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청년실업, 신 주경야독에서 길을 찾다
입력 2014.08.02 (08:05)
수정 2015.02.1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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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느 정도는 아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겪고 있는 당사자가 아니면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바로 청년실업 문제다. 우리의 아들, 딸 혹은 형제자매, 손자 손녀들이 겪고 있는 현실인데도 말이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는데도 취업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그렇고 대학을 안 나오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실업자가 되어 있는 청년들을 주변에선 안됐다는 듯 따가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리곤 어쩔 수 없는 일인 양 외면하거나 체념해버린다. 기자가 청년실업문제를 취재하는 것에 대해서도 주변에선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마침내 대학을 중퇴한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휴학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 견디기 힘들어 결국은 대학을 포기했다. 이런 사람은 우연히 알게 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취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약속을 해서 만나기는 오히려 쉽지 않다. 인터뷰를 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촬영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 말이다. 몇 주에 걸쳐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접속해서 겨우 소개를 받았다. 그 것도 자발적인 동기로 직접 연락이 된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단체를 통해서 연결됐다. 그나마 그것도 다행이었다.
“처음엔 휴학을 해놓고 일을 계속했어요. 학비를 벌어야 되고 생활비도 내가 충당해야 된다는 게 컸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학교는 그만두지 못하겠고 그렇지만 알바는 계속해야 되고... 이렇게 되다보니까 학업에 전혀 집중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고 결국 대학을 그만뒀죠.” 대학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된 젊은이의 ‘변명 아닌 변명’이었다. 결국은 대학을 포기하고 고졸자로서 인생을 살기로 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입학할 때 가진 꿈을 이루기엔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이 형편없었다. 왜냐하면 그 학교는 웬만한 수능점수만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그야말로 ‘아무나 들어가는’ 대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초에 대학이 아니라 실무를 배워서 나가야할 일이었다. 뒤늦게 후회해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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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을 못가는 청년들도 많다. 또 대학을 마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그야말로 ‘놀고 있는’ 젊은이도 많다. 대개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몇 군데 전전하다 그마저도 힘이 들면 그냥 집에서 쉰다. 흔히 말하는 니트족이다.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즉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인 니트(NEET)족이다. 이들은 구직활동조차도 포기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한시적으로 임시직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이른바 ‘프리터족’(프리 아르바이터:free arbeiter) 보다 심각한 경우다.
왜 그럴까? 그건 우리의 교육이 현실과 맞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결국 누구나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교육을 받으면 취직을 할 수 있도록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취업의 현실에 닥쳐서 당사자가 되어 몸으로 겪지 않으면 아무리 곁에서 지켜봐도 알기 어렵다. 나도 잘 몰랐다. 내가 취업을 할 때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으니까... 요즘은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도 힘들다. 기자가 학력고사를 볼 때와 현재 수능시험을 치르는 세대가 완전히 다르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이 하는 취업은 기성세대가 겪었던 취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일처럼 힘들게 느껴졌다.
지금 한국의 15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 가운데 프리터는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또 니트족은 72만 명이나 된다. 현재로선 2012년까지 통계가 나와 있지만 최근 통계까지 합치면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다. 한국의 니트족 비율은 19.2%를 기록해 OECD 국가 34개 나라 가운데 7위를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비경제활동인구를 실업자 수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실업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일까? 사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랬다면 벌써 이 문제는 해결됐을 것이다. 더구나 청년실업문제는 전 세계가 골치아파하면서도 속 시원히 풀지 못하는 문제 아닌가.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독일과 스위스에서 답을 찾고자 하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청년실업률이 2013년 각각 7.9%와 8.5%를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이 55.5%, 이탈리아가 40% 등 유럽 각국과 선진국들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에서 유독 독일과 스위스는 청년실업률이 낮다. 그리고 그 비결을 두 나라는 일하면서 공부하는 제도, 즉 일·학습 병행제 덕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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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를 찾아갔다. 먼저 일·학습 병행제를 하고 있는 학교와 기업을 방문해 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1주일 가운데 3일은 기업에서 일을 하고 2일은 직업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학생은 중학교때 실습을 통해 기업에 대해 미리 알아두고 신청한다. 3일 동안 일을 하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다. 정식 직원 만큼 받지는 못하지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직업학교에서는 실습이 아니라 이론 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영어, 독일어 등 어학은 물론 화학과 문학 등 기본 소양을 가르친다. 이를 통해 고등교육 과정의 기본을 익힌다. 그리고 졸업을 하면 기업에 정식으로 취직을 한다. 이후 본인이 더 원하면 기술전문대학 같은 상급학교로 진학을 한다. 직장에서 승진을 위해서 계속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스위스에선 사실 이런 문화가 생활화 되어있다.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 문화권인 나라에서는 16 ,17세기부터 도제식 훈련(apprenticeship)이 전통적으로 이어져왔다. 한 분야의 장인, 이른바 마이스터가 훈련생을 옆에 두고 일일이 기술을 가르쳐 전수해온 것에서 비롯된 제도다. 그래서 중학교를 마칠 때 까지 이미 본인의 적성과 장래에 대해 어느 정도 방향을 정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대학에 갈 사람과 기술을 배우며 기초적인 공부도 할 사람으로 크게 나뉜다. 이 비율이 대학교 25% 대 듀얼시스템 75%로 나뉜다. 그리고 이렇게 두 개의 트랙으로 나뉜 가운데 직업학교에 가는 사람은 직장에 훈련생으로 취직한 상태에서 일과 교육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실업도 없고 돈을 벌면서 공부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한국도 도입하자는 것이 정부의 한국형 일·학습 병행제이다. 한국형 일·학습 병행제란 기업이 주도해서 청년 근로자를 양성하는 도제식 교육훈련 제도다. 먼저 기업은 한국산업인력공단과 산업별 단체 등 전문가 집단이 개발한 NCS라는 국가직무능력 표준에 따라 회사별 교육프로그램을 만든다. 고졸이상 학습근로자를 채용한 뒤 프로그램에 따라 회사에서 현장훈련을 시키고 직원들이 전문대학에서 공부한 학습 내용과 성과를 종합 평가해서 자격증이나 학위를 부여한다. 한국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는 대학생 지위와 어디든 취직할 수 있는 자격증을 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선발된 청년은 적어도 1년에서 최대 4년 까지 야간과 주말 또는 현장과 훈련센터 등에서 근로자 신분으로 급여를 받으며 일과 학습을 병행한다. 