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 ‘부끄러움’을 되새기며

입력 2015.08.29 (07:34) 수정 2015.08.2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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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 해설위원]

오늘 일부 지방자치단체나 학교 앞에는 여느 때와 다른 모양의 국기가 내걸렸습니다. 깃폭 만큼 내려서 단 조기형식입니다. 나라의 큰 슬픔이나 애국선열을 기리는 날도 아닌 데 왜인가요? 국치일! 100년 하고도 5년 전 바로 오늘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큰 슬픔 못지않게 큰 부끄러움 역시 머릿속에 새겨야 한다는 다짐에서입니다.

합병 당일 대한제국 황제 명의의 성명서는 “정사를 혁신하고자 많이 애썼지만 나아질 가망이 없어 결단을 내려 통치권을 양도한다”고 돼있습니다. 물론 일제의 강압 때문이었지만 이미 나라를 지킬래야 지킬 수단을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 5년 전 을사늑약으로 주권의 상징인 외교와 군사권을 빼앗겨버렸습니다. 저항할 최소한의 물리력도, 도와줄 우방도 없었습니다. 일제는 이미 주변 열강, 러시아와 영국, 심지어 미국의 암묵적 동의까지 얻어낸 뒤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그만큼 치밀하고 집요했습니다. 봉건적 기득권과 왕권 지키기에 급급했던 그때 지배세력으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근대사의 이런 고통스런 기억들을 다시 들춰내 되새겨야 한다는 경고들이 요즘 많습니다. 동북아를 휩쓴 역사의 격류가 백여 년 만에 재현되는 조짐이 뚜렷하다는 겁니다. G2로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견제, 일본의 재무장과 북한의 좌충우돌 등 변수가 어지럽습니다. 백여 년 전과 많이 다르다지만 우리 힘이 미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이 많습니다. 복잡한 국제 역학관계 속에 갈림길마다 선택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연하게 나설 때와 참고 견디며 물러서야 할 때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역사인식이 그런 지혜를 길러줍니다.

경험이 공유되고 기억이 계승될수록 그 사회는 튼튼하다고 합니다. 보편적 역사교육은 그래서 치명적으로 중요합니다. 광복 이후 지난 70여 년 위대한 여정을 이어갈 새로운 도약은 다시 역사적 성찰과 모색으로부터 찾아져야 합니다. 국치의 부끄러움을 오늘 우리가 되새기는 이유입니다. 뉴스해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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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해설] ‘부끄러움’을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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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5-08-29 0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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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 해설위원]

오늘 일부 지방자치단체나 학교 앞에는 여느 때와 다른 모양의 국기가 내걸렸습니다. 깃폭 만큼 내려서 단 조기형식입니다. 나라의 큰 슬픔이나 애국선열을 기리는 날도 아닌 데 왜인가요? 국치일! 100년 하고도 5년 전 바로 오늘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큰 슬픔 못지않게 큰 부끄러움 역시 머릿속에 새겨야 한다는 다짐에서입니다.

합병 당일 대한제국 황제 명의의 성명서는 “정사를 혁신하고자 많이 애썼지만 나아질 가망이 없어 결단을 내려 통치권을 양도한다”고 돼있습니다. 물론 일제의 강압 때문이었지만 이미 나라를 지킬래야 지킬 수단을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 5년 전 을사늑약으로 주권의 상징인 외교와 군사권을 빼앗겨버렸습니다. 저항할 최소한의 물리력도, 도와줄 우방도 없었습니다. 일제는 이미 주변 열강, 러시아와 영국, 심지어 미국의 암묵적 동의까지 얻어낸 뒤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그만큼 치밀하고 집요했습니다. 봉건적 기득권과 왕권 지키기에 급급했던 그때 지배세력으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근대사의 이런 고통스런 기억들을 다시 들춰내 되새겨야 한다는 경고들이 요즘 많습니다. 동북아를 휩쓴 역사의 격류가 백여 년 만에 재현되는 조짐이 뚜렷하다는 겁니다. G2로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견제, 일본의 재무장과 북한의 좌충우돌 등 변수가 어지럽습니다. 백여 년 전과 많이 다르다지만 우리 힘이 미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이 많습니다. 복잡한 국제 역학관계 속에 갈림길마다 선택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연하게 나설 때와 참고 견디며 물러서야 할 때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역사인식이 그런 지혜를 길러줍니다.

경험이 공유되고 기억이 계승될수록 그 사회는 튼튼하다고 합니다. 보편적 역사교육은 그래서 치명적으로 중요합니다. 광복 이후 지난 70여 년 위대한 여정을 이어갈 새로운 도약은 다시 역사적 성찰과 모색으로부터 찾아져야 합니다. 국치의 부끄러움을 오늘 우리가 되새기는 이유입니다. 뉴스해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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