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 꽃제비, 인신매매…버려지는 2세들

입력 2015.05.16 (08:08) 수정 2015.05.1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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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의 창’ 취재진이 직접 중국 내 탈북자들의 실상을 현지 취재한 탈북 특집 ‘통일로 미래로’ 두 번째 순서입니다.

이번 주는 중국에까지 넘어와 길거리를 떠도는 탈북 꽃제비들의 실상을 집중 보도합니다.

또 인신매매 피해 탈북자들과 그 2세들의 이야기를 이현정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지하실에 숨어 빵으로 때우는 끼니...

<녹취> “보면 불쌍하죠. 같은 조선 민족인데.”

악몽과도 같은 강제송환의 공포...

<녹취> “자포자기 하는 거예요. 아 이제 진짜 끝났구나.”

그리고 대물림되는 비극...

<녹취> “이 아이는...지금 자기가 여기 있으니까.”

바로 지금,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의 현실입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중국의 한 작은 도시...

이 지역 인근에서 꽃제비들을 돌보고 있다는 운영자를 만났습니다.

행여 보호소가 노출돼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까 제3의 장소에서 먼저 만나야 했습니다.

<녹취> “그 쪽에 너무 경계가 심해서... 저 아래 부락에서 (보호소) 사람 하나를 군인들이 와서 잡아갔죠. 그런 뒤 아직까지 소식이 없죠.”

부엌을 지나자 허름한 방 하나가 나옵니다.

탈북 꽃제비들을 보호하는 안가입니다.

보일러실로 보이는 어두운 지하 공간...

며칠을 씻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대야에 물을 담아 겨우 얼굴과 손발을 씻습니다.

이어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집어먹는 아이들.

식사라고는 식은 빵 쪼가리가 전부인데도 연신 입에 넣습니다.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을 떠도는 꽃제비, 7살에서 13살의 어린이 6명입니다.

<녹취> “(너희들 부모는 하나도 없니? (북한에) 가면 엄마는 있니? 아버지는? (너희를) 안 찾니?) 네.(끄덕끄덕)”

지하실에 숨어서 허기를 달래는 이유는 삼엄해진 단속 때문입니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라면 이런 어린 꽃제비들까지도 닥치는 대로 잡아간다고 합니다.

<녹취> “지금 (북한) 부대가 긴장하고 있어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대변인 성명 발표.”

<녹취> “김정은이 (탈북자) 다 총으로 쏴죽이랬다고... 조선 군인들이 와서 (탈북자들) 잡아가서 감옥에 다...”

이 꽃제비들이 자는 곳입니다.

산 속 낙엽 위에서 그냥 이불만 덮고 잠을 잡니다.

특히 밤이면 들이닥치는 단속 때문에 어둑해질 때쯤이면 산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녹취> “여섯 명이 다 산에 있어. 걸릴까봐 산에다 그래(데려다) 놓고 가고 밥 먹을 것만 가져다주고...”

하지만 그나마 이 아이들은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지난겨울 북·중 접경을 떠돌다 들어왔던 꽃제비들입니다.

동상에 걸려 퉁퉁 부은 발이 까맣게 변색됐습니다.

발바닥엔 시뻘건 물집이 잡혀 있고 피부 일부는 괴사한 상태입니다.

상태가 심각한 꽃제비 두 명은 결국 손과 발을 절단해야 했는데요.

모두 굶주림에 먹을 것을 찾아 중국까지 넘어왔던 아이들입니다.

<녹취> “아이들 보면 불쌍하죠. 같은 (조선) 민족인데 진짜 불쌍하죠. 먹을 거 먹지 못하지. 약 없어서 치료도 못하지.”

하지만 이 보호 안가는 한 달에 40만 원 정도인 운영비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 폐쇄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운영자 역시 목숨을 걸고 꽃제비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녹취> “걸리게 되면 감옥으로...(전에도) OO 감옥에 잡혀서 2년 (수감돼) 있었어요. (북한 사람들) 먹이고 그런 죄로, 탈북자들 보호한 그 죄로...”

어린 아이들까지, 단속과 북송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그 공포가 정점을 찍는 곳이 있습니다.

북-중 접경 지역의 한 대로변...

