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김정은 시대 열렸다”…북 어디로 가나?

입력 2014.12.20 (07:50) 수정 2014.12.2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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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한반도입니다.

김정은은 집권 3년 동안 권력층엔 ‘공포정치’를 주민에겐 ‘애민정치’를 부각시키며 ‘유일 영도 체계’ 확립에 몰두해 왔는데요.

이로 인해 단기적인 정치 안정은 이뤘지만, 국제사회 고립 등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송지현 리포터가 김정일 3주기, 김정은 시대 출범의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녹취> 주민 : “여기 만수대언덕에 오를 때마다 금시라도 아버지 장군님께서 정말이지 우리들의 이 손을 따뜻이 잡아주실 것만 같습니다.”

<녹취> 주민 :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한생은 오로지 인민을 위한 한생이었습니다.”

12시 정각, 북한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주민들이 일제히 허리를 90도로 숙인 채 묵념을 합니다.

달리던 차량도, 철도 위 열차도 모두 운행을 멈춥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7일)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리설주 동지와 함께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서거 3돌에 즈음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셨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습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부인 리설주와 당정군의 고위간부가 함께 했습니다.

이어 진행된 중앙 추모대회, 영하 10도가 넘는 혹한 속에 수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추모대회는 오히려 김정은에 대한 충성 맹세 대회에 가까웠습니다.

<녹취> 최룡해(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영도를 충정 다해 받들어 드팀없는 (흔들림 없는) 의지로 심장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김정일 사망 3년, 3주기를 계기로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의 막이 오른 겁니다.

<녹취> 조선중앙TV(2011년 12월 19일)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100,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 시신 앞에서 조문객을 맞으며 눈물을 쏟아내던 28살의 젊은 후계자 김정은.

김정일 사망 13일 만에 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김정은은 이듬해 노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 제1위원장에 잇따라 취임하며 채 넉 달이 안 돼 북한 당정군의 최고 지도자에 올랐습니다.

20대 어린 후계자의 초고속 세습을 도운 것은 '운구차 7인방'으로 상징되는 파워 엘리트였습니다.

김정은을 선두로 고모부 장성택과 원로 김기남, 최태복, 군부 실세인 리영호와 김영춘, 김정각과 우동측이 운구차를 호위하며, 김정은 시대의 핵심 실세로 평가됐습니다.

그러나 운구차 7인방 중 리영호를 비롯한 군부 실세 네 명은 1년이 안 돼 곧 숙청되거나 퇴진당하며 권력에서 멀어졌습니다.

여든 살을 넘긴 김기남과 최태복을 제외하고 남은 인물은 장성택 뿐.

<녹취> 김정은 신년사(지난 1월) : "우리 당은 지난해에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투쟁의 벅찬 시기에 당 안에 배겨있던 종파오물을 제거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3대 세습의 일등공신으로 위세를 떨쳤던 장성택 역시숙청의 칼바람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장성택의 처형은 측근들에 대한 이른바 '잔당청산'으로 이어졌고, 장성택의 ‘그림자 지우기’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갑자기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 그런 선상에서 어린 나이, 권력 투쟁의 경험도 없는 상황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장성택 처형이라든지, 이영호 해임이라든지 이러한 공포정치를 통해가지고 충성심을 일으키면서 체제를 결속했고."

김정일 3주기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는 김정은을 중심으로 최룡해와 황병서, 현영철이 왼쪽에, 김영남과 박봉주 등이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앞으로 김정은 시대를 이끌 핵심 인사들이 모두 포진했는데요.

김정일 사망 직후의 공식 권력 서열과 비교해보면, 최룡해가 18위에서 3위로, 황병서가 무려 124위에서 5위까지 올라섰고, 김경희와 장성택은 권력의 중심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인 최현의 아들, 최룡해 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정은 시대의 최고 실세로 떠올랐습니다.

