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간다] 태권 성지…첫발부터 삐끗

입력 2014.07.18 (23:14) 수정 2014.07.1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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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계 태권도인의 성지가 올해 전북 무주에 문을 연 사실, 여러분 알고 계셨습니까?

20년 가까이 우여곡절을 거친 태권도공원, 현재 이름은 태권도원입니다.

2천5백억 원 가까이 투자된 대형 국책사업인데, 막상 문을 열고 보니 공언한 것과 같은 태권도 성지라기엔 부족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기자가 간다, 최정근 기자가 그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힘찬 기합과 도약.

공중을 가르며 연이어 송판을 박살내는 연속 격파.

태권도 종주국 시범단의 화려한 기술에 연방 감탄이 터집니다.

지난 4일부터 엿새 동안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펼쳐진 세계 태권도 문화엑스포입니다.

세계 스물여섯 나라, 2천5백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품새와 겨루기 경연을 펼치고, 태권도의 종주국에서 조금이라도 더 기량을 전수받기 위해 진지하게 땀을 흘립니다.

<인터뷰> 이슐린(네팔 태권도선수) : "많은 선수와 그들의 시범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인터뷰> 김민규(전주대 태권도학과 2학년) : "종주국에 와서 이렇게 배우고 가는 걸 보니까 제가 태권도를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자랑스럽고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는 특히 무주 태권도원이 지난 4월 문을 연 이후로 열린 첫 국제행사.

세계의 태권도인에게 종주국의 상징, 태권도원을 선보이고 지난 9일 폐막했습니다.

엑스포 행사가 모두 끝난 무주 태권도원, 어떤 모습일까요?

전 세계 태권도인의 성지를 기치로 문을 연지 석 달이 지난 태권도원의 모습을 돌아봤습니다.

산 깊은 전북 무주.

천연기념물 반딧불이 서식지인 남대천 옆.

덕유산 국립공원과 잇닿은 백운산 자락입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터의 10배, 2백3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산자락에 현대식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섰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T1 경기장은 세계 최초 태권도 전용 경기장입니다.

태권도의 기본 정신인 천지인, 삼태극을 형상화했습니다.

지상 4층, 4천5백여 석 규모를 자랑합니다.

<녹취> "하나 둘 셋 넷!"

사범들의 힘찬 구령에 맞춰 외국인 수련생들이 몸을 풉니다.

미국 태권도연합회, ATU 소속 태권도인들이 2박3일 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한 겁니다.

<인터뷰> 샌디 호크(미국 태권도 수련생) : "시설을 둘러봤는데 아주 아름답습니다. (수련 프로그램도) 훌륭합니다. 유연성을 기르는 데 아주 좋아요."

T1 경기장 바로 앞엔 태권도박물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한민족 고유의 맨손 무예에서 태권도의 원류를 찾고,

<녹취> 태권도원 관계자 : "저희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만 정리를 해놓은 거거든요."

옛 자료를 바탕으로 태권도의 발전 과정을 쉽게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첨단 영상기법까지 동원해 다양한 전시물들을 갖춰놨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야심 차게 조성된 태권도 성지가 평소에는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박물관을 둘러보는 관람객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녹취> 태권도원 관계자 : "(보시는 분이 하나도 없어요?) 일반 관람객들은 평일에는 별로 없으세요."

다른 시설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기초 체력을 기르고 실전기술도 배워볼 수 있는 체험관.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대련 체험도 할 수 있도록 꾸며놨습니다.

이 시설 역시 취재진이 방문한 날, 하루종일 일반 이용객은 전혀 없었습니다.

합숙 중인 미국인 수련생들만 잠시 들렀을 뿐입니다.

박물관부터 전망대까지 태권도원 안을 운행하는 순환버스는 승객 하나 없이 빈 차로 다니기 일쑤.

커피숍과 매점 같은 편의시설도 온종일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녹취> "거의 직원들만. 이 시설 내 직원들만 와요."

입구 매표소를 찾아 태권도원 전체의 입장객 수를 확인해봤습니다.

<녹취> "(오늘 입장객이 얼마나 왔어요?) 129명 정도 왔어요. (보통 평일에는 어느 정도 와요?) 보통, 이 정도요. (주말에는 어느 정도나 옵니까?) 한 300명 정도? 평균적으로 한 300명 정도 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 4월 1일 문을 연 뒤 지금까지 방문객은 5만 7천여 명.

