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무살 전에 삼성을 지배할 수 있을까?

입력 2015.07.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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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8억 원을 주고 산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 기사입니다.

나는 이재용의 전환사채(CB)였다. 오는 10월 말이면 꼭 스무살이 된다. 나는 스무살이 되기 전에 삼성그룹의 정점에 설 수 있을까?

◆ 20살 생일 앞둔 나는 누구?

나는 1996년 에버랜드 이사회 의결로 태어났다. 나의 주인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원래 나를 가질 수 있었던 당시 에버랜드 주주들(중앙일보, 제일모직 등)이 나를 외면하면서 나는 지금의 내 주인에게 넘어갔다.

에버랜드CB-삼성물산주식에버랜드CB-삼성물산주식


애초에 채권이면서 주식으로 변신할 수 있던 나는 내 주인을 만난 지 2주만에 48억3091만원어치의 에버랜드 채권에서 62만7390주의 에버랜드 주식으로 변신했다.

나(CB)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격인 전환가격이 7700원으로 당시 에버랜드 주식 1주당 세법상 가격 12만7755원보다 턱없이 싸게 만들어졌다. 덕분에 내 주인은 48억 원 주고 산 나를, 주식으로 바꾸자마자 약 802억 원(세법상 평가가격)어치의 에버랜드 주식을 가진 부자가 됐다.

◆ 질풍노도의 청소년기…“2년새 이름만 3번 바꿔”

내 나이 열아홉이 되던 지난해 7월 나는 ‘에버랜드 주식’에서 ‘제일모직 주식’으로 ‘개명’했다. 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인수하더니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꾼 것이다.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작년 하반기에는 내 몸을 50분의 1로 쪼개는 액면분할을 실시했다. 62만7390주였던 내 몸은 3136만9500주가 됐다. 작년 말에는 주식시장에 상장도 했다. 상장 후 주가는 주당 최고 21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덕분에 3136만9500주인 내 몸값은 최고 6조7400억 원까지 치솟았다. 48억 원짜리 CB가 최고 6조 원이 넘는 주식이 된 것이다.

지난 5월에는 내 이름을 다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삼성물산과 합병하면서 회사 이름을 삼성물산으로 쓰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개명한 지 1년여 만에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됐다. 이름을 자꾸 바꿀수록 내가 에버랜드였다는 걸 기억할 사람을 줄어들 것이다.

◆ 엘리엇이라는 이름의 ‘날벼락’

합병 발표는 전격적으로 이뤄졌고, 합병 발표 후 여론도 긍정적이었다. 합병은 순조로울 것만 같았다.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삼성물산 주식을 7% 이상 가지고 있다고 공시한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기를 들었다. 합병은 주주총회에서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동의를 얻지 못하면 합병이 취소되고 내 ‘개명’도 없던 일이 된다.

제일모직은 내 주인 이 부회장을 비롯한 최대주주 지분이 50%를 넘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최대주주 지분이 14%에 불과했던 삼성물산은 문제가 됐다. 그리고 영리한 엘리엇은 이 부분을 파고 들었다.

◆ “합병 비율이 문제”…삼성물산 가격 ‘제 값’ vs ‘싸다’

삼성은 제일모직 주식 1주당 삼성물산 주식 0.35주의 비율로 합병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내 주인이 가진 제일모직 주식을 삼성물산 주식보다 3배 가량 비싸게 쳐 두 회사를 합치겠다는 것이다. 이는 각 상장사의 주가(시가총액)를 근거로 산정한 비율이다.

엘리엇은 이같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문제 삼았다. 삼성물산이 주가는 낮지만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제일모직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삼성물산 주식을 더 비싸게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합병하는 두 회사의 가치를 얼마로 쳐 주느냐의 문제다. 현재 합병 비율이 정당하다고 보는 삼성은 삼성물산 주식을 ‘제 값에 사는 거’라고 주장하고, 엘리엇은 ‘지금은 너무 싸니, 조금 더 비싸게 사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새다.

내 주인은 어떨까?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을 23%나 가지고 있으면서 삼성물산 주식은 단 한 주도 없다. 때문에 그는 엘리엇이 주장하는 것처럼 삼성물산 주식을 더 비싸게 쳐줄수록 크게 손해를 본다. 엘리엇과의 표 대결에서 승리하면 돈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 캐스팅보트였던 국민연금은 ‘우리 편’

삼성 측이 삼성물산 자사주를 KCC에 넘기면서까지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애썼지만 워낙 최대주주 보유지분이 낮았던 탓에 지난달까지만 해도 삼성물산의 최대주주 우호지분은 20%에 불과했다.

