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가 만난 사람] 정우성 “저도 이제는 아이를 키워야 되겠죠”
입력 2014.12.12 (08:23)
수정 2014.12.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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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격주로 준비되는 앵커가 만난 사람 시간입니다.
이번에는요, 최근에 네팔에 다녀오고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다는 한 톱 스타와의 만남인데요.
남자가 봐도 정말 잘 생긴 배우 정우성 씹니다.
그런데 이 분이 최근 더 멋있어지신 것 같아요.
연기 말고, 특별한 역할 하나가 더해졌는데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리포트>
카리스마와 깊이 있는 눈빛으로 언제 어디서나 대중을 사로잡는 배우 정우성!
그저 잘 생기고 멋진 스타를 넘어 인간 정우성으로서 진솔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녹취> “안녕하세요.”
<녹취> “반갑습니다.”
<녹취> “실물이 훨씬 더 멋지신 것 같아요.”
<녹취> “이렇게 키가 크신 줄 몰랐어요.”
<녹취> “네..”
<녹취> “빨리 앉읍시다.”
<녹취> "정우성씨가 11월 초에 어딜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녹취> "네, 네팔에 다녀왔습니다.”
<녹취> “어떤 일로 가신 거죠?"
<녹취> "지난 5월에 UNHCR, UN난민기구 한국 대표부 명예대사가 되면서 캠프에 실질적으로 방문할 기회를 가지게 돼서 네팔에 다녀오게 됐습니다."
최근 많이 회자가 됐었는데요, 지난 2006년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개설된 후 우리나라에서 명예사절이 탄생한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내년 6월엔 친선대사로 임명될 예정이라네요.
<녹취> “그런데 정확히 어떤 일들을 하는 거예요? 명예대사가?"
<녹취> "주로 한국과 그 주변국의 난민 실태와 난민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들에 대한 후원과 관심을 독려하는 것이 주목적이고 임무죠."
<녹취> “우리나라에도 난민들이 있더라고요.”
<녹취> “저도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어요?’ 했는데 8천여 명의 난민 보호대상자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이 파키스탄 쪽에서 넘어온 난민들이고, 또 시리아에서 쪽에서 넘어온 난민들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 여러분들은 알고 계셨나요?
우리나라는 2001년 처음으로 난민을 받아들였고, 난민 보호법도 발효됐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박해와 빈곤, 내전 등으로 갈 곳을 잃은 난민의 수는 5천만 명에 이릅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보호하고 돕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녹취> "네팔에 가셔서 아이들 직접 만나고 오셨잖아요. 그 중에서 가장 기억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녹취> "한 노인 분이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이 지역에 손님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그런 심정이셨나 봐요. 아파도 아프다는 얘기를 안 하고 끙끙 앓으며 본인들 스스로가 이겨내려고, 그러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웃으세요. 어려운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녹취> “(사진으로 보면) 표정이 되게 밝아 보여요, 다들.”
<녹취> “네. 아이들은 사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모르잖아요. 인식이 안 되잖아요. 나라가 없고 시민권이 없다는 게 이 아이들에게는 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볼 때 참 많은 생각들이 교감이 되더라고요.”
<녹취> “파란 팔찌도 (난민을 돕자는 의미죠?)”
<녹취> “네. UNHCR 한국 대표부에서 만든 건데, '두 손 모아 난민 보호'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들었어요.”
<녹취> “항상 차고 다니시는 거죠?”
<녹취> “항상은 못해요.”
<녹취> “(네팔을 다녀오고) 제일 많이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녹취> “세계관이 바뀐 거 같아요, (네팔) 갔다 오고 나서. UNHCR 직원 분들을 봤을 때도 세상을 저렇게 남들과 나누기 위해서 살고 있는 분들도 있구나... 결국에는 이제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 그리고 나눔이 이들과의 아름다운 삶을 같이 할 수 있는 동기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되었다는데요. 더 낮은 자세로 난민들에게 다가갔던 그는, 스타가 아닌 자상한 한사람이었습니다.
<녹취> “제가 난민촌을 방문했을 때 그 난민촌에 청소년들이 제가 배우라고 작은 연극을 준비해서 보여줬어요. 부탄의 난민들이 어떤 이유로 해서 네팔의 난민촌까지 오게 됐는지 하는 (내용인데) 표현들이 너무 순수하니까 어떤 연기의 기술과 상관없이 가슴이 뭉클하게 와 닿더라고요. 그 와중에 ‘연극 잘 봤어요'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도 보고 뭐도 보고 했다고 하면서 자기 꿈이 배우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를 만났죠.”
