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휘발유 유류세를 내리는 것은 어떨까요

입력 2015.02.03 (10:12) 수정 2015.02.03 (15:1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

아무리 본래 목적이 그게 아니어도 오해받을 짓은 하지말라는 우리 속담입니다. 아주 딱 맞는 경험을 했습니다. 바로 <세금 적게 내는 고급 경유차...형평성 논란>이란 제목의 아래 리포트를 통해서입니다.

다시보기 ☞ <뉴스9> 세금 적게 내는 고급 경유차...형평성 논란

먼저, 1월 넷째주 전국 주유소에서 팔린 기름값 평균을 살펴볼까요?

1리터당 휘발유는 1,435.1원, 경유는 1237.7원이었습니다. 이미 배보다 배꼽이 커진 지 오래여서, 정유사 가격보다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은데요. 이 가운데, 휘발유는 876원, 경유는 645원이 유류셉니다. 1리터당 휘발유 차량이 경유 차량보다 유류세를 231원 더 내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가운데 아래와 같은 제보를 접했습니다.



"내 차는 천만 원대 경차이고, 더군다나 휘발유, 경유 선택권도 없이 휘발유만 써야하는 모델입니다. 내 차보다 네다섯 배는 비싼 BMW, 벤츠, 아우디가 '경유'를 쓴다는 이유로 나보다 더 유류세를 적게 내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한마디로 ‘휘발유’ 차라는 이유로 세금 더 내는 것이 억울하다는 요지였습니다. 과연 이것이 보편적인 생각일까? 이 제보를 접한 뒤,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우선, 휘발유 차량 운전자는 대부분 ‘공감한다’였고, 경유 차량 운전자는 반대가 심했습니다. 경유 차량은 소음이 심하고, 구입시 200만 원 정도 찻값이 더 나가는 데도 오직 기름값이 싸다는 이유로 구매했다는 운전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또, 20여년 간 ‘경유’가 상대적으로 계속 저렴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습니다.

■ 경유=서민의 기름, 지금도 그런가요?

왜 경유는 휘발유보다 유류세가 싸게 매겨져 있을까요?

기획재정부 관련 세제과에 문의했습니다. 들어보니, 유류세를 정할 당시 시대상황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경유는 서민의 기름, 생계형 기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는 겁니다. 자영업자들의 생계수단인 트럭이나 화물차 등이 주로 경유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본 유류세를 낮게 책정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조는 20여 년 간 이어져 왔습니다.



그동안 정액세인 유류세 금액을 세세하게 조정해 온 적은 있지만, 휘발유보다 낮은 경유 유류세의 근간을 흔든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이런 정책 배경 아래, 경유차는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휘발유 차량이 2000년, 720만대에서 2014년 950만대로 230만대 늘어나는 동안, 경유 차량은 같은 기간 350만대에서 790만대로 440만대 늘어났습니다. 휘발유 차량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입니다.

그럼, 이 차들은 다 생계형 차량들일까요? 2014년 현재, 경유 차 790만 대 가운데 비사업용이 740만대, 사업용이 50만대로 등록돼 있습니다. 사업용 번호판을 달지 않고 영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을 것이라 가정하고, 존재하는 여러 통계들로 추정해보면 최소 200만대는 생계형이 아닌 일반 승용 경유차로 파악됩니다.

특히 수입차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요. 수입차들은 경유값이 싼 국내시장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왔고, 그 상당수 모델이 경유 차량이었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신규 등록한 수입 승용차 15만 대 가운데 63%가 경유 모델이었습니다. 심지어 1억 원 가까운 수입차도 경유를 쓰고 있습니다. 휘발유 소형차, 준중형차를 모는 운전자 입장에선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저렇게 비싼 차를 몰 수 있을만큼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유층 운전자가 왜 나보다 유류세를 1년에 몇 십만 원씩 적게 내는가? 요즘, 기름값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더 억울한 생각이 든다는 휘발유 차량 운전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 경유 유류세를 올리자고? 그게 아니라…



이런 의견들을 반영해 최대한 신중하게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미 사전 취재 과정에서 상당한 경유차 운전자들의 반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전히 ‘경유’를 쓰는 생계형 운전자 보호에 방점을 뒀습니다. 그러나 2분 미만 TV뉴스의 한계인지, 제 전달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방송 이후, 냉랭한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유값을 올리자는 얘기 아니냐?”, “휘발유, 경유 유류세 형평이 맞지 않으면 결국 형평을 맞추기 위해 경유 유류세를 올리게 될 게 아니냐”란 우려였습니다.