그동안 학교가 중심이던 교육에서 기업이 주도하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만큼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이를 돕기 위해 정부는 프로그램 개발비와 각종 훈련비, 교육담당자 수당과 숙식비 등 4,2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초기에는 정부가 돈을 대야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스스로 직원을 뽑겠다는 의지를 갖고 이를 실천해가야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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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너도나도 대학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나마 지금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대학진학률은 2009년 77.8%까지 올라갔다가 지난해 70.7%로 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실업자가 양산되는 현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진국들도 대학진학률은 30~50% 사이에 머문다. 합리적으로 선택해야할 때가 왔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데 굳이 비싼 등록금 내고 진학했다가 졸업하고 실업자가 되느니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적성에 맞춰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만 급여가 일정 수준 맞아야 하는 것이고, 일자리도 안정적이어야 한다. 게다가 본인이 취직 후 공부를 원한다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도 자체는 이상적인데 실천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도제식 교육을 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기업이 일정부분 돈을 내야하고 고졸자들을 뽑아야하고 숙련된 직원이 교육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기업경영에 바쁜 중소기업들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또 현재 한국의 기업들 가운데 대기업을 빼고 그럴 수 있는 여력과 의지가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도 변수다. 현재 중소기업 가운데 재정건전성이 높고 CEO의 의지가 강한 곳을 중심으로 이 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래서 대기업 직전의 중견기업들이 적극적이다. 종업원 300명 이상의 중견기업은 핵심 기술 인력과 수출을 담당할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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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현실을 보기위해 도쿄와 나고야를 찾아갔다. 도쿄에는 프리터와 니트족이 많았다. 특히 밤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거나 이자카야같은 선술집에서 일하는 프리터는 낮에도 일을 하며 두 개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취직이 안되니까 자유롭게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50만 명이던 프리터족이 2000년대 들어 217만 명까지 급증한 뒤 지난해는 182만 명을 기록하는 등 아직도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일본은 이 같은 프리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듀얼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도를 도입했다가 일·학습 병행제로 들어온 훈련생들이 남아있지 않고 떠나는 바람에 허탈한 처지다. 듀얼시스템을 도입하면 중소기업들에게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일본도 3D 현상이 심화되면서 젊은이들이 공장을 기피하고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은 일본의 경제현상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듀얼시스템의 미래를 일본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본은 일·학습 병행제가 널리 확산되지 않아서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실패를 자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한도 안에서 실업자의 직업훈련으로는 일정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본 시민단체들의 반응이었다. 일본 근로자들의 장시간 근무와 이로 인한 과로사,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노동착취 등을 해결하는 활동을 주로 펴고 있는 POSSE 라는 시민단체를 찾아갔다. 포세에서는 일·학습 병행제를 아주 기피하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기술 습득이나 자격보다는 회사에 대한 충성과 장시간 근무, 그리고 신규채용을 선호하기 때문에 듀얼시스템을 통한 채용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식 듀얼시스템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업훈련을 받아 기술을 연마하고 임금도 거기에 연동해 가는 제도인 반면, 일본의 경우 기술과 자격을 인정해주지도 않고 자격증을 취득해도 급여는 한 푼도 오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일본처럼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돼 있는 상태에서 듀얼시스템을 채택하면 가혹한 노동착취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실제로 과로사한 근로자의 사진을 넣은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피해를 설명해줬다. 한국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여겨졌다. 중소기업주들 가운데 선의를 가진 사람만 있는 건 아닐테니까.
그렇다면 일·학습 병행제는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취재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은 이미 20년 전에 일·학습 병행제를 도입한 적이 있고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직업교육 관련 학교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정부가 1994년부터 공업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학교에서 2학년 까지 공부하고 기업에서 1년 훈련받는 이른바 <2+1 체제>로 개편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부가 일·학습 병행제를 이름만 바꿔서 재탕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일선 교사들도 고용노동부의 정책에 대해서 불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한 건 하려는 정부의 정책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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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학습 병행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해결해야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기업주가 성실하게 이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20년 전의 실패는 중소기업들이 고등학생들을 데려다 값싼 노동력으로 써먹기만 했기 때문에 발생한 불상사이다. 인건비만 아껴보겠다는 심산으로 어린 고등학생들을 착취한 셈이다. 일본 시민단체들이 비판하는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도제식 교육을 하려면 그야말로 마이스터같은 선배 직원이 훈련생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는 그런 기반이 거의 없다. 직업훈련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도 별로 없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에 대해 체계화되지 못한 상태다. 가장 중요한 병역문제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이 없다. 정부는 병무청을 통해 병역특례제도를 활용하거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술병 제도를 통해 기술을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훈련병들이 군대를 마치고 제대하면 그 회사에 계속 다닐 것이란 보장도 없다. 월급이 한 푼이라도 많으면 다른 회사로 옮기는 걸 막을 도리는 없다.
청년실업문제는 한시가 급한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청년들의 실업이 계속 방치될 경우 이들의 결혼과 출산 등이 늦어지고 이들의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게 되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가 하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에 지장이 오는 것이고 국가 사회의 전체 구성원에게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개인의 수입이 줄고, 소비가 줄고, 한국인들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부동산도 침체하고 부채는 늘어가고..만약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우리의 가족과 사회와 국가의 행복을 위해서도 피해야할 상황인 것이다.
