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간다] 긴급점검 ‘구멍난 저수지’

입력 2014.09.06 (00:02) 수정 2014.09.0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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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최근 저수지가 붕괴되면서 집과 논이 침수되는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짧은 시간 많은 비가 내리면서 일어난 사고로 보이지만, 따져보니 저수지 관리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수십만 톤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대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저수지 붕괴 사고, 왜 일어나는지, 양성모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2014. 8. 21 뉴스9 오아영 : " 둑 30여 미터가 무너지면서 흙탕물이 마을을 덮쳤습니다."

<인터뷰> 임태화(마을주민) : "쓰나미처럼 밀려왔기 때문에..."

<인터뷰>한건연(교수/경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작은 저수지는 30분만에 그 물이 다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주민들이 피할 수가 없어요"

<녹취> "2014년 8월 21일 오전 8시 30분"

포도 수확이 한창인 여름의 끝자락.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자, 임태화 씨는 일찌감치 밭으로 향했습니다.

<녹취> 임태화(피해 주민) : "거봉 포도거든요. 이게 한 송이에 1킬로그램이 넘어가요"

평생 이곳에서 포도 농사를 지어온 임 씨에겐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인터뷰> 임태화(피해 주민) : "작업을 한 30분 정도 하다 보니까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포도를 선물할 테니까 좀 좋은 걸 따달라고 해서 제가 자리를 비웠습니다."

임 씨가 친구의 전화를 받고 잠시 밭에서 나온 그 때,

임 씨의 눈 앞에서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임태화(피해 주민) : "안개가 확 이렇게 올라오더라고. 물안개가. 그 물안개 속에서 밑에 시커멓게....쓰나미 같이 시커먼 흙탕물, 시커먼 그 흙탕물이 일시에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직감적으로 아, 못이 터졌구나...."

마을 위엔 69년 전인 1945년에 지어진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담수용량 6만 톤 규모의 이 저수지가 터진 겁니다.

<인터뷰> 임태화(피해 주민) : "말이 안 나오고, 행동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었어요. 제가 119에 신고하려고 하는데 전화번호가 잘 안 눌러지더라고요."

<녹취> 사고 당시 임태화 씨 119 신고 전화 : "네 119입니다." "아, 여보세요. 괴연동 저수지가 터져서 지금요 난리 났다니까. 동네 사람들 다 죽게 생겼으니까...."

물은 순식간에 6백여 미터를 달려 마을을 덮쳤습니다.

길 위 아스팔트는 종이조각처럼 떠내려갔고, 벽을 무너뜨린 물은 집안까지 들이닥쳤습니다.

<인터뷰> 박재광(피해 주민) : "(저 벽이 무너진 건가요? 저 돌덩이가 다 뭐예요?) 벽, 방 벽. 밑에 물이 차니 흙이 이렇게 눌러 앉아버리면서 넘어졌어"

저수지 바로 아래 임 씨의 포도밭 일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녹취> 임태화(피해 주민) : "여기가 옛날에 어른들이 손으로 다 이렇게 바위로 경계를 만들었거든요. 이게 하천이니까 여기까지가 포도밭이었는데 지금 다 이렇게 된 거죠."

물은 이미 빠졌지만 수확 시기를 놓친 포도는 썩어가고 있습니다.

둑이 터지기 직전 밭을 떠나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릴 뿐입니다.

피해는 이게 다가 아닙니다.

<녹취> 이용구(피해 주민) : "지금 못에 물이 없으니까 저수지에 물이 없으니까 물을 대야 되는데 못대서 땅이 다 갈라지고 있잖아요."

저수지 물이 넘쳐 피해를 입었는데, 이번엔 저수지 물이 부족해 또 피해를 입을 처집니다.

저수지 둑은 왜 무너졌을까?

지난해 영천시가 지정한 재해위험저수지입니다.

