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다시 날다

입력 2014.10.11 (00:04) 수정 2014.10.11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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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 사회 극빈층에 속하는 노숙인들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노숙인 수가 모두 만 2천여명에 달하는데요.

노숙자들은 왜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 성공적으로 자립을 한 사람들은 어떻게 노숙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는지 손은혜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동이 터오는 이른 아침.

사람들이 저마다 바쁘게 일터로 발걸음을 옮기는 시간.

지하철 역사에서 잠을 자고 있던 권오성씨가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합니다.

이렇게 거리에서 생활한 지 벌써 5년째.

아침 식사를 하러 무료 급식소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멀기만 합니다.

<인터뷰> 권오성 : "돈이 있으면 내가 사먹고 해야 되는데. 안좋죠. 이런 밥 먹으면.."

어려웠던 집안 형편에 연이은 사업실패, 악화된 건강까지.

권씨에게 노숙은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다시 밤이 되어 똑같은 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 일상.

<인터뷰> 권오성(57세) : "날이면 날마다 이렇게 반복되는 생활을 하니까 좀 한심스럽고.. 앞으로 달리 좀 생각해서 일어서 보겠다고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녹취> "2005 안녕하십니까 사랑과 희망의 잡지 빅이슈입니다."

을지로 입구역에서 3년 동안 노숙을 했던 안광수씨.

안씨는 더이상 노숙을 하지 않습니다.

한 때 노숙을 했던 바로 그 곳에서 이제는 잡지를 판매합니다.

<녹취> "얼마예요? 네, 오천원입니다."

안씨가 팔고 있는 잡지는 한 권에 오천원짜리..

책 한 권을 팔면 책 값의 절반을 판매원 본인이 받을 수 있는 노숙인 잡지입니다.

<인터뷰> 김영걸(25세) : "지나가다가 호기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공근로를 하고 잡지를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정기적인 수입이 생겼고, 거리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는 고시원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안씨는 보다 나은 주거지를 마련할 때까지 좀 더 열심히 뛰어볼 계획입니다.

<인터뷰> 안광수(43세) : "제가 빅이슈 판매 5년 계획을 세웠는데.. 그래서 한 1,2년.. 빅이슈 판매원을 해서 돈을 벌고 임대주택에서 이제 또 새로운 직장을."

안씨처럼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노숙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노숙인들이 임시로 일을 할 수 있는 한 작업장입니다.

쇼핑백을 한 장 접을때마다 30원을 받습니다.

<녹취> 서울역 공동 작업장 근로자 : "소일거리라도 용돈을 만들수 있게 해주는 게 고마운 일이죠. 방황하지 않고 뭔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알게 해주는.."

지난 6월에 문을 연 이곳에는 하루 평균 30여명이 넘는 노숙인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공일자리의 대부분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로 한시적인데다, 이마저도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인터뷰> 기재일(서울시 자활지원과 주무관) :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계적으로 고임금을 드릴 수 있는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이라든지.. 건강을 회복하셔서 민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일자리를 갖고, 소득이 생겼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주거지를 얻는 것이 녹록한 일은 아닙니다.

노숙생활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쪽방이나 고시원, 혹은 임대주택을 찾아나섭니다.

그나마 안정적인 주거형태는 임대주택이지만,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지난 2005년, 영등포에서 1년 가까이 노숙을 했던 김종언씨.

공원 청소일을 하면서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요즘, 김씨의 생활은 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인터뷰> 김종언(49세) : "공공근로 신청해서 되는지 안되는지 날짜 알아보고 그래서 일 신청해서 5개월 끝나고 다시 이제 3개월 째 접어들었어요."

플라스틱 공장일부터, 택배일까지 안해본 게 없다는 김종언씨.

최종 학력이 중졸이고 특별한 기술도 없던 김씨는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영등포 인근을 전전하다 노숙인 쉼터 관계자를 만났고, 공공근로 등 여러 일거리를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보증금을 마련해 임대주택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종언(49세) :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그게 좀 자유스럽다는 게 편하죠. 그리고 잠잘 때도 마음껏 잘 수 있는 것. 임대주택도 많이 늘어나면 이런 생활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지만 김씨처럼 정부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에 들어오려면 복잡한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나마도 숫자가 많지 않아 한 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국토교통부는 노숙자 등 주거 취약 계층에게 매입, 전세 임대 주택 물량의 15%를 공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취약계층에게 공급된 물량은 전체의 2% 정도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이동현(홈리스 행동 활동가) : "물량이 굉장히 적습니다. 그러니까 2012년도 같은 경우는 한 해 동안 공급된 주거취약계층 매입 임대주택이 전국에 36호 밖에 안돼요. 36호 공급하면서 이걸 제도다.. 정책이다.. 라고 얘기하기 민망스러운 거죠. 그런 문제가 있어요."

