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북 ‘100년 만의 가뭄’…식량난 우려

입력 2015.06.27 (08:08) 수정 2015.06.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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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만, 북한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간간이 단비가 내리긴 했지만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한데요.

일각에선 식량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100년 만에 최악이라는 북한 가뭄 실태, 그리고 왜 유독 북한의 피해가 큰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7일, 북한 황해도 청단군.

강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냈고, 논바닥 곳곳은 쩍쩍 금이 가 있다.

수확해야 할 밭작물은 말라 죽은 지 오래..

<녹취> 북한 농부 : "20년 동안 농사하면서 이런 가뭄 피해가 처음입니다."

중국 관영 CCTV가 촬영한 영상 속 북한의 가뭄 실태이다.

심상치 않은 가뭄의 징조는 이미 올 초부터 예견돼 왔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북한에 내린 비의 양은 평년의 74퍼센트에 불과한 135.4밀리미터.

특히 모내기철인 5월 강수량이 평년의 57퍼센트에 그치면서, 북한의 올해 농사에 빨간불이 켜졌다.

여기엔 북한 최대의 쌀 생산지인 황해도에 가뭄이 집중된 영향도 컸다.

<인터뷰> 김용진(기상청 통보관) : "북한의 곡창지대인 개성과 사리원을 포함한 황해도 지역이 가뭄에 매우 시달리고 있는데요. 황해도 지역의 강수량은 평년의 40% 정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달 초 북한을 방문한 세계식량계획 국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심각한 북한 가뭄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

<녹취> 클라우디아 폰 로엘(세계식량계획 공여 국장) : "평성시를 관통하는 강이 실제로 완전히 말라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북한 당국도 이례적으로 가뭄 피해 상황을 알리고 나섰다.

각지 농촌에서 ‘100년 만의 왕가뭄’으로 심한 피해를 받고 있다며, 모내기한 논의 30퍼센트가 피해를 입었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공개한 것이다.

북한이 가뭄 피해를 공식화한 이후, 외신들의 관련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BBC·CNN 등 주요 외신, 北 가뭄 긴급 보도 BBC는 기상캐스터와의 대담 코너를 통해 북한 가뭄 상황을 전했고, CNN 역시 이를 긴급 뉴스로 타진했다.

<녹취> CNN 일기예보 : "특히 2014년도는 기록 상 지난 30년 동안 가장 마른 해였고 2015년은 벌써 그 기록을 깰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당국이 올해 가뭄을 ‘100년 만의 왕가뭄’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그 선전 배경에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하는 등 북한의 가뭄 발표를 둘러싼 추측 역시 무성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처럼 가뭄을 대내외에 선전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권태진(CJ&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 원장) : "이러한 피해가 김정은의 정책적인 잘못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에 의해서 일어났다라는 것을 주민들에게 일단 미리 알리는 측면 그리고 또 필요하면 국제사회가 도와주기를 기대하는 뭐 이런 양면성이 있다고 봅니다."

가뭄 피해가 전역으로 확산되자, 북한 당국은 이른바 ‘가뭄 극복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3월) : "물 확보 전투를 힘 있게 벌려나가자."

특히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물 확보’이다.

영농철을 앞둔 3월부터 주민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농수로 공사를 펼쳤고, 마른 논에 구멍을 파고 모를 심는 ‘물 절약형 농법’도 적극 홍보에 나섰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22일) : "부족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에서는 지난 시기 바다로 쓸모없이 흘려보내던 물을 모두 잡아 이용하기 위한 사업을 짜고들고 있습니다."

특히 모내기가 끝나고, 물 공급이 가을철 작황을 좌우하는 이번 주 들어서는 각종 매체를 통해 ‘양수로 설치’, ‘물길 굴 공사’ 등 물 확보 사업을 반복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북한 전역이 말라붙어, 바닷물까지 동원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전언이다.

<인터뷰> 서재평(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탈북자 출신) : "오죽하면 대동강 서해안지역에 바닷물이 유입이 되어 가지고 논에 벼 모를 심어야 되는데 벼 이앙해야 되는데 염도가 높아 가지고 생존을 연장시키는 방향으로 일단 심어서 연장을 시키자 그런 방법도 나올 정도로 지금 굉장히 가뭄의 상황이 아주 최악이다 (라고 판단합니다)."