긴급정밀점검에서 D등급을 받은 저수지 4곳이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괴연저수지는 재해위험저수지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괴연저수지는 비교적 안전해 보수가 거의 필요 없다는 이유로 B등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영재(경북대 토목공학과 교수) : "가장 양호하면 A가 되겠죠. A, B, C, D, E가 있는데 보통 D나 E가 나오면 100% 다시 건설을 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B 등급이 나왔다고 하는 것은 제가 봐서는 좀 이해가 가기 어렵지 않나"

이런 의문은 세부 점검 내역을 살펴보고 나서야 풀렸습니다.

둑은 최상의 상태인 A, 저수지 수문은 B, 물이 넘어가는 여수로는 C등급입니다.

이 세 부분을 그냥 산술적으로 평균을 내 B 등급을 부여한 겁니다.

<녹취> 경상북도 관계자(음성변조) : "한 부분은 비록 약하지만, 전체 등급으로 봐서는 괜찮다, 이렇게 판단이 된 겁니다. 법에 그렇게 하도록 돼있습니다."

괴연저수지는 바로 C 등급을 받은 여수로 부분에서 붕괴가 시작됐습니다.

<인터뷰> 노섭(여주대학교 토목과 교수) : "다른 거 아무리 안전해봐야 소용이 없듯이,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까? 결국 붕괴의 원인은 그쪽이기 때문에 세부검토사항에서 E등급이 하나만 나왔더라도 이건 E 등급이다 이렇게 판별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비교적 안전하다는 B 등급 저수지도 경우에 따라서는 무너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붕괴 조짐이 발견된 D나, 최하인 E 등급을 받은 저수지의 상태는 어떨까?

60년이 넘은 이 저수지는 D등급 판정을 받고 재해위험저수지로 지정됐습니다.

저수지 물이 빠져나가는 여수로입니다.

그런데 콘크리트 구조물 곳곳에 이렇게 철근이 드러나 있습니다.

수로를 따라 내려가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바닥 한 가운데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요, 제방과 접한 벽면엔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흙이 유실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노섭(여주대학교 토목과 교수) : "물이 스며들면서 이 구조물을 띄우는, 그래서 쉽게 구조물이 붕괴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겠고요. 이미 붕괴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는 그런 증거이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언제 붕괴될 지 모르는 저수지를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인터뷰> 우정식(저수지 인근 주민) : "여기 밑에 농경지가 이 저수지가 터지면 직접적인 피해를 보기 때문에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에요. 올해 예산이 없어서 내년에 보수해준다니까 그것만 믿고 있는 거죠."

경기도 양평의 한 저수지.

저수지 제방 아래 접근조차 어려울 정도로 수풀이 무성한 습지가 형성돼 있습니다.

주민들은 이 저수지에서 오랜 기간 누수가 진행됐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상기(저수지 인근 주민) : "여기하고 저쪽에 수문 물 내려가는 입구에 물이 이만치 있잖아요. 그 빨간 물이 내려오는 걸 확인했어요. 근데 물이 많이 내려오지 않고 항상 그냥 축축하게//물이 은근하게 누수가 되더라고요."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누수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노섭(여주대학교 토목과 교수) : "제체(둑) 바로 아래에 습지가 형성돼 있습니다. 늪과 같이 돼 있다는 거죠. 그만큼 그 제체 자체가 굉장히 연약하게 있고, 위험하다라는 것을 얘기합니다."

이렇게 낡아 붕괴 위험이 있는 저수지는 얼마나 될까?

전국의 저수지는 모두 만 7천여 곳.

이 가운데 70%인 만 2천여 곳은 지은 지 50년이 넘은 오래된 저수지입니다.

부실 조사 가능성이 있는 B.C 등급은 제외하더라도. 당장 보수가 시급한 D나 E 등급 저수지만 179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발생한 저수지 붕괴 사고 11건 가운데 9건은 1940~50년대에 지어진 노후 저수지에서 일어났습니다.

저수지 자체의 누수나 부식 외에 노후 저수지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기후변화입니다.

<인터뷰> 노섭(여주대학교 토목과 교수) : "과거에 만들었던 저수지는 과거의 강우량 자료를 가지고 크기를 정했는데 현재 기후변화로 인해서 작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강우 패턴은 과거에 그 저수지를 만들 당시에는 없었던 것들이거든요."

실제로 하루 100밀리미터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리는 빈도는 1970년대 222회에서 2천년대 385회로 1.7배 정도 늘었습니다.

