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카트리나 10년, 악몽은 이제 그만
입력 2015.09.12 (08:25)
수정 2015.09.12 (14:2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미국 동남부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인명 피해만 2천 5백명이 넘는 엄청난 피해가 난 미국 최악의 재난이었죠.
허리케인의 직격탄을 맞은 뉴올리언스에서는 탈출하는 주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미국 정부 책임론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습니다.
당시 파괴의 흔적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어 악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몰락했던 지역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립니다.
재건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젊은 인구의 유입과 함께 투자도 크게 늘었습니다.
10년 전 악몽을 떨치고 다시 일어선 뉴올리언스에 이주한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뉴올리언스 도심 외곽의 카트리나 기념관.
허리케인에 속절없이 당한 주민들과 신원 미상의 희생자들까지..
10년전 가슴 아픈 기억이 아로 새겨져 있습니다.
2005년 8월 29일, 쿠바와 바하마 등 중미 지역을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시속 250킬로미터의 빠른 속도로 미 남부지역을 덮쳤습니다.
아름다운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는 시내 한복판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심의 80%가 물에 잠겼습니다.
카트리나로 어머니와 손녀를 잃은 올해 60살의 로버트 그린 씨.
집안 한켠에는 떠나보낸 어머니와 손녀의 당시 사진이 걸려있고, 앞 마당에는 소박한 추모비가 고인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그는 이웃들의 재건사업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그린(뉴올리언스 주민/48년 거주) : "왜 돌아왔냐고요? 간단해요. 여기는 내 집이거든요. 미국의 꿈이 담겨있는 집이에요. 우리를 위해 어머니는 이 집을 1967년에 사셨어요."
카트리나가 닥쳤을 당시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던 교민 천 여명은 미리 대피해 다행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물이 빠진 지 한달 여만에 다시 찾은 세탁소에는 악취가 진동했고, 장비와 세탁물 어느 하나도 성한 게 없었습니다.
<인터뷰> 박연희(세탁소 업주) : "(물이 어느 정도 들이 찼었나요?) 11피트? 이 정도 될 거에요. 바로 지붕 아래까지 물이 들어 왔어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 우울증도 얻었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간신히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때의 악몽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인터뷰> 박연희(세탁소 업주) : "시신 썩는 냄새보다 더 지독해요. 10년이 됐는데도 비가 오거나 눅눅해지면 그 냄새가 올라와요"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등 미국 동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2천 5백 여명의 희생자,
천 8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피해로 미국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됐습니다.
뉴올리언스 곳곳에는 아직도 10년 전의 흉물스런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카트리나 강타 이후 밀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했던 병원은 이후 문을 닫았고, 덩그러니 남은 집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버려진 흉가도 쉽게 눈에 띱니다.
10년 전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 집만 보더라도 기둥 곳곳이 썩어 있고요.
바닥은 푹 꺼졌지만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희망의 불씨는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부터 미 연방 재난 관리청을 중심으로 뉴올리언스 재건 사업이 본격화됐고, 도로와 교량, 학교와 병원 신축에 710억 달러를 쏟아 부었습니다.
대형 피해의 근원지였던 하천 제방은 더욱 길고 단단해졌습니다.
<인터뷰> 제프리 허버트(뉴올리언스시 재개발국) : "(시 전체에 큰 벽을 쌓은 셈이어서) 허리케인이나 태풍이 오면 문을 닫고 그 장벽이 태풍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피해를 입은 13만 4천여 채의 주택 가운데 80%가 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가장 피해가 컸던 뉴올리언스 외곽의 로우어 나인스 워드..
흑인 밀집지역으로 카트리나 피해 복구가 특히 더딘 곳이지만 미국 전역에서 달려든 자원 봉사자들의 땀과 눈물은 마을을 순식간에 탈바꿈시켰습니다.
다시 닥칠지도 모를 수해에 대비하기 위해 주택 바닥 높이를 높였고, 일부 주택은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을 위해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이사를 들어오는 인구도 부쩍 늘었습니다.
<인터뷰> 메리 아로(로우어 나인스 워드 주민/백인) : "환경이 아름답고, 사람들은 강인하면서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는 것으로 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6만 여명의 이재민들이 대피했던 대형 경기장 슈퍼돔. 경기장 주변엔 시신이 방치됐고, 턱없이 부족한 물과 음식, 강력범죄까지..
행정력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그라운드 제로라는 오명을 쓴 이윱니다.
1년여만에 문을 연 슈퍼 돔은 경기 뿐만 아니라 대형 콘서트와 졸업 행사장 등 각종 이벤트가 연중 이어집니다.
시청자 여러분도 이곳을 기억하실 겁니다.
슈퍼돔. 전 세계인들에게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곳인데요.
10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에게 정신적 위안이자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사브리나(슈퍼돔 관계자) :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여 환호하고 즐거워하며 그때의 충격을 잊고 있죠"
총체적 난국을 불러온 재난관리 시스템도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졌습니다.
연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허리케인 재난 발생 부터 대응, 피해자들에 대한 경제지원까지..
뉴올리언스 시내 60여개 유관기관이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재건사업이 본격화되고 안전이 확보되면서 지역 경제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인구의 유입과 함께 기업들의 투자가 늘었고, 그 결과 뉴올리언스 창업률은 미 도시의 평균 창업률보다 67% 더 늘었습니다.
취업률도 7년새 5% 이상 늘었고, 세수는 카트리나 이전보다 30% 증가했습니다.
<인터뷰> 미트 랜드류(뉴올리언스 시장) :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카트리나가 오히려 기회가 된 셈입니다."
양지에는 음지가 뒤따르는 법.