최룡해를 중심으로 빨치산 2세들이 잇따라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 같은 신분제 사회에서 항일 빨치산 2세들은 일반 간부들보다 훨씬 더 우월적인 지위를 누려왔는데. 최룡해는 당중앙위원회 조직비서라는 과거에 김정일이 오랫동안 차지했던 핵심적인 지위에 임명이 된 데다가 정치국 상무위원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지금 김정은 시대의 최대 핵심 실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1년 넘게 행적이 묘연한 김경희의 공백은 여동생 '김여정'이 채우고 있습니다.

최근엔 '노동당 부부장'이라는 차관급의 공식 직함을 맡아 오빠 김정은을 밀착 보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병서와 함께 장성택 처형을 주도했던 김원홍과 김양건, 한광상 등 이른바 '삼지연 모임' 참석자들이 이들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백두혈통과 빨치산 2세들을 주축으로 한 '김정은 시대'의 친정체제가 구축된 것입니다.

<녹취> 김정일(1992년 북한군 창설 기념 열병식) :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

김일성 사후 김정일 시대를 이끌었던 '선군정치'.

김정은 집권을 전후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당 정치국의 부활 등 유명무실했던 노동당의 기능이 상당 부분 정상화됐다는 점입니다.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1년 12월 30일, 긴급 소집된 노동당 정치국 회의는 김정일의 유훈임을 들어 김정은을 최고사령관에 추대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주체 100, 2011년 10월 8일 유훈에 따라 조선노동자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높이 모시었습니다.”

그리고 넉 달 뒤 제4차 당대표자 회의에서는 김정은의 제1비서 추대와 함께 당 규약 개정 및 당 조직 개편이 단행됐습니다.

이후 북한의 주요 정책은 당의 공식회의 절차를 거쳐 발표됩니다.

최룡해와 황병서, 당 출신의 군 총정치국장 임명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선당 정치’는 군 길들이기로 이어졌습니다.

집권 3년 동안 군부 인사만 총 30여 차례, 총참모장과 작전국장은 각각 네 차례와 세 차례 얼굴이 바뀌었고, 인민무력부장은 무려 5번이나 교체됐습니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 체제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을 신봉하는 그런 체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군부엘리트들을 확고하게 장악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3년 동안 권력층엔 '공포정치'로, 주민에겐 이른바 '애민정치'를 부각시키며 1인 권력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 개막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요.

가장 큰 걸림돌은 꼬일 대로 꼬여 있는 대외관계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2월) : “2월 12일 북부 지하 핵 시험장에서 제3차 지하 핵 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지난해 2월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고립은 더욱 심화됐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는 사실상 단절됐고, 혈맹이던 중국 관계마저 소원해졌습니다.

핵개발과 경제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았지만 핵 도발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끊기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겁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북한이 선택한 것은 외교 다변화 카드입니다.

일본과는 납북자 문제를 고리로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고, 러시아와는 특사 파견에 각종 경협 사업을 추진하며 밀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핵 문제에 인권 문제까지 겹쳐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는 양상입니다.

<인터뷰> 김진하(통일연구원 국제전략센터 소장) : "북한이 처해있는 경제적인 난국이라든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감안해 볼 때 북핵 문제라는 근본적인 모순 점 외에도 하여튼 정권의 예측 가능성을 굉장히 줄이는 그런 모습을 아주 거시적으로 볼 때는 가지고 왔다."

집권 3년간 냉온탕을 오간 남북관계 역시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분단 70주년과 노동당 창건 70년인 내년, 북한도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는 점은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인터뷰>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북한은 이러한 분단 광복 70주기를 뛰어 넘는 당 창건 70주년이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정은 시대를 명실상부하게 선포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안정화 되고 대외관계가 안정화 되어야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류협력 제안을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합니다."

집권 3년, 공포정치와 이른바 애민정치를 부각시켜 체제 안정을 도모해온 김정은의 북한.

최우방인 쿠바마저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나선 상황에서 국제적 고립 탈피를 위한 핵 포기와 인권문제 개선 등,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특단의 조치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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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20 07:35:58
    • 수정2014-12-20 08: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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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한반도입니다.