<인터뷰> 한건연(경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우리나라에서도 시간당 강우량이 100밀리미터, 심지어는 120밀리미터 이상도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강우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입니다."

집중호우로 인해 저수지 물이 넘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취재진은 직접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저수지 둑의 주 자재인 흙으로 모형 저수지를 만들었습니다.

집중호우 상황을 가정해 저수지가 넘칠 만큼의 물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저수지 둑 위로 물이 넘치자, 물은 빠른 속도로 둑을 따라 흐르기 시작합니다.

불과 1분 만에 물길의 폭은 10배 넘게 커졌고, 쏟아지는 물살에 둑은 급격히 무너져버립니다.

무너진 모형 저수지의 모습은 그동안 붕괴 사고가 났던 저수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인터뷰> 송현구(농어촌연구원 수석연구원) : "저수지를 물이 넘을 당시에는 물살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는데, 월류를 하게 되면서 물살이 점점 빨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흙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가게 되기 때문에 물살에 같이 실려내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악순환으로 실려가면서 공간도 커지고, 그러면서 물살은 더욱 더 빨라지고 그러다 보니까 이게 붕괴되는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물살은 더욱 빨라지고, 그러면서 저수지가 무너지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기후변화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붕괴된 괴연저수지, 바닥을 살펴보니 2~3미터 높이의 퇴적토가 쌓여있습니다.

오랜 기간 퇴적이 진행되면서 담수용량이 줄고, 그만큼 집중호우에 물이 넘칠 위험도 커지는 겁니다.

<인터뷰> 한건연(경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세월에 따라 (퇴적토는) 계속 쌓이기 때문에 저수지가 모양새는 그럴 듯한데 밑에는 흙으로 쌓여있는 거죠. 20~30% 정도가 토사로 메워져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만큼 용량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조금만 큰 비가 오더라도 그냥 무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여수로의 강도는 최근의 집중호우를 견디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영재(경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콘크리트가 전체 수압을 받기에는 굉장히 부족한 단면을 볼 수 있네요. 적어도 이게 50센티미터 이상을 확보를 시켜줘야 합니다. 이게 50센티미터 안 되잖아요. 많이 돼봐야 이쪽 같은 경우에는 얼마나 될까? 20센티미터 될까요?"

주민들은 이런 저수지의 위험성에 대해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인터뷰> 임태화(피해 주민) : "우리가 저수지에 문제가 있다고 작년 4월부터 9월 사이에 한 3회에 걸쳐 진정을 넣었습니다. 빨리 수리를 해달라고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계속되는 주민들의 요구에도 보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안전은 또 뒷전으로 밀린 겁니다.

<인터뷰> 김종수(영천시 부시장) : "지난번에 주민들도 ‘물이 새는 징조가 있다’ 그 이야기를 해서 저희가 이번 5월 말에 예산을 좀 확보해서 저수지 점검을 해서 보강할 그런 계획은 있었습니다."

부산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던 지난달 25일, 둑이 무너진 저수지입니다.

저수지 붕괴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침수 피해를 키웠습니다.

지금은 물이 전부 빠져서 이렇게 저수지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저수지 역시 지난해 말 이미 안전 문제가 제기됐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미리 손을 썼더라면 저수지 붕괴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얘깁니다.

이 저수지의 정밀안전진단 보고서입니다.

세부적인 진단 결과와 함께 벽체 재설치, 사면 보수 등 구체적인 권고사항이 담겨 있지만 지금껏 보수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종범(기장군 농림과장) : "경미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농번기가 지난 10월 달에 보수하려고 했었는데…"

대부분의 저수지는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지어졌지만 저수지 붕괴 피해는 농경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4월 둑에 물이 스며들면서 갑작스럽게 무너져버린 경주 산대저수지. 저수지로부터 불과 3백미터 떨어진 곳엔 천 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농경지 피해 외에도 상가와 주택 30여동, 차량 10여 대가 침수됐습니다.