언덕 위에 서있는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높은 담벼락에 철조망까지 쳐있어,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사방이 유리로 된 감시탑과 총을 든 군인도 눈에 띕니다.

바로 탈북자 수용소로,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들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기 전까지 이곳에 갇히게 됩니다.

<녹취> “한 감방 당 13명에서 15명 씩 수용 되고요. 그런 감방이 못해도 한 10개 이상 돼있었어요. 감방은 저 양 옆으로 쭉 둘러서 원형으로 감방이 돼 있고요. 저는 대략 한 달 정도 감금돼 있다가 온성 남양으로 북송 됐죠.”

이 수용소에서 북한 쪽으로 10분을 더 달리면 다리 하나가 나옵니다.

다리 색깔이 다른 부분이 바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인데요.

하루에도 몇 차례 씩 북한 군인들이 국경선까지 왔다가는 등 경계가 삼엄합니다.

이곳이 바로 북송 다리, 다시 끌려가는 탈북자들에게는 지옥의 다리로 통합니다.

<녹취> “이 다리를 통과해서 저쪽 남양 역까지 가요. 남양 역 앞에 저기 파란 건물 옆에 바로 흑색 건물이 있는데 그 검은 건물이 보위부 1차 요원들이 거기서 대기하고 있어요.”

이 다리를 건너는 순간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아야만 합니다.

<녹취> “(다리를 건널 때) 정면에 김일성 초상화가 보였어요. 그거 봤을 때 심경은 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감이죠. 그 때 공포가 딱 끝을 찍고 자포자기하는 거예요. 아 이제는 끝났구나.”

북송의 공포... 탈북자들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이유입니다.

취재진은 수차례 시도 끝에 이른바 탈북 전문 브로커라는 사람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너 댓 차례 약속 장소를 바꾼 브로커는 취재진에게 갑자기 택시를 타라고 합니다.

본인이 직접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줍니다.

마침내 브로커가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취재진과 동행한 탈북자가 먼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녹취> “(다른) 브로커를 보냈는데 신의주 가서 찾다가 보위부(한테) 꼬리를 밟혔대요. 누나를 데리고 나오다가 잡혔대요.”

그리고 북한 내 가족들과 연락을 취할 휴대 전화를 건넵니다.

탈북 작전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녹취> “전화 하고 배터리까지 준비해 놨어요.”

<녹취> “내가 (북한에 사람을) 보낼 때 잘 포장해서...물 지나갈 때 젖으면 안 된다고.”

북한 내 가족들의 생사와 탈북 의사가 확인되면 곧바로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작전이 본격화 되는데요.

북한과 중국 내 조직의 역할 분담을 통해 순차적으로 진행됩니다.

<녹취> “탈북자를 데려오라, 그 다음에 어느 날 도착을 한다, 어느 날 작업하자고 하면 딱 대기하고 있다가 넘어오면 싣고 딱 빠져나와.”

북한에서 중국, 동남아시아 등을 거쳐 한국까지 들어가는 모든 과정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듭니다.

<녹취> “우리 돈으로 해서 한 육칠백 만원. 칠백 만 원 정도 드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안전하게 하면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녹취> “선금 하고 이런 건 직접 드릴까요?”

<녹취> “비용은 지금 주지 말고 이거는 OO선생하고 내가 지금 가서 보잖아. OO선생 만나라고. 만나서 그다음에 돈을 내라고.”

하지만 대다수 탈북자들은 이런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데요.

특히 올 들어서는 국경 감시마저 삼엄해져 더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녹취> “12월 달만 해도 잘 했어. 근데 올 1월부터 좀 그래서 한 달에 그저 다섯 명인가...잘 될 때는 한 달에 한 삼십 명.”

중국 허베이 성입니다. 고속도로를 빠져 한 시간을 더 달리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옵니다.

허물어질 듯한 낡은 집... 부엌 양쪽으로 방이 있습니다.

이 탈북 여성이 2백 만 원 조금 넘는 돈에 팔려와 살았던 집입니다.

7년 전 탈출할 당시 살림살이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녹취> “저기에서 신발을 신고서 자요. 여기 사람들은 신발 여기다 대고, 저기 머리 대고 자요. 딱 오니까 세상에 이런 집도 있는가.”

