서 요청했던 거죠. 그러다보니까 내려가게 됐던 거죠."

해경의 공식 발표와 달리 언딘을 우선 참여시켜놓은 상태에서 청해진이 계약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사고 14일째인 지난 달 30일 김석균 해양청장이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무거운 표정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청장은 고개를 숙이며, 구조와 수색 작업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인터뷰> 김석균(해양경찰청장) : "수색작업이 지체되고 혼선을 초래한 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동안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수사에 적극협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와 감사원은 해경의 대응과 각종 의혹에 대해 수사와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재난대응시스템을 전면 점검하고 개선하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취재파일 K 다음주 이 시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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