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욱’ 하다 홧김 범죄…혹시 당신도 분노조절장애?

입력 2015.02.06 (06:05) 수정 2015.02.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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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따르는 ‘홧김 범죄’

지난달 31일 새벽 경상북도 포항에서 한 30대 여성 앞으로 승용차가 돌진했는데요. 뒤에 있던 차량이 이 승용차를 들이받으면서 여성을 치게 하고, 앞에 있던 문구점까지 밀고 들어와 버린 겁니다. 승용차 운전자는 40대 남성이었는데,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황당했습니다. 바로 여성의 이별통보 때문이었다는데요. 문구점까지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이 남성은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차에서 내려 여성을 폭행했다고 합니다.

경찰 담당 기자를 하다 보면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요즘 들어 위 사례와 같이 홧김에 저지르게 되는 범죄가 자주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상대 차량을 삼단봉으로 내려친 '고속도로 삼단봉' 사건부터 시작해 주차 시비 야구방망이 폭행까지, 모두 욱하는 분을 참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도 이와 비슷한 발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 원인으로 지목되는 ‘분노조절장애’…갈수록 증가

위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공통점은 분노가 조절이 안 돼 스스로 삭히지 못하고 타인에게까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건데요. 전문가들은 이를 일종의 이른바 '분노조절장애'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파악한 환자 수가 지난 2009년에는 3,720명이었는데 이로부터 4년이 지난 2013년에는 4,934명으로 32%나 늘었는데요.

취재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우선 이 수치에 대해 분노조절환자를 잠정적 범죄자로 분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늘어나는 수치와 최근 들어 부쩍 잇따르는 홧김 범죄 사이에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어 보인다며 우려를 내비쳤습니다.



■ “스트레스는 쌓이는데…풀 곳이 없다”

우선 취재과정에서 먼저 만난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같은 홧김 범죄와 분노조절장애의 원인이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제대로 풀어주지 못한 데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풀지는 못하고 장시간 쌓이기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겁니다.

현대의 무한경쟁사회에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압박감은 큰데, 이를 제때에 풀어주는 방법을 개인이 배우지 못했고, 사회적으로도 스트레스를 걸러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짧은 시간 동안 고도로 집약적인 경제 성장을 해왔는데요. 이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은 세심하게 돌아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개인들도 극한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위기에 직면했을 때 스트레스를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 혹시 당신도 분노조절장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분노조절장애라는 의학적인 진단을 내릴 때 판단하는 항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요즘 자주 '욱'하다가 화를 참지 못해 힘드셨다면, 혹시 자신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없는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매주 2차례 이상 3개월에 걸쳐 기물 파손이나 신체 손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언어적/신체적 공격성이 나타나거나,
□ 1년에 3차례 이상 기물 파손이나 신체 손상으로 이어지는 공격적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
□ 미리 계획된 행동이 아니고, 자신이 처해있는 스트레스 상황에 비해 통상 사회에서 용인되는 행동보다 과도하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


취재에 자문을 제공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분노조절장애 환자를 잠정적인 범죄자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위의 진단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인정했는데요. 그만큼 평소에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음주로 스트레스를 푸는데요. 전문가들은 과도한 음주나 극단적인 취미 생활 등의 방법보다는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등의 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흔히 듣고 누구나 아는 전문가들의 조언이지만, 이같은 스트레스 해소법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선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잇따른 홧김 범죄 사건을 접하는 요즘, 과연 현대인들의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숙제만 짊어진 느낌입니다.

☞ 바로가기 [뉴스9] ‘홧김에 범죄’ 잇따라…‘분노조절장애’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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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욱’ 하다 홧김 범죄…혹시 당신도 분노조절장애?
    • 입력 2015-02-06 06:05:35
    • 수정2015-02-06 09:05:06
    취재후·사건후
■ 잇따르는 ‘홧김 범죄’

지난달 31일 새벽 경상북도 포항에서 한 30대 여성 앞으로 승용차가 돌진했는데요. 뒤에 있던 차량이 이 승용차를 들이받으면서 여성을 치게 하고, 앞에 있던 문구점까지 밀고 들어와 버린 겁니다. 승용차 운전자는 40대 남성이었는데,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황당했습니다. 바로 여성의 이별통보 때문이었다는데요. 문구점까지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이 남성은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차에서 내려 여성을 폭행했다고 합니다.

경찰 담당 기자를 하다 보면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요즘 들어 위 사례와 같이 홧김에 저지르게 되는 범죄가 자주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상대 차량을 삼단봉으로 내려친 '고속도로 삼단봉' 사건부터 시작해 주차 시비 야구방망이 폭행까지, 모두 욱하는 분을 참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도 이와 비슷한 발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 원인으로 지목되는 ‘분노조절장애’…갈수록 증가

위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공통점은 분노가 조절이 안 돼 스스로 삭히지 못하고 타인에게까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건데요. 전문가들은 이를 일종의 이른바 '분노조절장애'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파악한 환자 수가 지난 2009년에는 3,720명이었는데 이로부터 4년이 지난 2013년에는 4,934명으로 32%나 늘었는데요.

취재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우선 이 수치에 대해 분노조절환자를 잠정적 범죄자로 분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늘어나는 수치와 최근 들어 부쩍 잇따르는 홧김 범죄 사이에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어 보인다며 우려를 내비쳤습니다.



■ “스트레스는 쌓이는데…풀 곳이 없다”

우선 취재과정에서 먼저 만난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같은 홧김 범죄와 분노조절장애의 원인이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제대로 풀어주지 못한 데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풀지는 못하고 장시간 쌓이기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겁니다.

현대의 무한경쟁사회에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압박감은 큰데, 이를 제때에 풀어주는 방법을 개인이 배우지 못했고, 사회적으로도 스트레스를 걸러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짧은 시간 동안 고도로 집약적인 경제 성장을 해왔는데요. 이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은 세심하게 돌아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개인들도 극한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위기에 직면했을 때 스트레스를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 혹시 당신도 분노조절장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분노조절장애라는 의학적인 진단을 내릴 때 판단하는 항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요즘 자주 '욱'하다가 화를 참지 못해 힘드셨다면, 혹시 자신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없는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매주 2차례 이상 3개월에 걸쳐 기물 파손이나 신체 손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언어적/신체적 공격성이 나타나거나,
□ 1년에 3차례 이상 기물 파손이나 신체 손상으로 이어지는 공격적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
□ 미리 계획된 행동이 아니고, 자신이 처해있는 스트레스 상황에 비해 통상 사회에서 용인되는 행동보다 과도하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


취재에 자문을 제공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분노조절장애 환자를 잠정적인 범죄자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위의 진단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인정했는데요. 그만큼 평소에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음주로 스트레스를 푸는데요. 전문가들은 과도한 음주나 극단적인 취미 생활 등의 방법보다는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등의 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흔히 듣고 누구나 아는 전문가들의 조언이지만, 이같은 스트레스 해소법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선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잇따른 홧김 범죄 사건을 접하는 요즘, 과연 현대인들의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숙제만 짊어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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