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는 ‘대통령 회고’ 열풍…인기리에 팔리나?

입력 2015.02.06 (13:33) 수정 2015.02.0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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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回顧錄)’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기록을 말한다. 유명 인사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땐 그랬지’ 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식으로 과거의 기억을 풀어내곤 한다.

박지성·김연아 등 스포츠 선수의 경우,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스타가 아닌 소탈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간다. 성공한 기업인들은 자신의 인생과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경영 노하우, 또 리더십을 소재로 경쟁력을 갖춘다. 하지만 정치와 회고록이 만나면 폭로전의 도구로 이용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 서점가에 ‘대통령 회고록’ 열풍

최근 서점가에 ‘대통령’이라는 이슈를 몰고 온 책이 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다. 출간 전부터 방송과 신문 매체 1면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임기에서 물러난 지 2년 만에 회고록을 출간해 ‘자원외교’와 ‘4대강 사업’ 등 민감한 정치 현안까지 언급하며 자신의 업적을 자평한 것에 대해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 전 대통령 회고록에 맞서 출간된 책이 있으니, 교수와 변호사, 시민운동가 등 분야별 전문가 16명이 함께 제작한 『MB의 비용』이다. 이 책은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자찬했던 성과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또 각 사업에 대한 손실비용을 분석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회고하는 서적이 또다시 출간됐다. 김 전 대통령의 의전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거치고, 최장수 주중대사를 지낸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이 『증언』을 펴냈다. 저자는 외교를 통해 본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을 소개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비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 포기 등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한국 대통령들의 경제정책을 분석한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한국경제 이야기』도 큰판형으로 다시 출간됐다.

◆ '대통령의 책' 얼마나 팔렸나

화제가 된 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인기리에 팔리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한 출판 관계자는 “대통령 회고록은 정치인과 언론만 관심 있다”고 평가한다.

교보문고와 인터넷 서점 ‘예스24’ 두곳에서 판매된 양을 분석한 결과, 『대통령의 시간』은 지난달 29일 정식 출간된 후 1주일 동안 5,120권(교보: 3,300 예스24: 1,920) 판매됐다. 이는 과거 안철수 의원이 쓴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 첫날 교보문고에서 1만권, 예스24에서 7000권 판매된 것과 비교할 때 저조한 성적이다.

역대 대통령 회고록 판매량과 비교해도 썩 좋은 성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성공과 좌절』은 출간 후 1주일 동안 9,610권(교보: 3,500 예스24: 6,110) 판매됐고,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은 5,181권(교보: 2,300 예스24: 2,881권) 판매됐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회고록이란 인생을 되돌아보며 자신에 대한 의미뿐 아니라 사회적 함의가 들어있어야 하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단순히 5년간 해온 일에 대해 써내려 갔을 뿐”이라며 “꼼꼼한 사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해야 할 회고록이 출간되자마자 논란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책으로서 함량도 미달”이라고 평가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치인 회고록이라는 특성상 잘 팔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미담과 감동이 있어야 하는데 자화자찬 일색이다 보니 일반 독자층을 포용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어 “국내에서 정치인 자서전으로 일반인에게 폭넓게 주목받은 사례는 『안철수의 생각』을 뽑을 수 있는데, 이는 회고보다는 비전에 대한 내용이 더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정치가 회고록을 만났을 때

“이 전 대통령은 퇴임한 대통령의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통령의 시간』 출간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수석은 “전직 대통령은 늘 비난의 대상이 되고 또 상당수 언론도 거기에 동참하는 한국의 정치문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해외 사례를 보면 퇴임한 대통령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회고록은 정치적 영향력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여전히 국제 사회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미국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아흔의 나이에도 집필을 놓지 않는다. 1982년 출간한 첫 회고록 『신념을 견지하며-대통령의 기억』 이후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펴냈고, 2012년에는 인생에 대한 성찰과 성숙을 다룬 『위즈덤』을 출간했다.