처음 끌려올 때는 마을 위치를 알 수 없도록 복잡한 여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녹취> “고속도로에 거기서 내려놓고 거기서 또 차 대기하고 있데요. 또 오토바이로 갈아 타 가지고 여기까지 데려다 주고, 밤중에. 여기 도착하니까 아홉 시 열 시 인가?”

도망치다 잡히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녹취> “그러니까 옆에서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병신 만들어야 된다고 그래야 내가 도망을 못 친다고 내 눈을 빼겠다고 깔고 앉아서...”

이런 참혹한 현실에 처한 탈북 여성은 이 마을에만 3명이나 있는데요.

모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마을 농부들과 살고 있습니다.

늦은 밤... 마을 사람들 감시를 피해 이들 여성들을 따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중국까지 왔지만 노예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녹취> “안 살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와서 때리고 협박하고 그럼 무서워서 그냥 사는 사람도 있고 거의 다 그렇게 살아요. 지금.”

그나마 중국의 오지 마을에 이렇게 팔려가는 건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녹취> “지금 심한 케이스는 성노리개로 팔리는 데도 있죠. 아예 그냥 몇 명이 돈을 분할해서 사기도 해요. 돌아가면서 성노리개로 삼는 그런 것도 있고요.”

탈북 여성들의 참혹한 삶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중국 랴오닝 성의 한 기차역...

탈북 여성 이 씨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노예같이 살았던 오지 마을을 탈출하면서 미처 데려오지 못한 자식입니다.

<녹취> “제 입장에선 아들한테 많이 미안하고요. 후회도 되고요. 죽든 살든 데리고 들어왔어야 된다. 그럼 이런 일이 없었을 거야. 이런 생각도 하고요.”

아들이 있다는 한 기숙학교입니다.

<녹취> “(저런 옷 입은 거 아니에요? 아까 걔가 입었던 옷이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그건 겨울방학 때 찍은 거.”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아들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합니다.

<녹취> “(얘기해봤자 소용없어요. 만나지 못해요.) 친엄마라니까요. (나도 알지만 못 만나게 한다니까요.)”

아들에게 줄 선물까지 사왔지만 학교 측은 전달하는 것조차 거부합니다.

<녹취> “옷만 주고 가면 안 돼요? 생일선물인데. (그건 모르겠고요.)”

같이 살던 중국인이 지난해 숨을 거둔 뒤 현재 보호자로 돼있는 가족들이 아들과의 접촉을 막았기 때문인데요.

통사정 끝에 겨우 고모를 학교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녹취> “(기다리래요? 왜 기다리는 거예요?) 저쪽에서 못 들어오게 하니까.”

복도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아들을 만났습니다.

사무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들의 표정은 영 밝아지지 않습니다.

아들은 만났지만 중국 가족들이 거금을 요구해 끝내 아들을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로 다시 들어가는 아들을 붙잡고 황급히 연락처만 겨우 알려줍니다.

<녹취> “엄마 휴대전화 번호 알려줄 테니까 기억해. 기억했어? 말해봐. 번호 기억해.”

<녹취> “이 아이는...지금 자기가 여기 있으니까 우리 아이도 지금 살기 위해서, 솔직히 말하면 생존이죠. 생존을 위해서 여기 있으니까 여기 사람들 말 듣고 눈치 보고. 돌아서 눈물 글썽해서, 고모 여기 있을 때...”

중국 가족들은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가는 조건으로 10만 위안, 우리 돈 천8백만 원 정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엔 가족들이 양육을 포기해, 국적도 없이 버려지는 탈북 2세들도 많은데요.

이 고아원에는 이런 탈북 2세들 10여 명이 지내고 있습니다.

<녹취> “호적을 해주면 도망칠 것 같으니까 호적을 안 올려줘요. 그래서 호적이 없다 보니까 애들 자체가 삶이 더 어려운 거죠.”

현재 중국을 떠도는 국적 없는 탈북 2세는 최대 3만 명.

탈북 여성 수도 그 정도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도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는 사람들...

그리고 엄마에서 자식으로...