<녹취> “어떤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 친구한테.”
<녹취> “어떤 어설픈 얘기를 해줄 순 없잖아요. 연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이런 거 보다는...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신분이니까... 그 꿈을 갖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가슴이 짠하죠.”
<녹취> “안타깝고...”
<녹취> “예. 희망을 잃지 말라는 그냥 그 얘기를 해 줄 수밖에 없는 거 같았어요.”
<녹취> “원래부터도 이런 쪽에 나누고 봉사하고 아이들 도와주고 키워주는 쪽에 관심이 많았나요?”
<녹취> “아이를 키워주는 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요.”
<녹취> “아이는 제가 키웁니다.”
<녹취> “아이를, 이제 저도 아이를 키워야겠죠. 그렇죠. 어릴 적에 막연히‘내가 어떤 큰 배우가 되면 나도 이런 활동을 해야지’하는 스스로의 목표도 만들어놨었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이런 긴 경력의 시간과 함께 무게감이란 게 생기잖아요. 또 저라는 배우의 사회적 신임도도 생기고 이런 것들을 UNHCR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은 시기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녹취> “어깨가 무겁진 않으세요?”
<녹취> “사실 네팔 가기 전에 전날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녹취> “왜요?”
<녹취> “‘이게 지금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 충분히 마음의 준비가 된 건가?’ 좋은 일이라는 건 내 스스로가 자신이 있어야지 그것도 좋은 일인데. '너 정말 준비됐니?’라고"
<녹취> "제가 스스로 많이 물었어요. 어떤 활동에 대한 부담감이라기 보다는 지속성을 가져야 되잖아요. 이런 활동을 시작했을 때 단발성으로 끝나서도 안 되고 저 스스로도 10년, 또 20년 할 수 있는, 내가 그 정도를 할 수 있는 그런 어떤 배우로서 계속해서 자리하는 게 또 하나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죠."
지난 20년간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으로 난민보호에도 힘쓰는 정우성씨의 모습, 기대해 봅니다.
격주로 준비되는 앵커가 만난 사람 시간입니다.
이번에는요, 최근에 네팔에 다녀오고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다는 한 톱 스타와의 만남인데요.
남자가 봐도 정말 잘 생긴 배우 정우성 씹니다.
그런데 이 분이 최근 더 멋있어지신 것 같아요.
연기 말고, 특별한 역할 하나가 더해졌는데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리포트>
카리스마와 깊이 있는 눈빛으로 언제 어디서나 대중을 사로잡는 배우 정우성!
그저 잘 생기고 멋진 스타를 넘어 인간 정우성으로서 진솔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녹취> “안녕하세요.”
<녹취> “반갑습니다.”
<녹취> “실물이 훨씬 더 멋지신 것 같아요.”
<녹취> “이렇게 키가 크신 줄 몰랐어요.”
<녹취> “네..”
<녹취> “빨리 앉읍시다.”
<녹취> "정우성씨가 11월 초에 어딜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녹취> "네, 네팔에 다녀왔습니다.”
<녹취> “어떤 일로 가신 거죠?"
<녹취> "지난 5월에 UNHCR, UN난민기구 한국 대표부 명예대사가 되면서 캠프에 실질적으로 방문할 기회를 가지게 돼서 네팔에 다녀오게 됐습니다."
최근 많이 회자가 됐었는데요, 지난 2006년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개설된 후 우리나라에서 명예사절이 탄생한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내년 6월엔 친선대사로 임명될 예정이라네요.
<녹취> “그런데 정확히 어떤 일들을 하는 거예요? 명예대사가?"
<녹취> "주로 한국과 그 주변국의 난민 실태와 난민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들에 대한 후원과 관심을 독려하는 것이 주목적이고 임무죠."
<녹취> “우리나라에도 난민들이 있더라고요.”
<녹취> “저도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어요?’ 했는데 8천여 명의 난민 보호대상자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이 파키스탄 쪽에서 넘어온 난민들이고, 또 시리아에서 쪽에서 넘어온 난민들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 여러분들은 알고 계셨나요?