정부는 불과 1년 만에 산업별단체와 기관들을 통해 일·학습 병행제를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사실 중요한 문제다. 정부가 그나마 이런 노력을 지금이라도 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방법이 서툴고 시간만 서두르면 자칫 제2의 실패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학력을 차별하고 대학을 꼭 나와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실제로 대학을 나오건 현실에 맞는 직업에서 일을 하건 급여에 큰 차이가 없게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학습 병행제에 대해 누구나 또는 상당수 국민들이 동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기업들의 적극적 참여가 지속돼야한다. 그런 점에서 일·학습 병행제를 새로운 형태의 일하고 공부하는 신 주경야독(新 晝耕夜讀)이라 한다면 이곳에서 경제회복과 청년실업 극복의 길을 찾아보는 노력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마침내 대학을 중퇴한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휴학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 견디기 힘들어 결국은 대학을 포기했다. 이런 사람은 우연히 알게 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취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약속을 해서 만나기는 오히려 쉽지 않다. 인터뷰를 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촬영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 말이다. 몇 주에 걸쳐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접속해서 겨우 소개를 받았다. 그 것도 자발적인 동기로 직접 연락이 된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단체를 통해서 연결됐다. 그나마 그것도 다행이었다.
“처음엔 휴학을 해놓고 일을 계속했어요. 학비를 벌어야 되고 생활비도 내가 충당해야 된다는 게 컸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학교는 그만두지 못하겠고 그렇지만 알바는 계속해야 되고... 이렇게 되다보니까 학업에 전혀 집중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고 결국 대학을 그만뒀죠.” 대학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된 젊은이의 ‘변명 아닌 변명’이었다. 결국은 대학을 포기하고 고졸자로서 인생을 살기로 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입학할 때 가진 꿈을 이루기엔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이 형편없었다. 왜냐하면 그 학교는 웬만한 수능점수만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그야말로 ‘아무나 들어가는’ 대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초에 대학이 아니라 실무를 배워서 나가야할 일이었다. 뒤늦게 후회해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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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을 못가는 청년들도 많다. 또 대학을 마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그야말로 ‘놀고 있는’ 젊은이도 많다. 대개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몇 군데 전전하다 그마저도 힘이 들면 그냥 집에서 쉰다. 흔히 말하는 니트족이다.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즉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인 니트(NEET)족이다. 이들은 구직활동조차도 포기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한시적으로 임시직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이른바 ‘프리터족’(프리 아르바이터:free arbeiter) 보다 심각한 경우다.
왜 그럴까? 그건 우리의 교육이 현실과 맞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결국 누구나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교육을 받으면 취직을 할 수 있도록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취업의 현실에 닥쳐서 당사자가 되어 몸으로 겪지 않으면 아무리 곁에서 지켜봐도 알기 어렵다. 나도 잘 몰랐다. 내가 취업을 할 때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으니까... 요즘은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도 힘들다. 기자가 학력고사를 볼 때와 현재 수능시험을 치르는 세대가 완전히 다르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이 하는 취업은 기성세대가 겪었던 취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일처럼 힘들게 느껴졌다.
지금 한국의 15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 가운데 프리터는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또 니트족은 72만 명이나 된다. 현재로선 2012년까지 통계가 나와 있지만 최근 통계까지 합치면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다. 한국의 니트족 비율은 19.2%를 기록해 OECD 국가 34개 나라 가운데 7위를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비경제활동인구를 실업자 수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실업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일까? 사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랬다면 벌써 이 문제는 해결됐을 것이다. 더구나 청년실업문제는 전 세계가 골치아파하면서도 속 시원히 풀지 못하는 문제 아닌가.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독일과 스위스에서 답을 찾고자 하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청년실업률이 2013년 각각 7.9%와 8.5%를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이 55.5%, 이탈리아가 40% 등 유럽 각국과 선진국들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에서 유독 독일과 스위스는 청년실업률이 낮다. 그리고 그 비결을 두 나라는 일하면서 공부하는 제도, 즉 일·학습 병행제 덕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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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를 찾아갔다. 먼저 일·학습 병행제를 하고 있는 학교와 기업을 방문해 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1주일 가운데 3일은 기업에서 일을 하고 2일은 직업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학생은 중학교때 실습을 통해 기업에 대해 미리 알아두고 신청한다. 3일 동안 일을 하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다. 정식 직원 만큼 받지는 못하지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직업학교에서는 실습이 아니라 이론 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영어, 독일어 등 어학은 물론 화학과 문학 등 기본 소양을 가르친다. 이를 통해 고등교육 과정의 기본을 익힌다. 그리고 졸업을 하면 기업에 정식으로 취직을 한다. 이후 본인이 더 원하면 기술전문대학 같은 상급학교로 진학을 한다. 직장에서 승진을 위해서 계속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스위스에선 사실 이런 문화가 생활화 되어있다.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 문화권인 나라에서는 16 ,17세기부터 도제식 훈련(apprenticeship)이 전통적으로 이어져왔다. 한 분야의 장인, 이른바 마이스터가 훈련생을 옆에 두고 일일이 기술을 가르쳐 전수해온 것에서 비롯된 제도다. 그래서 중학교를 마칠 때 까지 이미 본인의 적성과 장래에 대해 어느 정도 방향을 정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대학에 갈 사람과 기술을 배우며 기초적인 공부도 할 사람으로 크게 나뉜다. 이 비율이 대학교 25% 대 듀얼시스템 75%로 나뉜다. 그리고 이렇게 두 개의 트랙으로 나뉜 가운데 직업학교에 가는 사람은 직장에 훈련생으로 취직한 상태에서 일과 교육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실업도 없고 돈을 벌면서 공부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한국도 도입하자는 것이 정부의 한국형 일·학습 병행제이다. 한국형 일·학습 병행제란 기업이 주도해서 청년 근로자를 양성하는 도제식 교육훈련 제도다. 먼저 기업은 한국산업인력공단과 산업별 단체 등 전문가 집단이 개발한 NCS라는 국가직무능력 표준에 따라 회사별 교육프로그램을 만든다. 고졸이상 학습근로자를 채용한 뒤 프로그램에 따라 회사에서 현장훈련을 시키고 직원들이 전문대학에서 공부한 학습 내용과 성과를 종합 평가해서 자격증이나 학위를 부여한다. 한국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는 대학생 지위와 어디든 취직할 수 있는 자격증을 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선발된 청년은 적어도 1년에서 최대 4년 까지 야간과 주말 또는 현장과 훈련센터 등에서 근로자 신분으로 급여를 받으며 일과 학습을 병행한다. 