그러나, ‘형평’을 맞추는 방법이 꼭 ‘상향조정’일 필요가 있을까요? 배보다 배꼽이 큰 유류세라는 지적이 나오는 마당에 휘발유 유류세를 경유 만큼 ‘하향조정’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증세 논란으로 여론이 한참 민감한 요즘, 이 리포트는 마치 ‘경유 유류세 증세’를 유도하려는 듯한 인상을 줬나 봅니다.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고 했건만, 시기가 안 좋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 역시 경유 유류세를 휘발유 만큼 올려서 형평성을 맞추는 것은 반댑니다. 그렇게 안이하고 단순한 발상은 정부 관계자들도 하진 않을 것입니다. 이 리포트의 핵심은 ‘무조건적인 가격 형평성’이 아닙니다. 다만 어떠한 유류세제가 합리적일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 그리고,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부자증세’였습니다.

조심스럽게 이런 얘기를 꺼내 봅니다. 빵가게 주인이 100원을 버는 A에겐 빵을 50원에 팔고, 500원을 버는 B에겐 30원에 팝니다. 이 가격이 아니면 절대 빵을 사 먹을 수 없습니다. A 입장에선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요? 제게 제보를 한 사람도 이런 심정이었을 겁니다.



똑같이 기름 1리터를 넣는데 천만 원대 차주인 내가 1억 원대 차주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목소리가 정말 외면해버려도 하등 상관없는 것일까요? 정부는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유독 부자에게는 약합니다.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하는 고소득층을 걸러내겠다는 건보료 개편안마저도 흐지부지 됐습니다.

유류세에도 분명 이런 부조리가 존재합니다. 좀 더 고민해서, 좋은 차, 비싼 차 몰고 다니는 고소득층이 유류세를 더 내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많은 운전자들이 바라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휘발유 유류세를 내리는 것은 어떨까요
    • 입력 2015-02-03 10:12:45
    • 수정2015-02-03 15:14:42
    취재후
■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

아무리 본래 목적이 그게 아니어도 오해받을 짓은 하지말라는 우리 속담입니다. 아주 딱 맞는 경험을 했습니다. 바로 <세금 적게 내는 고급 경유차...형평성 논란>이란 제목의 아래 리포트를 통해서입니다.

다시보기 ☞ <뉴스9> 세금 적게 내는 고급 경유차...형평성 논란

먼저, 1월 넷째주 전국 주유소에서 팔린 기름값 평균을 살펴볼까요?

1리터당 휘발유는 1,435.1원, 경유는 1237.7원이었습니다. 이미 배보다 배꼽이 커진 지 오래여서, 정유사 가격보다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은데요. 이 가운데, 휘발유는 876원, 경유는 645원이 유류셉니다. 1리터당 휘발유 차량이 경유 차량보다 유류세를 231원 더 내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가운데 아래와 같은 제보를 접했습니다.



"내 차는 천만 원대 경차이고, 더군다나 휘발유, 경유 선택권도 없이 휘발유만 써야하는 모델입니다. 내 차보다 네다섯 배는 비싼 BMW, 벤츠, 아우디가 '경유'를 쓴다는 이유로 나보다 더 유류세를 적게 내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한마디로 ‘휘발유’ 차라는 이유로 세금 더 내는 것이 억울하다는 요지였습니다. 과연 이것이 보편적인 생각일까? 이 제보를 접한 뒤,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우선, 휘발유 차량 운전자는 대부분 ‘공감한다’였고, 경유 차량 운전자는 반대가 심했습니다. 경유 차량은 소음이 심하고, 구입시 200만 원 정도 찻값이 더 나가는 데도 오직 기름값이 싸다는 이유로 구매했다는 운전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또, 20여년 간 ‘경유’가 상대적으로 계속 저렴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습니다.

■ 경유=서민의 기름, 지금도 그런가요?

왜 경유는 휘발유보다 유류세가 싸게 매겨져 있을까요?