대물림의 비극 또한 어디선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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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탈북 꽃제비, 인신매매…버려지는 2세들
    • 입력 2015-05-16 08:14:02
    • 수정2015-05-16 13:35:01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남북의 창’ 취재진이 직접 중국 내 탈북자들의 실상을 현지 취재한 탈북 특집 ‘통일로 미래로’ 두 번째 순서입니다.

이번 주는 중국에까지 넘어와 길거리를 떠도는 탈북 꽃제비들의 실상을 집중 보도합니다.

또 인신매매 피해 탈북자들과 그 2세들의 이야기를 이현정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지하실에 숨어 빵으로 때우는 끼니...

<녹취> “보면 불쌍하죠. 같은 조선 민족인데.”

악몽과도 같은 강제송환의 공포...

<녹취> “자포자기 하는 거예요. 아 이제 진짜 끝났구나.”

그리고 대물림되는 비극...

<녹취> “이 아이는...지금 자기가 여기 있으니까.”

바로 지금,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의 현실입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중국의 한 작은 도시...

이 지역 인근에서 꽃제비들을 돌보고 있다는 운영자를 만났습니다.

행여 보호소가 노출돼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까 제3의 장소에서 먼저 만나야 했습니다.

<녹취> “그 쪽에 너무 경계가 심해서... 저 아래 부락에서 (보호소) 사람 하나를 군인들이 와서 잡아갔죠. 그런 뒤 아직까지 소식이 없죠.”

부엌을 지나자 허름한 방 하나가 나옵니다.

탈북 꽃제비들을 보호하는 안가입니다.

보일러실로 보이는 어두운 지하 공간...

며칠을 씻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대야에 물을 담아 겨우 얼굴과 손발을 씻습니다.

이어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집어먹는 아이들.

식사라고는 식은 빵 쪼가리가 전부인데도 연신 입에 넣습니다.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을 떠도는 꽃제비, 7살에서 13살의 어린이 6명입니다.

<녹취> “(너희들 부모는 하나도 없니? (북한에) 가면 엄마는 있니? 아버지는? (너희를) 안 찾니?) 네.(끄덕끄덕)”

지하실에 숨어서 허기를 달래는 이유는 삼엄해진 단속 때문입니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라면 이런 어린 꽃제비들까지도 닥치는 대로 잡아간다고 합니다.

<녹취> “지금 (북한) 부대가 긴장하고 있어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대변인 성명 발표.”

<녹취> “김정은이 (탈북자) 다 총으로 쏴죽이랬다고... 조선 군인들이 와서 (탈북자들) 잡아가서 감옥에 다...”

이 꽃제비들이 자는 곳입니다.

산 속 낙엽 위에서 그냥 이불만 덮고 잠을 잡니다.

특히 밤이면 들이닥치는 단속 때문에 어둑해질 때쯤이면 산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녹취> “여섯 명이 다 산에 있어. 걸릴까봐 산에다 그래(데려다) 놓고 가고 밥 먹을 것만 가져다주고...”

하지만 그나마 이 아이들은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지난겨울 북·중 접경을 떠돌다 들어왔던 꽃제비들입니다.

동상에 걸려 퉁퉁 부은 발이 까맣게 변색됐습니다.

발바닥엔 시뻘건 물집이 잡혀 있고 피부 일부는 괴사한 상태입니다.

상태가 심각한 꽃제비 두 명은 결국 손과 발을 절단해야 했는데요.

모두 굶주림에 먹을 것을 찾아 중국까지 넘어왔던 아이들입니다.

<녹취> “아이들 보면 불쌍하죠. 같은 (조선) 민족인데 진짜 불쌍하죠. 먹을 거 먹지 못하지. 약 없어서 치료도 못하지.”

하지만 이 보호 안가는 한 달에 40만 원 정도인 운영비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 폐쇄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운영자 역시 목숨을 걸고 꽃제비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녹취> “걸리게 되면 감옥으로...(전에도) OO 감옥에 잡혀서 2년 (수감돼) 있었어요. (북한 사람들) 먹이고 그런 죄로, 탈북자들 보호한 그 죄로...”

어린 아이들까지, 단속과 북송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그 공포가 정점을 찍는 곳이 있습니다.