그동안 학교가 중심이던 교육에서 기업이 주도하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만큼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이를 돕기 위해 정부는 프로그램 개발비와 각종 훈련비, 교육담당자 수당과 숙식비 등 4,2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초기에는 정부가 돈을 대야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스스로 직원을 뽑겠다는 의지를 갖고 이를 실천해가야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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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너도나도 대학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나마 지금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대학진학률은 2009년 77.8%까지 올라갔다가 지난해 70.7%로 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실업자가 양산되는 현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진국들도 대학진학률은 30~50% 사이에 머문다. 합리적으로 선택해야할 때가 왔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데 굳이 비싼 등록금 내고 진학했다가 졸업하고 실업자가 되느니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적성에 맞춰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만 급여가 일정 수준 맞아야 하는 것이고, 일자리도 안정적이어야 한다. 게다가 본인이 취직 후 공부를 원한다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도 자체는 이상적인데 실천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도제식 교육을 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기업이 일정부분 돈을 내야하고 고졸자들을 뽑아야하고 숙련된 직원이 교육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기업경영에 바쁜 중소기업들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또 현재 한국의 기업들 가운데 대기업을 빼고 그럴 수 있는 여력과 의지가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도 변수다. 현재 중소기업 가운데 재정건전성이 높고 CEO의 의지가 강한 곳을 중심으로 이 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래서 대기업 직전의 중견기업들이 적극적이다. 종업원 300명 이상의 중견기업은 핵심 기술 인력과 수출을 담당할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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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현실을 보기위해 도쿄와 나고야를 찾아갔다. 도쿄에는 프리터와 니트족이 많았다. 특히 밤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거나 이자카야같은 선술집에서 일하는 프리터는 낮에도 일을 하며 두 개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취직이 안되니까 자유롭게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50만 명이던 프리터족이 2000년대 들어 217만 명까지 급증한 뒤 지난해는 182만 명을 기록하는 등 아직도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일본은 이 같은 프리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듀얼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도를 도입했다가 일·학습 병행제로 들어온 훈련생들이 남아있지 않고 떠나는 바람에 허탈한 처지다. 듀얼시스템을 도입하면 중소기업들에게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일본도 3D 현상이 심화되면서 젊은이들이 공장을 기피하고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은 일본의 경제현상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듀얼시스템의 미래를 일본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본은 일·학습 병행제가 널리 확산되지 않아서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실패를 자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한도 안에서 실업자의 직업훈련으로는 일정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본 시민단체들의 반응이었다. 일본 근로자들의 장시간 근무와 이로 인한 과로사,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노동착취 등을 해결하는 활동을 주로 펴고 있는 POSSE 라는 시민단체를 찾아갔다. 포세에서는 일·학습 병행제를 아주 기피하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기술 습득이나 자격보다는 회사에 대한 충성과 장시간 근무, 그리고 신규채용을 선호하기 때문에 듀얼시스템을 통한 채용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식 듀얼시스템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업훈련을 받아 기술을 연마하고 임금도 거기에 연동해 가는 제도인 반면, 일본의 경우 기술과 자격을 인정해주지도 않고 자격증을 취득해도 급여는 한 푼도 오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일본처럼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돼 있는 상태에서 듀얼시스템을 채택하면 가혹한 노동착취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실제로 과로사한 근로자의 사진을 넣은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피해를 설명해줬다. 한국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여겨졌다. 중소기업주들 가운데 선의를 가진 사람만 있는 건 아닐테니까.
그렇다면 일·학습 병행제는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취재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은 이미 20년 전에 일·학습 병행제를 도입한 적이 있고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직업교육 관련 학교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정부가 1994년부터 공업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학교에서 2학년 까지 공부하고 기업에서 1년 훈련받는 이른바 <2+1 체제>로 개편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부가 일·학습 병행제를 이름만 바꿔서 재탕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일선 교사들도 고용노동부의 정책에 대해서 불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한 건 하려는 정부의 정책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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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학습 병행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해결해야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기업주가 성실하게 이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20년 전의 실패는 중소기업들이 고등학생들을 데려다 값싼 노동력으로 써먹기만 했기 때문에 발생한 불상사이다. 인건비만 아껴보겠다는 심산으로 어린 고등학생들을 착취한 셈이다. 일본 시민단체들이 비판하는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도제식 교육을 하려면 그야말로 마이스터같은 선배 직원이 훈련생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는 그런 기반이 거의 없다. 직업훈련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도 별로 없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에 대해 체계화되지 못한 상태다. 가장 중요한 병역문제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이 없다. 정부는 병무청을 통해 병역특례제도를 활용하거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술병 제도를 통해 기술을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훈련병들이 군대를 마치고 제대하면 그 회사에 계속 다닐 것이란 보장도 없다. 월급이 한 푼이라도 많으면 다른 회사로 옮기는 걸 막을 도리는 없다.
청년실업문제는 한시가 급한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청년들의 실업이 계속 방치될 경우 이들의 결혼과 출산 등이 늦어지고 이들의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게 되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가 하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에 지장이 오는 것이고 국가 사회의 전체 구성원에게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개인의 수입이 줄고, 소비가 줄고, 한국인들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부동산도 침체하고 부채는 늘어가고..만약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우리의 가족과 사회와 국가의 행복을 위해서도 피해야할 상황인 것이다.