최근 열린 태권도 문화엑스포 덕에 그나마 이 정도 체면치레를 했습니다.

태권도 종주국의 상징이자 세계적 관광자원을 목표로 세운 시설치고는 초라합니다.

태권도원 운영을 맡은 태권도진흥재단은 세월호 참사와 겹쳐 개원 사실을 알릴 기회조차 없었다며 어려움을 털어놨습니다.

<인터뷰> 유진환(태권도진흥재단 사무총장) : "(공교롭게 4월달에 그 세월호 침몰사고가 있었잖습니까?) 그렇게 되면서 저희가 본격적인 출범을 못 하고 개원식이 연기가 되고 그러면서 상당히 좀 우리 태권도원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사실입니다."

올해 방문객 수 45만 명을 목표했다가 개원 석 달 만에 절반 이하인 20만 명으로 낮췄습니다.

지난 2005년 당시 문화관광부의 연구용역 보고서입니다.

2008년 개장하는 걸로 목표해 첫 해 국내외 일반 관광객만 188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회와 연수에 참여하는 태권도인까지 더해 모두 250만 명이 입장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태권도진흥재단의 올해 목표 20만 명은 이 예측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왜 이렇게 사정이 달라졌을까?

<인터뷰> 한민호(문화체육관광부 국제체육과장) : "애초에 엄청나게 정말 과대포장된 거죠. 그렇지만 우리가,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 가능성을 발현시켜나가면 그렇게 꿈만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진심으로."

예측이 부풀려진 면도 있지만 국내외 방문객을 맞을 태권도원의 준비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태권도가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결정된 1990년대 중반, 태권도 상징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중국 무술 하면 떠오르는 소림사처럼 세계적인 태권도의 성지를 조성해보자는 거였습니다.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자 21개 지방자치단체가 치열한 유치 경쟁에 나섰습니다.

과열 경쟁으로 한때 사업이 재검토되는 우여곡절 끝에 최종 후보지는 전북 무주군이 됐습니다.

<녹취> 2004. 12. 30. KBS 뉴스9 : "세계 태권도의 새로운 중심이 될 태권도공원은 전라북도 무주에 자리 잡게 됐습니다."

정부는 태권도진흥재단을 설립해 태권도원 조성을 맡겼고 2009년 드디어 첫 삽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존 태권도단체, 태권도인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녹취> 태권도단체 관계자(음성변조) : "물론 협의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 태권도 전체를 이해하는 거라든가 이런 것들이 사실 적극적이지는 않고. 사실은 태권도진행재단하고 정부 측하고 전담을 했다고 봐야죠."

태권도원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지 결정하는 데 정작 태권도인들의 참여는 미진했다는 겁니다.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 보니 운영 프로그램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 장종오(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 : "태권도 수련생한테 필요한 수련 방법들, 교육 방법들, 교육 프로그램들이 필요한 거고. 일반인들에게 필요한 좀 더 펀하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갖추고 있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해내야 하는 것이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태권도를 소재로 수련생은 물론 일반 관람객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는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태권도원을 명실상부한 세계 태권도의 중심으로 삼기 위한 논의도 흐지부지됐습니다.

국기원이나 새계태권도연맹 등을 옮겨오는 방안을 한때 검토했지만 무산됐습니다.

관련 단체의 이전을 위해 사무 공간까지 마련해뒀지만 모두 비어있습니다.

<녹취> 태권도진흥재단 관계자 : "(명패가) 붙어있는 것들이 장소가 배정된 곳이고요. 아직 들어오지는 않았어요. (여기도 지금 안 들어와 있어요?) 네, 들어온 건 아직."

빈 사무실에는 집기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국기원 중 일부인 지도자 연수원의 이전만 뒤늦게 논의되고 있을 뿐입니다.

<녹취> 국기원 관계자 : "7월 안으로 아마 이사회에서 정식적으로 연수원 이전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서 저희 연수원이 태권도원에서 교육과 지도자 교육원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금 적극 검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비어있는 곳은 비단 실내공간만이 아닙니다.

이곳은 원래 명인관과 태권전이 들어서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무주 태권도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로 계획돼 있었지만 완공되지 못하고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국비나 지방비가 아닌 태권도인들의 기부금을 모아 건립할 예정이었는데, 필요한 176억 원 가운데 24억 원밖에 모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태권도인들의 정성을 담아 태권 명인들의 혼과 얼을 기리는 성스러운 공간을 만들려는 취지가 무색해졌습니다.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어 태권도원의 대표 상징물로 삼으려던 구상도 어그러졌습니다.

