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베이비박스’ 아기 급증…대체 왜?

입력 2014.12.31 (08:11) 수정 2014.12.3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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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이 작은 상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신이 낳은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든 이른바 “베이비박스'입니다.

길거리에 버려지고 있는 아기의 생명을 보호할 목적으로, 5년 전부터 한 교회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 베이비박스에 맡겨지고 있는 아기들의 숫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오늘 뉴스따라잡기는 베이비박스와 유기 아동 문제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교회입니다.

인적이 드문 밤.

한 여성이 아기를 품에 안은 채 교회 앞으로 다가 오더니, 베이비박스 안에 아기를 놓아두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납니다.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베이비박스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는 이 여성.

아기를 꼭 끌어안고, 서성이기를 몇 십 분째.

결국 교회 안으로 들어와 직접 자원봉사자에게 아기를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베이비 박스를 열려고 왔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서 (아기를) 넣지 못하겠더라 (하면서) 직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대요.)"

지난 2009년 12월, 이 교회에서 처음 운영을 시작한 베이비박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위험한 곳에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에 두고 가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누군가) 굴비 박스 안에 아기를 두고 갔어요. 바람 부는 추운 날이니까 체감온도가 춥죠. 이 아이가 저체온증이 왔어요. 이 아이를 안았는데, 섬뜩하고, 오싹한 느낌 있죠. 아이를 안전하게 갖다 놓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야 되겠다."

베이비 박스 안에 남겨진 메모에는 혼자서는 아기를 키울 수 없다는 10대 미혼모의 이야기부터,

아픈 아기를 보살필 여건이 안 된다며 용서를 구한다는 여성과 힘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잠시만 아기를 부탁한다는 엄마까지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여기까지 (아기를) 데려온 부모들은 그나마 아이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편지를 봐도 '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이 아이를 좋은 곳에 입양 보내 주십시오, 언젠가 찾고 싶습니다.' 이런 편지 내용도 있고 그래요."

이렇게 베이비박스에 놓여진 아기들은 교회에서 일주일 정도 임시 보호를 받은 뒤 보호 시설로 옮겨지게 됩니다.

취재팀이 교회를 방문 했을때도 베이비박스를 통해 맡겨진 아기들이 있었는데요, 공부가 끝나면 데리러 오겠다는 학생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하늘이와, 엊그제 교회에 들어와 아직은 모든 게 낯선 사랑이.

올해 초 이곳에 온 서희는 태어날 때부터 두 눈이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눈 뿐만 아니라, 온 몸에 다른 장애를 안고 있는 상태.

누구보다 사랑이 필요한 아기이기에, 자원봉사자들의 가슴도 미어집니다.

<인터뷰> 장영란(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전도사) : "눈이 안 보이니까 아무래도 좀 모든 것이 늦죠. 그리고 또 눈뿐만 아니라 신장 기형에다가 뇌 기형에다가 꼬리뼈 기형이고 여러 가지 중복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고요. (어려서) 어떤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지금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에요."

지난 5년 동안 이렇게 이곳에 맡겨진 아이가 벌써 620여 명.

그런데, 최근 교회에 고민 아닌 고민이 생겼습니다.

2년 전부터 베이비 박스에 놓여지는 아기들이 크게 늘기 시작한 겁니다.

지난 2012년 연간 79명 정도였던 아기 숫자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250명을 넘길 정도로 급증했습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계속적으로 베이비박스의 아이들이 있잖아요. 하루도 없는 날이 없습니다. 분유, 기저귀, 아이의 옷 등 사실 경제적인 문제가 어려움이 없는 날이 없죠. (아기가 늘어) 더 사람을 써야 하는데 밤새 잠을 못 자고 아이들 우유를 먹이고 해야 되는데 인력이 부족하고요."

그렇다면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아기는 왜 이렇게 는 걸까?

