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를 꿈꾸며…

입력 2014.10.18 (00:04) 수정 2014.10.18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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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 어디에 둬야 할까요?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예술혼을 키워가는 장애인 예술가들의 투혼은 우리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예술가를 꿈꾸는 장애인 여성 3명을 김종수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서른 세살의 성악가 이소영씨...

악보나 가사를 전혀 읽을 수 없습니다.

선천성 질환 등을 앓다 5년 전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었습니다.

학업을 한동안 중단해야 할 정도로 실의에 빠졌습니다.

<녹취> 이소영(성악가) : "저는 사실 성악이든 피아노든 뭐든 할수 있는 조건이 안돼요. 손가락이 뼈가 좀 약해서 피아노 치기 좋지 않고,(시력과 비염은)성악을 하는데 치명적인 증상이거든요."

이런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소영씨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 본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격려하고 지지해줬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은 사랑과 믿음 덕분에 소영씨는 성악가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무대에 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감은 하늘이 내려 준 축복이었습니다.

<녹취> 이소영(성악가) : "(3살 이전에 )실로폰을 치더니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치는가 싶더니 간단한 동요를 쳤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절대음감이란 것이 처음부터 있지 않았나."

소영씨에게 노래란 자신이 받은 사랑과 희망의 빛을 타인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녹취> 이소영(성악가) : "보이지 않게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눈에 관련해서도 그렇고 음악에 관련해서도 그렇고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 좀 힘들 정도로"

소영씨의 무대 뒤에는 항상 가족이 함께 해 왔습니다.

떨림과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합니다.

<녹취> "(어머니: 최선을 다했어) 이소영씨: 드레스가 딱 붙는 바람에 몸짓이 잘 안 나와서 (어머니: 아니, 보기에 아름다웠어) 이소영: 아 박수가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아버지: (곡이)너무 짧은 것 같아)"

남들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성악가..

그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신체적 장애란 어떤 의미일까.

<녹취> 이소영 : "음악을 물론 시작할 때 배울 때 악보를 보고 하지만 표현할 때를 악보를 보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그런 식이잖아요."

신인 도예가들이 모이는 서울의 한 종합 복지관.

<녹취> 유영희(도예 강사) : "오늘은 나무에 다는 조그만 모양을 만들거에요. 여러분 보세요."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은 모두 한 두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반장 역할을 하는 여영자씨는 뇌병변장애가 있는 53살 박형묵씨에 대한 칭찬으로 회원 소개를 시작합니다.

<녹취> 여영자(지체장애인) : "어떤 때보면 정말 도예 선생님 전문가 선생님 있잖아요. 그런 작품을 만드는 느낌이 들어요."

또 다른 신입회원은 40대인 박진호씨.

지적장애가 있지만 누구보다 창의적인 모양을 잘 빚어냅니다.

<녹취> 여영자 : "이렇게 도예 만들 때도 보면 다른 친구들보다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야 하나 정말 잘 만들어요. 좀 느리고 꼼꼼해서 그렇지 만드는 건 잘해요."

먼 곳에서 어렵게 오는 회원도 있다보니 한번 모이면 2시간 정도 집중해서 작업에 몰두합니다.

<녹취> 여영자 : "저희 비올때만 제일 오기 힘드니까. 목발을 짚고 다니니까 비가오면 우산도 못 쓰고, 다니기가 제일 힘들어요."

호흡을 맞춘 지 오래다 보니 많은 대화가 없어도 서로 통하는 사이, 장애인 8명이 꾸준히 작업을 해온 덕분에 전국 장애인 공모전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상을 받았습니다.

수십 개의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큰 물고기 모양을 이룬 작품의 제목은 '너와 내가 우리될 때 통일'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처럼 서로를 차별화하기 보다는 다른 점을 인정하자는 취지입니다.

