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5.18 공원에 계속된 ‘전두환 종소리’

입력 2014.09.25 (11:59) 수정 2014.09.2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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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건 29만 원 밖에 없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 5.18 때 광주 진압을 지시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이 전두환의 이름이 새겨진 범종이 광주에 있었다. 경남 합천의 일해공원이 아닌 바로 광주에 말이다.

5.18 1주기를 맞은 1981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 상무대를 방문하고 군 법당 무각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범종을 기증한다.



전 씨는 5.18의 총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던 그 때, '전두환 종소리'가 날마다 광주에 울려 퍼지게 한 것이다.

이 종은 군부대 안에 있어서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1994년 상무대가 전남 장성으로 이전하고 '전두환 범종'을 포함한 무각사는 육군의 요청으로 그대로 보전된다. 이 무각사에 일반 시민들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전두환 범종'의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한다.

5.18을 기념하는 공원 안에 군 사찰을 남겨두고 '전두환 범종'을 쳐온 것이다. 5월 단체를 중심으로 광주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전두환 범종’철거 요구가 빗발친다. 결국, 무각사가 2006년 이 범종을 철거한다.

'전두환 범종'은 그렇게 광주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았다.

지난 7월 17일, KBS광주 시사현장 맥에서 '무각사 81억 원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방송 뒤 제보 전화를 받았다. 무각사는 1980년대부터 당시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을 받을 만큼 정치권력과 가까웠다며 '전두환 범종'을 추적해보라는 내용이었다.

무각사에 찾아가 그 '전두환 범종'의 행방을 물었다. 무각사 측은 전남 장성으로 이전한 상무대에 이름이 같은 '무각사'가 있는데 그 군 법당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의 군부대에 '전두환 범종'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말이었다.



이름이 똑같은 군부대 사찰 '무각사'에서 여전히 '전두환 범종'을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종에는 大統領 全斗煥 閣下(대통령 전두환 각하)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모두가 사라진 줄 알았던 '전두환 종소리'가 바로 인근에서 9년 동안 울리고 있었다. 상무대 측에 '전두환 범종’이 군부대 안에서 활용되는 경위를 물었지만, 상무대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5.18 옛 묘역에는 전 전 대통령의 민박 기념비가 땅에 반쯤 묻혀 있다.

1980년대 당시 전 전 대통령이 담양의 한 마을에서 민박했다는 기념비다. 누군가 이 기념비를 부숴 5.18 옛 묘역 입구에 묻었고, 참배하는 누구나 밟고 지나가게 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당시 전 대통령이 광주직할시청을 방문하고 기념식수를 했다. 이 동백나무는 지금의 광주 상무지구 신청사로 같이 옮겨졌다. 그런데 5년 전쯤 이 나무는 고사했고, 결국 뽑혔다. '광주’가 5.18 진압을 지시한 전두환 전 보안사령관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런데 '전두환 종소리'는 아직도 광주 인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무각사와 정치인의 관계, 그리고 특혜는 없었는지 추적해봤다.

'전두환 범종'을 철거하고 새로 설치한 광주 무각사의 종에는 전두환 대신 '박광태’라는 다른 정치인의 이름이 쓰여 있다. 박광태는 무각사의 범종을 바꾼 2006년 당시 광주광역시장이다. 박광태 전 시장의 이름은 범종 제작비를 시주한 신도들 가운데 가장 크게 새겨져 있다. 통상 범종에 새기는 이름의 크기는 시주금액과 비례한다고 무각사 관계자가 밝혔다. 불법 기부행위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박 전 시장은 이 절의 신도이고 얼마를 시주했는지는 기록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인이 교회에 거액 헌금을 낸 혐의로 낙마한 한 군수가 떠오른다. 무각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박광태 전 시장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박광태 범종'이 설치된 후 박광태 시장 재임 시절 4년 동안 무각사는 잦은 특혜 의혹에 휘말린다.



군 사찰 무각사는 1996년 주인이 광주광역시로 바뀐다. 국방부가 상무대를 이전하면서 이 절을 광주시에 무상으로 넘겨준다. 무각사를 포함한 상무대 부지 33만제곱미터를 5.18민주화운동 성역화 공원조성 사업에 쓰라는 정부 방침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육군은 광주광역시에 공문을 보내 공원을 만들더라도 무각사만큼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관리도 송광사에 맡기라고 당부한다. 이것이 육군이 무각사에 베푼 첫 번째 특혜다.