교회 측은 지난 2012년 개정된 입양 특례법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입양 조건에 ‘친부모의 출생신고 의무화’ 조항이 신설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져,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들이 입양 대신 유기를 택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베이비박스 들어오는 아이들 (부모는) 10대가 50퍼센트예요. 아무도 모르게 아기가 태어났는데 출생신고를 할 수가 있을까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상황이) 안 되는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온다고 보면 됩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입양 특례법 개정 전, 2천5백 명에 육박하던 국내·외 입양이 2013년에는 9백 명 남짓으로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누굴 위한 입양 특례법이냐는게 현장의 목소리였습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는) 2012년 8월 이전에는 한 달에 두세 명입니다. 많이 들어와야 네 명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입양특례법 시행이 됐는데, 그때부터 제 기억에는 7, 8배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한 달 평균 25명이니까요."

일부 전문가들은 베이비박스의 역기능에 이같은 현상의 원인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베이비 박스가 아기를 안심하고 유기할 수 있는 통로로 인식되면서, 쉽게 아기를 포기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의견입니다.

<전화인터뷰> 노혜련(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베이비박스) 거기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잘 돌봐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양육의 책임보다) 오히려 아동 유기를 조장하고 있지 않나 이런 우려를 많이 하게 되죠."

그러면서, 정부의 육아 지원 정책이 개선돼야 한다고도 꼬집습니다.

<인터뷰> 노혜련(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우리나라 아동복지 정책이나 제도는 아이를 키울 수없는 상황일 때 그 가정을 어떻게 하면 도와서 잘 키울 수 있게 발전된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입양을 보내라면서 돈 대주고, 의료비 대주고, 심리치료비 대주고 하죠. 우선적으로는 원 가정을 지원하는 모든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죠."

이런 논란 속에, 지난 5월에는 경기도 군포에 국내 두 번째 베이비박스가 설치됐습니다.

지난 7개월 동안 스무 명이 넘는 아기들이 이곳에 놓여졌는데요,

<인터뷰> 김은자(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권사/5월 6일) : "설치가 돼서 5월 8일 (처음) 아이가 왔어요. 지금까지 27명의 아이가 왔고요. (부모님을 대신해서) 축복하면서 저희가 그렇게 (아기를) 돌보고 있거든요."

한창 사랑 받고 자랄 나이.

차가운 상자 속에 홀로 맡겨지는 아기들.

이 아기들의 숫자를 줄이려는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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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베이비박스’ 아기 급증…대체 왜?
    • 입력 2014-12-31 08:12:13
    • 수정2014-12-31 14: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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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상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신이 낳은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든 이른바 “베이비박스'입니다.

길거리에 버려지고 있는 아기의 생명을 보호할 목적으로, 5년 전부터 한 교회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 베이비박스에 맡겨지고 있는 아기들의 숫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오늘 뉴스따라잡기는 베이비박스와 유기 아동 문제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교회입니다.

인적이 드문 밤.

한 여성이 아기를 품에 안은 채 교회 앞으로 다가 오더니, 베이비박스 안에 아기를 놓아두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납니다.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베이비박스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는 이 여성.

아기를 꼭 끌어안고, 서성이기를 몇 십 분째.

결국 교회 안으로 들어와 직접 자원봉사자에게 아기를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베이비 박스를 열려고 왔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서 (아기를) 넣지 못하겠더라 (하면서) 직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대요.)"

지난 2009년 12월, 이 교회에서 처음 운영을 시작한 베이비박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위험한 곳에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에 두고 가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누군가) 굴비 박스 안에 아기를 두고 갔어요. 바람 부는 추운 날이니까 체감온도가 춥죠. 이 아이가 저체온증이 왔어요. 이 아이를 안았는데, 섬뜩하고, 오싹한 느낌 있죠. 아이를 안전하게 갖다 놓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야 되겠다."

베이비 박스 안에 남겨진 메모에는 혼자서는 아기를 키울 수 없다는 10대 미혼모의 이야기부터,

아픈 아기를 보살필 여건이 안 된다며 용서를 구한다는 여성과 힘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잠시만 아기를 부탁한다는 엄마까지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여기까지 (아기를) 데려온 부모들은 그나마 아이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편지를 봐도 '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이 아이를 좋은 곳에 입양 보내 주십시오, 언젠가 찾고 싶습니다.' 이런 편지 내용도 있고 그래요."

이렇게 베이비박스에 놓여진 아기들은 교회에서 일주일 정도 임시 보호를 받은 뒤 보호 시설로 옮겨지게 됩니다.