두 다리가 불편한 여영자씨는 복지관에서 식권 판매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예술가라고 내세우기엔 이르지만, 매일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바람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녹취> 여영자 : "충동인 것 같아요. 자꾸 흙을 만지다 보면 이것도 상상으로 만들어보고 또 저것도 만들어보고 창의력도 또 길러지는 것 같고요. 자꾸 하고 싶은데 여기서 사정상 자주 못해서 그렇지요. 우리는 매일하고 싶지요. 솔직히"

땀과 열정이 녹아든 작품들..

자신들이 여기에 서기까지 도움을 준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경상남도 사천시.

뇌병변장애 1급인 오수진씨는 이 지역 특성화고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피자를 만드는 실습 시간은 물론,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는 대부분 과목을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적장애도 있지만 성격이 쾌활한 수진씨의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녹취> 김은옥(수진씨 어머니) : "(판소리 선생님이)지금 생각해보니까 사랑가 한 구절이었는데 수진이에게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이 한 구절을 수진이에게 따라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뒤로 수진이가 판소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가지고 매일 몇 시간씩 판소리 연습하는 것을 보고 정말 자기에게 맞는 그런 일을 찾아준 것 같았고"

수진씨가 첫 대회에 출전했을 때 긴장 속에서 지켜봤던 가족들..

<녹취> 김은옥 : "정말 수진이가 똑바로 서 있기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저 애가 과연 저무대에서 똑바로 서서 판소리를 할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때 제일 감동받았습니다."

판소리를 시작한지 2년 8개월, 뜻깊은 상을 많이 받았지만 그러기까지는 숱한 역경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녹취> 이윤옥(경남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후보) : "말을 못했고 걷기도 힘들어했고 그랬는데 저 아이가 주어진 숙제를 소리를 녹음해서 계속 듣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열심히 해서오고 음정박자가 정확하고, (얼굴) 배의 힘만 기르면 소리꾼으로서는 진짜 수진이가 대단하다고 보지요."

여고생 수진씨에게 판소리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인터뷰> 오수진 : "(노란색:판소리의 어떤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노래...노래하는게 좋아서"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까지에는 많은 난관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상과 이어지려면 이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손을 누군가 내밀어 줘야 하는 것입니다.

<녹취> 김은옥(수진씨 어머니) : "수진이가 몸이 불편하다보니까 그런 국악을 전공하는 그런 대학은 (사천)집 하고 멀리떨어진 곳이라 그런 부분이 제일 걱정스럽고요."

예술적 재능을 발견해도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기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특수교육 전공이 있는 대학이 드문데다, 신체장애와 발달장애 등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 서울 등 대도시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소현(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교수) : "사회가 그런 장애로 인해서 차별을 주지 말아야하는데 지금 사회로 인해서 받는 차별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지요."

장애인 예술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올해 문화예술진흥기금 1800억원 가운데 25억원, 단 1% 수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들의 문화, 예술 행사도 해마다 재정난과 인력난을 겪으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데 급급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인터뷰> 최영묵(장애인문화예술축제 조직위원장) : "10월달에만 해도 축제가 1200개 된다는데...아직 홍보하는데 어려움이 있고요. 많은 분들이 예술을 하는 분들이 이게 예술이야 하면서,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일하는데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 같이 낮은 인식과 차별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은 바로 장애인들입니다.

예술가의 꿈을 키워가는 장애인들은 교육기회도 적고 공연할 시설도 찾기 힘든 현실 속에서 이중 삼중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녹취> 이소영(성악가) :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의 편견, 선입견으로 인해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화려한 무대에 설수 없다는 것 이것이 첫번째 불만족이고요. 물론 음악을 돈을 벌기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뭐 한만큼은 댓가가 있어야되잖아요."

장애인 예술가들, 장애인이란 수식어를 하루빨리 떼어 내고 오롯이 예술가로 인정받길 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앵커 멘트>

장애인 예술가들은 공연장을 빌리기 위한 서류 심사에서도 갖가지 이유로 차별받고 탈락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합니다.