지역의 대표적 관광 명소로 태권도원 개원을 기다려왔던 지방자치단체도 난감한 입장입니다.

<인터뷰> 김양원(전라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 "누구나 다 지적을 하는 게 태권도 성지로서 느낌이 안 온다. 그것 때문에 이걸 빨리 좀 한옥으로나 기와나 이런 걸로 좀 상징적인 느낌이 나는 건물이 필요하다..."

기부금 조성은 이미 어려운 상황, 애초 계획을 바꿔 국비를 지원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부는 미온적입니다.

<인터뷰> 한민호(문화체육관광부 국제체육과장) : "정부가 지원하는 거는 태권도계 내부의 어떤 자체 모금 노력을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 하겠다 이런 생각입니다."

1000억 원대의 민자를 유치해 주변에 숙박단지와 레포츠시설을 갖추려는 계획도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총 사업비 2천5백억 원이 투자된 태권도원.

하지만, 개원 백일을 갓 넘긴 지금 벌써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며 숲 속의 텅 빈 도시처럼 돼버렸습니다.

<인터뷰> 유진환(태권도진흥재단 사무총장) : "부족한 시설을 보완한다든지 하는 하드웨어적인 측면의 어떤 보완이 좀 있어야 될 것 같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태권도 문화 콘텐츠의 확충이라든지 이런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의 보완 노력도 같이 이루어져야 될 것 같습니다."

전 세계 200여 나라, 8천만 태권도인의 성지이자 성전으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태권도원에 쉽지 않은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앵커 멘트>

몇 년 전 태권도원을 서로 유치하기 위해 자치단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것 기억이 납니다.

과열 경쟁으로 사업이 지연되기까지 할 정도였죠.

그때의 유치 열기만큼 모두의 관심과 지원이 뒤따른다면, 태권도원이 예산만 낭비하고 애물단지가 된 과거 다른 대형 사업들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취재파일 K,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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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가 간다] 태권 성지…첫발부터 삐끗
    • 입력 2014-07-18 16:07:31
    • 수정2014-07-19 08:50:41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세계 태권도인의 성지가 올해 전북 무주에 문을 연 사실, 여러분 알고 계셨습니까?

20년 가까이 우여곡절을 거친 태권도공원, 현재 이름은 태권도원입니다.

2천5백억 원 가까이 투자된 대형 국책사업인데, 막상 문을 열고 보니 공언한 것과 같은 태권도 성지라기엔 부족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기자가 간다, 최정근 기자가 그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힘찬 기합과 도약.

공중을 가르며 연이어 송판을 박살내는 연속 격파.

태권도 종주국 시범단의 화려한 기술에 연방 감탄이 터집니다.

지난 4일부터 엿새 동안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펼쳐진 세계 태권도 문화엑스포입니다.

세계 스물여섯 나라, 2천5백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품새와 겨루기 경연을 펼치고, 태권도의 종주국에서 조금이라도 더 기량을 전수받기 위해 진지하게 땀을 흘립니다.

<인터뷰> 이슐린(네팔 태권도선수) : "많은 선수와 그들의 시범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인터뷰> 김민규(전주대 태권도학과 2학년) : "종주국에 와서 이렇게 배우고 가는 걸 보니까 제가 태권도를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자랑스럽고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는 특히 무주 태권도원이 지난 4월 문을 연 이후로 열린 첫 국제행사.

세계의 태권도인에게 종주국의 상징, 태권도원을 선보이고 지난 9일 폐막했습니다.

엑스포 행사가 모두 끝난 무주 태권도원, 어떤 모습일까요?

전 세계 태권도인의 성지를 기치로 문을 연지 석 달이 지난 태권도원의 모습을 돌아봤습니다.

산 깊은 전북 무주.

천연기념물 반딧불이 서식지인 남대천 옆.

덕유산 국립공원과 잇닿은 백운산 자락입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터의 10배, 2백3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산자락에 현대식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섰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T1 경기장은 세계 최초 태권도 전용 경기장입니다.

태권도의 기본 정신인 천지인, 삼태극을 형상화했습니다.