취재팀이 교회를 방문 했을때도 베이비박스를 통해 맡겨진 아기들이 있었는데요, 공부가 끝나면 데리러 오겠다는 학생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하늘이와, 엊그제 교회에 들어와 아직은 모든 게 낯선 사랑이.

올해 초 이곳에 온 서희는 태어날 때부터 두 눈이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눈 뿐만 아니라, 온 몸에 다른 장애를 안고 있는 상태.

누구보다 사랑이 필요한 아기이기에, 자원봉사자들의 가슴도 미어집니다.

<인터뷰> 장영란(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전도사) : "눈이 안 보이니까 아무래도 좀 모든 것이 늦죠. 그리고 또 눈뿐만 아니라 신장 기형에다가 뇌 기형에다가 꼬리뼈 기형이고 여러 가지 중복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고요. (어려서) 어떤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지금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에요."

지난 5년 동안 이렇게 이곳에 맡겨진 아이가 벌써 620여 명.

그런데, 최근 교회에 고민 아닌 고민이 생겼습니다.

2년 전부터 베이비 박스에 놓여지는 아기들이 크게 늘기 시작한 겁니다.

지난 2012년 연간 79명 정도였던 아기 숫자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250명을 넘길 정도로 급증했습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계속적으로 베이비박스의 아이들이 있잖아요. 하루도 없는 날이 없습니다. 분유, 기저귀, 아이의 옷 등 사실 경제적인 문제가 어려움이 없는 날이 없죠. (아기가 늘어) 더 사람을 써야 하는데 밤새 잠을 못 자고 아이들 우유를 먹이고 해야 되는데 인력이 부족하고요."

그렇다면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아기는 왜 이렇게 는 걸까?

교회 측은 지난 2012년 개정된 입양 특례법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입양 조건에 ‘친부모의 출생신고 의무화’ 조항이 신설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져,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들이 입양 대신 유기를 택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베이비박스 들어오는 아이들 (부모는) 10대가 50퍼센트예요. 아무도 모르게 아기가 태어났는데 출생신고를 할 수가 있을까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상황이) 안 되는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온다고 보면 됩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입양 특례법 개정 전, 2천5백 명에 육박하던 국내·외 입양이 2013년에는 9백 명 남짓으로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누굴 위한 입양 특례법이냐는게 현장의 목소리였습니다.

<인터뷰> 이종락(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목사) :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는) 2012년 8월 이전에는 한 달에 두세 명입니다. 많이 들어와야 네 명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입양특례법 시행이 됐는데, 그때부터 제 기억에는 7, 8배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한 달 평균 25명이니까요."

일부 전문가들은 베이비박스의 역기능에 이같은 현상의 원인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베이비 박스가 아기를 안심하고 유기할 수 있는 통로로 인식되면서, 쉽게 아기를 포기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의견입니다.

<전화인터뷰> 노혜련(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베이비박스) 거기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잘 돌봐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양육의 책임보다) 오히려 아동 유기를 조장하고 있지 않나 이런 우려를 많이 하게 되죠."

그러면서, 정부의 육아 지원 정책이 개선돼야 한다고도 꼬집습니다.

<인터뷰> 노혜련(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우리나라 아동복지 정책이나 제도는 아이를 키울 수없는 상황일 때 그 가정을 어떻게 하면 도와서 잘 키울 수 있게 발전된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입양을 보내라면서 돈 대주고, 의료비 대주고, 심리치료비 대주고 하죠. 우선적으로는 원 가정을 지원하는 모든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죠."

이런 논란 속에, 지난 5월에는 경기도 군포에 국내 두 번째 베이비박스가 설치됐습니다.

지난 7개월 동안 스무 명이 넘는 아기들이 이곳에 놓여졌는데요,

<인터뷰> 김은자(베이비박스 운영 교회 권사/5월 6일) : "설치가 돼서 5월 8일 (처음) 아이가 왔어요. 지금까지 27명의 아이가 왔고요. (부모님을 대신해서) 축복하면서 저희가 그렇게 (아기를) 돌보고 있거든요."

한창 사랑 받고 자랄 나이.

차가운 상자 속에 홀로 맡겨지는 아기들.

이 아기들의 숫자를 줄이려는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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