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산’ 볼리비아 세로리코, 사라질 위기

입력 2014.11.22 (08:26) 수정 2014.11.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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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유명한 소금호수인 우유니 호수가 있는 볼리비아의 포토시주에는 세로리코란 산이 있는데요.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엔 전 세계 은의 절반이 생산됐던 곳입니다.

세로리코란 산 이름도 부유한 산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요.

여기서 나온 은 덕분에 유럽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세로리코산은 식민지 시대의 번영을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이 많이 보존되어 있어서 1987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습니다.

그런데 부유한 산이란 명성답게 아직도 유용한 광물이 많아 무분별한 채굴이 이뤄지면서 세계문화유산 세로리코가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김영인 순회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볼리비아의 대표적인 광산촌 포토시.

이 도시를 굽어보는 해발 4천 7백여 미터의 산이 하나 있습니다.

볼리비아 국기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세로리코, 일명 '부유한 산'입니다.

16세기, 볼리비아를 지배했던 스페인이 2백년 넘게 이곳에서 은을 수탈해가 초기 유럽 자본주의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유럽 부의 역사와 노예 노동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으로, 지난 198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광산 체험을 하기 위해 찾아오고 지금도 이 지역에서 은과 주석, 아연 등을 캐며 생계를 유지하는 광부들의 수만 만 5천여 명에 이릅니다.

<인터뷰> 호세 안토니오 라미노(광산 기술자) : "광산업은 포토시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입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제 친구들도 대부분 광부 일을 하고 있어요."

포토시 시내에서 차를 타고 오른 지 20여 분, 세로리코 정상에 닿았습니다.

산 아래에서 봤을 때는 봉우리가 삼각형 모양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산봉우리 곳곳이 무너져 땅속으로 꺼져버렸습니다.

<인터뷰> 셀소 크루즈 구티에레스(광부) : "세로리코가 이런 모양인데요. 땅꺼짐이 일어나면 언젠가는 여기가 평평해 질 거예요."

실제로, 스페인 식민 지배 시절 세로리코의 높이는 5천 2백미터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4백 미터 넘게 낮아졌습니다.

포토시의 한 대학이 제공한 영상입니다.

땅꺼짐이 일어난 곳 아래 쪽에 거대한 빈 공간이 생겼습니다.

조사 결과, 깊이가 3백 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볼리비아 정부는 2년 전부터 이렇게 땅꺼짐이 계속되고 있는 세로리코 봉우리 부분에 시멘트를 계속 퍼붓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암반을 안정화시키고 또 내부 붕괴를 막아보겠다는 건데요.

하지만 보시는 것처럼 땅꺼짐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세계문화유산이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로리코 정상에서 3백여 미터 아래, 그러니까 해발 4천 4백미터에 있는 한 광산입니다.

직접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이곳으로부터 3백여 미터 위가 땅꺼짐이 계속되고 있는 세로리코 정상인데요. 볼리비아 정부는 세로리코와 또 광부들의 인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 해발고도 4400미터 이상에서의 채굴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1500명 넘는 광부들이 금지된 공간에서 오늘도 위험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니 훌리안 : "위쪽에서 돌들이 굴러 떨어지면 아주 무서워요. 그래도 계속 일을 해야 해요. 다른 일자리가 없으니까요."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하면 360달러, 우리 돈 4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데 이 금액은 최저 임금보다 2배 이상 많습니다.

<인터뷰> 곤살로 구띠에레스 : "여기서 일하는 것은 위험하죠.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매일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세로리코의 운명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입니다.

세로리코를 소유한 볼리비아 국영 광산회사 '꼬미볼'은 당시 은 가격이 급락하자 광산 운영에서 손을 뗐습니다.

대신 채굴 허가권을 민간업자들의 조직인 40여 개 협동조합과 외국 광산 회사들에게 나눠주고 수수료를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협동조합 등은 광물을 캐는만큼 돈을 벌다보니 돈벌이가 급한 광부들을 고용해 마구잡이 채굴을 했고, 세로리코를 소유한 꼬미볼은 협동조합 등에 대한 관리 감독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세로리코의 속은 무분별한 채굴로 이른바 '개미굴'이 돼 버렸습니다.

<인터뷰> 조니 알리(포토시 시민위원회 대표) : "정부는 세로리코 보호를 위해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세로리코를 훼손하는 공범자가 바로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들이 광물을 많이 캐야 정부가 챙기는 수수료도 늘어나기 때문에 정부가 세로리코 파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최근엔 주석 가격이 올라가면서 무분별한 채굴이 더욱 심해졌고 땅꺼짐의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인터뷰> 레네 바까플로레스(광산 기술자) : "만약 협동조합들이 지금처럼 채굴하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땅꺼짐은 더 넓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수천 명의 광부들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볼리비아 당국은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로리코 정상과 가까운 광산을 폐쇄하거나 광부들을 다른 광산으로 이주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가 광부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슬그머니 물러섰습니다.

<인터뷰> 데니스 마띤(포토시 꼬미볼 총책임자) : "참 어려운 문제예요. 광부 이주 집행을 하려 했지만, 광부들이 우리 사무실로 쳐들어왔어요. 그래서 사무실이 하루종일 마비된 적도 있어요."

유네스코는 지난 6월 '세계문화유산'인 세로리코의 지위를 이른바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강등시켰습니다.

지나친 채굴로 광산의 역사적 경관이 훼손됐다는 겁니다.

세로리코는 1년에 1센티미터씩 내려앉고 있습니다.

광산업자들에게 세로리코를 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볼리비아 정부와 세로리코를 헤집으며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된 광산업자들..