김정은은 집권 3년 동안 권력층엔 ‘공포정치’를 주민에겐 ‘애민정치’를 부각시키며 ‘유일 영도 체계’ 확립에 몰두해 왔는데요.

이로 인해 단기적인 정치 안정은 이뤘지만, 국제사회 고립 등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송지현 리포터가 김정일 3주기, 김정은 시대 출범의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녹취> 주민 : “여기 만수대언덕에 오를 때마다 금시라도 아버지 장군님께서 정말이지 우리들의 이 손을 따뜻이 잡아주실 것만 같습니다.”

<녹취> 주민 :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한생은 오로지 인민을 위한 한생이었습니다.”

12시 정각, 북한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주민들이 일제히 허리를 90도로 숙인 채 묵념을 합니다.

달리던 차량도, 철도 위 열차도 모두 운행을 멈춥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7일)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리설주 동지와 함께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서거 3돌에 즈음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셨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습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부인 리설주와 당정군의 고위간부가 함께 했습니다.

이어 진행된 중앙 추모대회, 영하 10도가 넘는 혹한 속에 수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추모대회는 오히려 김정은에 대한 충성 맹세 대회에 가까웠습니다.

<녹취> 최룡해(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영도를 충정 다해 받들어 드팀없는 (흔들림 없는) 의지로 심장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김정일 사망 3년, 3주기를 계기로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의 막이 오른 겁니다.

<녹취> 조선중앙TV(2011년 12월 19일)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100,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 시신 앞에서 조문객을 맞으며 눈물을 쏟아내던 28살의 젊은 후계자 김정은.

김정일 사망 13일 만에 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김정은은 이듬해 노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 제1위원장에 잇따라 취임하며 채 넉 달이 안 돼 북한 당정군의 최고 지도자에 올랐습니다.

20대 어린 후계자의 초고속 세습을 도운 것은 '운구차 7인방'으로 상징되는 파워 엘리트였습니다.

김정은을 선두로 고모부 장성택과 원로 김기남, 최태복, 군부 실세인 리영호와 김영춘, 김정각과 우동측이 운구차를 호위하며, 김정은 시대의 핵심 실세로 평가됐습니다.

그러나 운구차 7인방 중 리영호를 비롯한 군부 실세 네 명은 1년이 안 돼 곧 숙청되거나 퇴진당하며 권력에서 멀어졌습니다.

여든 살을 넘긴 김기남과 최태복을 제외하고 남은 인물은 장성택 뿐.

<녹취> 김정은 신년사(지난 1월) : "우리 당은 지난해에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투쟁의 벅찬 시기에 당 안에 배겨있던 종파오물을 제거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3대 세습의 일등공신으로 위세를 떨쳤던 장성택 역시숙청의 칼바람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장성택의 처형은 측근들에 대한 이른바 '잔당청산'으로 이어졌고, 장성택의 ‘그림자 지우기’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갑자기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 그런 선상에서 어린 나이, 권력 투쟁의 경험도 없는 상황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장성택 처형이라든지, 이영호 해임이라든지 이러한 공포정치를 통해가지고 충성심을 일으키면서 체제를 결속했고."

김정일 3주기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는 김정은을 중심으로 최룡해와 황병서, 현영철이 왼쪽에, 김영남과 박봉주 등이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앞으로 김정은 시대를 이끌 핵심 인사들이 모두 포진했는데요.

김정일 사망 직후의 공식 권력 서열과 비교해보면, 최룡해가 18위에서 3위로, 황병서가 무려 124위에서 5위까지 올라섰고, 김경희와 장성택은 권력의 중심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인 최현의 아들, 최룡해 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정은 시대의 최고 실세로 떠올랐습니다.

