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도용이 아니라고요?

입력 2015.07.19 (23:39) 수정 2015.07.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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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휴대전화 판매점 수십 곳이 모여 있는 대구 동성로.

31살 김모 씨는 지난해 12월 이곳에 있는 한 판매점에서 신형 휴대전화를 구입했습니다.

값이 싼 데다가 공식 보조금 외에 추가로 현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제안 때문입니다.

<녹취> 김○○(대구) : "최저요금제로 했을 때 (공식 보조금이) 15만 원, 이렇게 지원되면 거기에 더해서 한 45만 원 정도 지원해주겠다고 해서 하게 된 거죠."

통신사의 보조금이 최대 30만 원으로 제한됐던 '단통법' 시행 초기, 이 판매점의 제안은 은밀하고도 파격적이었습니다.

조건은 번호이동이나 기기변경이 아닌 신규가입이었습니다.

<녹취> 김○○(대구) : "기기변경 보다는 신규가입으로 하면 더 많이 지원해줄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하라고 해서 저는 신규가입서에 싸인했죠."

그런데, 개통한 지 다섯 달 뒤인 지난 4월, 김 씨는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김 씨 이름으로 또 다른 휴대전화가 2대가 개통돼 있었던 겁니다.

<녹취> 김○○(대구) : "통신사 대리점마다 가보니까 SK에/지금 쓰는 휴대전화 말고/하나가 더 모르는 번호가 있었고요, 그 다음에 KT에도 똑같이 모르는 번호가 더 개통이 돼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SK만 개통했는데 KT까지 개통이 돼버린 상황이니까/이건 명의도용이다."

<오프닝>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름으로 이 휴대전화가 개통됐다면, 무척 당황스러울 겁니다.

게다가, 그렇게 개통돼 누가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휴대전화의 기기값과 통신요금을 전부 부담해야 한다면, 더욱 억울하겠죠.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명의도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또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 이름으로 개통된 휴대전화 두 대.

김 씨에게 청구된 돈은 기기값과 통신요금 등 180만 원에 달했습니다.

<녹취>김○○(대구) : "제일 비싼 요금제로 해서 요금이 한 8만 5천 원, 3달 4달 밀린 걸로 보이니까...(SK에)지금 80만 원, KT에서는 100만 원 해서 180만 원."

김 씨는 뒤늦게 판매점을 찾았지만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이 판매점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했다가 같은 피해를 당한 고객은 약 200명.

전체 피해금액은 4억 원이 넘는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일부 고객은 가족과 함께 가입해 피해금액이 천만 원에 달하기도 합니다.

<녹취> 이○○ : "저 같은 경우는 가족이 다섯명이서 (가입)했는데/ (명의도용 휴대전화가) 한 대인 사람도 있고 두 대인 사람도 있으니까 700만 원 정도 기계값을 물어내야 되는 상황이다 보니까..."

판매점 업주는 지난 5월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경찰 수사로 명의도용이 드러났으니, 피해 보상도 어렵지 않게 이뤄질 거라 기대했던 고객들은 또 다른 벽에 부딪혔습니다.

이 판매점 업주는 이른바 '에이징'이란 방식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했습니다.

우선 고객에게 신규가입을 유도한 뒤, 새로운 휴대전화와 새로운 번호를 통신사로부터 발급받습니다.

고객들은 보통 기존에 쓰던 번호를 계속 사용하기 원하니까 새로운 휴대전화에 기존 번호를 옮겨줍니다.

새로 발급받은 번호는 폐기하지 않고 남겨둡니다.

그리고는 이 남은 번호로 또 다른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겁니다.

경찰은 이 업주가 이렇게 개통한 휴대전화를 장물업자 등에 팔아 돈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충원(대구중부경찰서 경제팀장) : "이 남는 번호를 가번호라고 합니다. 이 판매점 업주는 가번호를 이용해서 휴대폰을 처음에 신청서를 작성해서 한 대 만들고 또 다른 통신사로 번호이동을 하면서 또 한대 만들고, 이런 식으로 해서 (고객 한 사람당) 적게는 한 대에서 많게는 다섯 대까지 만들었습니다."