이에 대해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의 정치인 자서전 판매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포용력과 리더십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책은 공감과 소통의 도구인데, 일반 독자층의 관심을 이끌 만큼 감화력 있는 정치인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존경받는 대통령의 부재가 결국 자서전에 대한 시들한 반응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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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점가는 ‘대통령 회고’ 열풍…인기리에 팔리나?
    • 입력 2015-02-06 13:33:58
    • 수정2015-02-06 22:02:40
    문화
‘회고록(回顧錄)’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기록을 말한다. 유명 인사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땐 그랬지’ 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식으로 과거의 기억을 풀어내곤 한다.

박지성·김연아 등 스포츠 선수의 경우,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스타가 아닌 소탈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간다. 성공한 기업인들은 자신의 인생과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경영 노하우, 또 리더십을 소재로 경쟁력을 갖춘다. 하지만 정치와 회고록이 만나면 폭로전의 도구로 이용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 서점가에 ‘대통령 회고록’ 열풍

최근 서점가에 ‘대통령’이라는 이슈를 몰고 온 책이 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다. 출간 전부터 방송과 신문 매체 1면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임기에서 물러난 지 2년 만에 회고록을 출간해 ‘자원외교’와 ‘4대강 사업’ 등 민감한 정치 현안까지 언급하며 자신의 업적을 자평한 것에 대해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 전 대통령 회고록에 맞서 출간된 책이 있으니, 교수와 변호사, 시민운동가 등 분야별 전문가 16명이 함께 제작한 『MB의 비용』이다. 이 책은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자찬했던 성과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또 각 사업에 대한 손실비용을 분석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회고하는 서적이 또다시 출간됐다. 김 전 대통령의 의전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거치고, 최장수 주중대사를 지낸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이 『증언』을 펴냈다. 저자는 외교를 통해 본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을 소개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비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 포기 등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한국 대통령들의 경제정책을 분석한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한국경제 이야기』도 큰판형으로 다시 출간됐다.

◆ '대통령의 책' 얼마나 팔렸나

화제가 된 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인기리에 팔리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한 출판 관계자는 “대통령 회고록은 정치인과 언론만 관심 있다”고 평가한다.

교보문고와 인터넷 서점 ‘예스24’ 두곳에서 판매된 양을 분석한 결과, 『대통령의 시간』은 지난달 29일 정식 출간된 후 1주일 동안 5,120권(교보: 3,300 예스24: 1,920) 판매됐다. 이는 과거 안철수 의원이 쓴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 첫날 교보문고에서 1만권, 예스24에서 7000권 판매된 것과 비교할 때 저조한 성적이다.

역대 대통령 회고록 판매량과 비교해도 썩 좋은 성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성공과 좌절』은 출간 후 1주일 동안 9,610권(교보: 3,500 예스24: 6,110) 판매됐고,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은 5,181권(교보: 2,300 예스24: 2,881권) 판매됐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회고록이란 인생을 되돌아보며 자신에 대한 의미뿐 아니라 사회적 함의가 들어있어야 하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단순히 5년간 해온 일에 대해 써내려 갔을 뿐”이라며 “꼼꼼한 사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해야 할 회고록이 출간되자마자 논란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책으로서 함량도 미달”이라고 평가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치인 회고록이라는 특성상 잘 팔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미담과 감동이 있어야 하는데 자화자찬 일색이다 보니 일반 독자층을 포용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어 “국내에서 정치인 자서전으로 일반인에게 폭넓게 주목받은 사례는 『안철수의 생각』을 뽑을 수 있는데, 이는 회고보다는 비전에 대한 내용이 더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정치가 회고록을 만났을 때

“이 전 대통령은 퇴임한 대통령의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통령의 시간』 출간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수석은 “전직 대통령은 늘 비난의 대상이 되고 또 상당수 언론도 거기에 동참하는 한국의 정치문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해외 사례를 보면 퇴임한 대통령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회고록은 정치적 영향력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여전히 국제 사회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미국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아흔의 나이에도 집필을 놓지 않는다. 1982년 출간한 첫 회고록 『신념을 견지하며-대통령의 기억』 이후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펴냈고, 2012년에는 인생에 대한 성찰과 성숙을 다룬 『위즈덤』을 출간했다.

이에 대해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의 정치인 자서전 판매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포용력과 리더십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책은 공감과 소통의 도구인데, 일반 독자층의 관심을 이끌 만큼 감화력 있는 정치인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존경받는 대통령의 부재가 결국 자서전에 대한 시들한 반응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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