그러자 삼성물산 지분 11%를 가진 국민연금이 단숨에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반대한다면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합병 승인이 쉽지 않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국민연금 의결권 전문위원회는 지난달 비슷한 구조의 SK그룹 합병안에 '반대'했다. 의결권 전문위원회는 애초에 국민연금이 민감하거나 중대한 사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위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SK그룹의 합병이 삼성과 비슷했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의결권 전문위원회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위임한다면 반대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국민연금은 의결권 전문위원회에 합병안을 위임하지 않고, 스스로 의결권 행사 여부를 결정했다. 그것도 합병에 찬성하는 쪽으로. 11%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확실한 우리 편이 됐고, 내 주인은 천군만마를 얻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참여연대 등이 국민연금이 의결권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위임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문제삼았지만, 국민연금의 결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내일 오전 주총서 표 대결로 합병 여부 갈린다

삼성그룹과 엘리엇은 각각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가며 표 대결 준비에 힘쓰고 있다. 엘리엇 회장은 2002년 당시 한국에 월드컵 응원 왔던 사진까지 공개하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반대표를 모았다. 삼성은 신문, TV, 인터넷 포털 등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쏟아냈고, 직접 삼성물산 소액주주들까지 찾아나서며 합병안 찬성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합병 주총은 내일(17일) 오전 9시에 열린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주주총회 참여 주식수가 80%를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주주총회 참석률이 80%라면 3분의 2 이상인 53.3% 이상이 합병에 찬성해야 합병안이 통과된다.

내 주인과 삼성의 확정된 우호지분은 국민연금을 포함해 30% 남짓. 7.12%의 지분을 보유한 엘리엇 측은 합병 반대를 선언한 일성신약(2,2%)과 메이슨캐피털(2.2%) 등의 우군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연금을 등에 업은 삼성의 승리가 예상되지만 소액주주 지분도 24%를 넘는 만큼 승리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 주주 손익계산서는?

합병안이 가결된다면 합병비율 1대 0.35에 수렴하면서 제일모직 주가가 상대적으로 삼성물산에 비해 더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합병안이 부결된다면 제일모직 주가가 떨어지고, 삼성물산 주가가 상승할 전망이다. 이 또한 예상일 뿐 확실치는 않다.

