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뮤지스’ 그녀들의 데뷔 과정 따라가보니…

입력 2014.09.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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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고 말 못 해. 나한테 진통제 맞으면서 하라고 했던 사람들이야."

안무연습 중인 멤버의 얼굴에 아픈 기색이 역력하다. 데뷔가 코앞인 멤버에게는 아픈 것도 사치다.

"억울하면 떠. 그때 대우해줄게."

고개를 숙인채 앉아있는 멤버들을 향해 소속사 관계자가 무섭게 호통친다. 연습실과 사무실,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어디에서든 멤버들과 기획사 관계자들은 팽팽한 긴장을 놓지 않는다.

단편적인 장면만 보면 스타지망생은 피해자, 기획사는 가해자인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이 아파도 참고 서러워도 참는 이유는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25일) 개봉한 영화 '나인뮤지스 : 그녀들의 서바이벌'(감독 이학준)은 실제 걸그룹의 데뷔과정을 담았다.

시간은 201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룹 제국의 아이들, 쥬얼리 등 스타 아이돌을 배출해낸 스타제국 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는 9명의 가수 지망생이 땀을 흘리고 있다. 연습실을 찾은 신주학 사장은 한명 한명을 지명하며 문제점을 꼼꼼하게 지적한다. 데뷔를 준비하는 이들은 노래와 안무 연습뿐 아니라, 인터뷰 연습 등의 이미지 트레이닝도 놓칠 수 없다.

2년에 걸쳐 혹독한 트레이닝 끝에 데뷔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가수라는 꿈으로 모인 9명의 멤버들은 같은 배를 탔지만 수시로 부딪쳤고, 각자의 역할에 따른 책임과 질책을 감당해야 했다.

"이거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조만간 탈퇴하려고요."
"예능이든 뭐든 광희처럼 빨리 혼자라도 떠서 혼자다닐거예요."
"데뷔전에는 인간성이나 정이 공존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없어요."

툭툭 터져 나오는 멤버들의 푸념은 강한 의문을 남긴다. 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포기하고 노력하는 것일까. 또 기획사는 무엇을 위해 수십억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것일까.

지난해 나인뮤지스를 탈퇴한 세라의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세라는 "하루는 너무 속이 상해서 전화기 끄고 뛰쳐나갔어요. 지금까지 내 것 다 버려가면서, 가족마저 희생시켜가며 이 일을 굳이 왜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그래도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다. 그는 "내가 가장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지만, 이걸 해야만 근본적인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족쇄임에 동시에 뭔가 나를 탈출시키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이학준 감독은 "강요하지도 않는데, 불만을 가득 담고 살면서도 연예기획사를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연습생을 목격했다"며 "아이돌 스타 산업이라는 건, 각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비즈니스 현장"이라고 설명한다.

스타가 되겠다는 욕망, 스타를 만들어서 명예와 부를 거머쥐겠다는 욕망이 그들을 스스로 옥에 가뒀다는 것이다.

이학준 감독의 처음 제작의도는 가볍고 유쾌했다. "영화 '드림걸스' 같이 재미있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꿈이 있는 소녀들의 도전과 성공기를 찍고 싶어서 1년을 동행했다. 하지만 연습생에서 '나인뮤지스'라는 걸그룹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이 감독은 결코 웃으며 볼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준비기간에도 팀의 리더가 교체됐고, 오랜 시간 함께 고생했지만 끝내 무대에 오르지 못한 멤버도 있다. 데뷔 4년 차가 됐지만, 여전히 '대박'난 걸그룹은 아니다. 이에 대해 이학준 감독은 "인생은 꿈꾼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못 이뤘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다"라며 "연예인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아닌가.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한다.

이 영화는 최근 같은 소속사 그룹 '제국의 아이들' 리더 문준영이 사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을 때,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영국 BBC에서 방송된 장면 중, 신주학 사장이 세라의 뺨을 종이로 치는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극장판에는 담기지 않았다.