SKT와 KT등 통신업체는 이 과정에 고객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명의도용으로 볼 수 없다며 피해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녹취> 통신사 관계자 : "판매자가 피해고객에게 송금했음을 알리는 문자내용 등 명의대여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얻은 것을 확인하는 증거가 확보된 경우입니다."

'에이징'이란 방식으로 다른 번호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고객들도 알고 있었던 만큼 명의'도용'이 아닌, 명의'대여'로 봐야 한다는 것이 통신사들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반발합니다.

'다른 번호가 만들어진다'는 설명만 듣고 동의했을 뿐, 그것으로 새로운 휴대전화를 개통할 줄은 몰랐고, 통신사 측이 언급한 금전적 이익 또한 당시 일반적이었던 보조금이라는 겁니다.

<녹취> 이○○ : "저희는 통신사를 믿고 가입하고 이렇게 했는데 좀 배신감이 들죠./판매점, 대리점은 SKT 대신 (휴대전화를) 팔아주는 거잖아요. SKT가 팔 수 있는 권한을 대리점에 부여했고, 대리점은 판매점에 부여했기 때문에 똑같은 책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부 고객들은 가입서류 자체가 위조됐다고 주장합니다.

<녹취> 이○○ : "똑같이 무슨 변경서류를 다 적었는데 이걸 다시 떼와보니까 핸드폰 번호란만 지워서 수정액으로 지워서 바꿨었어요. 그래서 개통을 시키고."

이처럼 누군가 내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사용한다 해도 이동통신사로부터 그 피해를 보상받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25살 박모 씨.

지난 4월 날아든 카드고지서엔 쓰지도 않은 통신요금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녹취> 박○○(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KT에서 60만 얼마가 결제가 된 거죠. 그래서 제가 KT에 전화해서 왜 이렇게 60만 원 결제가 됐냐고 하니까 제 명의로 휴대전화가 하나 개통이 돼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개통한 적도 없고 SKT만 계속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녹취> 박○○(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직접 방문해서 알아봐야 한다고 해서 제가 직접 가서 알아보니까 다른 번호로 하나 개통돼 있었고, 지금 한 달 동안 3월 한 달 동안 상품권을 55만 원 결제를 했어요."

박 씨 명의의 휴대전화가 개통된 날짜는 지난 3월 2일.

신용카드 정보를 가지고 인터넷을 통해 개통한 전화였습니다.

<녹취> 박○○(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어떻게 신청했느냐고 물어보니까 온라인으로 작성했대요. 그러니까 온라인으로 신용카드 정보를 이용해서 제 카드 번호랑 유효기간이랑 그리고 비밀번호 앞 두자리. 저희가 직접 해보니까 그것만 가지고 바로 (개통)되더라고요."

박 씨는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던 적도, 비밀번호를 누군가에게 알려준 기억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누군가 박 씨의 신용카드 정보를 이용해 인터넷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겁니다.

통신업체의 발송 내역을 추적해보니 새 휴대전화는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의 경비실로 배송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배송된 휴대전화를 누가 가져갔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휴대전화 개통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왜 당사자인 박 씨에게는 이런 사실이 통보되지 않았을까?

휴대전화가 개통되기 사흘 전인 지난 2월 27일, 누군가 SKT에 전화를 걸어 박씨를 사칭하며 불필요한 광고 문자, 즉 '스팸' 메시지 차단 신청을 합니다.

그런데 '승인', '가입', 또는 '인증' 등과 같은 단어를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SKT는 생년월일만 확인한 뒤 이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녹취> 박○○(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개통이 되고 나서 원래 개통이 되었습니다라는 문자가 와야하는데 저는 받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확인을 해보니까 스팸 필터링 안에 스팸 문자로 다 들어가 있었어요."