정부는 불과 1년 만에 산업별단체와 기관들을 통해 일·학습 병행제를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사실 중요한 문제다. 정부가 그나마 이런 노력을 지금이라도 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방법이 서툴고 시간만 서두르면 자칫 제2의 실패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학력을 차별하고 대학을 꼭 나와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실제로 대학을 나오건 현실에 맞는 직업에서 일을 하건 급여에 큰 차이가 없게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학습 병행제에 대해 누구나 또는 상당수 국민들이 동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기업들의 적극적 참여가 지속돼야한다. 그런 점에서 일·학습 병행제를 새로운 형태의 일하고 공부하는 신 주경야독(新 晝耕夜讀)이라 한다면 이곳에서 경제회복과 청년실업 극복의 길을 찾아보는 노력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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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후] 청년실업, 신 주경야독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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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08-02 08:05:38
- 수정2015-02-16 14:47:42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아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겪고 있는 당사자가 아니면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바로 청년실업 문제다. 우리의 아들, 딸 혹은 형제자매, 손자 손녀들이 겪고 있는 현실인데도 말이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는데도 취업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그렇고 대학을 안 나오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실업자가 되어 있는 청년들을 주변에선 안됐다는 듯 따가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리곤 어쩔 수 없는 일인 양 외면하거나 체념해버린다. 기자가 청년실업문제를 취재하는 것에 대해서도 주변에선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마침내 대학을 중퇴한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휴학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 견디기 힘들어 결국은 대학을 포기했다. 이런 사람은 우연히 알게 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취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약속을 해서 만나기는 오히려 쉽지 않다. 인터뷰를 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촬영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 말이다. 몇 주에 걸쳐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접속해서 겨우 소개를 받았다. 그 것도 자발적인 동기로 직접 연락이 된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단체를 통해서 연결됐다. 그나마 그것도 다행이었다.
“처음엔 휴학을 해놓고 일을 계속했어요. 학비를 벌어야 되고 생활비도 내가 충당해야 된다는 게 컸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학교는 그만두지 못하겠고 그렇지만 알바는 계속해야 되고... 이렇게 되다보니까 학업에 전혀 집중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고 결국 대학을 그만뒀죠.” 대학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된 젊은이의 ‘변명 아닌 변명’이었다. 결국은 대학을 포기하고 고졸자로서 인생을 살기로 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입학할 때 가진 꿈을 이루기엔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이 형편없었다. 왜냐하면 그 학교는 웬만한 수능점수만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그야말로 ‘아무나 들어가는’ 대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초에 대학이 아니라 실무를 배워서 나가야할 일이었다. 뒤늦게 후회해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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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을 못가는 청년들도 많다. 또 대학을 마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그야말로 ‘놀고 있는’ 젊은이도 많다. 대개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몇 군데 전전하다 그마저도 힘이 들면 그냥 집에서 쉰다. 흔히 말하는 니트족이다.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즉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인 니트(NEET)족이다. 이들은 구직활동조차도 포기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한시적으로 임시직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이른바 ‘프리터족’(프리 아르바이터:free arbeiter) 보다 심각한 경우다.
왜 그럴까? 그건 우리의 교육이 현실과 맞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결국 누구나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교육을 받으면 취직을 할 수 있도록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취업의 현실에 닥쳐서 당사자가 되어 몸으로 겪지 않으면 아무리 곁에서 지켜봐도 알기 어렵다. 나도 잘 몰랐다. 내가 취업을 할 때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으니까... 요즘은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도 힘들다. 기자가 학력고사를 볼 때와 현재 수능시험을 치르는 세대가 완전히 다르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이 하는 취업은 기성세대가 겪었던 취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일처럼 힘들게 느껴졌다.
지금 한국의 15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 가운데 프리터는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또 니트족은 72만 명이나 된다. 현재로선 2012년까지 통계가 나와 있지만 최근 통계까지 합치면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다. 한국의 니트족 비율은 19.2%를 기록해 OECD 국가 34개 나라 가운데 7위를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비경제활동인구를 실업자 수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실업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일까? 사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랬다면 벌써 이 문제는 해결됐을 것이다. 더구나 청년실업문제는 전 세계가 골치아파하면서도 속 시원히 풀지 못하는 문제 아닌가.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독일과 스위스에서 답을 찾고자 하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청년실업률이 2013년 각각 7.9%와 8.5%를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이 55.5%, 이탈리아가 40% 등 유럽 각국과 선진국들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에서 유독 독일과 스위스는 청년실업률이 낮다. 그리고 그 비결을 두 나라는 일하면서 공부하는 제도, 즉 일·학습 병행제 덕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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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를 찾아갔다. 먼저 일·학습 병행제를 하고 있는 학교와 기업을 방문해 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1주일 가운데 3일은 기업에서 일을 하고 2일은 직업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학생은 중학교때 실습을 통해 기업에 대해 미리 알아두고 신청한다. 3일 동안 일을 하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다. 정식 직원 만큼 받지는 못하지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직업학교에서는 실습이 아니라 이론 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영어, 독일어 등 어학은 물론 화학과 문학 등 기본 소양을 가르친다. 이를 통해 고등교육 과정의 기본을 익힌다. 그리고 졸업을 하면 기업에 정식으로 취직을 한다. 이후 본인이 더 원하면 기술전문대학 같은 상급학교로 진학을 한다. 직장에서 승진을 위해서 계속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스위스에선 사실 이런 문화가 생활화 되어있다.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 문화권인 나라에서는 16 ,17세기부터 도제식 훈련(apprenticeship)이 전통적으로 이어져왔다. 한 분야의 장인, 이른바 마이스터가 훈련생을 옆에 두고 일일이 기술을 가르쳐 전수해온 것에서 비롯된 제도다. 그래서 중학교를 마칠 때 까지 이미 본인의 적성과 장래에 대해 어느 정도 방향을 정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대학에 갈 사람과 기술을 배우며 기초적인 공부도 할 사람으로 크게 나뉜다. 이 비율이 대학교 25% 대 듀얼시스템 75%로 나뉜다. 그리고 이렇게 두 개의 트랙으로 나뉜 가운데 직업학교에 가는 사람은 직장에 훈련생으로 취직한 상태에서 일과 교육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실업도 없고 돈을 벌면서 공부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한국도 도입하자는 것이 정부의 한국형 일·학습 병행제이다. 한국형 일·학습 병행제란 기업이 주도해서 청년 근로자를 양성하는 도제식 교육훈련 제도다. 먼저 기업은 한국산업인력공단과 산업별 단체 등 전문가 집단이 개발한 NCS라는 국가직무능력 표준에 따라 회사별 교육프로그램을 만든다. 고졸이상 학습근로자를 채용한 뒤 프로그램에 따라 회사에서 현장훈련을 시키고 직원들이 전문대학에서 공부한 학습 내용과 성과를 종합 평가해서 자격증이나 학위를 부여한다. 