‘주민 동원’ 역시 북한의 전통적인 가뭄 극복 방편 중 하나다.

지난 23일, 노동신문은 전당, 전국, 전민이 총동원되어 가뭄피해를 철저히 극복하자는 사설로 주민들을 독려했다.

특히 모내기철엔 일반 노동자, 가정주부뿐 아니라 군인, 학생까지 농사일에 동원되는데 중학생들까지 고된 노역에 내몰린다고 한다.

<인터뷰> 서재평(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탈북자 출신) : "아예 농촌 현장으로 이동해서 합숙을 하면서 농사에 동원됐죠. 아침 여덟시부터 저녁 어두울 때까지 옥수수를 모를 낸 걸 학생들이 호미로 옮겨 심고 물을 주고...북한의 농사는 학생들이 다 짓는다고 할 정도로 학생들이 빠지면 농사가 이제 그 성립이 안 될 정도로 다 동원되죠."

할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을 총동원해도 가뭄 피해가 계속 확산되자, 북한 당국은 새로운 대책도 내 놓았다.

벼 대신 물을 덜 쓰는 옥수수 등 ‘대체작물’을 심으라는 건데, 북한 주민들조차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녹취> 북한 주민 :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도 가뭄이 계속되다 보니까 현재 강냉이가 열두 잎은 돼야 되는데 현재 네 잎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심각한 가뭄은 ‘천 년만의 가뭄’이라고 주장했던 지난 2001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녹취> KBS 뉴스9(2001년 6월 15일) : "최근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 극심한 가뭄 문제가 이곳(북한) 사람들의 가장 큰 근심거리입니다. 천년 만에 겪는 가뭄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KBS는 평양에 단독으로 취재진을 파견해 북한의 심각한 가뭄 상황을 생생히 알렸다.

채 싹을 틔우지도 못한 볍씨와 수확을 앞두고도 영글지 않은 곡식은 요즘 북한의 가뭄 실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녹취> 이경록(순안 경영위원회 기사장) : "30내지 40톤을 계획했는데 겨우 자라게 되면 2톤이나 정도 거두겠는지, 2톤도 좀 불가능하죠."

2년 연속 가뭄에 시달리며 큰 타격을 입었던 2000년대 초반..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북한에 대규모 가뭄 피해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문제는 취약한 농업시설 기반이다.

가뭄 발생 시 저수지, 댐 등에 가두어 둔 물을 활용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의 저수지는 우리의 십분의 일 수준인 1,800여 개로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인터뷰> 권태진(CJ&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 원장) : "저수지를 만들려고 하면 댐을 쌓아야 되고 굉장한 투자가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게 북한에는 초기 투자를 좀 줄이면서 이렇게 물 공급을 하려고 쉽게 생각하다 보니까 저수지를 만들 생각은 그렇게 많이 못했습니다."

북한의 과학자 전용 휴양지로 유명한 평안남도 연풍호의 위성사진...

물이 가득 차 있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가뭄으로 물이 모두 말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력난 역시 가뭄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다.

설사 확보된 물이 있다 하더라도 만성적인 전력난을 겪는 북한이 이를 농업용수로 활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한 가뭄의 근본적인 원인은 산림 파괴에 있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인터뷰> 김성일(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前세계자연보전연맹 이사) : "숲이 없어지게 되면 물이 빗물이 떨어지면서 그대로 강으로 내려가면서 토양을 끌고 내려가요. 그럴 때 조그마한 비에도 홍수가 되고 또 비가 안 오고 그래서 자연재해에 대한 어떤 시스템에 적응력, 대응능력이 굉장히 적어지는 거죠."

고난의 행군 시기 무분별한 벌목이 ‘산림 황폐화’를 불러왔고 이것이 잦은 가뭄, 홍수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위성사진을 봐도 푸른 숲에 둘러싸인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은 숲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인터뷰> 김성일(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前 세계자연보전연맹 이사) : "북한은 원래 산림대국입니다. 그래서 전체 국토 면적의 68%정도가 숲이었는데요. 그게 1990년도의 통계치죠. 그 이후에 매년 1% 정도씩 줄었어요. 20년 간 그래가지고 지금 이제 48% 수준 정도로 남아있는 거죠. 그것을 우리가 알기 쉽게 표현을 하면 여의도 면적의 두 배정도가 매년 사라지고 있는 거죠."

