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과거 지우려 타인 행세한 30대 여성

입력 2015.01.09 (08:11) 수정 2015.01.0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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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얼굴 한번 본 일이 없는 여대생의 명의를 훔쳐, 대출을 받은 혐의로 30대 여성이 구속됐습니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이 여성, 대출이 목적이 아니라, 아예 이 여대생의 삶을 통째로 살고 싶어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큰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다는 이 여성.

왜 생면부지 여대생의 삶을 동경했던 걸까요?

오늘 뉴스 따라잡기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음대생 딸을 둔 주부 A 모 씨.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건, 딸 앞으로 날아온 우편물 한 통을 열어 보고 나서였습니다.

딸이 6백만 원을 대출받았다는 사실을 통보하는 제2금융권의 서류.

어머니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딸이 부모 몰래 대출을 받을 정도로 돈이 궁할 리 없고, 게다가 지금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상황.

<인터뷰> 강서경찰서 관계자 : “전화를 해보니까 딸이 외국에 있는데 자기는 그런 사실이 없다. 잘못된 것 아니냐. 그러니까 어머니가 그 통지서를 보낸 회사에 전화했고 (누군가가) 자기 딸 명의로 대출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명의를 도용당한 게 분명했습니다.

즉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A 씨.

그런데 살펴보니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신분증은 물론, 통장에 체크카드, 휴대전화까지….

주인도 모르게 새로 발급된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도대체 누가 딸의 명의를 훔치고 있는 걸까?

경찰은 범인을 찾기 위해, 딸의 명의로 발급된 체크 카드를 추적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 1팀) : "카드사용내역서 그런 것을 가지고 최근에 (기록이) 남아있는 곳부터 역추적해서 (카드가) 사용됐던 장소를 찾아가 CCTV 수사를 했죠."

용의자를 검거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거리낌 없이 피해자의 명의로 발급받은 카드를 사용하고 다니던 여성.

경찰은 CCTV에 찍힌 이 여성을 곧바로 추적해 검거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 력1팀) : "(검거 당시 피의자가 혐의 사실을 인정하던가요) 네. 인정했습니다."

붙잡힌 피의자는 30대의 평범한 여성 김 모 씨였습니다.

김 씨는 왜 여대생의 명의를 훔친 걸까?

그 이유가 좀 뜻밖이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 력1팀) : "왜 그랬다고 했는지 일단은 그 학생을 많이 부러워했었죠."

여대생이 부러워서 그랬다는 김 씨.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김 씨와 피해자인 여대생 이 모 씨는 서로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사이.

게다가 김 씨는 시가 10억 원 정도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등 경제적으로 별다른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김 씨가 왜, 알지도 못하는 여대생의 삶을 부러워하고, 또 명의를 도용해 대출까지 받게 된 걸까?

경찰의 물음에 김 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 1팀) : "그 사람(피해자)의 신분증을 습득해서 이용하면서부터 내가 걔(피해자)로 바꿔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경찰 수사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습니다.

김 씨의 불행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린 시절,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아버지와 오빠를 잃어야 했다는 김 씨.

이때 받은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1팀) :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우리가 봤을 때는 거의 집에서 은둔 생활하지 않았나 아버지와 오빠의 빈자리가 많이 차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려움 끝에 결혼을 하긴 했지만, 오래가지 못해 파경을 맞게 됩니다.

또, 다시 찾아온 충격에 자신의 모든 과거를 지우고 싶었다는 김 씨.

그러던 김 씨의 눈에 우연히 들어온 건, 집안에 보관하고 있던 다른 사람의 신분증이었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화장실에서 주운 지갑.

지갑 안에는 자신이 한때 꿈꿨던 음대에 다니는 여대생의 학생증과 신분증 등이 들어있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1팀) : "피해자하고 자기하고 피의자, 본인이 똑같은 음악을 목표로 하고 피해자는 계속 그쪽으로 나가고 있고 자기는 중간에 접었기 때문에 피해자로 살면 내도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조합해 이메일 비밀번호까지 파악하게 된 김 씨.