한국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는 대학생 지위와 어디든 취직할 수 있는 자격증을 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선발된 청년은 적어도 1년에서 최대 4년 까지 야간과 주말 또는 현장과 훈련센터 등에서 근로자 신분으로 급여를 받으며 일과 학습을 병행한다. 그동안 학교가 중심이던 교육에서 기업이 주도하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만큼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이를 돕기 위해 정부는 프로그램 개발비와 각종 훈련비, 교육담당자 수당과 숙식비 등 4,2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초기에는 정부가 돈을 대야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스스로 직원을 뽑겠다는 의지를 갖고 이를 실천해가야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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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너도나도 대학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나마 지금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대학진학률은 2009년 77.8%까지 올라갔다가 지난해 70.7%로 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실업자가 양산되는 현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진국들도 대학진학률은 30~50% 사이에 머문다. 합리적으로 선택해야할 때가 왔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데 굳이 비싼 등록금 내고 진학했다가 졸업하고 실업자가 되느니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적성에 맞춰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만 급여가 일정 수준 맞아야 하는 것이고, 일자리도 안정적이어야 한다. 게다가 본인이 취직 후 공부를 원한다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도 자체는 이상적인데 실천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도제식 교육을 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기업이 일정부분 돈을 내야하고 고졸자들을 뽑아야하고 숙련된 직원이 교육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기업경영에 바쁜 중소기업들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또 현재 한국의 기업들 가운데 대기업을 빼고 그럴 수 있는 여력과 의지가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도 변수다. 현재 중소기업 가운데 재정건전성이 높고 CEO의 의지가 강한 곳을 중심으로 이 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래서 대기업 직전의 중견기업들이 적극적이다. 종업원 300명 이상의 중견기업은 핵심 기술 인력과 수출을 담당할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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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현실을 보기위해 도쿄와 나고야를 찾아갔다. 도쿄에는 프리터와 니트족이 많았다. 특히 밤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거나 이자카야같은 선술집에서 일하는 프리터는 낮에도 일을 하며 두 개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취직이 안되니까 자유롭게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50만 명이던 프리터족이 2000년대 들어 217만 명까지 급증한 뒤 지난해는 182만 명을 기록하는 등 아직도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일본은 이 같은 프리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듀얼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도를 도입했다가 일·학습 병행제로 들어온 훈련생들이 남아있지 않고 떠나는 바람에 허탈한 처지다. 듀얼시스템을 도입하면 중소기업들에게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일본도 3D 현상이 심화되면서 젊은이들이 공장을 기피하고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은 일본의 경제현상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듀얼시스템의 미래를 일본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본은 일·학습 병행제가 널리 확산되지 않아서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실패를 자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한도 안에서 실업자의 직업훈련으로는 일정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본 시민단체들의 반응이었다. 일본 근로자들의 장시간 근무와 이로 인한 과로사,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노동착취 등을 해결하는 활동을 주로 펴고 있는 POSSE 라는 시민단체를 찾아갔다. 포세에서는 일·학습 병행제를 아주 기피하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기술 습득이나 자격보다는 회사에 대한 충성과 장시간 근무, 그리고 신규채용을 선호하기 때문에 듀얼시스템을 통한 채용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식 듀얼시스템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업훈련을 받아 기술을 연마하고 임금도 거기에 연동해 가는 제도인 반면, 일본의 경우 기술과 자격을 인정해주지도 않고 자격증을 취득해도 급여는 한 푼도 오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일본처럼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돼 있는 상태에서 듀얼시스템을 채택하면 가혹한 노동착취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실제로 과로사한 근로자의 사진을 넣은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피해를 설명해줬다. 한국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여겨졌다. 중소기업주들 가운데 선의를 가진 사람만 있는 건 아닐테니까.
그렇다면 일·학습 병행제는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취재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은 이미 20년 전에 일·학습 병행제를 도입한 적이 있고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직업교육 관련 학교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정부가 1994년부터 공업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학교에서 2학년 까지 공부하고 기업에서 1년 훈련받는 이른바 <2+1 체제>로 개편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부가 일·학습 병행제를 이름만 바꿔서 재탕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일선 교사들도 고용노동부의 정책에 대해서 불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한 건 하려는 정부의 정책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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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문제는 한시가 급한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청년들의 실업이 계속 방치될 경우 이들의 결혼과 출산 등이 늦어지고 이들의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게 되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가 하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에 지장이 오는 것이고 국가 사회의 전체 구성원에게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개인의 수입이 줄고, 소비가 줄고, 한국인들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부동산도 침체하고 부채는 늘어가고..만약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우리의 가족과 사회와 국가의 행복을 위해서도 피해야할 상황인 것이다.
정부는 불과 1년 만에 산업별단체와 기관들을 통해 일·학습 병행제를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사실 중요한 문제다. 정부가 그나마 이런 노력을 지금이라도 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방법이 서툴고 시간만 서두르면 자칫 제2의 실패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학력을 차별하고 대학을 꼭 나와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실제로 대학을 나오건 현실에 맞는 직업에서 일을 하건 급여에 큰 차이가 없게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학습 병행제에 대해 누구나 또는 상당수 국민들이 동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기업들의 적극적 참여가 지속돼야한다. 그런 점에서 일·학습 병행제를 새로운 형태의 일하고 공부하는 신 주경야독(新 晝耕夜讀)이라 한다면 이곳에서 경제회복과 청년실업 극복의 길을 찾아보는 노력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마침내 대학을 중퇴한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휴학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 견디기 힘들어 결국은 대학을 포기했다. 이런 사람은 우연히 알게 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취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약속을 해서 만나기는 오히려 쉽지 않다. 인터뷰를 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촬영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 말이다. 몇 주에 걸쳐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접속해서 겨우 소개를 받았다. 그 것도 자발적인 동기로 직접 연락이 된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단체를 통해서 연결됐다. 그나마 그것도 다행이었다.