우리나라는 2001년 처음으로 난민을 받아들였고, 난민 보호법도 발효됐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박해와 빈곤, 내전 등으로 갈 곳을 잃은 난민의 수는 5천만 명에 이릅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보호하고 돕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녹취> "네팔에 가셔서 아이들 직접 만나고 오셨잖아요. 그 중에서 가장 기억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녹취> "한 노인 분이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이 지역에 손님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그런 심정이셨나 봐요. 아파도 아프다는 얘기를 안 하고 끙끙 앓으며 본인들 스스로가 이겨내려고, 그러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웃으세요. 어려운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녹취> “(사진으로 보면) 표정이 되게 밝아 보여요, 다들.”
<녹취> “네. 아이들은 사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모르잖아요. 인식이 안 되잖아요. 나라가 없고 시민권이 없다는 게 이 아이들에게는 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볼 때 참 많은 생각들이 교감이 되더라고요.”
<녹취> “파란 팔찌도 (난민을 돕자는 의미죠?)”
<녹취> “네. UNHCR 한국 대표부에서 만든 건데, '두 손 모아 난민 보호'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들었어요.”
<녹취> “항상 차고 다니시는 거죠?”
<녹취> “항상은 못해요.”
<녹취> “(네팔을 다녀오고) 제일 많이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녹취> “세계관이 바뀐 거 같아요, (네팔) 갔다 오고 나서. UNHCR 직원 분들을 봤을 때도 세상을 저렇게 남들과 나누기 위해서 살고 있는 분들도 있구나... 결국에는 이제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 그리고 나눔이 이들과의 아름다운 삶을 같이 할 수 있는 동기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되었다는데요. 더 낮은 자세로 난민들에게 다가갔던 그는, 스타가 아닌 자상한 한사람이었습니다.
<녹취> “제가 난민촌을 방문했을 때 그 난민촌에 청소년들이 제가 배우라고 작은 연극을 준비해서 보여줬어요. 부탄의 난민들이 어떤 이유로 해서 네팔의 난민촌까지 오게 됐는지 하는 (내용인데) 표현들이 너무 순수하니까 어떤 연기의 기술과 상관없이 가슴이 뭉클하게 와 닿더라고요. 그 와중에 ‘연극 잘 봤어요'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도 보고 뭐도 보고 했다고 하면서 자기 꿈이 배우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를 만났죠.”
<녹취> “어떤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 친구한테.”
<녹취> “어떤 어설픈 얘기를 해줄 순 없잖아요. 연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이런 거 보다는...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신분이니까... 그 꿈을 갖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가슴이 짠하죠.”
<녹취> “안타깝고...”
<녹취> “예. 희망을 잃지 말라는 그냥 그 얘기를 해 줄 수밖에 없는 거 같았어요.”
<녹취> “원래부터도 이런 쪽에 나누고 봉사하고 아이들 도와주고 키워주는 쪽에 관심이 많았나요?”
<녹취> “아이를 키워주는 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요.”
<녹취> “아이는 제가 키웁니다.”
<녹취> “아이를, 이제 저도 아이를 키워야겠죠. 그렇죠. 어릴 적에 막연히‘내가 어떤 큰 배우가 되면 나도 이런 활동을 해야지’하는 스스로의 목표도 만들어놨었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이런 긴 경력의 시간과 함께 무게감이란 게 생기잖아요. 또 저라는 배우의 사회적 신임도도 생기고 이런 것들을 UNHCR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은 시기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녹취> “어깨가 무겁진 않으세요?”
<녹취> “사실 네팔 가기 전에 전날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녹취> “왜요?”
<녹취> “‘이게 지금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 충분히 마음의 준비가 된 건가?’ 좋은 일이라는 건 내 스스로가 자신이 있어야지 그것도 좋은 일인데. '너 정말 준비됐니?’라고"
<녹취> "제가 스스로 많이 물었어요. 어떤 활동에 대한 부담감이라기 보다는 지속성을 가져야 되잖아요. 이런 활동을 시작했을 때 단발성으로 끝나서도 안 되고 저 스스로도 10년, 또 20년 할 수 있는, 내가 그 정도를 할 수 있는 그런 어떤 배우로서 계속해서 자리하는 게 또 하나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죠."
