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트로트는 살아가는 힘, 박상철은 평생 은인”

입력 2015.01.21 (11:1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 트로트계에서 '젊은 피'로 주목받는 '양양'은 본명이 김현미다. 아버지가 가수 현미를 좋아해 지어준 이름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경기도를 대표하는 합창단에서 활동한 그는 운명인지 이름처럼 가수가 됐다.

출발은 통기타 가수였다. 20살 때 한 인터넷 가요제에서 최종 결선까지 오른 그는 일산, 부천 등지의 라이브 카페에서 포크 뮤지션으로 활동했다. 앨범을 내고 정식 가수로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 '트로트 가수를 하면 성공하겠다'는 제의를 여러 차례 받자 이 분야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2009년 데뷔곡 '땡겨'는 '자수민'이란 이름으로 냈다. 이후 '무조건'으로 유명한 트로트 가수 박상철이 대중이 쉽게 기억할 양양이란 예명을 지어줬다.

이때부터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등 방송 활동에 나섰고 2011년 '못난이', 지난해 '여자는'을 발표하고 여느 트로트 가수처럼 전국을 무대로 누비고 있다. 아직 대중적인 유명세는 없지만 트로트 분야에선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 입소문이 났다.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인터뷰한 양양은 "'못난이'로 3년간 활동하며 인지도를 쌓았다"며 "세미 트로트인 '못난이'가 귀여운 콘셉트였는데 '여자는'은 '뽕끼'가 강해 전국노래자랑 출연자가 부르는 등 한층 빠른 반응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못난이'와 '여자는'을 프로듀싱해준 사람은 박상철이었다. 양양은 박상철에 대해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평생의 은인"이라고 강조했다.

"언젠가 선배님과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는데 '힘들지? 그런데 걱정하지 마라. 너 뒤에는 내가 있다'라고 응원해줘 눈물이 났어요. 너무 힘들 때였는데 집에 가서도 많이 울었죠. 그 말을 절대 잊을 수가 없어요."

또 다른 롤 모델로는 트로트 가수 김혜연을 꼽았다.

그는 "선배님이 친동생처럼 챙겨주신다"며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잘된다고 말해주신다. 그런데 선배님은 가수 활동도, 가정생활도 정말 열심히 꾸려나가신다. 선배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인지도가 낮은 트로트 가수는 방송 무대에 설 기회가 적고 전국을 누비며 노래를 알려야 하는 등 발품을 파는 건 필수다.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닌 그는 에피소드도 숱하다. 음향은 따질 수조차 없는 길바닥에서 노래하거나, 무대 의상을 입은 채 신발을 벗고 방바닥에서 마이크를 잡거나, 무대에 신발이 끼어 맨발로 노래하는 등 수차례 돌발 상황을 경험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하는 건 몸에 배어 있어요. 하하. 가끔 방송 프로그램 리포터도 했는데 산골에 들어갈 때면 오지여서 씻을 때가 없잖아요. 차에서 자고 공중 화장실을 찾아 세수하고 화장하는 때도 있었죠. 9~10월엔 스케줄이 많아 며칠씩 지방 곳곳을 다녔는데 휴게소에서 토스트로 끼니를 때우고 찜질방에서 잔 적도 있어요."

고생담을 털어놓으면서도 양양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트로트는 부를수록 빠져들어요. 제가 살아가는 힘이자 도전해야 하는 것이죠. 깊은 소리를 내고 싶어 지금도 시간이 되면 레슨을 받아요. 어르신들에게 감동을 주려면 많은 내공이 필요하거든요. 그 힘을 쌓아가고 있어요."

그는 "인상이 강해 거부감이 든다는 얘기를 듣고는 선배 가수 장윤정처럼 편안한 인상이 되려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노력도 했다"고 웃었다.

다행히 버티며 힘을 얻는 건 "바닥에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올라가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추락하는 느낌이 아니라 조금씩 팬들이 생기고 절 알아봐 주세요. 잘한다고 해주니 그 힘으로 노래하는 것 같아요."

목표도 "죽을 때까지 노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상에 올라가기보다 양양이란 가수의 노래를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오랜 시간 함께 불러주는 것이 꿈"이라며 이를 위해 기회가 닿으면 방송 프로그램 MC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녀답게 집안에 보탬이 되려는 효심도 드러냈다.

