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서민 겨울 지켜주는 따뜻한 연탄

입력 2015.01.01 (08:14) 수정 2015.01.0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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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불과 2~30년 전만 해도, 서민들의 주된 겨울나기 수단이었던 연탄입니다.

기름이나 가스보일러가 등장하면서, 생산과 소비도 크게 줄었는데요.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이 연탄으로 차가운 겨울을 나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오늘 뉴스 따라잡기는 여전히 서민들의 겨울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는 연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리포트>

강원도 태백의 연탄 공장.

이른 새벽부터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로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연탄들.

요즘 같은 겨울이면, 공장은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집니다.

<인터뷰> 김현섭(상무/O 연료 공업) : "(하루에 몇 장이나 찍어내세요?) 하루에 뭐, 요즘에 10만 장인가, 10만 장에서 12만 장 사이 (찍어요.)"

서민들의 겨울을 지켜줄 연탄.

꼼꼼하게 검수를 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터뷰> 공장관계자 : "젊은 사람 들을 몇 명 안돼. 나이드신분들은 60대도 계세요."

정성스레 만들어진 연탄이 대기하던 화물차에 차곡차곡 실립니다.

올해로 연탄 배달 경력 35년의 베테랑 배달부 엄주현 씨.

<인터뷰> 엄주현(연탄배달부) : "(한 번에 보면 딱 아세요?) 그렇죠. 만지면 대번 알아요. 여기 반질반질하고 딱딱한 느낌이 들어요. 불량품은 만지면 약간 고무 만지는 것처럼 물렁물렁하죠."

엄 씨 부부가 오늘 배달할 물량은 모두 7천 장입니다.

<인터뷰> 엄주현(연탄 배달부) : "(7,000장 배달하면 얼마나 남나요?) 돈은 얼마 안 남아요. 인건비 주고 기름값 제외하고 점심 사 먹고 이러면 몇 푼 남지도 않아요."

한참을 달려 도착한 주택가.

이제부터는 허리가 휘청일 만큼 무거운 연탄 지게를 메고, 가파른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도 올겨울 고객의 구들방을 따뜻하게 데워줄 연탄.

기다리던 연탄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집주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인터뷰> 신명숙(강원도 정선군) : "아이고, 아저씨 연탄 기다리느라고 아주 목 빠졌어. 아저씨, 어디 갔다가 이제 갖다 주셔요."

30년 단골 손님은 어디선가 벽돌을 들고 오더니, 배달부가 오가는 계단 사이에 살며시 놓아 줍니다.

<인터뷰> 신명숙(강원도 정선군) : "계단이라 너무 힘들어서 이거 벽돌을 갖다 두는 거예요. 아저씨가 너무 힘들잖아요. 계단 올라가는데, 그래서 힘 좀 덜 들라고..."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엄 씨 부부의 이마는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인터뷰> 엄주현(연탄 배달부) : "여기 젖었잖아요, 이 추운데도. (그래도) 다른 데 것 안 받고 꼭 우리 것만 애용해 주니까 그게 제일 고마운 거지."

수 십 년 연탄을 주고받다 보니, 판매상과 손님이라기보다는 이웃 같은 사이.

<녹취> 배달 부부&고객 : "(오늘 짬뽕시켜 드릴까?) 아니야, 지금 빨리 가야 해. 저기 또 있어. (그럼 여기서 김치하고 잡숫고 가.) 안돼, 빨리 가서 하고 먹어야 해. (다음에 오시면 짬뽕시켜 드릴게.) 예, 예."

점심상을 뒤로 한 채 부리나케 달려간 다음 행선지.

기다리던 연탄이 도착했는데, 이번 손님은 영 표정이 어두워 보입니다.

<인터뷰> 강현숙(강원도 정선군) : "(연탄 배달 오면 좋아요?) 배달 오면 좋은데 돈 들어가니까 그렇죠. 우리 아저씨가 병자 된 지 한 10년이 넘어요. 그래서 살림도 내가 다 하는 건데 연탄 사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 돈이 얼마 안 들어도……."

어려운 형편에, 연탄 몇 장 마음껏 때지 못한다는 아주머니.

배달을 마무리하기 전, 엄 씨 부부는 은근슬쩍 연탄 몇 장을 더 올려놓습니다.

<녹취> 연탄 배달부&고객 : "16장 더 왔다. 남편 횡재 만났네, 횡재 만났어. (16장이면 돈이 얼마냐?) 아내 됐어."

3시를 넘겨서야! 간단히 끼니를 때운 부부.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이번에 도착한 곳은 홀로 사는 할머니의 집입니다.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연탄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팔순의 할머니.