<인터뷰> 한건연(경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이전에는 저수지들이 주로 용수공급이라든지, 생공용수 제공 목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수지가 도시화된 지역으로부터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만, 그 도시들이 광역화되면서 저수지 가까운 곳에 주거 밀집지역이 존재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습니다."

무너진 산대저수지는 내년말 완공을 목표로 다시 짓고 있습니다.

흙 위에 얹혀있던 수로는 단단한 암반 위로 옮겼고, 한 가지 흙으로만 쌓아올렸던 제방은 모두 허문 뒤 중심에 점토를 다져 넣었습니다.

<인터뷰> 정희진(한국농어촌공사 경주지사 차장) : "중간에 점토층이 없으면 물이 일반 토사를 통과할 수 있으니까 중간 점토층으로 물을 막아서 저수지가 붕괴가 안 되도록…"

또 200년 빈도의 홍수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총 공사비는 34억 원.

이런식으로 노후 저수지를 정비하려면 재해위험저수지 170여 곳에만도 어림잡아 수천억 원이 필요합니다.

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산대저수지와는 달리, 전체 만 7천여 곳 저수지 가운데 80%가 넘는 만 4천여 곳은 각 지자체에서 관리합니다.

저수지 관리의 1차 책임을 지고 있는 지자체가 예산과 인력 부족을 핑계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노후 저수지들은 하루하루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저수지 붕괴로 한해 농사를 망쳐버린 임태화 씨.

임 씨는 저수지 붕괴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임태화(피해 주민) : "이건 100% 인재입니다. 4~5년 전부터 누수 현상이 있어서 우리 주민들 대표가 시에다 진정을 넣었고, 우리 관할 지역에 계시는 시의회 의원님과 같이 가서 수리해달라고 했는데..."

저수지 주변 주민들의 목소리를 계속 외면한다면 노후 저수지라는 시한폭탄은 또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습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저수지 붕괴는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저수지 하류에 사는 주민들이 불안에 떨며 하루 하루를 지내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할 텐데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처럼 사태가 벌어진후에야 수습에 급급하는 일이 언제까지 되풀이돼야 할까요?!...

취재파일 K 다음주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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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가 간다] 긴급점검 ‘구멍난 저수지’
    • 입력 2014-09-05 16:30:07
    • 수정2014-09-06 00:27:52
    취재파일K
<앵커멘트>

최근 저수지가 붕괴되면서 집과 논이 침수되는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짧은 시간 많은 비가 내리면서 일어난 사고로 보이지만, 따져보니 저수지 관리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수십만 톤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대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저수지 붕괴 사고, 왜 일어나는지, 양성모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2014. 8. 21 뉴스9 오아영 : " 둑 30여 미터가 무너지면서 흙탕물이 마을을 덮쳤습니다."

<인터뷰> 임태화(마을주민) : "쓰나미처럼 밀려왔기 때문에..."

<인터뷰>한건연(교수/경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작은 저수지는 30분만에 그 물이 다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주민들이 피할 수가 없어요"

<녹취> "2014년 8월 21일 오전 8시 30분"

포도 수확이 한창인 여름의 끝자락.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자, 임태화 씨는 일찌감치 밭으로 향했습니다.

<녹취> 임태화(피해 주민) : "거봉 포도거든요. 이게 한 송이에 1킬로그램이 넘어가요"

평생 이곳에서 포도 농사를 지어온 임 씨에겐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인터뷰> 임태화(피해 주민) : "작업을 한 30분 정도 하다 보니까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포도를 선물할 테니까 좀 좋은 걸 따달라고 해서 제가 자리를 비웠습니다."

임 씨가 친구의 전화를 받고 잠시 밭에서 나온 그 때,

임 씨의 눈 앞에서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임태화(피해 주민) : "안개가 확 이렇게 올라오더라고. 물안개가. 그 물안개 속에서 밑에 시커멓게....쓰나미 같이 시커먼 흙탕물, 시커먼 그 흙탕물이 일시에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직감적으로 아, 못이 터졌구나...."

마을 위엔 69년 전인 1945년에 지어진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담수용량 6만 톤 규모의 이 저수지가 터진 겁니다.