두 번째 특혜는 광주광역시가 사찰 임대료를 절반으로 깎아준 것이다. 이 절이 광주광역시 소유이기 때문에 무각사는 임대료를 연간 1억 4천만 원씩 내고 운영했다. 그런데 박광태 시장 때 광주광역시 공유재산조례를 고쳐 임대료를 절반으로 깎아준다. 이 과정에서 무각사의 부탁을 받은 국회의원급 정치인들이 시의원들에게 '잘 살펴봐달라'고 해 이 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한다.

세 번째 특혜는 편법 매각이다. 무각사는 본사 송광사의 관리를 받는 말사다. 무각사의 땅과 건물을 송광사 측에 팔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광주시는 2주 만에 매각을 승인하고, 이로부터 한 달만에 매각 공고도 없이 송광사에 팔아버린다.

네번째 특혜는 매각 가격이다. 매각 가격은 광주 상무지구의 종교부지 네 곳(교회,성당,원불교당,사찰)의 분양 가격 가운데 무각사만 유일하게 조성 원가보다 25% 정도 싸고, 다른 종교부지보다 30% 정도 저렴했다. 매각 가격은 딱 공시지가 수준이었다. 이 땅이 개인 소유였다면 누가 공시지가에 자기 땅을 판단 말인가.

다섯번째 특혜는 은행의 대출이다. 매입가격 81억 8천만 원 전액 대출, 자기 돈 단 돈 1원도 들이지 않고 송광사는 은행 돈으로 도심 속 대형 사찰을 손 안에 넣는다. 은행에서 돈 빌리기 어려운 일반인들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대출이다. 무각사와 정치권력과의 고리는 무각사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또 한번 빛을 발한 것으로 보인다.

'부탁 전화' 의혹을 받은 한 정치인은 ‘광주의 주요 사찰 주지 스님 가운데 나랑 차 한두 잔 안 마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정치인은 '신도가 많은 종교 단체의 입김'을 선출직 공무원들은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두환 범종'으로 시작된 사찰과 정치권력과의 인연은 형태만 다를 뿐 계속되고 있다. '표'를 가진 종교단체의 욕심과 정치인의 '표 관리'가 결탁하는 한 제2, 제3의 '전두환 종소리'는 사라지지 않고‘불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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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5.18 공원에 계속된 ‘전두환 종소리’
    • 입력 2014-09-25 11:59:38
    • 수정2014-09-25 14:26:45
    취재후
가진 건 29만 원 밖에 없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 5.18 때 광주 진압을 지시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이 전두환의 이름이 새겨진 범종이 광주에 있었다. 경남 합천의 일해공원이 아닌 바로 광주에 말이다.

5.18 1주기를 맞은 1981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 상무대를 방문하고 군 법당 무각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범종을 기증한다.



전 씨는 5.18의 총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던 그 때, '전두환 종소리'가 날마다 광주에 울려 퍼지게 한 것이다.

이 종은 군부대 안에 있어서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1994년 상무대가 전남 장성으로 이전하고 '전두환 범종'을 포함한 무각사는 육군의 요청으로 그대로 보전된다. 이 무각사에 일반 시민들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전두환 범종'의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한다.

5.18을 기념하는 공원 안에 군 사찰을 남겨두고 '전두환 범종'을 쳐온 것이다. 5월 단체를 중심으로 광주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전두환 범종’철거 요구가 빗발친다. 결국, 무각사가 2006년 이 범종을 철거한다.

'전두환 범종'은 그렇게 광주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았다.

지난 7월 17일, KBS광주 시사현장 맥에서 '무각사 81억 원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방송 뒤 제보 전화를 받았다. 무각사는 1980년대부터 당시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을 받을 만큼 정치권력과 가까웠다며 '전두환 범종'을 추적해보라는 내용이었다.

무각사에 찾아가 그 '전두환 범종'의 행방을 물었다. 무각사 측은 전남 장성으로 이전한 상무대에 이름이 같은 '무각사'가 있는데 그 군 법당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의 군부대에 '전두환 범종'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말이었다.



이름이 똑같은 군부대 사찰 '무각사'에서 여전히 '전두환 범종'을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종에는 大統領 全斗煥 閣下(대통령 전두환 각하)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모두가 사라진 줄 알았던 '전두환 종소리'가 바로 인근에서 9년 동안 울리고 있었다. 상무대 측에 '전두환 범종’이 군부대 안에서 활용되는 경위를 물었지만, 상무대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5.18 옛 묘역에는 전 전 대통령의 민박 기념비가 땅에 반쯤 묻혀 있다.