여대생과 아버지가 다정하게 주고받은 메일을 엿보고는 마음을 더 굳히게 됩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1팀) : "피의자가 피해자의 메일을 들어가서 피해자의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보면, 자기가 생각했을 때는 많이 부러웠던 거죠."

그렇게, 여대생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김 씨.

주운 신분증을 들고 가 자신의 사진으로 바꿔, 재벌급을 받는 데에 이릅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1팀) : “(당시에) 성형 수술했다고 하니까 그것을 확인해 볼 방법이 없잖습니까.”

<녹취> 도로교통공단 관계자(음성변조) : "예전에는 사진 변경이나 그런 게 가능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갱신 기간이나 새로운 면허증을 발급할 때가 아니면 사진 변경은 안 되게끔 변경됐습니다."

김 씨의 행동은 신분증 발급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대생의 학교 졸업증과 성적증명서, 휴대전화와 통장, 체크 카드까지 몽땅 발급받아 손에 넣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 1팀) : "내가 피해자의 주민등록증, 학교 졸업증 이런 것들을 발급받고 모든 게 자기가 생각한 대로 발급받을 수 있잖아요. 그럼으로써 내가 피해자의 신분으로 마치 사는 것 같이 된 것이죠."

그렇게, 여대생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빠진 것으로 보이는 김 씨.

결국, 금융기관에 대출을 신청하는데 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대출은 김 씨의 범행이 꼬리가 잡히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 최승원(교수/덕성여대 심리학과) : "세상이 나를 이 사람으로 봐 주네 라는 그걸 확인하고 싶고. 그때마다 점점 더 믿음이 강해지는 거죠. 내가 원했던 그 자리에 실제로 내가 서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어떤 그런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이런 행동 들을 보였다고 봐야겠죠."

자신의 아픈 삶을 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싶었다는 여성.

이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 혐의가 점유 이탈물 횡령과 사문서위조, 사기를 비롯해 무려 13가지에 이릅니다.

검찰에 구속기소 된 김 씨는 이제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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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과거 지우려 타인 행세한 30대 여성
    • 입력 2015-01-09 08:26:11
    • 수정2015-01-09 09: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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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얼굴 한번 본 일이 없는 여대생의 명의를 훔쳐, 대출을 받은 혐의로 30대 여성이 구속됐습니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이 여성, 대출이 목적이 아니라, 아예 이 여대생의 삶을 통째로 살고 싶어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큰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다는 이 여성.

왜 생면부지 여대생의 삶을 동경했던 걸까요?

오늘 뉴스 따라잡기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음대생 딸을 둔 주부 A 모 씨.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건, 딸 앞으로 날아온 우편물 한 통을 열어 보고 나서였습니다.

딸이 6백만 원을 대출받았다는 사실을 통보하는 제2금융권의 서류.

어머니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딸이 부모 몰래 대출을 받을 정도로 돈이 궁할 리 없고, 게다가 지금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상황.

<인터뷰> 강서경찰서 관계자 : “전화를 해보니까 딸이 외국에 있는데 자기는 그런 사실이 없다. 잘못된 것 아니냐. 그러니까 어머니가 그 통지서를 보낸 회사에 전화했고 (누군가가) 자기 딸 명의로 대출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명의를 도용당한 게 분명했습니다.

즉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A 씨.

그런데 살펴보니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신분증은 물론, 통장에 체크카드, 휴대전화까지….

주인도 모르게 새로 발급된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도대체 누가 딸의 명의를 훔치고 있는 걸까?

경찰은 범인을 찾기 위해, 딸의 명의로 발급된 체크 카드를 추적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 1팀) : "카드사용내역서 그런 것을 가지고 최근에 (기록이) 남아있는 곳부터 역추적해서 (카드가) 사용됐던 장소를 찾아가 CCTV 수사를 했죠."

용의자를 검거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거리낌 없이 피해자의 명의로 발급받은 카드를 사용하고 다니던 여성.

경찰은 CCTV에 찍힌 이 여성을 곧바로 추적해 검거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 력1팀) : "(검거 당시 피의자가 혐의 사실을 인정하던가요) 네. 인정했습니다."