지난 20년간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으로 난민보호에도 힘쓰는 정우성씨의 모습,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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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12-12 08:30:53
- 수정2014-12-12 15:00:53
<앵커 멘트>
격주로 준비되는 앵커가 만난 사람 시간입니다.
이번에는요, 최근에 네팔에 다녀오고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다는 한 톱 스타와의 만남인데요.
남자가 봐도 정말 잘 생긴 배우 정우성 씹니다.
그런데 이 분이 최근 더 멋있어지신 것 같아요.
연기 말고, 특별한 역할 하나가 더해졌는데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리포트>
카리스마와 깊이 있는 눈빛으로 언제 어디서나 대중을 사로잡는 배우 정우성!
그저 잘 생기고 멋진 스타를 넘어 인간 정우성으로서 진솔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녹취> “안녕하세요.”
<녹취> “반갑습니다.”
<녹취> “실물이 훨씬 더 멋지신 것 같아요.”
<녹취> “이렇게 키가 크신 줄 몰랐어요.”
<녹취> “네..”
<녹취> “빨리 앉읍시다.”
<녹취> "정우성씨가 11월 초에 어딜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녹취> "네, 네팔에 다녀왔습니다.”
<녹취> “어떤 일로 가신 거죠?"
<녹취> "지난 5월에 UNHCR, UN난민기구 한국 대표부 명예대사가 되면서 캠프에 실질적으로 방문할 기회를 가지게 돼서 네팔에 다녀오게 됐습니다."
최근 많이 회자가 됐었는데요, 지난 2006년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개설된 후 우리나라에서 명예사절이 탄생한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내년 6월엔 친선대사로 임명될 예정이라네요.
<녹취> “그런데 정확히 어떤 일들을 하는 거예요? 명예대사가?"
<녹취> "주로 한국과 그 주변국의 난민 실태와 난민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들에 대한 후원과 관심을 독려하는 것이 주목적이고 임무죠."
<녹취> “우리나라에도 난민들이 있더라고요.”
<녹취> “저도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어요?’ 했는데 8천여 명의 난민 보호대상자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이 파키스탄 쪽에서 넘어온 난민들이고, 또 시리아에서 쪽에서 넘어온 난민들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 여러분들은 알고 계셨나요?
우리나라는 2001년 처음으로 난민을 받아들였고, 난민 보호법도 발효됐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박해와 빈곤, 내전 등으로 갈 곳을 잃은 난민의 수는 5천만 명에 이릅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보호하고 돕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녹취> "네팔에 가셔서 아이들 직접 만나고 오셨잖아요. 그 중에서 가장 기억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녹취> "한 노인 분이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이 지역에 손님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그런 심정이셨나 봐요. 아파도 아프다는 얘기를 안 하고 끙끙 앓으며 본인들 스스로가 이겨내려고, 그러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웃으세요. 어려운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녹취> “(사진으로 보면) 표정이 되게 밝아 보여요, 다들.”
<녹취> “네. 아이들은 사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모르잖아요. 인식이 안 되잖아요. 나라가 없고 시민권이 없다는 게 이 아이들에게는 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볼 때 참 많은 생각들이 교감이 되더라고요.”
<녹취> “파란 팔찌도 (난민을 돕자는 의미죠?)”
<녹취> “네. UNHCR 한국 대표부에서 만든 건데, '두 손 모아 난민 보호'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들었어요.”
<녹취> “항상 차고 다니시는 거죠?”
<녹취> “항상은 못해요.”
<녹취> “(네팔을 다녀오고) 제일 많이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녹취> “세계관이 바뀐 거 같아요, (네팔) 갔다 오고 나서. UNHCR 직원 분들을 봤을 때도 세상을 저렇게 남들과 나누기 위해서 살고 있는 분들도 있구나... 결국에는 이제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 그리고 나눔이 이들과의 아름다운 삶을 같이 할 수 있는 동기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되었다는데요. 더 낮은 자세로 난민들에게 다가갔던 그는, 스타가 아닌 자상한 한사람이었습니다.
<녹취> “제가 난민촌을 방문했을 때 그 난민촌에 청소년들이 제가 배우라고 작은 연극을 준비해서 보여줬어요. 부탄의 난민들이 어떤 이유로 해서 네팔의 난민촌까지 오게 됐는지 하는 (내용인데) 표현들이 너무 순수하니까 어떤 연기의 기술과 상관없이 가슴이 뭉클하게 와 닿더라고요. 그 와중에 ‘연극 잘 봤어요'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도 보고 뭐도 보고 했다고 하면서 자기 꿈이 배우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를 만났죠.”