<인터뷰> 임태화(피해 주민) : "말이 안 나오고, 행동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었어요. 제가 119에 신고하려고 하는데 전화번호가 잘 안 눌러지더라고요."

<녹취> 사고 당시 임태화 씨 119 신고 전화 : "네 119입니다." "아, 여보세요. 괴연동 저수지가 터져서 지금요 난리 났다니까. 동네 사람들 다 죽게 생겼으니까...."

물은 순식간에 6백여 미터를 달려 마을을 덮쳤습니다.

길 위 아스팔트는 종이조각처럼 떠내려갔고, 벽을 무너뜨린 물은 집안까지 들이닥쳤습니다.

<인터뷰> 박재광(피해 주민) : "(저 벽이 무너진 건가요? 저 돌덩이가 다 뭐예요?) 벽, 방 벽. 밑에 물이 차니 흙이 이렇게 눌러 앉아버리면서 넘어졌어"

저수지 바로 아래 임 씨의 포도밭 일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녹취> 임태화(피해 주민) : "여기가 옛날에 어른들이 손으로 다 이렇게 바위로 경계를 만들었거든요. 이게 하천이니까 여기까지가 포도밭이었는데 지금 다 이렇게 된 거죠."

물은 이미 빠졌지만 수확 시기를 놓친 포도는 썩어가고 있습니다.

둑이 터지기 직전 밭을 떠나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릴 뿐입니다.

피해는 이게 다가 아닙니다.

<녹취> 이용구(피해 주민) : "지금 못에 물이 없으니까 저수지에 물이 없으니까 물을 대야 되는데 못대서 땅이 다 갈라지고 있잖아요."

저수지 물이 넘쳐 피해를 입었는데, 이번엔 저수지 물이 부족해 또 피해를 입을 처집니다.

저수지 둑은 왜 무너졌을까?

지난해 영천시가 지정한 재해위험저수지입니다.

긴급정밀점검에서 D등급을 받은 저수지 4곳이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괴연저수지는 재해위험저수지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괴연저수지는 비교적 안전해 보수가 거의 필요 없다는 이유로 B등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영재(경북대 토목공학과 교수) : "가장 양호하면 A가 되겠죠. A, B, C, D, E가 있는데 보통 D나 E가 나오면 100% 다시 건설을 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B 등급이 나왔다고 하는 것은 제가 봐서는 좀 이해가 가기 어렵지 않나"

이런 의문은 세부 점검 내역을 살펴보고 나서야 풀렸습니다.

둑은 최상의 상태인 A, 저수지 수문은 B, 물이 넘어가는 여수로는 C등급입니다.

이 세 부분을 그냥 산술적으로 평균을 내 B 등급을 부여한 겁니다.

<녹취> 경상북도 관계자(음성변조) : "한 부분은 비록 약하지만, 전체 등급으로 봐서는 괜찮다, 이렇게 판단이 된 겁니다. 법에 그렇게 하도록 돼있습니다."

괴연저수지는 바로 C 등급을 받은 여수로 부분에서 붕괴가 시작됐습니다.

<인터뷰> 노섭(여주대학교 토목과 교수) : "다른 거 아무리 안전해봐야 소용이 없듯이,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까? 결국 붕괴의 원인은 그쪽이기 때문에 세부검토사항에서 E등급이 하나만 나왔더라도 이건 E 등급이다 이렇게 판별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비교적 안전하다는 B 등급 저수지도 경우에 따라서는 무너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붕괴 조짐이 발견된 D나, 최하인 E 등급을 받은 저수지의 상태는 어떨까?

60년이 넘은 이 저수지는 D등급 판정을 받고 재해위험저수지로 지정됐습니다.

저수지 물이 빠져나가는 여수로입니다.

그런데 콘크리트 구조물 곳곳에 이렇게 철근이 드러나 있습니다.

수로를 따라 내려가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바닥 한 가운데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요, 제방과 접한 벽면엔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흙이 유실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노섭(여주대학교 토목과 교수) : "물이 스며들면서 이 구조물을 띄우는, 그래서 쉽게 구조물이 붕괴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겠고요. 이미 붕괴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는 그런 증거이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언제 붕괴될 지 모르는 저수지를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인터뷰> 우정식(저수지 인근 주민) : "여기 밑에 농경지가 이 저수지가 터지면 직접적인 피해를 보기 때문에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에요. 올해 예산이 없어서 내년에 보수해준다니까 그것만 믿고 있는 거죠."

