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황금 유물은 사금” 주장 제기
입력 2014.06.11 (09:44)
수정 2014.06.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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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신라는 '황금의 나라'로 불릴 만큼 황금 유물이 많은데요,
수많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금은 어디서 확보했을까요?
신라시대 다양한 황금 유물의 재료가 사금(砂金) 채취를 통해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신선민 기자입니다.
<리포트>
경북 경주 인근의 한 하천.
강바닥에서 퍼낸 흙과 돌을 물로 씻어내자 노랗게 반짝이는 가루가 남습니다.
순도 60% 이상의 사금입니다.
세월이 흐르며 강폭이 좁아지고 인위적으로 댐과 저수지가 조성된 점 등을 고려하면, 고대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금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녹취> 박홍국(교수/위덕대학교 박물관장) : "월성에서 직선거리로 50킬로미터 이내에 사금이 나오는 곳을 열 군데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신라시대에도 경주지역에서 적지 않은 사금이 나왔을 것.."
황금 유물이 유난히 많고, 당나라에도 정기적으로 금을 보냈던 신라, 하지만 지금까지 경주 주변에서는 금광이 발견되지 않아 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신라의 금이 경주 인근에서 채취된 사금이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라 금 허리띠의 집게와 약통, 금솔은 사금 채취 도구를, 물고기 장식은 경주 인근 하천의 사금 채취와 관계가 깊다는 추론입니다.
<인터뷰> 최맹식(국립 경주 문화연구소장) : "구체적인 유물들이 나왔거든요. 사금을 담을 수 있는 통 같은 재료, 또는 사금을 채취할 수 있는 솔과 족집게 같은 게 이미 출토가 됐었거든요."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신라 시대 금 공급 체계와 관련 유물 제작 근거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신선민 입니다.
신라는 '황금의 나라'로 불릴 만큼 황금 유물이 많은데요,
수많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금은 어디서 확보했을까요?
신라시대 다양한 황금 유물의 재료가 사금(砂金) 채취를 통해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신선민 기자입니다.
<리포트>
경북 경주 인근의 한 하천.
강바닥에서 퍼낸 흙과 돌을 물로 씻어내자 노랗게 반짝이는 가루가 남습니다.
순도 60% 이상의 사금입니다.
세월이 흐르며 강폭이 좁아지고 인위적으로 댐과 저수지가 조성된 점 등을 고려하면, 고대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금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녹취> 박홍국(교수/위덕대학교 박물관장) : "월성에서 직선거리로 50킬로미터 이내에 사금이 나오는 곳을 열 군데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신라시대에도 경주지역에서 적지 않은 사금이 나왔을 것.."
황금 유물이 유난히 많고, 당나라에도 정기적으로 금을 보냈던 신라, 하지만 지금까지 경주 주변에서는 금광이 발견되지 않아 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신라의 금이 경주 인근에서 채취된 사금이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라 금 허리띠의 집게와 약통, 금솔은 사금 채취 도구를, 물고기 장식은 경주 인근 하천의 사금 채취와 관계가 깊다는 추론입니다.
<인터뷰> 최맹식(국립 경주 문화연구소장) : "구체적인 유물들이 나왔거든요. 사금을 담을 수 있는 통 같은 재료, 또는 사금을 채취할 수 있는 솔과 족집게 같은 게 이미 출토가 됐었거든요."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신라 시대 금 공급 체계와 관련 유물 제작 근거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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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시대 황금 유물은 사금” 주장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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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06-11 09:47:30
- 수정2014-06-11 10: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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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황금의 나라'로 불릴 만큼 황금 유물이 많은데요,
수많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금은 어디서 확보했을까요?
신라시대 다양한 황금 유물의 재료가 사금(砂金) 채취를 통해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신선민 기자입니다.
<리포트>
경북 경주 인근의 한 하천.
강바닥에서 퍼낸 흙과 돌을 물로 씻어내자 노랗게 반짝이는 가루가 남습니다.
순도 60% 이상의 사금입니다.
세월이 흐르며 강폭이 좁아지고 인위적으로 댐과 저수지가 조성된 점 등을 고려하면, 고대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금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녹취> 박홍국(교수/위덕대학교 박물관장) : "월성에서 직선거리로 50킬로미터 이내에 사금이 나오는 곳을 열 군데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신라시대에도 경주지역에서 적지 않은 사금이 나왔을 것.."
황금 유물이 유난히 많고, 당나라에도 정기적으로 금을 보냈던 신라, 하지만 지금까지 경주 주변에서는 금광이 발견되지 않아 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신라의 금이 경주 인근에서 채취된 사금이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라 금 허리띠의 집게와 약통, 금솔은 사금 채취 도구를, 물고기 장식은 경주 인근 하천의 사금 채취와 관계가 깊다는 추론입니다.
<인터뷰> 최맹식(국립 경주 문화연구소장) : "구체적인 유물들이 나왔거든요. 사금을 담을 수 있는 통 같은 재료, 또는 사금을 채취할 수 있는 솔과 족집게 같은 게 이미 출토가 됐었거든요."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신라 시대 금 공급 체계와 관련 유물 제작 근거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신선민 입니다.
신라는 '황금의 나라'로 불릴 만큼 황금 유물이 많은데요,
수많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금은 어디서 확보했을까요?
신라시대 다양한 황금 유물의 재료가 사금(砂金) 채취를 통해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신선민 기자입니다.
<리포트>
경북 경주 인근의 한 하천.
강바닥에서 퍼낸 흙과 돌을 물로 씻어내자 노랗게 반짝이는 가루가 남습니다.
순도 60% 이상의 사금입니다.
세월이 흐르며 강폭이 좁아지고 인위적으로 댐과 저수지가 조성된 점 등을 고려하면, 고대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금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녹취> 박홍국(교수/위덕대학교 박물관장) : "월성에서 직선거리로 50킬로미터 이내에 사금이 나오는 곳을 열 군데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신라시대에도 경주지역에서 적지 않은 사금이 나왔을 것.."
황금 유물이 유난히 많고, 당나라에도 정기적으로 금을 보냈던 신라, 하지만 지금까지 경주 주변에서는 금광이 발견되지 않아 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신라의 금이 경주 인근에서 채취된 사금이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라 금 허리띠의 집게와 약통, 금솔은 사금 채취 도구를, 물고기 장식은 경주 인근 하천의 사금 채취와 관계가 깊다는 추론입니다.
<인터뷰> 최맹식(국립 경주 문화연구소장) : "구체적인 유물들이 나왔거든요. 사금을 담을 수 있는 통 같은 재료, 또는 사금을 채취할 수 있는 솔과 족집게 같은 게 이미 출토가 됐었거든요."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신라 시대 금 공급 체계와 관련 유물 제작 근거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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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민 기자 fresh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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