지상 4층, 4천5백여 석 규모를 자랑합니다.

<녹취> "하나 둘 셋 넷!"

사범들의 힘찬 구령에 맞춰 외국인 수련생들이 몸을 풉니다.

미국 태권도연합회, ATU 소속 태권도인들이 2박3일 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한 겁니다.

<인터뷰> 샌디 호크(미국 태권도 수련생) : "시설을 둘러봤는데 아주 아름답습니다. (수련 프로그램도) 훌륭합니다. 유연성을 기르는 데 아주 좋아요."

T1 경기장 바로 앞엔 태권도박물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한민족 고유의 맨손 무예에서 태권도의 원류를 찾고,

<녹취> 태권도원 관계자 : "저희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만 정리를 해놓은 거거든요."

옛 자료를 바탕으로 태권도의 발전 과정을 쉽게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첨단 영상기법까지 동원해 다양한 전시물들을 갖춰놨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야심 차게 조성된 태권도 성지가 평소에는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박물관을 둘러보는 관람객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녹취> 태권도원 관계자 : "(보시는 분이 하나도 없어요?) 일반 관람객들은 평일에는 별로 없으세요."

다른 시설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기초 체력을 기르고 실전기술도 배워볼 수 있는 체험관.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대련 체험도 할 수 있도록 꾸며놨습니다.

이 시설 역시 취재진이 방문한 날, 하루종일 일반 이용객은 전혀 없었습니다.

합숙 중인 미국인 수련생들만 잠시 들렀을 뿐입니다.

박물관부터 전망대까지 태권도원 안을 운행하는 순환버스는 승객 하나 없이 빈 차로 다니기 일쑤.

커피숍과 매점 같은 편의시설도 온종일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녹취> "거의 직원들만. 이 시설 내 직원들만 와요."

입구 매표소를 찾아 태권도원 전체의 입장객 수를 확인해봤습니다.

<녹취> "(오늘 입장객이 얼마나 왔어요?) 129명 정도 왔어요. (보통 평일에는 어느 정도 와요?) 보통, 이 정도요. (주말에는 어느 정도나 옵니까?) 한 300명 정도? 평균적으로 한 300명 정도 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 4월 1일 문을 연 뒤 지금까지 방문객은 5만 7천여 명.

최근 열린 태권도 문화엑스포 덕에 그나마 이 정도 체면치레를 했습니다.

태권도 종주국의 상징이자 세계적 관광자원을 목표로 세운 시설치고는 초라합니다.

태권도원 운영을 맡은 태권도진흥재단은 세월호 참사와 겹쳐 개원 사실을 알릴 기회조차 없었다며 어려움을 털어놨습니다.

<인터뷰> 유진환(태권도진흥재단 사무총장) : "(공교롭게 4월달에 그 세월호 침몰사고가 있었잖습니까?) 그렇게 되면서 저희가 본격적인 출범을 못 하고 개원식이 연기가 되고 그러면서 상당히 좀 우리 태권도원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사실입니다."

올해 방문객 수 45만 명을 목표했다가 개원 석 달 만에 절반 이하인 20만 명으로 낮췄습니다.

지난 2005년 당시 문화관광부의 연구용역 보고서입니다.

2008년 개장하는 걸로 목표해 첫 해 국내외 일반 관광객만 188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회와 연수에 참여하는 태권도인까지 더해 모두 250만 명이 입장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태권도진흥재단의 올해 목표 20만 명은 이 예측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왜 이렇게 사정이 달라졌을까?

<인터뷰> 한민호(문화체육관광부 국제체육과장) : "애초에 엄청나게 정말 과대포장된 거죠. 그렇지만 우리가,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 가능성을 발현시켜나가면 그렇게 꿈만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진심으로."

예측이 부풀려진 면도 있지만 국내외 방문객을 맞을 태권도원의 준비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태권도가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결정된 1990년대 중반, 태권도 상징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중국 무술 하면 떠오르는 소림사처럼 세계적인 태권도의 성지를 조성해보자는 거였습니다.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자 21개 지방자치단체가 치열한 유치 경쟁에 나섰습니다.

과열 경쟁으로 한때 사업이 재검토되는 우여곡절 끝에 최종 후보지는 전북 무주군이 됐습니다.

<녹취> 2004. 12. 30. KBS 뉴스9 : "세계 태권도의 새로운 중심이 될 태권도공원은 전라북도 무주에 자리 잡게 됐습니다."