경기도 양평의 한 저수지.

저수지 제방 아래 접근조차 어려울 정도로 수풀이 무성한 습지가 형성돼 있습니다.

주민들은 이 저수지에서 오랜 기간 누수가 진행됐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상기(저수지 인근 주민) : "여기하고 저쪽에 수문 물 내려가는 입구에 물이 이만치 있잖아요. 그 빨간 물이 내려오는 걸 확인했어요. 근데 물이 많이 내려오지 않고 항상 그냥 축축하게//물이 은근하게 누수가 되더라고요."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누수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노섭(여주대학교 토목과 교수) : "제체(둑) 바로 아래에 습지가 형성돼 있습니다. 늪과 같이 돼 있다는 거죠. 그만큼 그 제체 자체가 굉장히 연약하게 있고, 위험하다라는 것을 얘기합니다."

이렇게 낡아 붕괴 위험이 있는 저수지는 얼마나 될까?

전국의 저수지는 모두 만 7천여 곳.

이 가운데 70%인 만 2천여 곳은 지은 지 50년이 넘은 오래된 저수지입니다.

부실 조사 가능성이 있는 B.C 등급은 제외하더라도. 당장 보수가 시급한 D나 E 등급 저수지만 179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발생한 저수지 붕괴 사고 11건 가운데 9건은 1940~50년대에 지어진 노후 저수지에서 일어났습니다.

저수지 자체의 누수나 부식 외에 노후 저수지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기후변화입니다.

<인터뷰> 노섭(여주대학교 토목과 교수) : "과거에 만들었던 저수지는 과거의 강우량 자료를 가지고 크기를 정했는데 현재 기후변화로 인해서 작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강우 패턴은 과거에 그 저수지를 만들 당시에는 없었던 것들이거든요."

실제로 하루 100밀리미터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리는 빈도는 1970년대 222회에서 2천년대 385회로 1.7배 정도 늘었습니다.

<인터뷰> 한건연(경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우리나라에서도 시간당 강우량이 100밀리미터, 심지어는 120밀리미터 이상도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강우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입니다."

집중호우로 인해 저수지 물이 넘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취재진은 직접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저수지 둑의 주 자재인 흙으로 모형 저수지를 만들었습니다.

집중호우 상황을 가정해 저수지가 넘칠 만큼의 물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저수지 둑 위로 물이 넘치자, 물은 빠른 속도로 둑을 따라 흐르기 시작합니다.

불과 1분 만에 물길의 폭은 10배 넘게 커졌고, 쏟아지는 물살에 둑은 급격히 무너져버립니다.

무너진 모형 저수지의 모습은 그동안 붕괴 사고가 났던 저수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인터뷰> 송현구(농어촌연구원 수석연구원) : "저수지를 물이 넘을 당시에는 물살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는데, 월류를 하게 되면서 물살이 점점 빨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흙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가게 되기 때문에 물살에 같이 실려내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악순환으로 실려가면서 공간도 커지고, 그러면서 물살은 더욱 더 빨라지고 그러다 보니까 이게 붕괴되는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물살은 더욱 빨라지고, 그러면서 저수지가 무너지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기후변화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붕괴된 괴연저수지, 바닥을 살펴보니 2~3미터 높이의 퇴적토가 쌓여있습니다.

오랜 기간 퇴적이 진행되면서 담수용량이 줄고, 그만큼 집중호우에 물이 넘칠 위험도 커지는 겁니다.

<인터뷰> 한건연(경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세월에 따라 (퇴적토는) 계속 쌓이기 때문에 저수지가 모양새는 그럴 듯한데 밑에는 흙으로 쌓여있는 거죠. 20~30% 정도가 토사로 메워져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만큼 용량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조금만 큰 비가 오더라도 그냥 무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여수로의 강도는 최근의 집중호우를 견디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영재(경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콘크리트가 전체 수압을 받기에는 굉장히 부족한 단면을 볼 수 있네요. 적어도 이게 50센티미터 이상을 확보를 시켜줘야 합니다. 이게 50센티미터 안 되잖아요. 많이 돼봐야 이쪽 같은 경우에는 얼마나 될까? 20센티미터 될까요?"

