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상처에서 상처로…’ 마음을 보듬다

입력 2015.04.25 (08:18) 수정 2015.04.2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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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아가는 [통일로 미래로]입니다.

탈북민들 가운데는 장애를 앓거나 성폭력 피해 경험 등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들을 돕기 위해 직접 나선 탈북민들이 있습니다.

같은 처지의 탈북민들이 서로의 상처를 마음으로 보듬는 훈훈한 현장, 이현정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탈북민들은 남한 정착 초기.

우리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하나같이 토로하곤 합니다.

특히나 몸과 마음에 상처가 있는 취약 계층 탈북민들은 적응 뿐만 아니라 생활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요,

그들을 위해 직접 나선 사람들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서울시 양천구의 한 아파트. 지난 2007년,

장애의 몸을 이끌고 사선을 넘은 탈북자, 이장복 할아버지의 보금자리입니다.

<녹취> 이장복(장애 탈북민) : "나 같은 경우는 나이도 있지, 불구자지 하니까, 장애인이고 하니까 크게, 그게 고통스럽게.거기(북한에)서 올 때 산을 한 시간 올라가고 한 시간 내려간단 말이에요. 그때 완전 죽을 고비를 넘겼지. 이게 의족이잖아. 고개를 넘고 오니까 완전히 피투성이 됐어요."

20년 전 북한에서 사고로 잃은 왼쪽 다리는 의족이 대신하고 있고, 오른 쪽 다리도 이젠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상한지 오랩니다.

불편한 몸 때문에 사소한 집안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 답답한 노릇인데요.

혼자 지내던 할아버지의 집에 오늘,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장애가 있는 탈북민만으로 구성된 탈북 단체 겨레얼 통일연대의 봉사단입니다.

<녹취> 장세율(겨레얼통일연대 대표) : "오늘 우리 아바이(아버님)한테 진짜 특별 서비스하러 왔어, 내가. 에이 진짜. 청소도 잘 안하고 산다고 해서 청소도 말끔하게 해 주고."

<녹취> 이장복(장애 탈북민) : "난 청소라는 게 한번 걸레질 한다는 게 밀대 가져와서 하는데. 청소라는 건 내가 육체가 움직여야 되는데 그게 제일 힘들죠."

가스레인지의 묵은 때까지 꼼꼼하게 청소해주는 세심함,

거동이 좀 더 불편한 할아버지를 위해 같은 장애를 가진 몸이지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녹취> 한수림(장애 탈북민 봉사자) : "집 안에 청소도 해 주고, 밥도 좀 해 주고, 반찬도 좀 해 주고. 저도 장애인이라 힘들어서 자주는 못 오고."

<녹취> 이예림(탈북민 봉사자) : "제가 할 수 있는 게 봉사밖에 없더라고요. 같은 고향에서 오신 분들하고 봉사하는 게 가장 인상이 깊겠죠, 아무래도."

오늘의 특별 서비스인 안마까지 완료!

할아버지에겐 오늘 방문이 특별한 선물입니다.

<녹취> "죽기 전에 북한에 한번 가보고 죽어야 되는데, 그렇잖아요. 한번 북한에 가보고 죽어도 죽어야지. (글쎄 말이에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혼자 있던 외로움도 고향 사람들과 나누며 털어버릴 수 있었던 오늘 하루.

<녹취> "아바이, 그래도 힘내고요. (네, 힘내고 살아야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입가엔 시종 미소가 떠나지 않을 만큼 위안의 시간이었습니다.

<녹취> 이주영(탈북민 상담사) : "먹고 싶다고 그래서, 제 딸내미(가)."

딸과 남편을 위해 만두를 빚는, 오늘은 영락없는 아줌마 이주영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딸을 학교에 보내고 부랴부랴 출근 준비가 한창인데요.

<녹취> "뭐 잊어먹은 거 없나?"

가족 못지않게 주영 씨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출동입니다.

<녹취> "많다, 자리 많다, (나 먼저 올라야지.)"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은 여성 탈북민을 위한 상담소.

가정 폭력과 성폭력 등에 노출된 피해 탈북 여성들을 보살피기 위해 지난달 문을 연 곳인데요.

주영 씨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만난 친구의 일 때문입니다.

<녹취> 이주영(탈북민 상담사) : "제일 중요했던 게 교도소에 간 애예요. 걔는 그 땅에서도 힘들게 살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중국에서도 팔려가서 힘들게 살고 했었는데. 여기에 와서 어울려 있다가...
칼로 누굴 찔렀나 봐요."

함께 성공적인 정착을 꿈꿨지만 어려운 상황에 잘못된 선택을 했던 친구.