북-중 접경 지역의 한 대로변...

언덕 위에 서있는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높은 담벼락에 철조망까지 쳐있어,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사방이 유리로 된 감시탑과 총을 든 군인도 눈에 띕니다.

바로 탈북자 수용소로,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들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기 전까지 이곳에 갇히게 됩니다.

<녹취> “한 감방 당 13명에서 15명 씩 수용 되고요. 그런 감방이 못해도 한 10개 이상 돼있었어요. 감방은 저 양 옆으로 쭉 둘러서 원형으로 감방이 돼 있고요. 저는 대략 한 달 정도 감금돼 있다가 온성 남양으로 북송 됐죠.”

이 수용소에서 북한 쪽으로 10분을 더 달리면 다리 하나가 나옵니다.

다리 색깔이 다른 부분이 바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인데요.

하루에도 몇 차례 씩 북한 군인들이 국경선까지 왔다가는 등 경계가 삼엄합니다.

이곳이 바로 북송 다리, 다시 끌려가는 탈북자들에게는 지옥의 다리로 통합니다.

<녹취> “이 다리를 통과해서 저쪽 남양 역까지 가요. 남양 역 앞에 저기 파란 건물 옆에 바로 흑색 건물이 있는데 그 검은 건물이 보위부 1차 요원들이 거기서 대기하고 있어요.”

이 다리를 건너는 순간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아야만 합니다.

<녹취> “(다리를 건널 때) 정면에 김일성 초상화가 보였어요. 그거 봤을 때 심경은 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감이죠. 그 때 공포가 딱 끝을 찍고 자포자기하는 거예요. 아 이제는 끝났구나.”

북송의 공포... 탈북자들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이유입니다.

취재진은 수차례 시도 끝에 이른바 탈북 전문 브로커라는 사람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너 댓 차례 약속 장소를 바꾼 브로커는 취재진에게 갑자기 택시를 타라고 합니다.

본인이 직접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줍니다.

마침내 브로커가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취재진과 동행한 탈북자가 먼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녹취> “(다른) 브로커를 보냈는데 신의주 가서 찾다가 보위부(한테) 꼬리를 밟혔대요. 누나를 데리고 나오다가 잡혔대요.”

그리고 북한 내 가족들과 연락을 취할 휴대 전화를 건넵니다.

탈북 작전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녹취> “전화 하고 배터리까지 준비해 놨어요.”

<녹취> “내가 (북한에 사람을) 보낼 때 잘 포장해서...물 지나갈 때 젖으면 안 된다고.”

북한 내 가족들의 생사와 탈북 의사가 확인되면 곧바로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작전이 본격화 되는데요.

북한과 중국 내 조직의 역할 분담을 통해 순차적으로 진행됩니다.

<녹취> “탈북자를 데려오라, 그 다음에 어느 날 도착을 한다, 어느 날 작업하자고 하면 딱 대기하고 있다가 넘어오면 싣고 딱 빠져나와.”

북한에서 중국, 동남아시아 등을 거쳐 한국까지 들어가는 모든 과정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듭니다.

<녹취> “우리 돈으로 해서 한 육칠백 만원. 칠백 만 원 정도 드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안전하게 하면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녹취> “선금 하고 이런 건 직접 드릴까요?”

<녹취> “비용은 지금 주지 말고 이거는 OO선생하고 내가 지금 가서 보잖아. OO선생 만나라고. 만나서 그다음에 돈을 내라고.”

하지만 대다수 탈북자들은 이런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데요.

특히 올 들어서는 국경 감시마저 삼엄해져 더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녹취> “12월 달만 해도 잘 했어. 근데 올 1월부터 좀 그래서 한 달에 그저 다섯 명인가...잘 될 때는 한 달에 한 삼십 명.”

중국 허베이 성입니다. 고속도로를 빠져 한 시간을 더 달리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옵니다.

허물어질 듯한 낡은 집... 부엌 양쪽으로 방이 있습니다.

이 탈북 여성이 2백 만 원 조금 넘는 돈에 팔려와 살았던 집입니다.

7년 전 탈출할 당시 살림살이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녹취> “저기에서 신발을 신고서 자요. 여기 사람들은 신발 여기다 대고, 저기 머리 대고 자요. 딱 오니까 세상에 이런 집도 있는가.”