“처음엔 휴학을 해놓고 일을 계속했어요. 학비를 벌어야 되고 생활비도 내가 충당해야 된다는 게 컸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학교는 그만두지 못하겠고 그렇지만 알바는 계속해야 되고... 이렇게 되다보니까 학업에 전혀 집중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고 결국 대학을 그만뒀죠.” 대학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된 젊은이의 ‘변명 아닌 변명’이었다. 결국은 대학을 포기하고 고졸자로서 인생을 살기로 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입학할 때 가진 꿈을 이루기엔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이 형편없었다. 왜냐하면 그 학교는 웬만한 수능점수만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그야말로 ‘아무나 들어가는’ 대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초에 대학이 아니라 실무를 배워서 나가야할 일이었다. 뒤늦게 후회해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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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을 못가는 청년들도 많다. 또 대학을 마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그야말로 ‘놀고 있는’ 젊은이도 많다. 대개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몇 군데 전전하다 그마저도 힘이 들면 그냥 집에서 쉰다. 흔히 말하는 니트족이다.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즉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인 니트(NEET)족이다. 이들은 구직활동조차도 포기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한시적으로 임시직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이른바 ‘프리터족’(프리 아르바이터:free arbeiter) 보다 심각한 경우다.
왜 그럴까? 그건 우리의 교육이 현실과 맞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결국 누구나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교육을 받으면 취직을 할 수 있도록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취업의 현실에 닥쳐서 당사자가 되어 몸으로 겪지 않으면 아무리 곁에서 지켜봐도 알기 어렵다. 나도 잘 몰랐다. 내가 취업을 할 때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으니까... 요즘은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도 힘들다. 기자가 학력고사를 볼 때와 현재 수능시험을 치르는 세대가 완전히 다르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이 하는 취업은 기성세대가 겪었던 취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일처럼 힘들게 느껴졌다.
지금 한국의 15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 가운데 프리터는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또 니트족은 72만 명이나 된다. 현재로선 2012년까지 통계가 나와 있지만 최근 통계까지 합치면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다. 한국의 니트족 비율은 19.2%를 기록해 OECD 국가 34개 나라 가운데 7위를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비경제활동인구를 실업자 수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실업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일까? 사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랬다면 벌써 이 문제는 해결됐을 것이다. 더구나 청년실업문제는 전 세계가 골치아파하면서도 속 시원히 풀지 못하는 문제 아닌가.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독일과 스위스에서 답을 찾고자 하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청년실업률이 2013년 각각 7.9%와 8.5%를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이 55.5%, 이탈리아가 40% 등 유럽 각국과 선진국들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에서 유독 독일과 스위스는 청년실업률이 낮다. 그리고 그 비결을 두 나라는 일하면서 공부하는 제도, 즉 일·학습 병행제 덕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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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를 찾아갔다. 먼저 일·학습 병행제를 하고 있는 학교와 기업을 방문해 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1주일 가운데 3일은 기업에서 일을 하고 2일은 직업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학생은 중학교때 실습을 통해 기업에 대해 미리 알아두고 신청한다. 3일 동안 일을 하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다. 정식 직원 만큼 받지는 못하지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직업학교에서는 실습이 아니라 이론 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영어, 독일어 등 어학은 물론 화학과 문학 등 기본 소양을 가르친다. 이를 통해 고등교육 과정의 기본을 익힌다. 그리고 졸업을 하면 기업에 정식으로 취직을 한다. 이후 본인이 더 원하면 기술전문대학 같은 상급학교로 진학을 한다. 직장에서 승진을 위해서 계속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스위스에선 사실 이런 문화가 생활화 되어있다.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 문화권인 나라에서는 16 ,17세기부터 도제식 훈련(apprenticeship)이 전통적으로 이어져왔다. 한 분야의 장인, 이른바 마이스터가 훈련생을 옆에 두고 일일이 기술을 가르쳐 전수해온 것에서 비롯된 제도다. 그래서 중학교를 마칠 때 까지 이미 본인의 적성과 장래에 대해 어느 정도 방향을 정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대학에 갈 사람과 기술을 배우며 기초적인 공부도 할 사람으로 크게 나뉜다. 이 비율이 대학교 25% 대 듀얼시스템 75%로 나뉜다. 그리고 이렇게 두 개의 트랙으로 나뉜 가운데 직업학교에 가는 사람은 직장에 훈련생으로 취직한 상태에서 일과 교육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실업도 없고 돈을 벌면서 공부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한국도 도입하자는 것이 정부의 한국형 일·학습 병행제이다. 한국형 일·학습 병행제란 기업이 주도해서 청년 근로자를 양성하는 도제식 교육훈련 제도다. 먼저 기업은 한국산업인력공단과 산업별 단체 등 전문가 집단이 개발한 NCS라는 국가직무능력 표준에 따라 회사별 교육프로그램을 만든다. 고졸이상 학습근로자를 채용한 뒤 프로그램에 따라 회사에서 현장훈련을 시키고 직원들이 전문대학에서 공부한 학습 내용과 성과를 종합 평가해서 자격증이나 학위를 부여한다. 한국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는 대학생 지위와 어디든 취직할 수 있는 자격증을 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선발된 청년은 적어도 1년에서 최대 4년 까지 야간과 주말 또는 현장과 훈련센터 등에서 근로자 신분으로 급여를 받으며 일과 학습을 병행한다. 그동안 학교가 중심이던 교육에서 기업이 주도하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만큼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이를 돕기 위해 정부는 프로그램 개발비와 각종 훈련비, 교육담당자 수당과 숙식비 등 4,2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초기에는 정부가 돈을 대야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스스로 직원을 뽑겠다는 의지를 갖고 이를 실천해가야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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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너도나도 대학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나마 지금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대학진학률은 2009년 77.8%까지 올라갔다가 지난해 70.7%로 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실업자가 양산되는 현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진국들도 대학진학률은 30~50% 사이에 머문다. 합리적으로 선택해야할 때가 왔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데 굳이 비싼 등록금 내고 진학했다가 졸업하고 실업자가 되느니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적성에 맞춰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만 급여가 일정 수준 맞아야 하는 것이고, 일자리도 안정적이어야 한다. 