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미친 전세’? ‘미친 월세’가 더 두렵다

입력 2014.11.15 (07:08) 수정 2014.11.1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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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고유브랜드 '전세(傳貰)'

두산백과사전에서는 '전세(傳貰)'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요약: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용도에 따라 사용, 수익하는 관계.

더 자세한 설명도 이어집니다.

'전세는 외국의 입법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발달한 관습상의 부동산. 특히 건물의 대차의 형태이다. 8·15 광복 전까지는 경향(서울) 일대에서 이용될 뿐이었으나 현재는 전국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실제로 전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입니다. 전세와 관련된 거의 유일한 공식 자료는 1910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관습 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에는 '전세란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가옥 임대차의 방법이며, 전세금액은 가옥의 대가의 반액 내지 7·8할이 통례'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금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죠. 하지만 가까운 일본과 중국을 봐도 전세제도가 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몇몇 외국인들은 '집 주인이 왜 공짜로 집을 빌려주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2. 막 내리는 전세시대

이렇게 100년 넘게 유지되온 전세제도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전세가 미쳤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올 정도로 가격이 뛰었지만, 백약이 무효입니다.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을 뜻하는 전세가율이 70%를 이미 넘었습니다. 경기도 일부 지역의 경우 전세가율이 90%를 넘기도 했습니다. 곧 100%를 넘는, 즉 매매가보다 전셋값이 더 비싼 곳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비싸기도 비싸지만 매물 구하기는 더 힘듭니다. 경기도 분당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7,700가구 가운데 전세물량이 단 5건에 불과했습니다. 왜일까요? 집주인들이 순수 전세물량을 줄이고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가 없어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는 금리가 떨어지고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면 전세 살던 사람들이 집을 사게 되고 전셋값은 저절로 안정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차라리 5억 원, 10억 원짜리 전세에 사는 한이 있어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과거 버블 시대처럼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집을 사면 여러 가지 부대비용이 듭니다. 취득세와 등록세, 재산세 등 세금은 물론이고 대출금 이자에, 감가상각과 집수리비용 등 따져보면 돈 안 들어가는 곳이 없습니다.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 집을 사려면 집값이 어느 정도는 올라줘야 하는데, 서울의 경우 최근 3년간 오히려 집값이 5% 넘게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1인 가구가 계속 늘고 집을 살 여력이 있는 핵심구매층이 줄어들면서 주택 매매 수요는 점점 더 약해지게 됩니다. 집 살 사람이 없어지고 저금리로 집주인들이 전세를 꺼리다 보니 당연히 월세시대가 도래하는 겁니다.



3. 월세시대 연착륙 필요

하지만 월세제도, 서민들에게는 큰 고통이 됩니다. 월급은 늘지 않고, 체감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7~80만 원씩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면 남는 돈이 별로 없는 겁니다.

일본에서도 월세는 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전체 가구의 35% 정도가 월세 세입자인데 보통 수입의 30% 정도를 월세로 냅니다. 하지만 부러운 점도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월세가 거의 오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전세와 월세는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오르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반대로 오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더 안정된 사회이기도 하지만, 법률적으로도 세입자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잘 마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는 재건축·재개발로 인한 이주 수요 증가와 신규 입주 물량 감소로 전세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왔습니다. 그만큼 순수 전세에서 월세나 반전세로 돌아서는 물량도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정부도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는 대세로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세 세입자를 중심으로 마련됐던 대책도 이제는 월세 세입자 쪽으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미흡합니다. 정부는 지난 10월 발표된 주거비 부담 대책을 통해 취업 준비생 등 취약 계층에게 월세 대출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대상은 7,000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러다 곧 '월세가 미쳤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세시대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시대의 흐름이라면 그 과정을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만들 '신의 한 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바로가기 <뉴스9> [이슈&뉴스] ‘전셋값 폭등’ 이제는 월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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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미친 전세’? ‘미친 월세’가 더 두렵다
    • 입력 2014-11-15 07:08:35
    • 수정2014-11-15 08:14:36
    취재후
1. 대한민국 고유브랜드 '전세(傳貰)'

두산백과사전에서는 '전세(傳貰)'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요약: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용도에 따라 사용, 수익하는 관계.

더 자세한 설명도 이어집니다.

'전세는 외국의 입법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발달한 관습상의 부동산. 특히 건물의 대차의 형태이다. 8·15 광복 전까지는 경향(서울) 일대에서 이용될 뿐이었으나 현재는 전국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실제로 전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입니다. 전세와 관련된 거의 유일한 공식 자료는 1910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관습 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에는 '전세란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가옥 임대차의 방법이며, 전세금액은 가옥의 대가의 반액 내지 7·8할이 통례'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금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죠. 하지만 가까운 일본과 중국을 봐도 전세제도가 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몇몇 외국인들은 '집 주인이 왜 공짜로 집을 빌려주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2. 막 내리는 전세시대

이렇게 100년 넘게 유지되온 전세제도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전세가 미쳤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올 정도로 가격이 뛰었지만, 백약이 무효입니다.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을 뜻하는 전세가율이 70%를 이미 넘었습니다. 경기도 일부 지역의 경우 전세가율이 90%를 넘기도 했습니다. 곧 100%를 넘는, 즉 매매가보다 전셋값이 더 비싼 곳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비싸기도 비싸지만 매물 구하기는 더 힘듭니다. 경기도 분당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7,700가구 가운데 전세물량이 단 5건에 불과했습니다. 왜일까요? 집주인들이 순수 전세물량을 줄이고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가 없어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는 금리가 떨어지고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면 전세 살던 사람들이 집을 사게 되고 전셋값은 저절로 안정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차라리 5억 원, 10억 원짜리 전세에 사는 한이 있어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과거 버블 시대처럼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집을 사면 여러 가지 부대비용이 듭니다. 취득세와 등록세, 재산세 등 세금은 물론이고 대출금 이자에, 감가상각과 집수리비용 등 따져보면 돈 안 들어가는 곳이 없습니다.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 집을 사려면 집값이 어느 정도는 올라줘야 하는데, 서울의 경우 최근 3년간 오히려 집값이 5% 넘게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1인 가구가 계속 늘고 집을 살 여력이 있는 핵심구매층이 줄어들면서 주택 매매 수요는 점점 더 약해지게 됩니다. 집 살 사람이 없어지고 저금리로 집주인들이 전세를 꺼리다 보니 당연히 월세시대가 도래하는 겁니다.



3. 월세시대 연착륙 필요

하지만 월세제도, 서민들에게는 큰 고통이 됩니다. 월급은 늘지 않고, 체감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7~80만 원씩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면 남는 돈이 별로 없는 겁니다.

일본에서도 월세는 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전체 가구의 35% 정도가 월세 세입자인데 보통 수입의 30% 정도를 월세로 냅니다. 하지만 부러운 점도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월세가 거의 오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전세와 월세는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오르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반대로 오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더 안정된 사회이기도 하지만, 법률적으로도 세입자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잘 마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는 재건축·재개발로 인한 이주 수요 증가와 신규 입주 물량 감소로 전세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왔습니다. 그만큼 순수 전세에서 월세나 반전세로 돌아서는 물량도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정부도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는 대세로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세 세입자를 중심으로 마련됐던 대책도 이제는 월세 세입자 쪽으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미흡합니다. 정부는 지난 10월 발표된 주거비 부담 대책을 통해 취업 준비생 등 취약 계층에게 월세 대출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대상은 7,000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러다 곧 '월세가 미쳤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세시대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시대의 흐름이라면 그 과정을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만들 '신의 한 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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