최룡해를 중심으로 빨치산 2세들이 잇따라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 같은 신분제 사회에서 항일 빨치산 2세들은 일반 간부들보다 훨씬 더 우월적인 지위를 누려왔는데. 최룡해는 당중앙위원회 조직비서라는 과거에 김정일이 오랫동안 차지했던 핵심적인 지위에 임명이 된 데다가 정치국 상무위원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지금 김정은 시대의 최대 핵심 실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1년 넘게 행적이 묘연한 김경희의 공백은 여동생 '김여정'이 채우고 있습니다.

최근엔 '노동당 부부장'이라는 차관급의 공식 직함을 맡아 오빠 김정은을 밀착 보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병서와 함께 장성택 처형을 주도했던 김원홍과 김양건, 한광상 등 이른바 '삼지연 모임' 참석자들이 이들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백두혈통과 빨치산 2세들을 주축으로 한 '김정은 시대'의 친정체제가 구축된 것입니다.

<녹취> 김정일(1992년 북한군 창설 기념 열병식) :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

김일성 사후 김정일 시대를 이끌었던 '선군정치'.

김정은 집권을 전후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당 정치국의 부활 등 유명무실했던 노동당의 기능이 상당 부분 정상화됐다는 점입니다.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1년 12월 30일, 긴급 소집된 노동당 정치국 회의는 김정일의 유훈임을 들어 김정은을 최고사령관에 추대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주체 100, 2011년 10월 8일 유훈에 따라 조선노동자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높이 모시었습니다.”

그리고 넉 달 뒤 제4차 당대표자 회의에서는 김정은의 제1비서 추대와 함께 당 규약 개정 및 당 조직 개편이 단행됐습니다.

이후 북한의 주요 정책은 당의 공식회의 절차를 거쳐 발표됩니다.

최룡해와 황병서, 당 출신의 군 총정치국장 임명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선당 정치’는 군 길들이기로 이어졌습니다.

집권 3년 동안 군부 인사만 총 30여 차례, 총참모장과 작전국장은 각각 네 차례와 세 차례 얼굴이 바뀌었고, 인민무력부장은 무려 5번이나 교체됐습니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 체제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을 신봉하는 그런 체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군부엘리트들을 확고하게 장악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3년 동안 권력층엔 '공포정치'로, 주민에겐 이른바 '애민정치'를 부각시키며 1인 권력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 개막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요.

가장 큰 걸림돌은 꼬일 대로 꼬여 있는 대외관계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2월) : “2월 12일 북부 지하 핵 시험장에서 제3차 지하 핵 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지난해 2월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고립은 더욱 심화됐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는 사실상 단절됐고, 혈맹이던 중국 관계마저 소원해졌습니다.

핵개발과 경제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았지만 핵 도발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끊기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겁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북한이 선택한 것은 외교 다변화 카드입니다.

일본과는 납북자 문제를 고리로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고, 러시아와는 특사 파견에 각종 경협 사업을 추진하며 밀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핵 문제에 인권 문제까지 겹쳐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는 양상입니다.

<인터뷰> 김진하(통일연구원 국제전략센터 소장) : "북한이 처해있는 경제적인 난국이라든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감안해 볼 때 북핵 문제라는 근본적인 모순 점 외에도 하여튼 정권의 예측 가능성을 굉장히 줄이는 그런 모습을 아주 거시적으로 볼 때는 가지고 왔다."

집권 3년간 냉온탕을 오간 남북관계 역시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분단 70주년과 노동당 창건 70년인 내년, 북한도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는 점은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인터뷰>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북한은 이러한 분단 광복 70주기를 뛰어 넘는 당 창건 70주년이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정은 시대를 명실상부하게 선포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안정화 되고 대외관계가 안정화 되어야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류협력 제안을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합니다."

집권 3년, 공포정치와 이른바 애민정치를 부각시켜 체제 안정을 도모해온 김정은의 북한.

최우방인 쿠바마저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나선 상황에서 국제적 고립 탈피를 위한 핵 포기와 인권문제 개선 등,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특단의 조치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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