신용카드 정보를 수집하고, 전송되는 문자메시지까지 막아놓을 정도로 주도면밀하게 명의도용을 계획한 정황이 뚜렸해 보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통신사 측은 박 씨의 명의도용 신고를 접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KT의 명의도용 관련 안내 문서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인증을 거쳐 개통한 경우엔 명의도용 신고 접수가 안 된다고 나와있습니다.

인터넷으로 휴대전화가 개통된 경우 명의도용 신고 접수를 받지 않는 건 다른 통신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취> 통신사 관계자 : "아주 지능적인 경우를 빼고는 명의도용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 거구요."

박 씨는 자신도 모르게 개통된 휴대전화 기기값과 사용한 적 없는 상품권 대금까지 모두 150만 원을 값아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녹취> 박○○(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어이가 없죠. 이런 일 한번도 겪은 적이 없고, 무슨 일이지 하면서 임신 중이긴 한데 한 달 동안 잠을 못자서...계속 스트레스 받아서..."

휴대전화 명의도용 신고 건수는 꾸준히 증가해 지난 2013년, 이동통신 3사에서만 2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과거 노숙인으로부터 이름을 빌리거나 대출을 미끼로 명의도용이 이뤄지던 것과 달리, 최근엔 개인정보를 빼내 직접 명의도용 휴대전화를 만드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으로 경찰은 분석했습니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휴대전화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대포폰'으로 팔려나가 범죄에 악용된다고 보안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인터뷰> 이기동(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 : "100% 범죄자들한테 가는 겁니다./범죄자들 아니면 쓸 이유가 없죠. 30만 원 주고 (대포폰을) 구입했는데 명의자가 정지를 걸어버리면 무용지물이 돼버리니까."

휴대전화 명의도용은 금전적인 피해로만 그치는 게 아닙니다.

27살 최모 씨는 지난 2월, 부산의 한 경찰서로 나오라는 출석요구서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중고 거래 사기에 연루돼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녹취> 최○○(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사이트 거기서 제가 비닐하우스 철근을 판다고 해놓고 안 주고 그런 사기를 쳤다고 해서 신고가 들어왔대요."

누군가 최 씨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범죄에 이용한 겁니다.

알고보니 최 씨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가 다섯 대나 있었습니다.

<녹취> 최○○(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이게 12월 1일에 개통을 한 걸로 되어 있는데 맨 처음에는 번호가 한두 개, 세 개 이정도인 줄 알았는데 다섯 개가 있다고..."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남양주, 인천 등 전국 각지의 경찰서 7곳으로 부터 출석요구가 빗발쳤습니다.

인터넷 사기와 사문서 위조, 보이스피싱에 조건만남까지 혐의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출석요구와 전화문의에 최 씨는 결국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녹취> 최○○(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울기도 하고, '내가 왜 이렇게 자꾸 설명을 해야되지?' 하는 생각...스트레스가 가장 커요. 밥 먹다가 토한 적도 있고. 그게 가장 크고 발로 제가 다 뛰어야 되니까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취> "마당이요 뒤쪽으로 해서 이렇게..."

사건을 겪은 뒤 인천에 살던 최 씨는 경기도 여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했습니다.

또 다시 개인정보가 유출돼 피해을 입을까봐 개명 신청까지 했습니다.

<녹취> 최○○(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제 정보가 유출이 되니까 진절머리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인터넷 설치 안 했고 TV도 지금 없는 상태고요. 제 정보가 들어갈 수 있는 걸 진짜 지금 최소화 하고 있어요."

범죄와 연결되고,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수도 있는 휴대전화 명의도용.

통신업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명의도용을 막기 위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지호(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간사) : "충분히 도용이 가능하고 심지어 현재와 같은 개인정보 유출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본인인증이) 개인을 완전히 특정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거든요. 소비자들의 금적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라면 좀 더 명확하고 정확한 절차를 마련해야 됩니다."

