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를 담은 ‘타임캡슐’, 대형 목곽고 최초 발굴

입력 2014.09.23 (16:29) 수정 2014.09.2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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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산성인 공주 공산성에서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목곽고(木槨庫-나무로 만든 저장시설)가 최초로 확인됐다. 또 백제 멸망기 나·당 연합군과의 전쟁 상황 추론해 볼 수 있는 다량의 유물도 발굴됐다.


▶ 백제 시대 목곽고 발굴

문화재청은 백제 공산성 발굴조사 결과, 가로 3.2미터, 세로 3.5미터, 깊이 2.6미터 안팎의 목곽고를 발견했다고 23일 밝혔다.


(사진1:백제 시대 대형 목곽고)

이번에 발견된 목곽고는 바닥면에서 벽체 상부까지 부식되지 않고 조성 당시 모습 그대로의 원형이 남아있다. 특히 기둥 상부의 긴 촉이 테두리보 상부까지 솟아나 있고, 내부에서 기와 조각이 다수 출토된 점 등으로 볼 때 상부에 별도의 지붕 구조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그동안 백제 유적에서 발굴된 목곽고는 대전 월평동 산성, 부여 사비도성 등 두 곳이 있지만 모두 심하게 훼손된 상태여서 하단 바닥과 50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일부 벽면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공산성 목곽고는 상부 구조까지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목조 건축물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 당시 목재 가공 기술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백제 시대 건물 복원과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2:목재 결구방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목곽고 내부 모습)


▶ 생활상 고스란히 담긴 백제의 '타임캡슐'

공산성 목곽고는 백제의 목재 가공 기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활문화상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일종의 '타임캡슐'로 여겨진다.

목곽고 내부에서는 복숭아씨와 박씨가 다량 출토되었고, 무게를 재는 석제추와 생활용품인 칠기, 목제 망치 등의 공구들도 다량 수습되었다.


(사진3:대형 목곽고 내부 출토품. 기와 조각, 다량의 복숭아씨와 목제 도구,칠기 등이 나와 목곽고가 저장시설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석제 추는 원형으로 중앙에 고리가 있고, 무게는 36g이다. 칠기는 목재를 가공해 만든 것으로 표면에 옻칠이 정교하게 칠해져 있다.

원통형의 나무 망치는 너비가 19센티미터고 손잡이 길이는 15.5센티미터로 간단하게 휴대하기에 좋다. 특히 나무망치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공구로, 현재도 이러한 형태가 사용되고 있을 만큼 디자인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다만 목곽고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그 용도에 대해서는 더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일단 저장시설이나 우물로 사용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벽면에 오르내릴 수 있는 말목구멍이 있고, 외면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점토 다짐을 한 점이나 내부의 틈새를 점토로 메운 점 등은 목곽고가 저장시설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높인다. 하지만 저지대에 물이 많이 모이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은 이 목곽고가 우물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한다.


▶ 백제 전쟁의 흔적 담긴 저수시설


(사진4:저수시설에서는 옻칠 갑옷, 말갑옷, 말갖춤, 각종 무기류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백제와 나·당 연합군과의 전쟁 흔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에 목곽고가 발견된 공주 공산성 건물지 북쪽의 저수시설에서는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철제 갑옷과 옻칠이 된 마갑(馬甲), 철제 마면주(馬面胄:말의 얼굴 부분을 감싸는 도구), 마탁(馬鐸:말갖춤에 매다는 방울)등도 발굴됐다.

또 대도(大刀)와 장식도(裝飾刀), 다량의 화살촉과 철모, 각종 철판, 다양한 기종의 목제 칠기도 다량 수습됐다.



(사진5:저수 시설에서 출토된 철제 무기류(화살촉 등))



(사진 6:저수시설에서 출토된 명문이 적힌 옻칠 갑옷 조각.叅軍事,作陪戎副 등 관직명이 적혀있다.)

특히 지난 2011년 발굴 당시 저수시설에서 '정관 19년(貞觀十九年, 645년)'이 적힌 옻칠 갑옷과 말갑옷이 나와 주목을 끈바 있는데, 이번엔 명문이 적힌 옻칠 갑옷이 출토되었다. 명문은 「‘叅軍事’ ‘○作陪戎副’ ‘○人二行左’ ‘近趙○’(‘참군사’ ‘○작배융부’ ‘○인이행좌’ ‘근조○’)」 등 20여 자를 확인했다. 관직으로 추정되는 이 명문이 정확히 판독되면 출토된 유물의 역사적 성격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라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 백제 깃대꽂이 최초 발굴

이번에 발견된 유물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 중의 하나는, 백제 유적지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깃대꽂이다.

깃대꽂이는 말안장 뒤쪽에 세워 기를 꽂는 용도로, 철로 만들어졌으며 약 60센티미터의 크기로 S자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다.


(사진7:최초로 실물로 발견된 백제시대 깃대꽂이-오른쪽 위:고구려 쌍영총 벽화의 깃대꽂이,오른쪽 아래:합천 옥전고분에서 발견된 가야의 깃대꽂이)

삼국시대 깃대꽂이의 경우 가야는 합천의 옥전고분에서 실물이 발견됐고, 고구려는 쌍영총과 삼실총 벽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제 깃대꽂이는 서산 여미리 출토 토기 문양으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번 공산성 발굴조사를 통해 실물이 최초로 출토된 것이다. 이번 발굴로 백제 기승(騎乘) 문화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있는 귀중한 자료를 확보한 셈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 성과가 백제역사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굴단은 제60회 백제문화제가 진행되는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두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 현장을 일반에 공개하고 설명회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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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를 담은 ‘타임캡슐’, 대형 목곽고 최초 발굴
    • 입력 2014-09-23 16:29:04
    • 수정2014-09-23 22:13:15
    문화
백제 시대 산성인 공주 공산성에서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목곽고(木槨庫-나무로 만든 저장시설)가 최초로 확인됐다. 또 백제 멸망기 나·당 연합군과의 전쟁 상황 추론해 볼 수 있는 다량의 유물도 발굴됐다.