임대 주택에 들어가려면 입주자 선정 위원회의 자격 심사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이런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 기초지자체는 전체의 절반 밖에 되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 있는 노숙자 숫자는 모두 만 2천여명으로 지난 2012년보다 4백여명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살 공간을 찾지 못해 거리로 나서는 사람은 많지만, 이들을 위한 주거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겁니다.

서울시가 노숙인 570여명에게 매달 25만 원씩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월세를 지원한 결과.

이 가운데 80%가 지속적으로 같은 주거지에 사는 데 성공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만 마련해 줘도 노숙자들 상당수가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초기 지원조차 미미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매주 노숙자들을 찾아가 안정적인 주거지를 소개하는 봉사 단체들은 해가 가도 나아지지 않는 노숙자들의 사정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녹취> "오늘 주거팀 가시는 분이 누구시죠? 종로가 여섯명, 시청이 세명."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것도, 주거지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노숙자들이 자활의 의지를 다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황성철(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 "일용직 일이라는게 안정적으로 잠을 잘 자고 다음날 일어나서 일을 다시 해야되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이다보니까"

노숙을 하던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또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주거지와 일자리를 보장받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숙자들은 이전의 생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지지와 배움의 기회를 얻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지난해 11월부터 결핵에 걸린 노숙인들을 위한 시설에서 간병일을 하고 있는 김기준씨.

김씨 자신도 5년 동안이나 노숙을 한데다 결핵에 걸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업이 부도가 난 뒤 빚에 쫒겨 도망을 다니게 됐고, 자포 자기하는 심정으로 게임에 빠진 채 몇 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혼을 했고 가족들 없이 여인숙을 전전하다 노숙을 하게 됐습니다.

결핵에 걸려 80키로 넘게 나가던 몸무게가 47키로까지 빠진 채 병원에 실려 가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상황을 바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인터뷰> 김기준(49세) : "(노숙이) 한순간이에요. 그냥 가버리더라구요. 정신차리고 보니까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렇게 있지. 생각이 들 때 보니까 몸이 다 망가진거예요."

이 시설에는 김씨처럼 노숙을 하다가 결핵에 걸린 환자 20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한때는 희망을 잃은 채 살았지만, 이 곳에서 여러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는 김근배씨.

<인터뷰> 김근배(31세) : "내가 할 목표를 정한 것은 한식쪽이다..한식쪽으로 먼저 배우자는 것으로 지금 목표가 세워졌거든요."

아무런 준비없이 다시 사회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던 노숙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면서, 노숙자들이 재기를 할 용기를 갖게 된 겁니다.

<인터뷰> 박성광(결핵관리시설 미소꿈터 소장) : "심리적인 부분도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까 여러가지 문화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고요. 필요한 자격증이 있다면 그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부분도 지원하고 있고요."

노숙 생활을 했던 동료들을 지켜보며 옆에서 힘이 되어 주고 있는 김기준씨는 배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김씨가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 것도 결핵 치료를 받은 이후 노숙자들을 위한 센터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직업을 갖기로 마음먹으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김기준(49세) : "밑바닥으로 다시 내려가지 않겠다는 생각들이 확고히 드는 것 같아요. 검정고시 합격을 하고 나면 요양보호사보다 한 단계 위인 사회복지사를 도전해보고 싶어요."

노숙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시작된 지 10년째.

센터를 통해 기초적인 지원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받은 노숙자들의 상당수는 자활에 성공했습니다.

<인터뷰> 여재훈(다시서기센터 소장) : "그 사람이 개인적인 게으름이나 잘못 때문에 저 사람이 저기 있다라고 얘기를 하죠. 실제로는 개인만의 잘못이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에서 성장했다든지 여러가지 사회문제로 인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전문가들은 갈수록 일자리 잡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복지제도 마저 부족한 만큼 노숙자들을 보는 시선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노숙자들을 무시하거나 특이한 사람으로 보는 대신,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할 이웃으로 봐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남기철(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여러가지 정책의 실패로 인해서 가장 취약한 분들 이 주거지를 상실한 우리 사회의 이웃이기때문에/ 우리 사회가 책임을 지고 이 분들에게 주류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드리는 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노숙자들.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세상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게 현실입니다.

극빈층인 노숙자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잘 복귀할 수 있도록, 든든한 안전망이 갖춰지는 사회는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입니다.

