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의 날…이회영 선생 ‘난잎으로 칼을 얻다’
입력 2014.11.17 (21:40)
수정 2014.11.1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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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오늘은 109년전 을사조약이 체결된 날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오직 독립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우당 이희영 선생의 유품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노태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제가 강제로 박탈합니다.
5년 뒤 한 남성이 6형제와 그 일가족 50여 명을 데리고 압록강 너머 만주로 떠납니다.
조선 명문 가문 이항복의 10대 손 우당 이회영 선생입니다.
전 재산 40만 원, 요즘 돈 600억 원은 독립운동자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돈이 부족해서 묵으로 난초를 그려 총과 칼을 사들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화풍을 이어받은 작품은 중국인들이 고가에 사들였고, 이렇게 만든 군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청산리대첩을 이끌었습니다.
<인터뷰> 서해성(전시 감독) : "보통 우리가 난초라고 할 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또 다른 독립 운동가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난초입니다."
개인 이회영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인의 회고록에는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고통 받은 과정이 생생히 적혀 있습니다.
<인터뷰>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 : "요즘 말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정신을 그분들만큼 절실하게 실천하신 분들이 없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선생.
일제에 체포된 뒤 고문을 받다 1932년 11월 17일 숨을 거뒀습니다.
KBS 뉴스 노태영입니다.
오늘은 109년전 을사조약이 체결된 날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오직 독립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우당 이희영 선생의 유품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노태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제가 강제로 박탈합니다.
5년 뒤 한 남성이 6형제와 그 일가족 50여 명을 데리고 압록강 너머 만주로 떠납니다.
조선 명문 가문 이항복의 10대 손 우당 이회영 선생입니다.
전 재산 40만 원, 요즘 돈 600억 원은 독립운동자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돈이 부족해서 묵으로 난초를 그려 총과 칼을 사들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화풍을 이어받은 작품은 중국인들이 고가에 사들였고, 이렇게 만든 군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청산리대첩을 이끌었습니다.
<인터뷰> 서해성(전시 감독) : "보통 우리가 난초라고 할 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또 다른 독립 운동가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난초입니다."
개인 이회영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인의 회고록에는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고통 받은 과정이 생생히 적혀 있습니다.
<인터뷰>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 : "요즘 말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정신을 그분들만큼 절실하게 실천하신 분들이 없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선생.
일제에 체포된 뒤 고문을 받다 1932년 11월 17일 숨을 거뒀습니다.
KBS 뉴스 노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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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국선열의 날…이회영 선생 ‘난잎으로 칼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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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11-17 21:55:11
- 수정2014-11-18 07:06:02
<앵커 멘트>
오늘은 109년전 을사조약이 체결된 날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오직 독립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우당 이희영 선생의 유품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노태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제가 강제로 박탈합니다.
5년 뒤 한 남성이 6형제와 그 일가족 50여 명을 데리고 압록강 너머 만주로 떠납니다.
조선 명문 가문 이항복의 10대 손 우당 이회영 선생입니다.
전 재산 40만 원, 요즘 돈 600억 원은 독립운동자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돈이 부족해서 묵으로 난초를 그려 총과 칼을 사들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화풍을 이어받은 작품은 중국인들이 고가에 사들였고, 이렇게 만든 군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청산리대첩을 이끌었습니다.
<인터뷰> 서해성(전시 감독) : "보통 우리가 난초라고 할 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또 다른 독립 운동가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난초입니다."
개인 이회영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인의 회고록에는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고통 받은 과정이 생생히 적혀 있습니다.
<인터뷰>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 : "요즘 말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정신을 그분들만큼 절실하게 실천하신 분들이 없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선생.
일제에 체포된 뒤 고문을 받다 1932년 11월 17일 숨을 거뒀습니다.
KBS 뉴스 노태영입니다.
오늘은 109년전 을사조약이 체결된 날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오직 독립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우당 이희영 선생의 유품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노태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제가 강제로 박탈합니다.
5년 뒤 한 남성이 6형제와 그 일가족 50여 명을 데리고 압록강 너머 만주로 떠납니다.
조선 명문 가문 이항복의 10대 손 우당 이회영 선생입니다.
전 재산 40만 원, 요즘 돈 600억 원은 독립운동자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돈이 부족해서 묵으로 난초를 그려 총과 칼을 사들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화풍을 이어받은 작품은 중국인들이 고가에 사들였고, 이렇게 만든 군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청산리대첩을 이끌었습니다.
<인터뷰> 서해성(전시 감독) : "보통 우리가 난초라고 할 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또 다른 독립 운동가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난초입니다."
개인 이회영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인의 회고록에는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고통 받은 과정이 생생히 적혀 있습니다.
<인터뷰>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 : "요즘 말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정신을 그분들만큼 절실하게 실천하신 분들이 없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선생.
일제에 체포된 뒤 고문을 받다 1932년 11월 17일 숨을 거뒀습니다.
KBS 뉴스 노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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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영 기자 lotte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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