이들 앞에서, 세계문화유산 세로리코는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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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유한 산’ 볼리비아 세로리코, 사라질 위기
    • 입력 2014-11-22 09:10:59
    • 수정2014-11-22 10:34:5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유명한 소금호수인 우유니 호수가 있는 볼리비아의 포토시주에는 세로리코란 산이 있는데요.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엔 전 세계 은의 절반이 생산됐던 곳입니다.

세로리코란 산 이름도 부유한 산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요.

여기서 나온 은 덕분에 유럽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세로리코산은 식민지 시대의 번영을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이 많이 보존되어 있어서 1987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습니다.

그런데 부유한 산이란 명성답게 아직도 유용한 광물이 많아 무분별한 채굴이 이뤄지면서 세계문화유산 세로리코가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김영인 순회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볼리비아의 대표적인 광산촌 포토시.

이 도시를 굽어보는 해발 4천 7백여 미터의 산이 하나 있습니다.

볼리비아 국기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세로리코, 일명 '부유한 산'입니다.

16세기, 볼리비아를 지배했던 스페인이 2백년 넘게 이곳에서 은을 수탈해가 초기 유럽 자본주의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유럽 부의 역사와 노예 노동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으로, 지난 198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광산 체험을 하기 위해 찾아오고 지금도 이 지역에서 은과 주석, 아연 등을 캐며 생계를 유지하는 광부들의 수만 만 5천여 명에 이릅니다.

<인터뷰> 호세 안토니오 라미노(광산 기술자) : "광산업은 포토시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입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제 친구들도 대부분 광부 일을 하고 있어요."

포토시 시내에서 차를 타고 오른 지 20여 분, 세로리코 정상에 닿았습니다.

산 아래에서 봤을 때는 봉우리가 삼각형 모양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산봉우리 곳곳이 무너져 땅속으로 꺼져버렸습니다.

<인터뷰> 셀소 크루즈 구티에레스(광부) : "세로리코가 이런 모양인데요. 땅꺼짐이 일어나면 언젠가는 여기가 평평해 질 거예요."

실제로, 스페인 식민 지배 시절 세로리코의 높이는 5천 2백미터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4백 미터 넘게 낮아졌습니다.

포토시의 한 대학이 제공한 영상입니다.

땅꺼짐이 일어난 곳 아래 쪽에 거대한 빈 공간이 생겼습니다.

조사 결과, 깊이가 3백 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볼리비아 정부는 2년 전부터 이렇게 땅꺼짐이 계속되고 있는 세로리코 봉우리 부분에 시멘트를 계속 퍼붓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암반을 안정화시키고 또 내부 붕괴를 막아보겠다는 건데요.

하지만 보시는 것처럼 땅꺼짐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세계문화유산이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로리코 정상에서 3백여 미터 아래, 그러니까 해발 4천 4백미터에 있는 한 광산입니다.

직접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이곳으로부터 3백여 미터 위가 땅꺼짐이 계속되고 있는 세로리코 정상인데요. 볼리비아 정부는 세로리코와 또 광부들의 인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 해발고도 4400미터 이상에서의 채굴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1500명 넘는 광부들이 금지된 공간에서 오늘도 위험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니 훌리안 : "위쪽에서 돌들이 굴러 떨어지면 아주 무서워요. 그래도 계속 일을 해야 해요. 다른 일자리가 없으니까요."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하면 360달러, 우리 돈 4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데 이 금액은 최저 임금보다 2배 이상 많습니다.

<인터뷰> 곤살로 구띠에레스 : "여기서 일하는 것은 위험하죠.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매일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세로리코의 운명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입니다.

세로리코를 소유한 볼리비아 국영 광산회사 '꼬미볼'은 당시 은 가격이 급락하자 광산 운영에서 손을 뗐습니다.

대신 채굴 허가권을 민간업자들의 조직인 40여 개 협동조합과 외국 광산 회사들에게 나눠주고 수수료를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협동조합 등은 광물을 캐는만큼 돈을 벌다보니 돈벌이가 급한 광부들을 고용해 마구잡이 채굴을 했고, 세로리코를 소유한 꼬미볼은 협동조합 등에 대한 관리 감독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세로리코의 속은 무분별한 채굴로 이른바 '개미굴'이 돼 버렸습니다.

<인터뷰> 조니 알리(포토시 시민위원회 대표) : "정부는 세로리코 보호를 위해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세로리코를 훼손하는 공범자가 바로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들이 광물을 많이 캐야 정부가 챙기는 수수료도 늘어나기 때문에 정부가 세로리코 파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최근엔 주석 가격이 올라가면서 무분별한 채굴이 더욱 심해졌고 땅꺼짐의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인터뷰> 레네 바까플로레스(광산 기술자) : "만약 협동조합들이 지금처럼 채굴하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땅꺼짐은 더 넓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수천 명의 광부들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볼리비아 당국은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로리코 정상과 가까운 광산을 폐쇄하거나 광부들을 다른 광산으로 이주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가 광부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슬그머니 물러섰습니다.

<인터뷰> 데니스 마띤(포토시 꼬미볼 총책임자) : "참 어려운 문제예요. 광부 이주 집행을 하려 했지만, 광부들이 우리 사무실로 쳐들어왔어요. 그래서 사무실이 하루종일 마비된 적도 있어요."

유네스코는 지난 6월 '세계문화유산'인 세로리코의 지위를 이른바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강등시켰습니다.

지나친 채굴로 광산의 역사적 경관이 훼손됐다는 겁니다.

세로리코는 1년에 1센티미터씩 내려앉고 있습니다.

광산업자들에게 세로리코를 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볼리비아 정부와 세로리코를 헤집으며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된 광산업자들..

이들 앞에서, 세계문화유산 세로리코는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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