이런 논란에 대해 이 감독은 "전체 흐름을 봤을 때, 그 장면은 때린다고 표현하기엔 부적합하다"며 "기본적으로 가수와 소속사는 피해와 가해 관계가 아닌, 서로의 욕망을 위해 필요로 하는 관계"라고 설명한다. 이어 "매니저 역시 상처받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오히려 그들을 불구덩이에 몰아 넣는 것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감독이 직접 1년간 동행한 걸그룹의 데뷔 과정은 82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됐다. 이 영화는 201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IDFA)'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을 비롯해 캐나다 밴쿠버 영화제, 상하이 국제영화제 등에 초대되며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2월 영국 BBC가 47분 길이로 재편집해 방송했고, 미국 빌보드닷컴은 "K팝을 혐오하는 음악 팬들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을 경이로운 다큐멘터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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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데뷔 과정 따라가보니…
    • 입력 2014-09-25 15: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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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고 말 못 해. 나한테 진통제 맞으면서 하라고 했던 사람들이야." 안무연습 중인 멤버의 얼굴에 아픈 기색이 역력하다. 데뷔가 코앞인 멤버에게는 아픈 것도 사치다. "억울하면 떠. 그때 대우해줄게." 고개를 숙인채 앉아있는 멤버들을 향해 소속사 관계자가 무섭게 호통친다. 연습실과 사무실,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어디에서든 멤버들과 기획사 관계자들은 팽팽한 긴장을 놓지 않는다. 단편적인 장면만 보면 스타지망생은 피해자, 기획사는 가해자인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이 아파도 참고 서러워도 참는 이유는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25일) 개봉한 영화 '나인뮤지스 : 그녀들의 서바이벌'(감독 이학준)은 실제 걸그룹의 데뷔과정을 담았다. 시간은 201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룹 제국의 아이들, 쥬얼리 등 스타 아이돌을 배출해낸 스타제국 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는 9명의 가수 지망생이 땀을 흘리고 있다. 연습실을 찾은 신주학 사장은 한명 한명을 지명하며 문제점을 꼼꼼하게 지적한다. 데뷔를 준비하는 이들은 노래와 안무 연습뿐 아니라, 인터뷰 연습 등의 이미지 트레이닝도 놓칠 수 없다. 2년에 걸쳐 혹독한 트레이닝 끝에 데뷔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가수라는 꿈으로 모인 9명의 멤버들은 같은 배를 탔지만 수시로 부딪쳤고, 각자의 역할에 따른 책임과 질책을 감당해야 했다. "이거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조만간 탈퇴하려고요." "예능이든 뭐든 광희처럼 빨리 혼자라도 떠서 혼자다닐거예요." "데뷔전에는 인간성이나 정이 공존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없어요." 툭툭 터져 나오는 멤버들의 푸념은 강한 의문을 남긴다. 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포기하고 노력하는 것일까. 또 기획사는 무엇을 위해 수십억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것일까. 지난해 나인뮤지스를 탈퇴한 세라의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세라는 "하루는 너무 속이 상해서 전화기 끄고 뛰쳐나갔어요. 지금까지 내 것 다 버려가면서, 가족마저 희생시켜가며 이 일을 굳이 왜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그래도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다. 그는 "내가 가장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지만, 이걸 해야만 근본적인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족쇄임에 동시에 뭔가 나를 탈출시키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이학준 감독은 "강요하지도 않는데, 불만을 가득 담고 살면서도 연예기획사를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연습생을 목격했다"며 "아이돌 스타 산업이라는 건, 각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비즈니스 현장"이라고 설명한다. 스타가 되겠다는 욕망, 스타를 만들어서 명예와 부를 거머쥐겠다는 욕망이 그들을 스스로 옥에 가뒀다는 것이다. 이학준 감독의 처음 제작의도는 가볍고 유쾌했다. "영화 '드림걸스' 같이 재미있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꿈이 있는 소녀들의 도전과 성공기를 찍고 싶어서 1년을 동행했다. 하지만 연습생에서 '나인뮤지스'라는 걸그룹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이 감독은 결코 웃으며 볼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준비기간에도 팀의 리더가 교체됐고, 오랜 시간 함께 고생했지만 끝내 무대에 오르지 못한 멤버도 있다. 데뷔 4년 차가 됐지만, 여전히 '대박'난 걸그룹은 아니다. 이에 대해 이학준 감독은 "인생은 꿈꾼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못 이뤘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다"라며 "연예인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아닌가.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한다. 이 영화는 최근 같은 소속사 그룹 '제국의 아이들' 리더 문준영이 사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을 때,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영국 BBC에서 방송된 장면 중, 신주학 사장이 세라의 뺨을 종이로 치는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극장판에는 담기지 않았다. 이런 논란에 대해 이 감독은 "전체 흐름을 봤을 때, 그 장면은 때린다고 표현하기엔 부적합하다"며 "기본적으로 가수와 소속사는 피해와 가해 관계가 아닌, 서로의 욕망을 위해 필요로 하는 관계"라고 설명한다. 이어 "매니저 역시 상처받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오히려 그들을 불구덩이에 몰아 넣는 것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감독이 직접 1년간 동행한 걸그룹의 데뷔 과정은 82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됐다. 이 영화는 201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IDFA)'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을 비롯해 캐나다 밴쿠버 영화제, 상하이 국제영화제 등에 초대되며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2월 영국 BBC가 47분 길이로 재편집해 방송했고, 미국 빌보드닷컴은 "K팝을 혐오하는 음악 팬들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을 경이로운 다큐멘터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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