<녹취> 연탄 배달부 아내&남순옹(할머니) : "(나는 오늘 안 오나 만날 그랬지. 애가 마른다.) 무슨 애가 말라, 갖다 주는데. (주긴 주지. 연탄이 자꾸 떨어지니까…….)"

차가운 겨울 할머니에게 연탄은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인터뷰> 남순옹(강원도 정선군) : "(연탄 없으면 불안하세요?) 불안해 죽겠어, 아주. (그렇지만) 너무 고맙지 뭐. 어떻게 할 수 없어. 이 연탄을 갖다 주니 얼마나 고마워."

할머니 집 뒤뜰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연탄.

이 연탄은 겨우내 할머니의 안방을 따뜻하게 지켜줄 양식입니다.

<녹취> 연탄 배달부 남편&고객 : "할머니, 다 들어왔어요. (수고 많이 했다.) 아, 난 연탄 때문에 애가 타 죽을 뻔했다, 아주. 죽을 뻔했어. 갈게요. 다음에 좀 일찍 갖다 줄게요."

이제 해가 저물고,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화물차.

엄 씨 부부의 몸은 연탄처럼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그래도 이 시간이면 마음만은 뿌듯해집니다.

<인터뷰> 원재숙(연탄 배달부) : "(배달해주면) 마음이 편하죠.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이런 집 할 때. 남들이 빨리 못 해줄 때 우리가 했을 때 얼마나 좋아해 할머니들이."

엄 씨 부부가 배달하는 연탄의 도매 가격은 390원 정돕니다.

6백 원이 훌쩍 넘는 생산원가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정부 보조금으로 4년째 가격은 동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값이 오르기 전에 한 장이라도 더 배달하려 애를 쓰는지도 모릅니다.

<인터뷰> 엄주현(연탄 배달부) : "제일 뿌듯한 거는 노인네들이 겨울 따뜻하게 난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 소리만 들으면 모든 피로가 싹 풀리니까. 그게 제일 기분 좋죠."

한 복지 재단의 조사 결과, 지난해 연탄 사용 가구는 16만 8천여 가구로, 4년 전에 비해 오히려 7%나 증가했습니다.

삶은 누군가에게 연탄 한 장이 되는 거라는 시인의 말처럼, 연탄은 여전히 서민들의 겨울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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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서민 겨울 지켜주는 따뜻한 연탄
    • 입력 2015-01-01 08:24:54
    • 수정2015-01-01 13: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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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불과 2~30년 전만 해도, 서민들의 주된 겨울나기 수단이었던 연탄입니다.

기름이나 가스보일러가 등장하면서, 생산과 소비도 크게 줄었는데요.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이 연탄으로 차가운 겨울을 나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오늘 뉴스 따라잡기는 여전히 서민들의 겨울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는 연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리포트>

강원도 태백의 연탄 공장.

이른 새벽부터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로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연탄들.

요즘 같은 겨울이면, 공장은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집니다.

<인터뷰> 김현섭(상무/O 연료 공업) : "(하루에 몇 장이나 찍어내세요?) 하루에 뭐, 요즘에 10만 장인가, 10만 장에서 12만 장 사이 (찍어요.)"

서민들의 겨울을 지켜줄 연탄.

꼼꼼하게 검수를 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터뷰> 공장관계자 : "젊은 사람 들을 몇 명 안돼. 나이드신분들은 60대도 계세요."

정성스레 만들어진 연탄이 대기하던 화물차에 차곡차곡 실립니다.

올해로 연탄 배달 경력 35년의 베테랑 배달부 엄주현 씨.

<인터뷰> 엄주현(연탄배달부) : "(한 번에 보면 딱 아세요?) 그렇죠. 만지면 대번 알아요. 여기 반질반질하고 딱딱한 느낌이 들어요. 불량품은 만지면 약간 고무 만지는 것처럼 물렁물렁하죠."

엄 씨 부부가 오늘 배달할 물량은 모두 7천 장입니다.

<인터뷰> 엄주현(연탄 배달부) : "(7,000장 배달하면 얼마나 남나요?) 돈은 얼마 안 남아요. 인건비 주고 기름값 제외하고 점심 사 먹고 이러면 몇 푼 남지도 않아요."

한참을 달려 도착한 주택가.

이제부터는 허리가 휘청일 만큼 무거운 연탄 지게를 메고, 가파른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도 올겨울 고객의 구들방을 따뜻하게 데워줄 연탄.

기다리던 연탄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집주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인터뷰> 신명숙(강원도 정선군) : "아이고, 아저씨 연탄 기다리느라고 아주 목 빠졌어. 아저씨, 어디 갔다가 이제 갖다 주셔요."

