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광주권번’ 출신의 신명난 무대

입력 2015.06.04 (07:42) 수정 2015.06.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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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강점기 기생들의 조직을 '권번'이라고 불렀는데요.

당시 권번의 기생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망라한 예술인이었습니다.

마지막 '광주권번'출신의 무대가 선보였습니다.

조선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일제강점기 기생들이 가무와 시문을 익히던 예술 학교 '권번'.

이 권번에 14살 때 입성해 소리를 배운 85살 박화선 명창입니다.

옥중에서 이몽룡을 그리던 성춘향의 구슬픈 가락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절정에 다달아 시원하게 꺾이는 소리에 북을 치는 고수는 절로 신명납니다.

<인터뷰> 장유미(충남 아산시) : "어려운 공연을 보게 되서 정말 기분도 좋고 되게 여운이 많이 남는 것 같아서.."

승무와 살풀이 무형문화재인 88살 이매방 선생.

일곱살 되던 해 권번에 발을 들여 우리 무용을 배워온 이 옹이 북채를 잡았습니다.

무용수의 손짓에 흰천이 나부끼면, 고수는 애잔하고 느린 장단으로 나쁜 기운을 저만치 날려보냅니다.

아흔 살 가까운 세월이 무색하게 손가락 마디마디에 혼을 실어냅니다.

<녹취> 이매방(중요무형문화재 27호·97호) : "권번을 이렇게 역사에 책으로 쓰든지 노트로 쓰든지 역사에 남겨야지. 흐름을 흘려야지.."

우리의 춤과 소리를 가르치던 권번의 문화가, 전북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선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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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광주권번’ 출신의 신명난 무대
    • 입력 2015-06-04 07:44:18
    • 수정2015-06-04 08: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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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강점기 기생들의 조직을 '권번'이라고 불렀는데요.

당시 권번의 기생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망라한 예술인이었습니다.

마지막 '광주권번'출신의 무대가 선보였습니다.

조선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일제강점기 기생들이 가무와 시문을 익히던 예술 학교 '권번'.

이 권번에 14살 때 입성해 소리를 배운 85살 박화선 명창입니다.

옥중에서 이몽룡을 그리던 성춘향의 구슬픈 가락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절정에 다달아 시원하게 꺾이는 소리에 북을 치는 고수는 절로 신명납니다.

<인터뷰> 장유미(충남 아산시) : "어려운 공연을 보게 되서 정말 기분도 좋고 되게 여운이 많이 남는 것 같아서.."

승무와 살풀이 무형문화재인 88살 이매방 선생.

일곱살 되던 해 권번에 발을 들여 우리 무용을 배워온 이 옹이 북채를 잡았습니다.

무용수의 손짓에 흰천이 나부끼면, 고수는 애잔하고 느린 장단으로 나쁜 기운을 저만치 날려보냅니다.

아흔 살 가까운 세월이 무색하게 손가락 마디마디에 혼을 실어냅니다.

<녹취> 이매방(중요무형문화재 27호·97호) : "권번을 이렇게 역사에 책으로 쓰든지 노트로 쓰든지 역사에 남겨야지. 흐름을 흘려야지.."

우리의 춤과 소리를 가르치던 권번의 문화가, 전북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선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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