당장 올해 닥친 가뭄으로 북한은 농업생산량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쌀을 비롯한 올해 곡식 수확량이 12퍼센트에서 많게는 26퍼센트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유엔식량농업기구는 내다보고 있다.

유엔의 북한 상주조정관은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규모 식량 부족 사태와 기아에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처럼 극단적인 식량난이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북한 내부의 시장경제인 ‘장마당’이 완충제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근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더라도, 서민경제는 한층 고달파질 것이 예상된다.

<인터뷰> 서재평(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탈북자 출신) : "지금의 가뭄 상황이라면 내년의 식량 상황 장마당의 쌀 가격은 분명히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이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그걸 사먹는 북한주민들도 굉장히 버겁고 힘들어하는 그런 상황이 꼭 올 것 같다..."

<녹취> 2012년 4월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 연설 :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여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집권 이후 줄곧 경제 회생과 이를 통한 민생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꼽아 온 김정은.

이를 위해 농업 개발을 장려하고, 가족들끼리 농사를 지어 생산물을 나눠 갖도록 하는 ‘포전 담당제’를 도입하는 등 농업 개혁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아직 그 성과를 논하기엔 이르다.

김정은 정권에게 가뭄과 그로 인해 피해가 체제 위협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인터뷰> 권태진(CJ&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 원장) : "북한 당국에 대한 불만 또는 신뢰가 무너질 경우에 정책으로 무척 압박을 받게 되겠고 이것은 김정은 정권의 안정에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이게 단순히 경제 문제를 떠나 가지고 정치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가뭄에 따른 식량난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 사회는 잇따라 지원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녹취> 루캉(중국 외교부 대변인) : "중국은 북한의 수요(요청)에 따라 지원을 제공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18일 중국이 외교부 성명을 통해 북한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혔고, 유엔 역시 북한의 식량 사정이 악화될 경우 바로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당국의 의지다.

가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처와 기반 시설 확충 대신 여전히 핵과 군사시설 보강에 골몰하고 있는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가뭄 극복은 물론 국제사회의 지원도 한계를 띨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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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북 ‘100년 만의 가뭄’…식량난 우려
    • 입력 2015-06-27 08:26:35
    • 수정2015-06-27 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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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만, 북한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간간이 단비가 내리긴 했지만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한데요.

일각에선 식량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100년 만에 최악이라는 북한 가뭄 실태, 그리고 왜 유독 북한의 피해가 큰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7일, 북한 황해도 청단군.

강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냈고, 논바닥 곳곳은 쩍쩍 금이 가 있다.

수확해야 할 밭작물은 말라 죽은 지 오래..

<녹취> 북한 농부 : "20년 동안 농사하면서 이런 가뭄 피해가 처음입니다."

중국 관영 CCTV가 촬영한 영상 속 북한의 가뭄 실태이다.

심상치 않은 가뭄의 징조는 이미 올 초부터 예견돼 왔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북한에 내린 비의 양은 평년의 74퍼센트에 불과한 135.4밀리미터.

특히 모내기철인 5월 강수량이 평년의 57퍼센트에 그치면서, 북한의 올해 농사에 빨간불이 켜졌다.

여기엔 북한 최대의 쌀 생산지인 황해도에 가뭄이 집중된 영향도 컸다.

<인터뷰> 김용진(기상청 통보관) : "북한의 곡창지대인 개성과 사리원을 포함한 황해도 지역이 가뭄에 매우 시달리고 있는데요. 황해도 지역의 강수량은 평년의 40% 정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달 초 북한을 방문한 세계식량계획 국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심각한 북한 가뭄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

<녹취> 클라우디아 폰 로엘(세계식량계획 공여 국장) : "평성시를 관통하는 강이 실제로 완전히 말라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북한 당국도 이례적으로 가뭄 피해 상황을 알리고 나섰다.

각지 농촌에서 ‘100년 만의 왕가뭄’으로 심한 피해를 받고 있다며, 모내기한 논의 30퍼센트가 피해를 입었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공개한 것이다.

북한이 가뭄 피해를 공식화한 이후, 외신들의 관련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BBC·CNN 등 주요 외신, 北 가뭄 긴급 보도 BBC는 기상캐스터와의 대담 코너를 통해 북한 가뭄 상황을 전했고, CNN 역시 이를 긴급 뉴스로 타진했다.