다시는 그녀 같은 여성들이 없길 바라며 상담사를 자청했다고 합니다.

<녹취> "도와드리고 싶은데 어떤 부분이 있는지 잘 몰라서요..."

<녹취> 이주영(탈북민 상담사) : "저희가 다섯 시에 딱 끝나서 사무실에서 나가잖아요? 그게 상담이 끝이 아니고 저희 또 개인 전화로, 핸드폰으로 전화가 많이 와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했다는 걸 왜 몰랐을까요.

하루에 걸려오는 전화만 30여 통, 오늘은 여자로써 지울 수 없는 상처,

성폭력 피해 여성이 찾아 왔습니다.

<녹취> 탈북민 성폭력 피해자 : "자기 열이 오르면(흥분되면) 안고 막 그래요. 저는 그렇다고 집 안이니까 소리도 못 지르고. 그냥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요. 남자 힘을 당해낼 수도 없고.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주영 씨에게 처음으로 입을 연 아픈 기억들.

같은 여자이자, 탈북민이기에 얘기를 듣는 것으로도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녹취> 이주영(탈북민 상담사) : "이제부터 겁내거나 힘들어 하지 마시고. 제가 아까 얘기 했잖아요. 고향 언니라고 생각하고 전화하고 수시로 마음의 것 다 내려놓고 사세요."

<녹취> 탈북민 성폭력 피해자 : "아직 한국에 대해서 아직 몰라요. 붕 떠있는 상태인데 내가 지금 이런 일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많이 겪다 보니까... 살아온 환경이 틀리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북한 여자라 편한 거예요."

사실 주영 씨를 비롯한 이곳 상담사들 모두 피해 여성들과 비슷한 상처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젠 그녀들의 작은 용기가, 생체기 난 탈북 여성들의 몸과 맘을 다독여 줍니다.

<녹취> 이주영(탈북민 상담사) : "가족 같은 분위기가 가장 중요하니까, 북한이탈주민한테는. 가족과의 고리가 많이 끊어졌잖아요, 지금. 그런 것들이 많이 필요하니까."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얻은 몸과 마음의 병에 시달리는 취약 계층 탈북민들.

그들을 위해 또 다른 탈북민들은 봉사를 자청하고 나섰는데요.

어려운 상황에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서로가 있기에 밝은 내일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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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상처에서 상처로…’ 마음을 보듬다
    • 입력 2015-04-25 08:19:51
    • 수정2015-04-25 09:45:47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아가는 [통일로 미래로]입니다.

탈북민들 가운데는 장애를 앓거나 성폭력 피해 경험 등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들을 돕기 위해 직접 나선 탈북민들이 있습니다.

같은 처지의 탈북민들이 서로의 상처를 마음으로 보듬는 훈훈한 현장, 이현정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탈북민들은 남한 정착 초기.

우리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하나같이 토로하곤 합니다.

특히나 몸과 마음에 상처가 있는 취약 계층 탈북민들은 적응 뿐만 아니라 생활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요,

그들을 위해 직접 나선 사람들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서울시 양천구의 한 아파트. 지난 2007년,

장애의 몸을 이끌고 사선을 넘은 탈북자, 이장복 할아버지의 보금자리입니다.

<녹취> 이장복(장애 탈북민) : "나 같은 경우는 나이도 있지, 불구자지 하니까, 장애인이고 하니까 크게, 그게 고통스럽게.거기(북한에)서 올 때 산을 한 시간 올라가고 한 시간 내려간단 말이에요. 그때 완전 죽을 고비를 넘겼지. 이게 의족이잖아. 고개를 넘고 오니까 완전히 피투성이 됐어요."

20년 전 북한에서 사고로 잃은 왼쪽 다리는 의족이 대신하고 있고, 오른 쪽 다리도 이젠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상한지 오랩니다.

불편한 몸 때문에 사소한 집안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 답답한 노릇인데요.

혼자 지내던 할아버지의 집에 오늘,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장애가 있는 탈북민만으로 구성된 탈북 단체 겨레얼 통일연대의 봉사단입니다.

<녹취> 장세율(겨레얼통일연대 대표) : "오늘 우리 아바이(아버님)한테 진짜 특별 서비스하러 왔어, 내가. 에이 진짜. 청소도 잘 안하고 산다고 해서 청소도 말끔하게 해 주고."

<녹취> 이장복(장애 탈북민) : "난 청소라는 게 한번 걸레질 한다는 게 밀대 가져와서 하는데. 청소라는 건 내가 육체가 움직여야 되는데 그게 제일 힘들죠."

