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학교 고유 이름’ 사라진다…‘쩐(錢)의 힘’

입력 2015.06.0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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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명대학에서 학교 고유의 이름이 속속 사라지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돈을 내놓은 기부자의 이름을 따 학교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쩐(錢)의 힘'이다.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학은 3일(현지시간) 대학 역사상 가장 많은 4억 달러(4천429억 원)를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억만장자 존 폴슨으로부터 기부받았다고 밝혔다. 폴슨앤드컴퍼니 회장인 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신이다.

폴슨 회장이 기부한 곳은 공학응용과학대학(SEAS·School of Engineering and Applied Sciences)이다.

막대한 기부금에 드루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은 즉각 성명을 내어 "(이번 기부가) 하버드를 변화시키고, 그 너머 세계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학교명을 앞으로 '존 폴슨 공학응용과학대학'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폴슨 회장은 "지난 379년 동안, 하버드대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미치면서 인류 전체를 이롭게 했다"면서 "오늘 기부가 SEAS를 21세기 공학의 리더로 이끌어 이런 유산을 이어나가는데 도움을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폴슨 회장의 이번 기부는 하버드대학에 대한 역대 기부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금까지의 하버드 최대 기부는 지난해 9월 홍콩 최고 부동산업체 가운데 한 곳인 항룽그룹(恒隆集團) 창업자 T.H.챈(1986년 작고)의 후손이 운영하는 모닝사이드 자선재단이 내놓은 3억5천만 달러(3천875억 원)다.

당시에도 하버드는 챈 일가의 기부에 따라 보건대학원 명칭을 'T.H. 챈 보건대학원'으로 바꿨다. 당시까지 하버드에서 개인의 이름을 딴 대학은 공공정책대학원인 '케네디스쿨'뿐이었다.

고액 기부에 속속 학교 이름마저 바뀌자 학내에서 비판 여론이 나오고 있다.

크리스토퍼 로비쇼 케네디 스쿨 교수는 "이런 추세로 가면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메디컬스쿨(의료전문대학원) 정도만 남기고 모든 학교 이름이 기부자 이름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돈의 힘에 밀려 학교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다.

아울러 이런 현상은 학교 순위가 높은 유명 대학에서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폴슨 회장의 이번 기부금은 2억2천500만∼3억5천만 달러 범위인 예일, 코넬, 존스홉킨스, 펜실베이니아 대학 등 미국 유명 대학의 최다 기부액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최고의 명문대학일수록 돈이 몰리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아니지만 다른 부문에서도 고액 기부로 이름이 바뀐 사례가 있다.

세계 음악가들에게 선망의 무대인 뉴욕 링컨센터의 '애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 역시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미국 대중문화계의 큰 손, 데이비드 게펜으로부터 지난 3월 1억 달러(1천100억8천만 원)를 기부받자 공연장 명칭을 '데이비드 게펜 홀'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자 미국 문화계에서는 뉴욕을 상징하는 공연장이 할리우드의 큰손에게 넘어간 상징적 사건이라며 비판적 의견이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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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대학 ‘학교 고유 이름’ 사라진다…‘쩐(錢)의 힘’
    • 입력 2015-06-04 08:42:11
    연합뉴스
미국 유명대학에서 학교 고유의 이름이 속속 사라지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돈을 내놓은 기부자의 이름을 따 학교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쩐(錢)의 힘'이다.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학은 3일(현지시간) 대학 역사상 가장 많은 4억 달러(4천429억 원)를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억만장자 존 폴슨으로부터 기부받았다고 밝혔다. 폴슨앤드컴퍼니 회장인 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신이다. 폴슨 회장이 기부한 곳은 공학응용과학대학(SEAS·School of Engineering and Applied Sciences)이다. 막대한 기부금에 드루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은 즉각 성명을 내어 "(이번 기부가) 하버드를 변화시키고, 그 너머 세계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학교명을 앞으로 '존 폴슨 공학응용과학대학'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폴슨 회장은 "지난 379년 동안, 하버드대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미치면서 인류 전체를 이롭게 했다"면서 "오늘 기부가 SEAS를 21세기 공학의 리더로 이끌어 이런 유산을 이어나가는데 도움을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폴슨 회장의 이번 기부는 하버드대학에 대한 역대 기부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금까지의 하버드 최대 기부는 지난해 9월 홍콩 최고 부동산업체 가운데 한 곳인 항룽그룹(恒隆集團) 창업자 T.H.챈(1986년 작고)의 후손이 운영하는 모닝사이드 자선재단이 내놓은 3억5천만 달러(3천875억 원)다. 당시에도 하버드는 챈 일가의 기부에 따라 보건대학원 명칭을 'T.H. 챈 보건대학원'으로 바꿨다. 당시까지 하버드에서 개인의 이름을 딴 대학은 공공정책대학원인 '케네디스쿨'뿐이었다. 고액 기부에 속속 학교 이름마저 바뀌자 학내에서 비판 여론이 나오고 있다. 크리스토퍼 로비쇼 케네디 스쿨 교수는 "이런 추세로 가면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메디컬스쿨(의료전문대학원) 정도만 남기고 모든 학교 이름이 기부자 이름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돈의 힘에 밀려 학교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다. 아울러 이런 현상은 학교 순위가 높은 유명 대학에서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폴슨 회장의 이번 기부금은 2억2천500만∼3억5천만 달러 범위인 예일, 코넬, 존스홉킨스, 펜실베이니아 대학 등 미국 유명 대학의 최다 기부액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최고의 명문대학일수록 돈이 몰리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아니지만 다른 부문에서도 고액 기부로 이름이 바뀐 사례가 있다. 세계 음악가들에게 선망의 무대인 뉴욕 링컨센터의 '애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 역시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미국 대중문화계의 큰 손, 데이비드 게펜으로부터 지난 3월 1억 달러(1천100억8천만 원)를 기부받자 공연장 명칭을 '데이비드 게펜 홀'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자 미국 문화계에서는 뉴욕을 상징하는 공연장이 할리우드의 큰손에게 넘어간 상징적 사건이라며 비판적 의견이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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