취재파일K, 다음주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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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자, 다시 날다
    • 입력 2014-10-10 23:05:59
    • 수정2014-10-11 00:23:05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우리 사회 극빈층에 속하는 노숙인들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노숙인 수가 모두 만 2천여명에 달하는데요.

노숙자들은 왜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 성공적으로 자립을 한 사람들은 어떻게 노숙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는지 손은혜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동이 터오는 이른 아침.

사람들이 저마다 바쁘게 일터로 발걸음을 옮기는 시간.

지하철 역사에서 잠을 자고 있던 권오성씨가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합니다.

이렇게 거리에서 생활한 지 벌써 5년째.

아침 식사를 하러 무료 급식소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멀기만 합니다.

<인터뷰> 권오성 : "돈이 있으면 내가 사먹고 해야 되는데. 안좋죠. 이런 밥 먹으면.."

어려웠던 집안 형편에 연이은 사업실패, 악화된 건강까지.

권씨에게 노숙은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다시 밤이 되어 똑같은 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 일상.

<인터뷰> 권오성(57세) : "날이면 날마다 이렇게 반복되는 생활을 하니까 좀 한심스럽고.. 앞으로 달리 좀 생각해서 일어서 보겠다고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녹취> "2005 안녕하십니까 사랑과 희망의 잡지 빅이슈입니다."

을지로 입구역에서 3년 동안 노숙을 했던 안광수씨.

안씨는 더이상 노숙을 하지 않습니다.

한 때 노숙을 했던 바로 그 곳에서 이제는 잡지를 판매합니다.

<녹취> "얼마예요? 네, 오천원입니다."

안씨가 팔고 있는 잡지는 한 권에 오천원짜리..

책 한 권을 팔면 책 값의 절반을 판매원 본인이 받을 수 있는 노숙인 잡지입니다.

<인터뷰> 김영걸(25세) : "지나가다가 호기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공근로를 하고 잡지를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정기적인 수입이 생겼고, 거리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는 고시원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안씨는 보다 나은 주거지를 마련할 때까지 좀 더 열심히 뛰어볼 계획입니다.

<인터뷰> 안광수(43세) : "제가 빅이슈 판매 5년 계획을 세웠는데.. 그래서 한 1,2년.. 빅이슈 판매원을 해서 돈을 벌고 임대주택에서 이제 또 새로운 직장을."

안씨처럼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노숙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노숙인들이 임시로 일을 할 수 있는 한 작업장입니다.

쇼핑백을 한 장 접을때마다 30원을 받습니다.

<녹취> 서울역 공동 작업장 근로자 : "소일거리라도 용돈을 만들수 있게 해주는 게 고마운 일이죠. 방황하지 않고 뭔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알게 해주는.."

지난 6월에 문을 연 이곳에는 하루 평균 30여명이 넘는 노숙인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공일자리의 대부분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로 한시적인데다, 이마저도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인터뷰> 기재일(서울시 자활지원과 주무관) :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계적으로 고임금을 드릴 수 있는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이라든지.. 건강을 회복하셔서 민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일자리를 갖고, 소득이 생겼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주거지를 얻는 것이 녹록한 일은 아닙니다.

노숙생활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쪽방이나 고시원, 혹은 임대주택을 찾아나섭니다.

그나마 안정적인 주거형태는 임대주택이지만,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지난 2005년, 영등포에서 1년 가까이 노숙을 했던 김종언씨.

공원 청소일을 하면서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요즘, 김씨의 생활은 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인터뷰> 김종언(49세) : "공공근로 신청해서 되는지 안되는지 날짜 알아보고 그래서 일 신청해서 5개월 끝나고 다시 이제 3개월 째 접어들었어요."

플라스틱 공장일부터, 택배일까지 안해본 게 없다는 김종언씨.

최종 학력이 중졸이고 특별한 기술도 없던 김씨는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영등포 인근을 전전하다 노숙인 쉼터 관계자를 만났고, 공공근로 등 여러 일거리를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보증금을 마련해 임대주택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종언(49세) :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그게 좀 자유스럽다는 게 편하죠. 그리고 잠잘 때도 마음껏 잘 수 있는 것. 임대주택도 많이 늘어나면 이런 생활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지만 김씨처럼 정부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에 들어오려면 복잡한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나마도 숫자가 많지 않아 한 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국토교통부는 노숙자 등 주거 취약 계층에게 매입, 전세 임대 주택 물량의 15%를 공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취약계층에게 공급된 물량은 전체의 2% 정도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이동현(홈리스 행동 활동가) : "물량이 굉장히 적습니다. 그러니까 2012년도 같은 경우는 한 해 동안 공급된 주거취약계층 매입 임대주택이 전국에 36호 밖에 안돼요. 36호 공급하면서 이걸 제도다.. 정책이다.. 라고 얘기하기 민망스러운 거죠. 그런 문제가 있어요."