다만 제일모직 주주라면 합병안 가결 여부에 따라 손익의 향방이 비교적 명확하다. 삼성물산 주식을 상대적으로 싸게 사는 게 되기 때문에 가결되면 이익, 부결되면 손해다. 제일모직 최대 주주는 제일모직 지분 23%를 보유한 내 주인이다. 합병 안 가결에 제일 기뻐할 사람도 당연히 내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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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스무살 전에 삼성을 지배할 수 있을까?
    • 입력 2015-07-16 17:37:26
    경제
※이 기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8억 원을 주고 산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 기사입니다. 나는 이재용의 전환사채(CB)였다. 오는 10월 말이면 꼭 스무살이 된다. 나는 스무살이 되기 전에 삼성그룹의 정점에 설 수 있을까? ◆ 20살 생일 앞둔 나는 누구? 나는 1996년 에버랜드 이사회 의결로 태어났다. 나의 주인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원래 나를 가질 수 있었던 당시 에버랜드 주주들(중앙일보, 제일모직 등)이 나를 외면하면서 나는 지금의 내 주인에게 넘어갔다.
에버랜드CB-삼성물산주식
애초에 채권이면서 주식으로 변신할 수 있던 나는 내 주인을 만난 지 2주만에 48억3091만원어치의 에버랜드 채권에서 62만7390주의 에버랜드 주식으로 변신했다. 나(CB)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격인 전환가격이 7700원으로 당시 에버랜드 주식 1주당 세법상 가격 12만7755원보다 턱없이 싸게 만들어졌다. 덕분에 내 주인은 48억 원 주고 산 나를, 주식으로 바꾸자마자 약 802억 원(세법상 평가가격)어치의 에버랜드 주식을 가진 부자가 됐다. ◆ 질풍노도의 청소년기…“2년새 이름만 3번 바꿔” 내 나이 열아홉이 되던 지난해 7월 나는 ‘에버랜드 주식’에서 ‘제일모직 주식’으로 ‘개명’했다. 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인수하더니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꾼 것이다.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작년 하반기에는 내 몸을 50분의 1로 쪼개는 액면분할을 실시했다. 62만7390주였던 내 몸은 3136만9500주가 됐다. 작년 말에는 주식시장에 상장도 했다. 상장 후 주가는 주당 최고 21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덕분에 3136만9500주인 내 몸값은 최고 6조7400억 원까지 치솟았다. 48억 원짜리 CB가 최고 6조 원이 넘는 주식이 된 것이다. 지난 5월에는 내 이름을 다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삼성물산과 합병하면서 회사 이름을 삼성물산으로 쓰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개명한 지 1년여 만에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됐다. 이름을 자꾸 바꿀수록 내가 에버랜드였다는 걸 기억할 사람을 줄어들 것이다. ◆ 엘리엇이라는 이름의 ‘날벼락’ 합병 발표는 전격적으로 이뤄졌고, 합병 발표 후 여론도 긍정적이었다. 합병은 순조로울 것만 같았다.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삼성물산 주식을 7% 이상 가지고 있다고 공시한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기를 들었다. 합병은 주주총회에서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동의를 얻지 못하면 합병이 취소되고 내 ‘개명’도 없던 일이 된다. 제일모직은 내 주인 이 부회장을 비롯한 최대주주 지분이 50%를 넘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최대주주 지분이 14%에 불과했던 삼성물산은 문제가 됐다. 그리고 영리한 엘리엇은 이 부분을 파고 들었다. ◆ “합병 비율이 문제”…삼성물산 가격 ‘제 값’ vs ‘싸다’ 삼성은 제일모직 주식 1주당 삼성물산 주식 0.35주의 비율로 합병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내 주인이 가진 제일모직 주식을 삼성물산 주식보다 3배 가량 비싸게 쳐 두 회사를 합치겠다는 것이다. 이는 각 상장사의 주가(시가총액)를 근거로 산정한 비율이다. 엘리엇은 이같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문제 삼았다. 삼성물산이 주가는 낮지만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제일모직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삼성물산 주식을 더 비싸게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합병하는 두 회사의 가치를 얼마로 쳐 주느냐의 문제다. 현재 합병 비율이 정당하다고 보는 삼성은 삼성물산 주식을 ‘제 값에 사는 거’라고 주장하고, 엘리엇은 ‘지금은 너무 싸니, 조금 더 비싸게 사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새다. 내 주인은 어떨까?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을 23%나 가지고 있으면서 삼성물산 주식은 단 한 주도 없다. 때문에 그는 엘리엇이 주장하는 것처럼 삼성물산 주식을 더 비싸게 쳐줄수록 크게 손해를 본다. 엘리엇과의 표 대결에서 승리하면 돈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 캐스팅보트였던 국민연금은 ‘우리 편’ 삼성 측이 삼성물산 자사주를 KCC에 넘기면서까지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애썼지만 워낙 최대주주 보유지분이 낮았던 탓에 지난달까지만 해도 삼성물산의 최대주주 우호지분은 20%에 불과했다. 그러자 삼성물산 지분 11%를 가진 국민연금이 단숨에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반대한다면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합병 승인이 쉽지 않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국민연금 의결권 전문위원회는 지난달 비슷한 구조의 SK그룹 합병안에 '반대'했다. 의결권 전문위원회는 애초에 국민연금이 민감하거나 중대한 사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위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SK그룹의 합병이 삼성과 비슷했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의결권 전문위원회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위임한다면 반대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국민연금은 의결권 전문위원회에 합병안을 위임하지 않고, 스스로 의결권 행사 여부를 결정했다. 그것도 합병에 찬성하는 쪽으로. 11%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확실한 우리 편이 됐고, 내 주인은 천군만마를 얻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참여연대 등이 국민연금이 의결권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위임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문제삼았지만, 국민연금의 결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내일 오전 주총서 표 대결로 합병 여부 갈린다 삼성그룹과 엘리엇은 각각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가며 표 대결 준비에 힘쓰고 있다. 엘리엇 회장은 2002년 당시 한국에 월드컵 응원 왔던 사진까지 공개하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반대표를 모았다. 삼성은 신문, TV, 인터넷 포털 등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쏟아냈고, 직접 삼성물산 소액주주들까지 찾아나서며 합병안 찬성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합병 주총은 내일(17일) 오전 9시에 열린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주주총회 참여 주식수가 80%를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주주총회 참석률이 80%라면 3분의 2 이상인 53.3% 이상이 합병에 찬성해야 합병안이 통과된다. 내 주인과 삼성의 확정된 우호지분은 국민연금을 포함해 30% 남짓. 7.12%의 지분을 보유한 엘리엇 측은 합병 반대를 선언한 일성신약(2,2%)과 메이슨캐피털(2.2%) 등의 우군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연금을 등에 업은 삼성의 승리가 예상되지만 소액주주 지분도 24%를 넘는 만큼 승리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 주주 손익계산서는? 합병안이 가결된다면 합병비율 1대 0.35에 수렴하면서 제일모직 주가가 상대적으로 삼성물산에 비해 더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합병안이 부결된다면 제일모직 주가가 떨어지고, 삼성물산 주가가 상승할 전망이다. 이 또한 예상일 뿐 확실치는 않다. 다만 제일모직 주주라면 합병안 가결 여부에 따라 손익의 향방이 비교적 명확하다. 삼성물산 주식을 상대적으로 싸게 사는 게 되기 때문에 가결되면 이익, 부결되면 손해다. 제일모직 최대 주주는 제일모직 지분 23%를 보유한 내 주인이다. 합병 안 가결에 제일 기뻐할 사람도 당연히 내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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