▶ 백제 시대 목곽고 발굴

문화재청은 백제 공산성 발굴조사 결과, 가로 3.2미터, 세로 3.5미터, 깊이 2.6미터 안팎의 목곽고를 발견했다고 23일 밝혔다.


(사진1:백제 시대 대형 목곽고)

이번에 발견된 목곽고는 바닥면에서 벽체 상부까지 부식되지 않고 조성 당시 모습 그대로의 원형이 남아있다. 특히 기둥 상부의 긴 촉이 테두리보 상부까지 솟아나 있고, 내부에서 기와 조각이 다수 출토된 점 등으로 볼 때 상부에 별도의 지붕 구조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그동안 백제 유적에서 발굴된 목곽고는 대전 월평동 산성, 부여 사비도성 등 두 곳이 있지만 모두 심하게 훼손된 상태여서 하단 바닥과 50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일부 벽면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공산성 목곽고는 상부 구조까지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목조 건축물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 당시 목재 가공 기술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백제 시대 건물 복원과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2:목재 결구방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목곽고 내부 모습)


▶ 생활상 고스란히 담긴 백제의 '타임캡슐'

공산성 목곽고는 백제의 목재 가공 기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활문화상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일종의 '타임캡슐'로 여겨진다.

목곽고 내부에서는 복숭아씨와 박씨가 다량 출토되었고, 무게를 재는 석제추와 생활용품인 칠기, 목제 망치 등의 공구들도 다량 수습되었다.


(사진3:대형 목곽고 내부 출토품. 기와 조각, 다량의 복숭아씨와 목제 도구,칠기 등이 나와 목곽고가 저장시설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석제 추는 원형으로 중앙에 고리가 있고, 무게는 36g이다. 칠기는 목재를 가공해 만든 것으로 표면에 옻칠이 정교하게 칠해져 있다.

원통형의 나무 망치는 너비가 19센티미터고 손잡이 길이는 15.5센티미터로 간단하게 휴대하기에 좋다. 특히 나무망치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공구로, 현재도 이러한 형태가 사용되고 있을 만큼 디자인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다만 목곽고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그 용도에 대해서는 더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일단 저장시설이나 우물로 사용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벽면에 오르내릴 수 있는 말목구멍이 있고, 외면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점토 다짐을 한 점이나 내부의 틈새를 점토로 메운 점 등은 목곽고가 저장시설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높인다. 하지만 저지대에 물이 많이 모이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은 이 목곽고가 우물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한다.


▶ 백제 전쟁의 흔적 담긴 저수시설


(사진4:저수시설에서는 옻칠 갑옷, 말갑옷, 말갖춤, 각종 무기류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백제와 나·당 연합군과의 전쟁 흔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에 목곽고가 발견된 공주 공산성 건물지 북쪽의 저수시설에서는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철제 갑옷과 옻칠이 된 마갑(馬甲), 철제 마면주(馬面胄:말의 얼굴 부분을 감싸는 도구), 마탁(馬鐸:말갖춤에 매다는 방울)등도 발굴됐다.

또 대도(大刀)와 장식도(裝飾刀), 다량의 화살촉과 철모, 각종 철판, 다양한 기종의 목제 칠기도 다량 수습됐다.



(사진5:저수 시설에서 출토된 철제 무기류(화살촉 등))



(사진 6:저수시설에서 출토된 명문이 적힌 옻칠 갑옷 조각.叅軍事,作陪戎副 등 관직명이 적혀있다.)

특히 지난 2011년 발굴 당시 저수시설에서 '정관 19년(貞觀十九年, 645년)'이 적힌 옻칠 갑옷과 말갑옷이 나와 주목을 끈바 있는데, 이번엔 명문이 적힌 옻칠 갑옷이 출토되었다. 명문은 「‘叅軍事’ ‘○作陪戎副’ ‘○人二行左’ ‘近趙○’(‘참군사’ ‘○작배융부’ ‘○인이행좌’ ‘근조○’)」 등 20여 자를 확인했다. 관직으로 추정되는 이 명문이 정확히 판독되면 출토된 유물의 역사적 성격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라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 백제 깃대꽂이 최초 발굴

이번에 발견된 유물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 중의 하나는, 백제 유적지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깃대꽂이다.

깃대꽂이는 말안장 뒤쪽에 세워 기를 꽂는 용도로, 철로 만들어졌으며 약 60센티미터의 크기로 S자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다.


(사진7:최초로 실물로 발견된 백제시대 깃대꽂이-오른쪽 위:고구려 쌍영총 벽화의 깃대꽂이,오른쪽 아래:합천 옥전고분에서 발견된 가야의 깃대꽂이)

삼국시대 깃대꽂이의 경우 가야는 합천의 옥전고분에서 실물이 발견됐고, 고구려는 쌍영총과 삼실총 벽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제 깃대꽂이는 서산 여미리 출토 토기 문양으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번 공산성 발굴조사를 통해 실물이 최초로 출토된 것이다. 이번 발굴로 백제 기승(騎乘) 문화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있는 귀중한 자료를 확보한 셈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 성과가 백제역사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굴단은 제60회 백제문화제가 진행되는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두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 현장을 일반에 공개하고 설명회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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