예방부터 피해 보상까지,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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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도용이 아니라고요?
    • 입력 2015-07-19 23:41:22
    • 수정2015-07-20 00:06:47
    취재파일K
<프롤로그>

휴대전화 판매점 수십 곳이 모여 있는 대구 동성로.

31살 김모 씨는 지난해 12월 이곳에 있는 한 판매점에서 신형 휴대전화를 구입했습니다.

값이 싼 데다가 공식 보조금 외에 추가로 현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제안 때문입니다.

<녹취> 김○○(대구) : "최저요금제로 했을 때 (공식 보조금이) 15만 원, 이렇게 지원되면 거기에 더해서 한 45만 원 정도 지원해주겠다고 해서 하게 된 거죠."

통신사의 보조금이 최대 30만 원으로 제한됐던 '단통법' 시행 초기, 이 판매점의 제안은 은밀하고도 파격적이었습니다.

조건은 번호이동이나 기기변경이 아닌 신규가입이었습니다.

<녹취> 김○○(대구) : "기기변경 보다는 신규가입으로 하면 더 많이 지원해줄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하라고 해서 저는 신규가입서에 싸인했죠."

그런데, 개통한 지 다섯 달 뒤인 지난 4월, 김 씨는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김 씨 이름으로 또 다른 휴대전화가 2대가 개통돼 있었던 겁니다.

<녹취> 김○○(대구) : "통신사 대리점마다 가보니까 SK에/지금 쓰는 휴대전화 말고/하나가 더 모르는 번호가 있었고요, 그 다음에 KT에도 똑같이 모르는 번호가 더 개통이 돼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SK만 개통했는데 KT까지 개통이 돼버린 상황이니까/이건 명의도용이다."

<오프닝>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름으로 이 휴대전화가 개통됐다면, 무척 당황스러울 겁니다.

게다가, 그렇게 개통돼 누가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휴대전화의 기기값과 통신요금을 전부 부담해야 한다면, 더욱 억울하겠죠.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명의도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또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 이름으로 개통된 휴대전화 두 대.

김 씨에게 청구된 돈은 기기값과 통신요금 등 180만 원에 달했습니다.

<녹취>김○○(대구) : "제일 비싼 요금제로 해서 요금이 한 8만 5천 원, 3달 4달 밀린 걸로 보이니까...(SK에)지금 80만 원, KT에서는 100만 원 해서 180만 원."

김 씨는 뒤늦게 판매점을 찾았지만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이 판매점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했다가 같은 피해를 당한 고객은 약 200명.

전체 피해금액은 4억 원이 넘는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일부 고객은 가족과 함께 가입해 피해금액이 천만 원에 달하기도 합니다.

<녹취> 이○○ : "저 같은 경우는 가족이 다섯명이서 (가입)했는데/ (명의도용 휴대전화가) 한 대인 사람도 있고 두 대인 사람도 있으니까 700만 원 정도 기계값을 물어내야 되는 상황이다 보니까..."

판매점 업주는 지난 5월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경찰 수사로 명의도용이 드러났으니, 피해 보상도 어렵지 않게 이뤄질 거라 기대했던 고객들은 또 다른 벽에 부딪혔습니다.

이 판매점 업주는 이른바 '에이징'이란 방식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했습니다.

우선 고객에게 신규가입을 유도한 뒤, 새로운 휴대전화와 새로운 번호를 통신사로부터 발급받습니다.

고객들은 보통 기존에 쓰던 번호를 계속 사용하기 원하니까 새로운 휴대전화에 기존 번호를 옮겨줍니다.

새로 발급받은 번호는 폐기하지 않고 남겨둡니다.

그리고는 이 남은 번호로 또 다른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겁니다.

경찰은 이 업주가 이렇게 개통한 휴대전화를 장물업자 등에 팔아 돈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충원(대구중부경찰서 경제팀장) : "이 남는 번호를 가번호라고 합니다. 이 판매점 업주는 가번호를 이용해서 휴대폰을 처음에 신청서를 작성해서 한 대 만들고 또 다른 통신사로 번호이동을 하면서 또 한대 만들고, 이런 식으로 해서 (고객 한 사람당) 적게는 한 대에서 많게는 다섯 대까지 만들었습니다."

