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뷰티풀 라이’

입력 2015.03.1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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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시작돼 22년간 지속한 수단 정부군과 남부 반군 수단인민해방군(SPLA) 간의 내전으로 250만명이 죽고 4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1만8천명의 아이들은 세계 각지를 떠도는 미아가 됐다.

20세기 최악의 참극 중 하나로 꼽히는 수단 내전.

이 기간 반군에게 '총알받이'로 강제로 잡히거나 아랍계 군인의 횡포를 피해 국경을 넘은 아이들을 가리켜 '잃어버린 아이들'이라고 한다.

영화 '뷰티풀 라이'(원제 'The Good Lie')는 바로 이 수단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얘기다.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마메르는 형 테오, 여동생 아비탈 등과 함께 반군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아 물 대신 소변을 마시고, 동물이 뜯고 남은 짐승의 사체를 먹으며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아이들이 난민을 뒤쫓는 군인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테오는 다른 아이들을 살리려고 혼자 끌려간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서로 의지하며 수백 ㎞를 걸은 아이들은 마침내 케냐의 카쿠마 난민 캠프에 도착하고, 그로부터 13년 뒤 미국으로 이주해 정착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동생 아비탈과 공항에서 헤어지게 된다.

영화는 수단의 '잃어버린 아이들'이 고향을 떠나 난민 캠프의 생활을 거쳐 낯선 땅 미국에 정착하며 살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기내식에 나온 버터를 통째로 먹고 맥도날드가 뭔지도 몰랐던 이들이 미혼이라는 직업소개사 캐리(리즈 위더스푼)에게 "텅빈 집을 채워줄 남편을 찾으시길"이라고 인사를 건네거나 목장이 딸린 집을 소유한 직업소개소 소장에게 "아버지가 추장이셨습니까"고 묻는 등 '글로 배운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문화적 차이와 어우러지며 소소한 웃음을 준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이들의 적응기를 가벼운 웃음거리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잊고 지낸 인간성과 가족애를 되돌아보게 한다.

일자리를 찾아 준 캐리에게 고맙다며 오렌지를 사 들고 찾아가는 마메르의 따뜻한 마음씨나 마메르와 함께 미국에 온 예레미아가 마트에서 일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는 사장에게 "필요한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며 반발하는 모습 등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동생의 죽음을 가슴에 묻은 채 마냥 까칠했던 캐리가 조금씩 마음을 연 것처럼 '잃어버린 아이들'은 닫혀 있던 관객의 마음도 조금씩 두드리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잃어버린 아이들'은 "잃어버린 존재가 아니라 발견된 존재"다.

선조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목장의 소떼와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고향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의 모습은 가슴 한구석이 아려올 정도로 짠하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테오의 용기 있는 선택에 이어 테오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마메르가 케냐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용기'에 가슴이 절로 먹먹해진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실제로 '잃어버린 아이들'이다.

마메르를 연기한 영국 출신의 배우 아널드 오셍, 예레미아 역을 맡은 미국 배우 겸 모델 게르 두아니, 미국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폴 역의 힙합 뮤지션 엠마뉴엘 잘 등은 모두 어린 시절 군인에게 소년병이 될 것을 강요받고 오랫동안 잔인한 대우를 받았던 이들이다.

극 중 케냐의 난민촌을 향해 길을 떠나는 수많은 아이들 역시 모두 수단 난민 출신의 부모를 둔 자녀들이라고 한다.

필리프 팔라도 감독은 "유명 배우들보다 힘든 상황을 경험했던 실제 '잃어버린 아이들'이 출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최대 난민촌이자 전쟁 난민 10만명을 수용한 실제 카쿠마 난민촌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론 하워드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3월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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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영화]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뷰티풀 라이’
    • 입력 2015-03-10 10:45:23
    연합뉴스
1983년 시작돼 22년간 지속한 수단 정부군과 남부 반군 수단인민해방군(SPLA) 간의 내전으로 250만명이 죽고 4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1만8천명의 아이들은 세계 각지를 떠도는 미아가 됐다. 20세기 최악의 참극 중 하나로 꼽히는 수단 내전. 이 기간 반군에게 '총알받이'로 강제로 잡히거나 아랍계 군인의 횡포를 피해 국경을 넘은 아이들을 가리켜 '잃어버린 아이들'이라고 한다. 영화 '뷰티풀 라이'(원제 'The Good Lie')는 바로 이 수단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얘기다.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마메르는 형 테오, 여동생 아비탈 등과 함께 반군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아 물 대신 소변을 마시고, 동물이 뜯고 남은 짐승의 사체를 먹으며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아이들이 난민을 뒤쫓는 군인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테오는 다른 아이들을 살리려고 혼자 끌려간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서로 의지하며 수백 ㎞를 걸은 아이들은 마침내 케냐의 카쿠마 난민 캠프에 도착하고, 그로부터 13년 뒤 미국으로 이주해 정착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동생 아비탈과 공항에서 헤어지게 된다. 영화는 수단의 '잃어버린 아이들'이 고향을 떠나 난민 캠프의 생활을 거쳐 낯선 땅 미국에 정착하며 살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기내식에 나온 버터를 통째로 먹고 맥도날드가 뭔지도 몰랐던 이들이 미혼이라는 직업소개사 캐리(리즈 위더스푼)에게 "텅빈 집을 채워줄 남편을 찾으시길"이라고 인사를 건네거나 목장이 딸린 집을 소유한 직업소개소 소장에게 "아버지가 추장이셨습니까"고 묻는 등 '글로 배운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문화적 차이와 어우러지며 소소한 웃음을 준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이들의 적응기를 가벼운 웃음거리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잊고 지낸 인간성과 가족애를 되돌아보게 한다. 일자리를 찾아 준 캐리에게 고맙다며 오렌지를 사 들고 찾아가는 마메르의 따뜻한 마음씨나 마메르와 함께 미국에 온 예레미아가 마트에서 일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는 사장에게 "필요한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며 반발하는 모습 등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동생의 죽음을 가슴에 묻은 채 마냥 까칠했던 캐리가 조금씩 마음을 연 것처럼 '잃어버린 아이들'은 닫혀 있던 관객의 마음도 조금씩 두드리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잃어버린 아이들'은 "잃어버린 존재가 아니라 발견된 존재"다. 선조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목장의 소떼와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고향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의 모습은 가슴 한구석이 아려올 정도로 짠하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테오의 용기 있는 선택에 이어 테오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마메르가 케냐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용기'에 가슴이 절로 먹먹해진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실제로 '잃어버린 아이들'이다. 마메르를 연기한 영국 출신의 배우 아널드 오셍, 예레미아 역을 맡은 미국 배우 겸 모델 게르 두아니, 미국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폴 역의 힙합 뮤지션 엠마뉴엘 잘 등은 모두 어린 시절 군인에게 소년병이 될 것을 강요받고 오랫동안 잔인한 대우를 받았던 이들이다. 극 중 케냐의 난민촌을 향해 길을 떠나는 수많은 아이들 역시 모두 수단 난민 출신의 부모를 둔 자녀들이라고 한다. 필리프 팔라도 감독은 "유명 배우들보다 힘든 상황을 경험했던 실제 '잃어버린 아이들'이 출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최대 난민촌이자 전쟁 난민 10만명을 수용한 실제 카쿠마 난민촌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론 하워드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3월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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