<녹취> CNN 일기예보 : "특히 2014년도는 기록 상 지난 30년 동안 가장 마른 해였고 2015년은 벌써 그 기록을 깰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당국이 올해 가뭄을 ‘100년 만의 왕가뭄’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그 선전 배경에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하는 등 북한의 가뭄 발표를 둘러싼 추측 역시 무성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처럼 가뭄을 대내외에 선전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권태진(CJ&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 원장) : "이러한 피해가 김정은의 정책적인 잘못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에 의해서 일어났다라는 것을 주민들에게 일단 미리 알리는 측면 그리고 또 필요하면 국제사회가 도와주기를 기대하는 뭐 이런 양면성이 있다고 봅니다."

가뭄 피해가 전역으로 확산되자, 북한 당국은 이른바 ‘가뭄 극복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3월) : "물 확보 전투를 힘 있게 벌려나가자."

특히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물 확보’이다.

영농철을 앞둔 3월부터 주민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농수로 공사를 펼쳤고, 마른 논에 구멍을 파고 모를 심는 ‘물 절약형 농법’도 적극 홍보에 나섰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22일) : "부족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에서는 지난 시기 바다로 쓸모없이 흘려보내던 물을 모두 잡아 이용하기 위한 사업을 짜고들고 있습니다."

특히 모내기가 끝나고, 물 공급이 가을철 작황을 좌우하는 이번 주 들어서는 각종 매체를 통해 ‘양수로 설치’, ‘물길 굴 공사’ 등 물 확보 사업을 반복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북한 전역이 말라붙어, 바닷물까지 동원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전언이다.

<인터뷰> 서재평(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탈북자 출신) : "오죽하면 대동강 서해안지역에 바닷물이 유입이 되어 가지고 논에 벼 모를 심어야 되는데 벼 이앙해야 되는데 염도가 높아 가지고 생존을 연장시키는 방향으로 일단 심어서 연장을 시키자 그런 방법도 나올 정도로 지금 굉장히 가뭄의 상황이 아주 최악이다 (라고 판단합니다)."

‘주민 동원’ 역시 북한의 전통적인 가뭄 극복 방편 중 하나다.

지난 23일, 노동신문은 전당, 전국, 전민이 총동원되어 가뭄피해를 철저히 극복하자는 사설로 주민들을 독려했다.

특히 모내기철엔 일반 노동자, 가정주부뿐 아니라 군인, 학생까지 농사일에 동원되는데 중학생들까지 고된 노역에 내몰린다고 한다.

<인터뷰> 서재평(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탈북자 출신) : "아예 농촌 현장으로 이동해서 합숙을 하면서 농사에 동원됐죠. 아침 여덟시부터 저녁 어두울 때까지 옥수수를 모를 낸 걸 학생들이 호미로 옮겨 심고 물을 주고...북한의 농사는 학생들이 다 짓는다고 할 정도로 학생들이 빠지면 농사가 이제 그 성립이 안 될 정도로 다 동원되죠."

할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을 총동원해도 가뭄 피해가 계속 확산되자, 북한 당국은 새로운 대책도 내 놓았다.

벼 대신 물을 덜 쓰는 옥수수 등 ‘대체작물’을 심으라는 건데, 북한 주민들조차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녹취> 북한 주민 :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도 가뭄이 계속되다 보니까 현재 강냉이가 열두 잎은 돼야 되는데 현재 네 잎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심각한 가뭄은 ‘천 년만의 가뭄’이라고 주장했던 지난 2001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녹취> KBS 뉴스9(2001년 6월 15일) : "최근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 극심한 가뭄 문제가 이곳(북한) 사람들의 가장 큰 근심거리입니다. 천년 만에 겪는 가뭄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KBS는 평양에 단독으로 취재진을 파견해 북한의 심각한 가뭄 상황을 생생히 알렸다.

채 싹을 틔우지도 못한 볍씨와 수확을 앞두고도 영글지 않은 곡식은 요즘 북한의 가뭄 실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녹취> 이경록(순안 경영위원회 기사장) : "30내지 40톤을 계획했는데 겨우 자라게 되면 2톤이나 정도 거두겠는지, 2톤도 좀 불가능하죠."