SKT와 KT등 통신업체는 이 과정에 고객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명의도용으로 볼 수 없다며 피해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녹취> 통신사 관계자 : "판매자가 피해고객에게 송금했음을 알리는 문자내용 등 명의대여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얻은 것을 확인하는 증거가 확보된 경우입니다."

'에이징'이란 방식으로 다른 번호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고객들도 알고 있었던 만큼 명의'도용'이 아닌, 명의'대여'로 봐야 한다는 것이 통신사들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반발합니다.

'다른 번호가 만들어진다'는 설명만 듣고 동의했을 뿐, 그것으로 새로운 휴대전화를 개통할 줄은 몰랐고, 통신사 측이 언급한 금전적 이익 또한 당시 일반적이었던 보조금이라는 겁니다.

<녹취> 이○○ : "저희는 통신사를 믿고 가입하고 이렇게 했는데 좀 배신감이 들죠./판매점, 대리점은 SKT 대신 (휴대전화를) 팔아주는 거잖아요. SKT가 팔 수 있는 권한을 대리점에 부여했고, 대리점은 판매점에 부여했기 때문에 똑같은 책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부 고객들은 가입서류 자체가 위조됐다고 주장합니다.

<녹취> 이○○ : "똑같이 무슨 변경서류를 다 적었는데 이걸 다시 떼와보니까 핸드폰 번호란만 지워서 수정액으로 지워서 바꿨었어요. 그래서 개통을 시키고."

이처럼 누군가 내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사용한다 해도 이동통신사로부터 그 피해를 보상받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25살 박모 씨.

지난 4월 날아든 카드고지서엔 쓰지도 않은 통신요금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녹취> 박○○(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KT에서 60만 얼마가 결제가 된 거죠. 그래서 제가 KT에 전화해서 왜 이렇게 60만 원 결제가 됐냐고 하니까 제 명의로 휴대전화가 하나 개통이 돼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개통한 적도 없고 SKT만 계속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녹취> 박○○(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직접 방문해서 알아봐야 한다고 해서 제가 직접 가서 알아보니까 다른 번호로 하나 개통돼 있었고, 지금 한 달 동안 3월 한 달 동안 상품권을 55만 원 결제를 했어요."

박 씨 명의의 휴대전화가 개통된 날짜는 지난 3월 2일.

신용카드 정보를 가지고 인터넷을 통해 개통한 전화였습니다.

<녹취> 박○○(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어떻게 신청했느냐고 물어보니까 온라인으로 작성했대요. 그러니까 온라인으로 신용카드 정보를 이용해서 제 카드 번호랑 유효기간이랑 그리고 비밀번호 앞 두자리. 저희가 직접 해보니까 그것만 가지고 바로 (개통)되더라고요."

박 씨는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던 적도, 비밀번호를 누군가에게 알려준 기억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누군가 박 씨의 신용카드 정보를 이용해 인터넷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겁니다.

통신업체의 발송 내역을 추적해보니 새 휴대전화는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의 경비실로 배송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배송된 휴대전화를 누가 가져갔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휴대전화 개통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왜 당사자인 박 씨에게는 이런 사실이 통보되지 않았을까?

휴대전화가 개통되기 사흘 전인 지난 2월 27일, 누군가 SKT에 전화를 걸어 박씨를 사칭하며 불필요한 광고 문자, 즉 '스팸' 메시지 차단 신청을 합니다.

그런데 '승인', '가입', 또는 '인증' 등과 같은 단어를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SKT는 생년월일만 확인한 뒤 이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녹취> 박○○(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개통이 되고 나서 원래 개통이 되었습니다라는 문자가 와야하는데 저는 받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확인을 해보니까 스팸 필터링 안에 스팸 문자로 다 들어가 있었어요."