임대 주택에 들어가려면 입주자 선정 위원회의 자격 심사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이런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 기초지자체는 전체의 절반 밖에 되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 있는 노숙자 숫자는 모두 만 2천여명으로 지난 2012년보다 4백여명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살 공간을 찾지 못해 거리로 나서는 사람은 많지만, 이들을 위한 주거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겁니다.

서울시가 노숙인 570여명에게 매달 25만 원씩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월세를 지원한 결과.

이 가운데 80%가 지속적으로 같은 주거지에 사는 데 성공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만 마련해 줘도 노숙자들 상당수가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초기 지원조차 미미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매주 노숙자들을 찾아가 안정적인 주거지를 소개하는 봉사 단체들은 해가 가도 나아지지 않는 노숙자들의 사정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녹취> "오늘 주거팀 가시는 분이 누구시죠? 종로가 여섯명, 시청이 세명."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것도, 주거지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노숙자들이 자활의 의지를 다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황성철(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 "일용직 일이라는게 안정적으로 잠을 잘 자고 다음날 일어나서 일을 다시 해야되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이다보니까"

노숙을 하던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또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주거지와 일자리를 보장받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숙자들은 이전의 생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지지와 배움의 기회를 얻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지난해 11월부터 결핵에 걸린 노숙인들을 위한 시설에서 간병일을 하고 있는 김기준씨.

김씨 자신도 5년 동안이나 노숙을 한데다 결핵에 걸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업이 부도가 난 뒤 빚에 쫒겨 도망을 다니게 됐고, 자포 자기하는 심정으로 게임에 빠진 채 몇 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혼을 했고 가족들 없이 여인숙을 전전하다 노숙을 하게 됐습니다.

결핵에 걸려 80키로 넘게 나가던 몸무게가 47키로까지 빠진 채 병원에 실려 가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상황을 바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인터뷰> 김기준(49세) : "(노숙이) 한순간이에요. 그냥 가버리더라구요. 정신차리고 보니까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렇게 있지. 생각이 들 때 보니까 몸이 다 망가진거예요."

이 시설에는 김씨처럼 노숙을 하다가 결핵에 걸린 환자 20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한때는 희망을 잃은 채 살았지만, 이 곳에서 여러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는 김근배씨.

<인터뷰> 김근배(31세) : "내가 할 목표를 정한 것은 한식쪽이다..한식쪽으로 먼저 배우자는 것으로 지금 목표가 세워졌거든요."

아무런 준비없이 다시 사회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던 노숙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면서, 노숙자들이 재기를 할 용기를 갖게 된 겁니다.

<인터뷰> 박성광(결핵관리시설 미소꿈터 소장) : "심리적인 부분도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까 여러가지 문화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고요. 필요한 자격증이 있다면 그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부분도 지원하고 있고요."

노숙 생활을 했던 동료들을 지켜보며 옆에서 힘이 되어 주고 있는 김기준씨는 배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김씨가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 것도 결핵 치료를 받은 이후 노숙자들을 위한 센터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직업을 갖기로 마음먹으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김기준(49세) : "밑바닥으로 다시 내려가지 않겠다는 생각들이 확고히 드는 것 같아요. 검정고시 합격을 하고 나면 요양보호사보다 한 단계 위인 사회복지사를 도전해보고 싶어요."

노숙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시작된 지 10년째.

센터를 통해 기초적인 지원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받은 노숙자들의 상당수는 자활에 성공했습니다.

<인터뷰> 여재훈(다시서기센터 소장) : "그 사람이 개인적인 게으름이나 잘못 때문에 저 사람이 저기 있다라고 얘기를 하죠. 실제로는 개인만의 잘못이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에서 성장했다든지 여러가지 사회문제로 인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전문가들은 갈수록 일자리 잡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복지제도 마저 부족한 만큼 노숙자들을 보는 시선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노숙자들을 무시하거나 특이한 사람으로 보는 대신,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할 이웃으로 봐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남기철(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여러가지 정책의 실패로 인해서 가장 취약한 분들 이 주거지를 상실한 우리 사회의 이웃이기때문에/ 우리 사회가 책임을 지고 이 분들에게 주류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드리는 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노숙자들.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세상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게 현실입니다.

극빈층인 노숙자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잘 복귀할 수 있도록, 든든한 안전망이 갖춰지는 사회는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입니다.

취재파일K, 다음주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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