공연장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한 것을 감추기 위해서라는데,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시설투자도 조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취재파일 K가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다음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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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를 꿈꾸며…
    • 입력 2014-10-17 22:00:31
    • 수정2014-10-18 00:41:44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 어디에 둬야 할까요?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예술혼을 키워가는 장애인 예술가들의 투혼은 우리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예술가를 꿈꾸는 장애인 여성 3명을 김종수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서른 세살의 성악가 이소영씨...

악보나 가사를 전혀 읽을 수 없습니다.

선천성 질환 등을 앓다 5년 전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었습니다.

학업을 한동안 중단해야 할 정도로 실의에 빠졌습니다.

<녹취> 이소영(성악가) : "저는 사실 성악이든 피아노든 뭐든 할수 있는 조건이 안돼요. 손가락이 뼈가 좀 약해서 피아노 치기 좋지 않고,(시력과 비염은)성악을 하는데 치명적인 증상이거든요."

이런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소영씨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 본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격려하고 지지해줬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은 사랑과 믿음 덕분에 소영씨는 성악가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무대에 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감은 하늘이 내려 준 축복이었습니다.

<녹취> 이소영(성악가) : "(3살 이전에 )실로폰을 치더니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치는가 싶더니 간단한 동요를 쳤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절대음감이란 것이 처음부터 있지 않았나."

소영씨에게 노래란 자신이 받은 사랑과 희망의 빛을 타인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녹취> 이소영(성악가) : "보이지 않게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눈에 관련해서도 그렇고 음악에 관련해서도 그렇고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 좀 힘들 정도로"

소영씨의 무대 뒤에는 항상 가족이 함께 해 왔습니다.

떨림과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합니다.

<녹취> "(어머니: 최선을 다했어) 이소영씨: 드레스가 딱 붙는 바람에 몸짓이 잘 안 나와서 (어머니: 아니, 보기에 아름다웠어) 이소영: 아 박수가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아버지: (곡이)너무 짧은 것 같아)"

남들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성악가..

그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신체적 장애란 어떤 의미일까.

<녹취> 이소영 : "음악을 물론 시작할 때 배울 때 악보를 보고 하지만 표현할 때를 악보를 보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그런 식이잖아요."

신인 도예가들이 모이는 서울의 한 종합 복지관.

<녹취> 유영희(도예 강사) : "오늘은 나무에 다는 조그만 모양을 만들거에요. 여러분 보세요."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은 모두 한 두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반장 역할을 하는 여영자씨는 뇌병변장애가 있는 53살 박형묵씨에 대한 칭찬으로 회원 소개를 시작합니다.

<녹취> 여영자(지체장애인) : "어떤 때보면 정말 도예 선생님 전문가 선생님 있잖아요. 그런 작품을 만드는 느낌이 들어요."

또 다른 신입회원은 40대인 박진호씨.

지적장애가 있지만 누구보다 창의적인 모양을 잘 빚어냅니다.

<녹취> 여영자 : "이렇게 도예 만들 때도 보면 다른 친구들보다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야 하나 정말 잘 만들어요. 좀 느리고 꼼꼼해서 그렇지 만드는 건 잘해요."

먼 곳에서 어렵게 오는 회원도 있다보니 한번 모이면 2시간 정도 집중해서 작업에 몰두합니다.

<녹취> 여영자 : "저희 비올때만 제일 오기 힘드니까. 목발을 짚고 다니니까 비가오면 우산도 못 쓰고, 다니기가 제일 힘들어요."

호흡을 맞춘 지 오래다 보니 많은 대화가 없어도 서로 통하는 사이, 장애인 8명이 꾸준히 작업을 해온 덕분에 전국 장애인 공모전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상을 받았습니다.

수십 개의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큰 물고기 모양을 이룬 작품의 제목은 '너와 내가 우리될 때 통일'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처럼 서로를 차별화하기 보다는 다른 점을 인정하자는 취지입니다.