2년 연속 가뭄에 시달리며 큰 타격을 입었던 2000년대 초반..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북한에 대규모 가뭄 피해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문제는 취약한 농업시설 기반이다.

가뭄 발생 시 저수지, 댐 등에 가두어 둔 물을 활용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의 저수지는 우리의 십분의 일 수준인 1,800여 개로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인터뷰> 권태진(CJ&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 원장) : "저수지를 만들려고 하면 댐을 쌓아야 되고 굉장한 투자가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게 북한에는 초기 투자를 좀 줄이면서 이렇게 물 공급을 하려고 쉽게 생각하다 보니까 저수지를 만들 생각은 그렇게 많이 못했습니다."

북한의 과학자 전용 휴양지로 유명한 평안남도 연풍호의 위성사진...

물이 가득 차 있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가뭄으로 물이 모두 말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력난 역시 가뭄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다.

설사 확보된 물이 있다 하더라도 만성적인 전력난을 겪는 북한이 이를 농업용수로 활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한 가뭄의 근본적인 원인은 산림 파괴에 있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인터뷰> 김성일(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前세계자연보전연맹 이사) : "숲이 없어지게 되면 물이 빗물이 떨어지면서 그대로 강으로 내려가면서 토양을 끌고 내려가요. 그럴 때 조그마한 비에도 홍수가 되고 또 비가 안 오고 그래서 자연재해에 대한 어떤 시스템에 적응력, 대응능력이 굉장히 적어지는 거죠."

고난의 행군 시기 무분별한 벌목이 ‘산림 황폐화’를 불러왔고 이것이 잦은 가뭄, 홍수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위성사진을 봐도 푸른 숲에 둘러싸인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은 숲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인터뷰> 김성일(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前 세계자연보전연맹 이사) : "북한은 원래 산림대국입니다. 그래서 전체 국토 면적의 68%정도가 숲이었는데요. 그게 1990년도의 통계치죠. 그 이후에 매년 1% 정도씩 줄었어요. 20년 간 그래가지고 지금 이제 48% 수준 정도로 남아있는 거죠. 그것을 우리가 알기 쉽게 표현을 하면 여의도 면적의 두 배정도가 매년 사라지고 있는 거죠."

당장 올해 닥친 가뭄으로 북한은 농업생산량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쌀을 비롯한 올해 곡식 수확량이 12퍼센트에서 많게는 26퍼센트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유엔식량농업기구는 내다보고 있다.

유엔의 북한 상주조정관은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규모 식량 부족 사태와 기아에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처럼 극단적인 식량난이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북한 내부의 시장경제인 ‘장마당’이 완충제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근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더라도, 서민경제는 한층 고달파질 것이 예상된다.

<인터뷰> 서재평(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탈북자 출신) : "지금의 가뭄 상황이라면 내년의 식량 상황 장마당의 쌀 가격은 분명히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이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그걸 사먹는 북한주민들도 굉장히 버겁고 힘들어하는 그런 상황이 꼭 올 것 같다..."

<녹취> 2012년 4월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 연설 :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여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집권 이후 줄곧 경제 회생과 이를 통한 민생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꼽아 온 김정은.

이를 위해 농업 개발을 장려하고, 가족들끼리 농사를 지어 생산물을 나눠 갖도록 하는 ‘포전 담당제’를 도입하는 등 농업 개혁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아직 그 성과를 논하기엔 이르다.

김정은 정권에게 가뭄과 그로 인해 피해가 체제 위협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인터뷰> 권태진(CJ&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 원장) : "북한 당국에 대한 불만 또는 신뢰가 무너질 경우에 정책으로 무척 압박을 받게 되겠고 이것은 김정은 정권의 안정에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이게 단순히 경제 문제를 떠나 가지고 정치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가뭄에 따른 식량난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 사회는 잇따라 지원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녹취> 루캉(중국 외교부 대변인) : "중국은 북한의 수요(요청)에 따라 지원을 제공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18일 중국이 외교부 성명을 통해 북한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혔고, 유엔 역시 북한의 식량 사정이 악화될 경우 바로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당국의 의지다.

가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처와 기반 시설 확충 대신 여전히 핵과 군사시설 보강에 골몰하고 있는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가뭄 극복은 물론 국제사회의 지원도 한계를 띨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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