붙잡힌 피의자는 30대의 평범한 여성 김 모 씨였습니다.

김 씨는 왜 여대생의 명의를 훔친 걸까?

그 이유가 좀 뜻밖이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 력1팀) : "왜 그랬다고 했는지 일단은 그 학생을 많이 부러워했었죠."

여대생이 부러워서 그랬다는 김 씨.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김 씨와 피해자인 여대생 이 모 씨는 서로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사이.

게다가 김 씨는 시가 10억 원 정도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등 경제적으로 별다른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김 씨가 왜, 알지도 못하는 여대생의 삶을 부러워하고, 또 명의를 도용해 대출까지 받게 된 걸까?

경찰의 물음에 김 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 1팀) : "그 사람(피해자)의 신분증을 습득해서 이용하면서부터 내가 걔(피해자)로 바꿔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경찰 수사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습니다.

김 씨의 불행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린 시절,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아버지와 오빠를 잃어야 했다는 김 씨.

이때 받은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1팀) :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우리가 봤을 때는 거의 집에서 은둔 생활하지 않았나 아버지와 오빠의 빈자리가 많이 차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려움 끝에 결혼을 하긴 했지만, 오래가지 못해 파경을 맞게 됩니다.

또, 다시 찾아온 충격에 자신의 모든 과거를 지우고 싶었다는 김 씨.

그러던 김 씨의 눈에 우연히 들어온 건, 집안에 보관하고 있던 다른 사람의 신분증이었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화장실에서 주운 지갑.

지갑 안에는 자신이 한때 꿈꿨던 음대에 다니는 여대생의 학생증과 신분증 등이 들어있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1팀) : "피해자하고 자기하고 피의자, 본인이 똑같은 음악을 목표로 하고 피해자는 계속 그쪽으로 나가고 있고 자기는 중간에 접었기 때문에 피해자로 살면 내도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조합해 이메일 비밀번호까지 파악하게 된 김 씨.

여대생과 아버지가 다정하게 주고받은 메일을 엿보고는 마음을 더 굳히게 됩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1팀) : "피의자가 피해자의 메일을 들어가서 피해자의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보면, 자기가 생각했을 때는 많이 부러웠던 거죠."

그렇게, 여대생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김 씨.

주운 신분증을 들고 가 자신의 사진으로 바꿔, 재벌급을 받는 데에 이릅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1팀) : “(당시에) 성형 수술했다고 하니까 그것을 확인해 볼 방법이 없잖습니까.”

<녹취> 도로교통공단 관계자(음성변조) : "예전에는 사진 변경이나 그런 게 가능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갱신 기간이나 새로운 면허증을 발급할 때가 아니면 사진 변경은 안 되게끔 변경됐습니다."

김 씨의 행동은 신분증 발급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대생의 학교 졸업증과 성적증명서, 휴대전화와 통장, 체크 카드까지 몽땅 발급받아 손에 넣었습니다.

<인터뷰> 강상철(경위/서울 강서경찰서 강력 1팀) : "내가 피해자의 주민등록증, 학교 졸업증 이런 것들을 발급받고 모든 게 자기가 생각한 대로 발급받을 수 있잖아요. 그럼으로써 내가 피해자의 신분으로 마치 사는 것 같이 된 것이죠."

그렇게, 여대생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빠진 것으로 보이는 김 씨.

결국, 금융기관에 대출을 신청하는데 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대출은 김 씨의 범행이 꼬리가 잡히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 최승원(교수/덕성여대 심리학과) : "세상이 나를 이 사람으로 봐 주네 라는 그걸 확인하고 싶고. 그때마다 점점 더 믿음이 강해지는 거죠. 내가 원했던 그 자리에 실제로 내가 서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어떤 그런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이런 행동 들을 보였다고 봐야겠죠."

자신의 아픈 삶을 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싶었다는 여성.

이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 혐의가 점유 이탈물 횡령과 사문서위조, 사기를 비롯해 무려 13가지에 이릅니다.

검찰에 구속기소 된 김 씨는 이제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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