1980년대 당시 전 전 대통령이 담양의 한 마을에서 민박했다는 기념비다. 누군가 이 기념비를 부숴 5.18 옛 묘역 입구에 묻었고, 참배하는 누구나 밟고 지나가게 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당시 전 대통령이 광주직할시청을 방문하고 기념식수를 했다. 이 동백나무는 지금의 광주 상무지구 신청사로 같이 옮겨졌다. 그런데 5년 전쯤 이 나무는 고사했고, 결국 뽑혔다. '광주’가 5.18 진압을 지시한 전두환 전 보안사령관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런데 '전두환 종소리'는 아직도 광주 인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무각사와 정치인의 관계, 그리고 특혜는 없었는지 추적해봤다.

'전두환 범종'을 철거하고 새로 설치한 광주 무각사의 종에는 전두환 대신 '박광태’라는 다른 정치인의 이름이 쓰여 있다. 박광태는 무각사의 범종을 바꾼 2006년 당시 광주광역시장이다. 박광태 전 시장의 이름은 범종 제작비를 시주한 신도들 가운데 가장 크게 새겨져 있다. 통상 범종에 새기는 이름의 크기는 시주금액과 비례한다고 무각사 관계자가 밝혔다. 불법 기부행위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박 전 시장은 이 절의 신도이고 얼마를 시주했는지는 기록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인이 교회에 거액 헌금을 낸 혐의로 낙마한 한 군수가 떠오른다. 무각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박광태 전 시장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박광태 범종'이 설치된 후 박광태 시장 재임 시절 4년 동안 무각사는 잦은 특혜 의혹에 휘말린다.



군 사찰 무각사는 1996년 주인이 광주광역시로 바뀐다. 국방부가 상무대를 이전하면서 이 절을 광주시에 무상으로 넘겨준다. 무각사를 포함한 상무대 부지 33만제곱미터를 5.18민주화운동 성역화 공원조성 사업에 쓰라는 정부 방침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육군은 광주광역시에 공문을 보내 공원을 만들더라도 무각사만큼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관리도 송광사에 맡기라고 당부한다. 이것이 육군이 무각사에 베푼 첫 번째 특혜다.

두 번째 특혜는 광주광역시가 사찰 임대료를 절반으로 깎아준 것이다. 이 절이 광주광역시 소유이기 때문에 무각사는 임대료를 연간 1억 4천만 원씩 내고 운영했다. 그런데 박광태 시장 때 광주광역시 공유재산조례를 고쳐 임대료를 절반으로 깎아준다. 이 과정에서 무각사의 부탁을 받은 국회의원급 정치인들이 시의원들에게 '잘 살펴봐달라'고 해 이 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한다.

세 번째 특혜는 편법 매각이다. 무각사는 본사 송광사의 관리를 받는 말사다. 무각사의 땅과 건물을 송광사 측에 팔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광주시는 2주 만에 매각을 승인하고, 이로부터 한 달만에 매각 공고도 없이 송광사에 팔아버린다.

네번째 특혜는 매각 가격이다. 매각 가격은 광주 상무지구의 종교부지 네 곳(교회,성당,원불교당,사찰)의 분양 가격 가운데 무각사만 유일하게 조성 원가보다 25% 정도 싸고, 다른 종교부지보다 30% 정도 저렴했다. 매각 가격은 딱 공시지가 수준이었다. 이 땅이 개인 소유였다면 누가 공시지가에 자기 땅을 판단 말인가.

다섯번째 특혜는 은행의 대출이다. 매입가격 81억 8천만 원 전액 대출, 자기 돈 단 돈 1원도 들이지 않고 송광사는 은행 돈으로 도심 속 대형 사찰을 손 안에 넣는다. 은행에서 돈 빌리기 어려운 일반인들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대출이다. 무각사와 정치권력과의 고리는 무각사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또 한번 빛을 발한 것으로 보인다.

'부탁 전화' 의혹을 받은 한 정치인은 ‘광주의 주요 사찰 주지 스님 가운데 나랑 차 한두 잔 안 마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정치인은 '신도가 많은 종교 단체의 입김'을 선출직 공무원들은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두환 범종'으로 시작된 사찰과 정치권력과의 인연은 형태만 다를 뿐 계속되고 있다. '표'를 가진 종교단체의 욕심과 정치인의 '표 관리'가 결탁하는 한 제2, 제3의 '전두환 종소리'는 사라지지 않고‘불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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