"어머니가 위암으로 2002년에 돌아가셨어요. 그때 2년간 방황을 했죠. 지금은 아버지가 폐암으로 투병 중이신데 수술을 받아 좋아지셨어요. 전 돈 욕심은 없어요. 단지 아빠만 편안히 모시고 싶어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양양 “트로트는 살아가는 힘, 박상철은 평생 은인”
    • 입력 2015-01-21 11:15:05
    연합뉴스
요즘 트로트계에서 '젊은 피'로 주목받는 '양양'은 본명이 김현미다. 아버지가 가수 현미를 좋아해 지어준 이름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경기도를 대표하는 합창단에서 활동한 그는 운명인지 이름처럼 가수가 됐다. 출발은 통기타 가수였다. 20살 때 한 인터넷 가요제에서 최종 결선까지 오른 그는 일산, 부천 등지의 라이브 카페에서 포크 뮤지션으로 활동했다. 앨범을 내고 정식 가수로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 '트로트 가수를 하면 성공하겠다'는 제의를 여러 차례 받자 이 분야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2009년 데뷔곡 '땡겨'는 '자수민'이란 이름으로 냈다. 이후 '무조건'으로 유명한 트로트 가수 박상철이 대중이 쉽게 기억할 양양이란 예명을 지어줬다. 이때부터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등 방송 활동에 나섰고 2011년 '못난이', 지난해 '여자는'을 발표하고 여느 트로트 가수처럼 전국을 무대로 누비고 있다. 아직 대중적인 유명세는 없지만 트로트 분야에선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 입소문이 났다.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인터뷰한 양양은 "'못난이'로 3년간 활동하며 인지도를 쌓았다"며 "세미 트로트인 '못난이'가 귀여운 콘셉트였는데 '여자는'은 '뽕끼'가 강해 전국노래자랑 출연자가 부르는 등 한층 빠른 반응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못난이'와 '여자는'을 프로듀싱해준 사람은 박상철이었다. 양양은 박상철에 대해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평생의 은인"이라고 강조했다. "언젠가 선배님과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는데 '힘들지? 그런데 걱정하지 마라. 너 뒤에는 내가 있다'라고 응원해줘 눈물이 났어요. 너무 힘들 때였는데 집에 가서도 많이 울었죠. 그 말을 절대 잊을 수가 없어요." 또 다른 롤 모델로는 트로트 가수 김혜연을 꼽았다. 그는 "선배님이 친동생처럼 챙겨주신다"며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잘된다고 말해주신다. 그런데 선배님은 가수 활동도, 가정생활도 정말 열심히 꾸려나가신다. 선배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인지도가 낮은 트로트 가수는 방송 무대에 설 기회가 적고 전국을 누비며 노래를 알려야 하는 등 발품을 파는 건 필수다.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닌 그는 에피소드도 숱하다. 음향은 따질 수조차 없는 길바닥에서 노래하거나, 무대 의상을 입은 채 신발을 벗고 방바닥에서 마이크를 잡거나, 무대에 신발이 끼어 맨발로 노래하는 등 수차례 돌발 상황을 경험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하는 건 몸에 배어 있어요. 하하. 가끔 방송 프로그램 리포터도 했는데 산골에 들어갈 때면 오지여서 씻을 때가 없잖아요. 차에서 자고 공중 화장실을 찾아 세수하고 화장하는 때도 있었죠. 9~10월엔 스케줄이 많아 며칠씩 지방 곳곳을 다녔는데 휴게소에서 토스트로 끼니를 때우고 찜질방에서 잔 적도 있어요." 고생담을 털어놓으면서도 양양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트로트는 부를수록 빠져들어요. 제가 살아가는 힘이자 도전해야 하는 것이죠. 깊은 소리를 내고 싶어 지금도 시간이 되면 레슨을 받아요. 어르신들에게 감동을 주려면 많은 내공이 필요하거든요. 그 힘을 쌓아가고 있어요." 그는 "인상이 강해 거부감이 든다는 얘기를 듣고는 선배 가수 장윤정처럼 편안한 인상이 되려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노력도 했다"고 웃었다. 다행히 버티며 힘을 얻는 건 "바닥에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올라가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추락하는 느낌이 아니라 조금씩 팬들이 생기고 절 알아봐 주세요. 잘한다고 해주니 그 힘으로 노래하는 것 같아요." 목표도 "죽을 때까지 노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상에 올라가기보다 양양이란 가수의 노래를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오랜 시간 함께 불러주는 것이 꿈"이라며 이를 위해 기회가 닿으면 방송 프로그램 MC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녀답게 집안에 보탬이 되려는 효심도 드러냈다. "어머니가 위암으로 2002년에 돌아가셨어요. 그때 2년간 방황을 했죠. 지금은 아버지가 폐암으로 투병 중이신데 수술을 받아 좋아지셨어요. 전 돈 욕심은 없어요. 단지 아빠만 편안히 모시고 싶어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

  • 각 플랫폼에서 최근 1시간 동안 많이 본 KBS 기사를 제공합니다.

  • 각 플랫폼에서 최근 1시간 동안 많이 본 KBS 기사를 제공합니다.

  • 각 플랫폼에서 최근 1시간 동안 많이 본 KBS 기사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