30년 단골 손님은 어디선가 벽돌을 들고 오더니, 배달부가 오가는 계단 사이에 살며시 놓아 줍니다.

<인터뷰> 신명숙(강원도 정선군) : "계단이라 너무 힘들어서 이거 벽돌을 갖다 두는 거예요. 아저씨가 너무 힘들잖아요. 계단 올라가는데, 그래서 힘 좀 덜 들라고..."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엄 씨 부부의 이마는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인터뷰> 엄주현(연탄 배달부) : "여기 젖었잖아요, 이 추운데도. (그래도) 다른 데 것 안 받고 꼭 우리 것만 애용해 주니까 그게 제일 고마운 거지."

수 십 년 연탄을 주고받다 보니, 판매상과 손님이라기보다는 이웃 같은 사이.

<녹취> 배달 부부&고객 : "(오늘 짬뽕시켜 드릴까?) 아니야, 지금 빨리 가야 해. 저기 또 있어. (그럼 여기서 김치하고 잡숫고 가.) 안돼, 빨리 가서 하고 먹어야 해. (다음에 오시면 짬뽕시켜 드릴게.) 예, 예."

점심상을 뒤로 한 채 부리나케 달려간 다음 행선지.

기다리던 연탄이 도착했는데, 이번 손님은 영 표정이 어두워 보입니다.

<인터뷰> 강현숙(강원도 정선군) : "(연탄 배달 오면 좋아요?) 배달 오면 좋은데 돈 들어가니까 그렇죠. 우리 아저씨가 병자 된 지 한 10년이 넘어요. 그래서 살림도 내가 다 하는 건데 연탄 사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 돈이 얼마 안 들어도……."

어려운 형편에, 연탄 몇 장 마음껏 때지 못한다는 아주머니.

배달을 마무리하기 전, 엄 씨 부부는 은근슬쩍 연탄 몇 장을 더 올려놓습니다.

<녹취> 연탄 배달부&고객 : "16장 더 왔다. 남편 횡재 만났네, 횡재 만났어. (16장이면 돈이 얼마냐?) 아내 됐어."

3시를 넘겨서야! 간단히 끼니를 때운 부부.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이번에 도착한 곳은 홀로 사는 할머니의 집입니다.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연탄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팔순의 할머니.

<녹취> 연탄 배달부 아내&남순옹(할머니) : "(나는 오늘 안 오나 만날 그랬지. 애가 마른다.) 무슨 애가 말라, 갖다 주는데. (주긴 주지. 연탄이 자꾸 떨어지니까…….)"

차가운 겨울 할머니에게 연탄은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인터뷰> 남순옹(강원도 정선군) : "(연탄 없으면 불안하세요?) 불안해 죽겠어, 아주. (그렇지만) 너무 고맙지 뭐. 어떻게 할 수 없어. 이 연탄을 갖다 주니 얼마나 고마워."

할머니 집 뒤뜰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연탄.

이 연탄은 겨우내 할머니의 안방을 따뜻하게 지켜줄 양식입니다.

<녹취> 연탄 배달부 남편&고객 : "할머니, 다 들어왔어요. (수고 많이 했다.) 아, 난 연탄 때문에 애가 타 죽을 뻔했다, 아주. 죽을 뻔했어. 갈게요. 다음에 좀 일찍 갖다 줄게요."

이제 해가 저물고,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화물차.

엄 씨 부부의 몸은 연탄처럼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그래도 이 시간이면 마음만은 뿌듯해집니다.

<인터뷰> 원재숙(연탄 배달부) : "(배달해주면) 마음이 편하죠.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이런 집 할 때. 남들이 빨리 못 해줄 때 우리가 했을 때 얼마나 좋아해 할머니들이."

엄 씨 부부가 배달하는 연탄의 도매 가격은 390원 정돕니다.

6백 원이 훌쩍 넘는 생산원가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정부 보조금으로 4년째 가격은 동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값이 오르기 전에 한 장이라도 더 배달하려 애를 쓰는지도 모릅니다.

<인터뷰> 엄주현(연탄 배달부) : "제일 뿌듯한 거는 노인네들이 겨울 따뜻하게 난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 소리만 들으면 모든 피로가 싹 풀리니까. 그게 제일 기분 좋죠."

한 복지 재단의 조사 결과, 지난해 연탄 사용 가구는 16만 8천여 가구로, 4년 전에 비해 오히려 7%나 증가했습니다.

삶은 누군가에게 연탄 한 장이 되는 거라는 시인의 말처럼, 연탄은 여전히 서민들의 겨울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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