<녹취> “어떤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 친구한테.”
<녹취> “어떤 어설픈 얘기를 해줄 순 없잖아요. 연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이런 거 보다는...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신분이니까... 그 꿈을 갖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가슴이 짠하죠.”
<녹취> “안타깝고...”
<녹취> “예. 희망을 잃지 말라는 그냥 그 얘기를 해 줄 수밖에 없는 거 같았어요.”
<녹취> “원래부터도 이런 쪽에 나누고 봉사하고 아이들 도와주고 키워주는 쪽에 관심이 많았나요?”
<녹취> “아이를 키워주는 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요.”
<녹취> “아이는 제가 키웁니다.”
<녹취> “아이를, 이제 저도 아이를 키워야겠죠. 그렇죠. 어릴 적에 막연히‘내가 어떤 큰 배우가 되면 나도 이런 활동을 해야지’하는 스스로의 목표도 만들어놨었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이런 긴 경력의 시간과 함께 무게감이란 게 생기잖아요. 또 저라는 배우의 사회적 신임도도 생기고 이런 것들을 UNHCR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은 시기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녹취> “어깨가 무겁진 않으세요?”
<녹취> “사실 네팔 가기 전에 전날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녹취> “왜요?”
<녹취> “‘이게 지금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 충분히 마음의 준비가 된 건가?’ 좋은 일이라는 건 내 스스로가 자신이 있어야지 그것도 좋은 일인데. '너 정말 준비됐니?’라고"
<녹취> "제가 스스로 많이 물었어요. 어떤 활동에 대한 부담감이라기 보다는 지속성을 가져야 되잖아요. 이런 활동을 시작했을 때 단발성으로 끝나서도 안 되고 저 스스로도 10년, 또 20년 할 수 있는, 내가 그 정도를 할 수 있는 그런 어떤 배우로서 계속해서 자리하는 게 또 하나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죠."
지난 20년간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으로 난민보호에도 힘쓰는 정우성씨의 모습, 기대해 봅니다.
격주로 준비되는 앵커가 만난 사람 시간입니다.
이번에는요, 최근에 네팔에 다녀오고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다는 한 톱 스타와의 만남인데요.
남자가 봐도 정말 잘 생긴 배우 정우성 씹니다.
그런데 이 분이 최근 더 멋있어지신 것 같아요.
연기 말고, 특별한 역할 하나가 더해졌는데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리포트>
카리스마와 깊이 있는 눈빛으로 언제 어디서나 대중을 사로잡는 배우 정우성!
그저 잘 생기고 멋진 스타를 넘어 인간 정우성으로서 진솔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녹취> “안녕하세요.”
<녹취> “반갑습니다.”
<녹취> “실물이 훨씬 더 멋지신 것 같아요.”
<녹취> “이렇게 키가 크신 줄 몰랐어요.”
<녹취> “네..”
<녹취> “빨리 앉읍시다.”
<녹취> "정우성씨가 11월 초에 어딜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녹취> "네, 네팔에 다녀왔습니다.”
<녹취> “어떤 일로 가신 거죠?"
<녹취> "지난 5월에 UNHCR, UN난민기구 한국 대표부 명예대사가 되면서 캠프에 실질적으로 방문할 기회를 가지게 돼서 네팔에 다녀오게 됐습니다."
최근 많이 회자가 됐었는데요, 지난 2006년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개설된 후 우리나라에서 명예사절이 탄생한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내년 6월엔 친선대사로 임명될 예정이라네요.
<녹취> “그런데 정확히 어떤 일들을 하는 거예요? 명예대사가?"
<녹취> "주로 한국과 그 주변국의 난민 실태와 난민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들에 대한 후원과 관심을 독려하는 것이 주목적이고 임무죠."
<녹취> “우리나라에도 난민들이 있더라고요.”
<녹취> “저도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어요?’ 했는데 8천여 명의 난민 보호대상자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이 파키스탄 쪽에서 넘어온 난민들이고, 또 시리아에서 쪽에서 넘어온 난민들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 여러분들은 알고 계셨나요?