정부는 태권도진흥재단을 설립해 태권도원 조성을 맡겼고 2009년 드디어 첫 삽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존 태권도단체, 태권도인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녹취> 태권도단체 관계자(음성변조) : "물론 협의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 태권도 전체를 이해하는 거라든가 이런 것들이 사실 적극적이지는 않고. 사실은 태권도진행재단하고 정부 측하고 전담을 했다고 봐야죠."

태권도원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지 결정하는 데 정작 태권도인들의 참여는 미진했다는 겁니다.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 보니 운영 프로그램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 장종오(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 : "태권도 수련생한테 필요한 수련 방법들, 교육 방법들, 교육 프로그램들이 필요한 거고. 일반인들에게 필요한 좀 더 펀하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갖추고 있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해내야 하는 것이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태권도를 소재로 수련생은 물론 일반 관람객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는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태권도원을 명실상부한 세계 태권도의 중심으로 삼기 위한 논의도 흐지부지됐습니다.

국기원이나 새계태권도연맹 등을 옮겨오는 방안을 한때 검토했지만 무산됐습니다.

관련 단체의 이전을 위해 사무 공간까지 마련해뒀지만 모두 비어있습니다.

<녹취> 태권도진흥재단 관계자 : "(명패가) 붙어있는 것들이 장소가 배정된 곳이고요. 아직 들어오지는 않았어요. (여기도 지금 안 들어와 있어요?) 네, 들어온 건 아직."

빈 사무실에는 집기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국기원 중 일부인 지도자 연수원의 이전만 뒤늦게 논의되고 있을 뿐입니다.

<녹취> 국기원 관계자 : "7월 안으로 아마 이사회에서 정식적으로 연수원 이전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서 저희 연수원이 태권도원에서 교육과 지도자 교육원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금 적극 검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비어있는 곳은 비단 실내공간만이 아닙니다.

이곳은 원래 명인관과 태권전이 들어서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무주 태권도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로 계획돼 있었지만 완공되지 못하고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국비나 지방비가 아닌 태권도인들의 기부금을 모아 건립할 예정이었는데, 필요한 176억 원 가운데 24억 원밖에 모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태권도인들의 정성을 담아 태권 명인들의 혼과 얼을 기리는 성스러운 공간을 만들려는 취지가 무색해졌습니다.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어 태권도원의 대표 상징물로 삼으려던 구상도 어그러졌습니다.

지역의 대표적 관광 명소로 태권도원 개원을 기다려왔던 지방자치단체도 난감한 입장입니다.

<인터뷰> 김양원(전라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 "누구나 다 지적을 하는 게 태권도 성지로서 느낌이 안 온다. 그것 때문에 이걸 빨리 좀 한옥으로나 기와나 이런 걸로 좀 상징적인 느낌이 나는 건물이 필요하다..."

기부금 조성은 이미 어려운 상황, 애초 계획을 바꿔 국비를 지원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부는 미온적입니다.

<인터뷰> 한민호(문화체육관광부 국제체육과장) : "정부가 지원하는 거는 태권도계 내부의 어떤 자체 모금 노력을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 하겠다 이런 생각입니다."

1000억 원대의 민자를 유치해 주변에 숙박단지와 레포츠시설을 갖추려는 계획도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총 사업비 2천5백억 원이 투자된 태권도원.

하지만, 개원 백일을 갓 넘긴 지금 벌써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며 숲 속의 텅 빈 도시처럼 돼버렸습니다.

<인터뷰> 유진환(태권도진흥재단 사무총장) : "부족한 시설을 보완한다든지 하는 하드웨어적인 측면의 어떤 보완이 좀 있어야 될 것 같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태권도 문화 콘텐츠의 확충이라든지 이런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의 보완 노력도 같이 이루어져야 될 것 같습니다."

전 세계 200여 나라, 8천만 태권도인의 성지이자 성전으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태권도원에 쉽지 않은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앵커 멘트>

몇 년 전 태권도원을 서로 유치하기 위해 자치단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것 기억이 납니다.

과열 경쟁으로 사업이 지연되기까지 할 정도였죠.

그때의 유치 열기만큼 모두의 관심과 지원이 뒤따른다면, 태권도원이 예산만 낭비하고 애물단지가 된 과거 다른 대형 사업들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취재파일 K,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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