게다가 본인이 취직 후 공부를 원한다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도 자체는 이상적인데 실천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도제식 교육을 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기업이 일정부분 돈을 내야하고 고졸자들을 뽑아야하고 숙련된 직원이 교육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기업경영에 바쁜 중소기업들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또 현재 한국의 기업들 가운데 대기업을 빼고 그럴 수 있는 여력과 의지가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도 변수다. 현재 중소기업 가운데 재정건전성이 높고 CEO의 의지가 강한 곳을 중심으로 이 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래서 대기업 직전의 중견기업들이 적극적이다. 종업원 300명 이상의 중견기업은 핵심 기술 인력과 수출을 담당할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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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현실을 보기위해 도쿄와 나고야를 찾아갔다. 도쿄에는 프리터와 니트족이 많았다. 특히 밤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거나 이자카야같은 선술집에서 일하는 프리터는 낮에도 일을 하며 두 개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취직이 안되니까 자유롭게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50만 명이던 프리터족이 2000년대 들어 217만 명까지 급증한 뒤 지난해는 182만 명을 기록하는 등 아직도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일본은 이 같은 프리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듀얼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도를 도입했다가 일·학습 병행제로 들어온 훈련생들이 남아있지 않고 떠나는 바람에 허탈한 처지다. 듀얼시스템을 도입하면 중소기업들에게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일본도 3D 현상이 심화되면서 젊은이들이 공장을 기피하고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은 일본의 경제현상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듀얼시스템의 미래를 일본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본은 일·학습 병행제가 널리 확산되지 않아서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실패를 자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한도 안에서 실업자의 직업훈련으로는 일정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본 시민단체들의 반응이었다. 일본 근로자들의 장시간 근무와 이로 인한 과로사,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노동착취 등을 해결하는 활동을 주로 펴고 있는 POSSE 라는 시민단체를 찾아갔다. 포세에서는 일·학습 병행제를 아주 기피하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기술 습득이나 자격보다는 회사에 대한 충성과 장시간 근무, 그리고 신규채용을 선호하기 때문에 듀얼시스템을 통한 채용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식 듀얼시스템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업훈련을 받아 기술을 연마하고 임금도 거기에 연동해 가는 제도인 반면, 일본의 경우 기술과 자격을 인정해주지도 않고 자격증을 취득해도 급여는 한 푼도 오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일본처럼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돼 있는 상태에서 듀얼시스템을 채택하면 가혹한 노동착취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실제로 과로사한 근로자의 사진을 넣은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피해를 설명해줬다. 한국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여겨졌다. 중소기업주들 가운데 선의를 가진 사람만 있는 건 아닐테니까.
그렇다면 일·학습 병행제는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취재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은 이미 20년 전에 일·학습 병행제를 도입한 적이 있고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직업교육 관련 학교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정부가 1994년부터 공업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학교에서 2학년 까지 공부하고 기업에서 1년 훈련받는 이른바 <2+1 체제>로 개편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부가 일·학습 병행제를 이름만 바꿔서 재탕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일선 교사들도 고용노동부의 정책에 대해서 불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한 건 하려는 정부의 정책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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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학습 병행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해결해야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기업주가 성실하게 이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20년 전의 실패는 중소기업들이 고등학생들을 데려다 값싼 노동력으로 써먹기만 했기 때문에 발생한 불상사이다. 인건비만 아껴보겠다는 심산으로 어린 고등학생들을 착취한 셈이다. 일본 시민단체들이 비판하는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도제식 교육을 하려면 그야말로 마이스터같은 선배 직원이 훈련생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는 그런 기반이 거의 없다. 직업훈련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도 별로 없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에 대해 체계화되지 못한 상태다. 가장 중요한 병역문제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이 없다. 정부는 병무청을 통해 병역특례제도를 활용하거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술병 제도를 통해 기술을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훈련병들이 군대를 마치고 제대하면 그 회사에 계속 다닐 것이란 보장도 없다. 월급이 한 푼이라도 많으면 다른 회사로 옮기는 걸 막을 도리는 없다.
청년실업문제는 한시가 급한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청년들의 실업이 계속 방치될 경우 이들의 결혼과 출산 등이 늦어지고 이들의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게 되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가 하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에 지장이 오는 것이고 국가 사회의 전체 구성원에게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개인의 수입이 줄고, 소비가 줄고, 한국인들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부동산도 침체하고 부채는 늘어가고..만약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우리의 가족과 사회와 국가의 행복을 위해서도 피해야할 상황인 것이다.
정부는 불과 1년 만에 산업별단체와 기관들을 통해 일·학습 병행제를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사실 중요한 문제다. 정부가 그나마 이런 노력을 지금이라도 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방법이 서툴고 시간만 서두르면 자칫 제2의 실패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학력을 차별하고 대학을 꼭 나와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실제로 대학을 나오건 현실에 맞는 직업에서 일을 하건 급여에 큰 차이가 없게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학습 병행제에 대해 누구나 또는 상당수 국민들이 동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기업들의 적극적 참여가 지속돼야한다. 그런 점에서 일·학습 병행제를 새로운 형태의 일하고 공부하는 신 주경야독(新 晝耕夜讀)이라 한다면 이곳에서 경제회복과 청년실업 극복의 길을 찾아보는 노력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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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원 기자 jwhit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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