가스레인지의 묵은 때까지 꼼꼼하게 청소해주는 세심함,

거동이 좀 더 불편한 할아버지를 위해 같은 장애를 가진 몸이지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녹취> 한수림(장애 탈북민 봉사자) : "집 안에 청소도 해 주고, 밥도 좀 해 주고, 반찬도 좀 해 주고. 저도 장애인이라 힘들어서 자주는 못 오고."

<녹취> 이예림(탈북민 봉사자) : "제가 할 수 있는 게 봉사밖에 없더라고요. 같은 고향에서 오신 분들하고 봉사하는 게 가장 인상이 깊겠죠, 아무래도."

오늘의 특별 서비스인 안마까지 완료!

할아버지에겐 오늘 방문이 특별한 선물입니다.

<녹취> "죽기 전에 북한에 한번 가보고 죽어야 되는데, 그렇잖아요. 한번 북한에 가보고 죽어도 죽어야지. (글쎄 말이에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혼자 있던 외로움도 고향 사람들과 나누며 털어버릴 수 있었던 오늘 하루.

<녹취> "아바이, 그래도 힘내고요. (네, 힘내고 살아야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입가엔 시종 미소가 떠나지 않을 만큼 위안의 시간이었습니다.

<녹취> 이주영(탈북민 상담사) : "먹고 싶다고 그래서, 제 딸내미(가)."

딸과 남편을 위해 만두를 빚는, 오늘은 영락없는 아줌마 이주영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딸을 학교에 보내고 부랴부랴 출근 준비가 한창인데요.

<녹취> "뭐 잊어먹은 거 없나?"

가족 못지않게 주영 씨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출동입니다.

<녹취> "많다, 자리 많다, (나 먼저 올라야지.)"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은 여성 탈북민을 위한 상담소.

가정 폭력과 성폭력 등에 노출된 피해 탈북 여성들을 보살피기 위해 지난달 문을 연 곳인데요.

주영 씨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만난 친구의 일 때문입니다.

<녹취> 이주영(탈북민 상담사) : "제일 중요했던 게 교도소에 간 애예요. 걔는 그 땅에서도 힘들게 살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중국에서도 팔려가서 힘들게 살고 했었는데. 여기에 와서 어울려 있다가...
칼로 누굴 찔렀나 봐요."

함께 성공적인 정착을 꿈꿨지만 어려운 상황에 잘못된 선택을 했던 친구.

다시는 그녀 같은 여성들이 없길 바라며 상담사를 자청했다고 합니다.

<녹취> "도와드리고 싶은데 어떤 부분이 있는지 잘 몰라서요..."

<녹취> 이주영(탈북민 상담사) : "저희가 다섯 시에 딱 끝나서 사무실에서 나가잖아요? 그게 상담이 끝이 아니고 저희 또 개인 전화로, 핸드폰으로 전화가 많이 와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했다는 걸 왜 몰랐을까요.

하루에 걸려오는 전화만 30여 통, 오늘은 여자로써 지울 수 없는 상처,

성폭력 피해 여성이 찾아 왔습니다.

<녹취> 탈북민 성폭력 피해자 : "자기 열이 오르면(흥분되면) 안고 막 그래요. 저는 그렇다고 집 안이니까 소리도 못 지르고. 그냥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요. 남자 힘을 당해낼 수도 없고.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주영 씨에게 처음으로 입을 연 아픈 기억들.

같은 여자이자, 탈북민이기에 얘기를 듣는 것으로도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녹취> 이주영(탈북민 상담사) : "이제부터 겁내거나 힘들어 하지 마시고. 제가 아까 얘기 했잖아요. 고향 언니라고 생각하고 전화하고 수시로 마음의 것 다 내려놓고 사세요."

<녹취> 탈북민 성폭력 피해자 : "아직 한국에 대해서 아직 몰라요. 붕 떠있는 상태인데 내가 지금 이런 일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많이 겪다 보니까... 살아온 환경이 틀리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북한 여자라 편한 거예요."

사실 주영 씨를 비롯한 이곳 상담사들 모두 피해 여성들과 비슷한 상처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젠 그녀들의 작은 용기가, 생체기 난 탈북 여성들의 몸과 맘을 다독여 줍니다.

<녹취> 이주영(탈북민 상담사) : "가족 같은 분위기가 가장 중요하니까, 북한이탈주민한테는. 가족과의 고리가 많이 끊어졌잖아요, 지금. 그런 것들이 많이 필요하니까."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얻은 몸과 마음의 병에 시달리는 취약 계층 탈북민들.

그들을 위해 또 다른 탈북민들은 봉사를 자청하고 나섰는데요.

어려운 상황에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서로가 있기에 밝은 내일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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