우리나라는 2001년 처음으로 난민을 받아들였고, 난민 보호법도 발효됐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박해와 빈곤, 내전 등으로 갈 곳을 잃은 난민의 수는 5천만 명에 이릅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보호하고 돕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녹취> "네팔에 가셔서 아이들 직접 만나고 오셨잖아요. 그 중에서 가장 기억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녹취> "한 노인 분이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이 지역에 손님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그런 심정이셨나 봐요. 아파도 아프다는 얘기를 안 하고 끙끙 앓으며 본인들 스스로가 이겨내려고, 그러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웃으세요. 어려운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녹취> “(사진으로 보면) 표정이 되게 밝아 보여요, 다들.”
<녹취> “네. 아이들은 사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모르잖아요. 인식이 안 되잖아요. 나라가 없고 시민권이 없다는 게 이 아이들에게는 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볼 때 참 많은 생각들이 교감이 되더라고요.”
<녹취> “파란 팔찌도 (난민을 돕자는 의미죠?)”
<녹취> “네. UNHCR 한국 대표부에서 만든 건데, '두 손 모아 난민 보호'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들었어요.”
<녹취> “항상 차고 다니시는 거죠?”
<녹취> “항상은 못해요.”
<녹취> “(네팔을 다녀오고) 제일 많이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녹취> “세계관이 바뀐 거 같아요, (네팔) 갔다 오고 나서. UNHCR 직원 분들을 봤을 때도 세상을 저렇게 남들과 나누기 위해서 살고 있는 분들도 있구나... 결국에는 이제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 그리고 나눔이 이들과의 아름다운 삶을 같이 할 수 있는 동기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되었다는데요. 더 낮은 자세로 난민들에게 다가갔던 그는, 스타가 아닌 자상한 한사람이었습니다.
<녹취> “제가 난민촌을 방문했을 때 그 난민촌에 청소년들이 제가 배우라고 작은 연극을 준비해서 보여줬어요. 부탄의 난민들이 어떤 이유로 해서 네팔의 난민촌까지 오게 됐는지 하는 (내용인데) 표현들이 너무 순수하니까 어떤 연기의 기술과 상관없이 가슴이 뭉클하게 와 닿더라고요. 그 와중에 ‘연극 잘 봤어요'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도 보고 뭐도 보고 했다고 하면서 자기 꿈이 배우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를 만났죠.”
<녹취> “어떤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 친구한테.”
<녹취> “어떤 어설픈 얘기를 해줄 순 없잖아요. 연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이런 거 보다는...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신분이니까... 그 꿈을 갖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가슴이 짠하죠.”
<녹취> “안타깝고...”
<녹취> “예. 희망을 잃지 말라는 그냥 그 얘기를 해 줄 수밖에 없는 거 같았어요.”
<녹취> “원래부터도 이런 쪽에 나누고 봉사하고 아이들 도와주고 키워주는 쪽에 관심이 많았나요?”
<녹취> “아이를 키워주는 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요.”
<녹취> “아이는 제가 키웁니다.”
<녹취> “아이를, 이제 저도 아이를 키워야겠죠. 그렇죠. 어릴 적에 막연히‘내가 어떤 큰 배우가 되면 나도 이런 활동을 해야지’하는 스스로의 목표도 만들어놨었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이런 긴 경력의 시간과 함께 무게감이란 게 생기잖아요. 또 저라는 배우의 사회적 신임도도 생기고 이런 것들을 UNHCR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은 시기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녹취> “어깨가 무겁진 않으세요?”
<녹취> “사실 네팔 가기 전에 전날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녹취> “왜요?”
<녹취> “‘이게 지금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 충분히 마음의 준비가 된 건가?’ 좋은 일이라는 건 내 스스로가 자신이 있어야지 그것도 좋은 일인데. '너 정말 준비됐니?’라고"
<녹취> "제가 스스로 많이 물었어요. 어떤 활동에 대한 부담감이라기 보다는 지속성을 가져야 되잖아요. 이런 활동을 시작했을 때 단발성으로 끝나서도 안 되고 저 스스로도 10년, 또 20년 할 수 있는, 내가 그 정도를 할 수 있는 그런 어떤 배우로서 계속해서 자리하는 게 또 하나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죠."
지난 20년간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으로 난민보호에도 힘쓰는 정우성씨의 모습,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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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은 기자 yeya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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