처음 끌려올 때는 마을 위치를 알 수 없도록 복잡한 여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녹취> “고속도로에 거기서 내려놓고 거기서 또 차 대기하고 있데요. 또 오토바이로 갈아 타 가지고 여기까지 데려다 주고, 밤중에. 여기 도착하니까 아홉 시 열 시 인가?”

도망치다 잡히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녹취> “그러니까 옆에서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병신 만들어야 된다고 그래야 내가 도망을 못 친다고 내 눈을 빼겠다고 깔고 앉아서...”

이런 참혹한 현실에 처한 탈북 여성은 이 마을에만 3명이나 있는데요.

모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마을 농부들과 살고 있습니다.

늦은 밤... 마을 사람들 감시를 피해 이들 여성들을 따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중국까지 왔지만 노예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녹취> “안 살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와서 때리고 협박하고 그럼 무서워서 그냥 사는 사람도 있고 거의 다 그렇게 살아요. 지금.”

그나마 중국의 오지 마을에 이렇게 팔려가는 건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녹취> “지금 심한 케이스는 성노리개로 팔리는 데도 있죠. 아예 그냥 몇 명이 돈을 분할해서 사기도 해요. 돌아가면서 성노리개로 삼는 그런 것도 있고요.”

탈북 여성들의 참혹한 삶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중국 랴오닝 성의 한 기차역...

탈북 여성 이 씨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노예같이 살았던 오지 마을을 탈출하면서 미처 데려오지 못한 자식입니다.

<녹취> “제 입장에선 아들한테 많이 미안하고요. 후회도 되고요. 죽든 살든 데리고 들어왔어야 된다. 그럼 이런 일이 없었을 거야. 이런 생각도 하고요.”

아들이 있다는 한 기숙학교입니다.

<녹취> “(저런 옷 입은 거 아니에요? 아까 걔가 입었던 옷이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그건 겨울방학 때 찍은 거.”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아들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합니다.

<녹취> “(얘기해봤자 소용없어요. 만나지 못해요.) 친엄마라니까요. (나도 알지만 못 만나게 한다니까요.)”

아들에게 줄 선물까지 사왔지만 학교 측은 전달하는 것조차 거부합니다.

<녹취> “옷만 주고 가면 안 돼요? 생일선물인데. (그건 모르겠고요.)”

같이 살던 중국인이 지난해 숨을 거둔 뒤 현재 보호자로 돼있는 가족들이 아들과의 접촉을 막았기 때문인데요.

통사정 끝에 겨우 고모를 학교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녹취> “(기다리래요? 왜 기다리는 거예요?) 저쪽에서 못 들어오게 하니까.”

복도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아들을 만났습니다.

사무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들의 표정은 영 밝아지지 않습니다.

아들은 만났지만 중국 가족들이 거금을 요구해 끝내 아들을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로 다시 들어가는 아들을 붙잡고 황급히 연락처만 겨우 알려줍니다.

<녹취> “엄마 휴대전화 번호 알려줄 테니까 기억해. 기억했어? 말해봐. 번호 기억해.”

<녹취> “이 아이는...지금 자기가 여기 있으니까 우리 아이도 지금 살기 위해서, 솔직히 말하면 생존이죠. 생존을 위해서 여기 있으니까 여기 사람들 말 듣고 눈치 보고. 돌아서 눈물 글썽해서, 고모 여기 있을 때...”

중국 가족들은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가는 조건으로 10만 위안, 우리 돈 천8백만 원 정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엔 가족들이 양육을 포기해, 국적도 없이 버려지는 탈북 2세들도 많은데요.

이 고아원에는 이런 탈북 2세들 10여 명이 지내고 있습니다.

<녹취> “호적을 해주면 도망칠 것 같으니까 호적을 안 올려줘요. 그래서 호적이 없다 보니까 애들 자체가 삶이 더 어려운 거죠.”

현재 중국을 떠도는 국적 없는 탈북 2세는 최대 3만 명.

탈북 여성 수도 그 정도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도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는 사람들...

그리고 엄마에서 자식으로...

대물림의 비극 또한 어디선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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