기획재정부 관련 세제과에 문의했습니다. 들어보니, 유류세를 정할 당시 시대상황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경유는 서민의 기름, 생계형 기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는 겁니다. 자영업자들의 생계수단인 트럭이나 화물차 등이 주로 경유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본 유류세를 낮게 책정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조는 20여 년 간 이어져 왔습니다.



그동안 정액세인 유류세 금액을 세세하게 조정해 온 적은 있지만, 휘발유보다 낮은 경유 유류세의 근간을 흔든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이런 정책 배경 아래, 경유차는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휘발유 차량이 2000년, 720만대에서 2014년 950만대로 230만대 늘어나는 동안, 경유 차량은 같은 기간 350만대에서 790만대로 440만대 늘어났습니다. 휘발유 차량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입니다.

그럼, 이 차들은 다 생계형 차량들일까요? 2014년 현재, 경유 차 790만 대 가운데 비사업용이 740만대, 사업용이 50만대로 등록돼 있습니다. 사업용 번호판을 달지 않고 영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을 것이라 가정하고, 존재하는 여러 통계들로 추정해보면 최소 200만대는 생계형이 아닌 일반 승용 경유차로 파악됩니다.

특히 수입차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요. 수입차들은 경유값이 싼 국내시장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왔고, 그 상당수 모델이 경유 차량이었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신규 등록한 수입 승용차 15만 대 가운데 63%가 경유 모델이었습니다. 심지어 1억 원 가까운 수입차도 경유를 쓰고 있습니다. 휘발유 소형차, 준중형차를 모는 운전자 입장에선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저렇게 비싼 차를 몰 수 있을만큼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유층 운전자가 왜 나보다 유류세를 1년에 몇 십만 원씩 적게 내는가? 요즘, 기름값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더 억울한 생각이 든다는 휘발유 차량 운전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 경유 유류세를 올리자고? 그게 아니라…



이런 의견들을 반영해 최대한 신중하게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미 사전 취재 과정에서 상당한 경유차 운전자들의 반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전히 ‘경유’를 쓰는 생계형 운전자 보호에 방점을 뒀습니다. 그러나 2분 미만 TV뉴스의 한계인지, 제 전달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방송 이후, 냉랭한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유값을 올리자는 얘기 아니냐?”, “휘발유, 경유 유류세 형평이 맞지 않으면 결국 형평을 맞추기 위해 경유 유류세를 올리게 될 게 아니냐”란 우려였습니다.

그러나, ‘형평’을 맞추는 방법이 꼭 ‘상향조정’일 필요가 있을까요? 배보다 배꼽이 큰 유류세라는 지적이 나오는 마당에 휘발유 유류세를 경유 만큼 ‘하향조정’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증세 논란으로 여론이 한참 민감한 요즘, 이 리포트는 마치 ‘경유 유류세 증세’를 유도하려는 듯한 인상을 줬나 봅니다.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고 했건만, 시기가 안 좋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 역시 경유 유류세를 휘발유 만큼 올려서 형평성을 맞추는 것은 반댑니다. 그렇게 안이하고 단순한 발상은 정부 관계자들도 하진 않을 것입니다. 이 리포트의 핵심은 ‘무조건적인 가격 형평성’이 아닙니다. 다만 어떠한 유류세제가 합리적일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 그리고,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부자증세’였습니다.

조심스럽게 이런 얘기를 꺼내 봅니다. 빵가게 주인이 100원을 버는 A에겐 빵을 50원에 팔고, 500원을 버는 B에겐 30원에 팝니다. 이 가격이 아니면 절대 빵을 사 먹을 수 없습니다. A 입장에선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요? 제게 제보를 한 사람도 이런 심정이었을 겁니다.



똑같이 기름 1리터를 넣는데 천만 원대 차주인 내가 1억 원대 차주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목소리가 정말 외면해버려도 하등 상관없는 것일까요? 정부는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유독 부자에게는 약합니다.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하는 고소득층을 걸러내겠다는 건보료 개편안마저도 흐지부지 됐습니다.

유류세에도 분명 이런 부조리가 존재합니다. 좀 더 고민해서, 좋은 차, 비싼 차 몰고 다니는 고소득층이 유류세를 더 내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많은 운전자들이 바라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대선특집페이지 대선특집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