신용카드 정보를 수집하고, 전송되는 문자메시지까지 막아놓을 정도로 주도면밀하게 명의도용을 계획한 정황이 뚜렸해 보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통신사 측은 박 씨의 명의도용 신고를 접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KT의 명의도용 관련 안내 문서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인증을 거쳐 개통한 경우엔 명의도용 신고 접수가 안 된다고 나와있습니다.

인터넷으로 휴대전화가 개통된 경우 명의도용 신고 접수를 받지 않는 건 다른 통신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취> 통신사 관계자 : "아주 지능적인 경우를 빼고는 명의도용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 거구요."

박 씨는 자신도 모르게 개통된 휴대전화 기기값과 사용한 적 없는 상품권 대금까지 모두 150만 원을 값아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녹취> 박○○(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어이가 없죠. 이런 일 한번도 겪은 적이 없고, 무슨 일이지 하면서 임신 중이긴 한데 한 달 동안 잠을 못자서...계속 스트레스 받아서..."

휴대전화 명의도용 신고 건수는 꾸준히 증가해 지난 2013년, 이동통신 3사에서만 2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과거 노숙인으로부터 이름을 빌리거나 대출을 미끼로 명의도용이 이뤄지던 것과 달리, 최근엔 개인정보를 빼내 직접 명의도용 휴대전화를 만드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으로 경찰은 분석했습니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휴대전화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대포폰'으로 팔려나가 범죄에 악용된다고 보안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인터뷰> 이기동(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 : "100% 범죄자들한테 가는 겁니다./범죄자들 아니면 쓸 이유가 없죠. 30만 원 주고 (대포폰을) 구입했는데 명의자가 정지를 걸어버리면 무용지물이 돼버리니까."

휴대전화 명의도용은 금전적인 피해로만 그치는 게 아닙니다.

27살 최모 씨는 지난 2월, 부산의 한 경찰서로 나오라는 출석요구서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중고 거래 사기에 연루돼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녹취> 최○○(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사이트 거기서 제가 비닐하우스 철근을 판다고 해놓고 안 주고 그런 사기를 쳤다고 해서 신고가 들어왔대요."

누군가 최 씨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범죄에 이용한 겁니다.

알고보니 최 씨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가 다섯 대나 있었습니다.

<녹취> 최○○(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이게 12월 1일에 개통을 한 걸로 되어 있는데 맨 처음에는 번호가 한두 개, 세 개 이정도인 줄 알았는데 다섯 개가 있다고..."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남양주, 인천 등 전국 각지의 경찰서 7곳으로 부터 출석요구가 빗발쳤습니다.

인터넷 사기와 사문서 위조, 보이스피싱에 조건만남까지 혐의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출석요구와 전화문의에 최 씨는 결국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녹취> 최○○(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울기도 하고, '내가 왜 이렇게 자꾸 설명을 해야되지?' 하는 생각...스트레스가 가장 커요. 밥 먹다가 토한 적도 있고. 그게 가장 크고 발로 제가 다 뛰어야 되니까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취> "마당이요 뒤쪽으로 해서 이렇게..."

사건을 겪은 뒤 인천에 살던 최 씨는 경기도 여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했습니다.

또 다시 개인정보가 유출돼 피해을 입을까봐 개명 신청까지 했습니다.

<녹취> 최○○(휴대전화 명의도용 피해자) : "제 정보가 유출이 되니까 진절머리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인터넷 설치 안 했고 TV도 지금 없는 상태고요. 제 정보가 들어갈 수 있는 걸 진짜 지금 최소화 하고 있어요."

범죄와 연결되고,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수도 있는 휴대전화 명의도용.

통신업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명의도용을 막기 위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지호(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간사) : "충분히 도용이 가능하고 심지어 현재와 같은 개인정보 유출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본인인증이) 개인을 완전히 특정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거든요. 소비자들의 금적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라면 좀 더 명확하고 정확한 절차를 마련해야 됩니다."

예방부터 피해 보상까지,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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