주민들은 이런 저수지의 위험성에 대해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인터뷰> 임태화(피해 주민) : "우리가 저수지에 문제가 있다고 작년 4월부터 9월 사이에 한 3회에 걸쳐 진정을 넣었습니다. 빨리 수리를 해달라고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계속되는 주민들의 요구에도 보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안전은 또 뒷전으로 밀린 겁니다.

<인터뷰> 김종수(영천시 부시장) : "지난번에 주민들도 ‘물이 새는 징조가 있다’ 그 이야기를 해서 저희가 이번 5월 말에 예산을 좀 확보해서 저수지 점검을 해서 보강할 그런 계획은 있었습니다."

부산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던 지난달 25일, 둑이 무너진 저수지입니다.

저수지 붕괴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침수 피해를 키웠습니다.

지금은 물이 전부 빠져서 이렇게 저수지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저수지 역시 지난해 말 이미 안전 문제가 제기됐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미리 손을 썼더라면 저수지 붕괴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얘깁니다.

이 저수지의 정밀안전진단 보고서입니다.

세부적인 진단 결과와 함께 벽체 재설치, 사면 보수 등 구체적인 권고사항이 담겨 있지만 지금껏 보수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종범(기장군 농림과장) : "경미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농번기가 지난 10월 달에 보수하려고 했었는데…"

대부분의 저수지는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지어졌지만 저수지 붕괴 피해는 농경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4월 둑에 물이 스며들면서 갑작스럽게 무너져버린 경주 산대저수지. 저수지로부터 불과 3백미터 떨어진 곳엔 천 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농경지 피해 외에도 상가와 주택 30여동, 차량 10여 대가 침수됐습니다.

<인터뷰> 한건연(경북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이전에는 저수지들이 주로 용수공급이라든지, 생공용수 제공 목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수지가 도시화된 지역으로부터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만, 그 도시들이 광역화되면서 저수지 가까운 곳에 주거 밀집지역이 존재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습니다."

무너진 산대저수지는 내년말 완공을 목표로 다시 짓고 있습니다.

흙 위에 얹혀있던 수로는 단단한 암반 위로 옮겼고, 한 가지 흙으로만 쌓아올렸던 제방은 모두 허문 뒤 중심에 점토를 다져 넣었습니다.

<인터뷰> 정희진(한국농어촌공사 경주지사 차장) : "중간에 점토층이 없으면 물이 일반 토사를 통과할 수 있으니까 중간 점토층으로 물을 막아서 저수지가 붕괴가 안 되도록…"

또 200년 빈도의 홍수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총 공사비는 34억 원.

이런식으로 노후 저수지를 정비하려면 재해위험저수지 170여 곳에만도 어림잡아 수천억 원이 필요합니다.

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산대저수지와는 달리, 전체 만 7천여 곳 저수지 가운데 80%가 넘는 만 4천여 곳은 각 지자체에서 관리합니다.

저수지 관리의 1차 책임을 지고 있는 지자체가 예산과 인력 부족을 핑계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노후 저수지들은 하루하루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저수지 붕괴로 한해 농사를 망쳐버린 임태화 씨.

임 씨는 저수지 붕괴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임태화(피해 주민) : "이건 100% 인재입니다. 4~5년 전부터 누수 현상이 있어서 우리 주민들 대표가 시에다 진정을 넣었고, 우리 관할 지역에 계시는 시의회 의원님과 같이 가서 수리해달라고 했는데..."

저수지 주변 주민들의 목소리를 계속 외면한다면 노후 저수지라는 시한폭탄은 또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습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저수지 붕괴는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저수지 하류에 사는 주민들이 불안에 떨며 하루 하루를 지내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할 텐데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처럼 사태가 벌어진후에야 수습에 급급하는 일이 언제까지 되풀이돼야 할까요?!...

취재파일 K 다음주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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