두 다리가 불편한 여영자씨는 복지관에서 식권 판매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예술가라고 내세우기엔 이르지만, 매일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바람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녹취> 여영자 : "충동인 것 같아요. 자꾸 흙을 만지다 보면 이것도 상상으로 만들어보고 또 저것도 만들어보고 창의력도 또 길러지는 것 같고요. 자꾸 하고 싶은데 여기서 사정상 자주 못해서 그렇지요. 우리는 매일하고 싶지요. 솔직히"

땀과 열정이 녹아든 작품들..

자신들이 여기에 서기까지 도움을 준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경상남도 사천시.

뇌병변장애 1급인 오수진씨는 이 지역 특성화고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피자를 만드는 실습 시간은 물론,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는 대부분 과목을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적장애도 있지만 성격이 쾌활한 수진씨의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녹취> 김은옥(수진씨 어머니) : "(판소리 선생님이)지금 생각해보니까 사랑가 한 구절이었는데 수진이에게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이 한 구절을 수진이에게 따라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뒤로 수진이가 판소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가지고 매일 몇 시간씩 판소리 연습하는 것을 보고 정말 자기에게 맞는 그런 일을 찾아준 것 같았고"

수진씨가 첫 대회에 출전했을 때 긴장 속에서 지켜봤던 가족들..

<녹취> 김은옥 : "정말 수진이가 똑바로 서 있기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저 애가 과연 저무대에서 똑바로 서서 판소리를 할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때 제일 감동받았습니다."

판소리를 시작한지 2년 8개월, 뜻깊은 상을 많이 받았지만 그러기까지는 숱한 역경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녹취> 이윤옥(경남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후보) : "말을 못했고 걷기도 힘들어했고 그랬는데 저 아이가 주어진 숙제를 소리를 녹음해서 계속 듣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열심히 해서오고 음정박자가 정확하고, (얼굴) 배의 힘만 기르면 소리꾼으로서는 진짜 수진이가 대단하다고 보지요."

여고생 수진씨에게 판소리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인터뷰> 오수진 : "(노란색:판소리의 어떤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노래...노래하는게 좋아서"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까지에는 많은 난관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상과 이어지려면 이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손을 누군가 내밀어 줘야 하는 것입니다.

<녹취> 김은옥(수진씨 어머니) : "수진이가 몸이 불편하다보니까 그런 국악을 전공하는 그런 대학은 (사천)집 하고 멀리떨어진 곳이라 그런 부분이 제일 걱정스럽고요."

예술적 재능을 발견해도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기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특수교육 전공이 있는 대학이 드문데다, 신체장애와 발달장애 등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 서울 등 대도시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소현(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교수) : "사회가 그런 장애로 인해서 차별을 주지 말아야하는데 지금 사회로 인해서 받는 차별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지요."

장애인 예술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올해 문화예술진흥기금 1800억원 가운데 25억원, 단 1% 수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들의 문화, 예술 행사도 해마다 재정난과 인력난을 겪으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데 급급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인터뷰> 최영묵(장애인문화예술축제 조직위원장) : "10월달에만 해도 축제가 1200개 된다는데...아직 홍보하는데 어려움이 있고요. 많은 분들이 예술을 하는 분들이 이게 예술이야 하면서,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일하는데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 같이 낮은 인식과 차별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은 바로 장애인들입니다.

예술가의 꿈을 키워가는 장애인들은 교육기회도 적고 공연할 시설도 찾기 힘든 현실 속에서 이중 삼중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녹취> 이소영(성악가) :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의 편견, 선입견으로 인해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화려한 무대에 설수 없다는 것 이것이 첫번째 불만족이고요. 물론 음악을 돈을 벌기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뭐 한만큼은 댓가가 있어야되잖아요."

장애인 예술가들, 장애인이란 수식어를 하루빨리 떼어 내고 오롯이 예술가로 인정받길 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앵커 멘트>

장애인 예술가들은 공연장을 빌리기 위한 서류 심사에서도 갖가지 이유로 차별받고 탈락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합니다.

공연장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한 것을 감추기 위해서라는데,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시설투자도 조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취재파일 K가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다음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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