치솟는 집값..
카트리나 이전보다 확대된 빈부격차는 서민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카트리나 10년이 재기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음악의 도시 뉴올리언스가 기로에 서 있습니다.
미국 동남부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인명 피해만 2천 5백명이 넘는 엄청난 피해가 난 미국 최악의 재난이었죠.
허리케인의 직격탄을 맞은 뉴올리언스에서는 탈출하는 주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미국 정부 책임론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습니다.
당시 파괴의 흔적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어 악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몰락했던 지역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립니다.
재건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젊은 인구의 유입과 함께 투자도 크게 늘었습니다.
10년 전 악몽을 떨치고 다시 일어선 뉴올리언스에 이주한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뉴올리언스 도심 외곽의 카트리나 기념관.
허리케인에 속절없이 당한 주민들과 신원 미상의 희생자들까지..
10년전 가슴 아픈 기억이 아로 새겨져 있습니다.
2005년 8월 29일, 쿠바와 바하마 등 중미 지역을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시속 250킬로미터의 빠른 속도로 미 남부지역을 덮쳤습니다.
아름다운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는 시내 한복판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심의 80%가 물에 잠겼습니다.
카트리나로 어머니와 손녀를 잃은 올해 60살의 로버트 그린 씨.
집안 한켠에는 떠나보낸 어머니와 손녀의 당시 사진이 걸려있고, 앞 마당에는 소박한 추모비가 고인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그는 이웃들의 재건사업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그린(뉴올리언스 주민/48년 거주) : "왜 돌아왔냐고요? 간단해요. 여기는 내 집이거든요. 미국의 꿈이 담겨있는 집이에요. 우리를 위해 어머니는 이 집을 1967년에 사셨어요."
카트리나가 닥쳤을 당시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던 교민 천 여명은 미리 대피해 다행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물이 빠진 지 한달 여만에 다시 찾은 세탁소에는 악취가 진동했고, 장비와 세탁물 어느 하나도 성한 게 없었습니다.
<인터뷰> 박연희(세탁소 업주) : "(물이 어느 정도 들이 찼었나요?) 11피트? 이 정도 될 거에요. 바로 지붕 아래까지 물이 들어 왔어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 우울증도 얻었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간신히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때의 악몽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인터뷰> 박연희(세탁소 업주) : "시신 썩는 냄새보다 더 지독해요. 10년이 됐는데도 비가 오거나 눅눅해지면 그 냄새가 올라와요"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등 미국 동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2천 5백 여명의 희생자,
천 8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피해로 미국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됐습니다.
뉴올리언스 곳곳에는 아직도 10년 전의 흉물스런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카트리나 강타 이후 밀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했던 병원은 이후 문을 닫았고, 덩그러니 남은 집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버려진 흉가도 쉽게 눈에 띱니다.
10년 전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 집만 보더라도 기둥 곳곳이 썩어 있고요.
바닥은 푹 꺼졌지만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희망의 불씨는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부터 미 연방 재난 관리청을 중심으로 뉴올리언스 재건 사업이 본격화됐고, 도로와 교량, 학교와 병원 신축에 710억 달러를 쏟아 부었습니다.
대형 피해의 근원지였던 하천 제방은 더욱 길고 단단해졌습니다.
<인터뷰> 제프리 허버트(뉴올리언스시 재개발국) : "(시 전체에 큰 벽을 쌓은 셈이어서) 허리케인이나 태풍이 오면 문을 닫고 그 장벽이 태풍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피해를 입은 13만 4천여 채의 주택 가운데 80%가 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가장 피해가 컸던 뉴올리언스 외곽의 로우어 나인스 워드..
흑인 밀집지역으로 카트리나 피해 복구가 특히 더딘 곳이지만 미국 전역에서 달려든 자원 봉사자들의 땀과 눈물은 마을을 순식간에 탈바꿈시켰습니다.
다시 닥칠지도 모를 수해에 대비하기 위해 주택 바닥 높이를 높였고, 일부 주택은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을 위해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이사를 들어오는 인구도 부쩍 늘었습니다.
<인터뷰> 메리 아로(로우어 나인스 워드 주민/백인) : "환경이 아름답고, 사람들은 강인하면서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는 것으로 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6만 여명의 이재민들이 대피했던 대형 경기장 슈퍼돔. 경기장 주변엔 시신이 방치됐고, 턱없이 부족한 물과 음식, 강력범죄까지..
행정력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그라운드 제로라는 오명을 쓴 이윱니다.
1년여만에 문을 연 슈퍼 돔은 경기 뿐만 아니라 대형 콘서트와 졸업 행사장 등 각종 이벤트가 연중 이어집니다.
시청자 여러분도 이곳을 기억하실 겁니다.
슈퍼돔. 전 세계인들에게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곳인데요.
10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에게 정신적 위안이자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사브리나(슈퍼돔 관계자) :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여 환호하고 즐거워하며 그때의 충격을 잊고 있죠"
총체적 난국을 불러온 재난관리 시스템도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졌습니다.
연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허리케인 재난 발생 부터 대응, 피해자들에 대한 경제지원까지..
뉴올리언스 시내 60여개 유관기관이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재건사업이 본격화되고 안전이 확보되면서 지역 경제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인구의 유입과 함께 기업들의 투자가 늘었고, 그 결과 뉴올리언스 창업률은 미 도시의 평균 창업률보다 67% 더 늘었습니다.
취업률도 7년새 5% 이상 늘었고, 세수는 카트리나 이전보다 30% 증가했습니다.
<인터뷰> 미트 랜드류(뉴올리언스 시장) :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카트리나가 오히려 기회가 된 셈입니다."
양지에는 음지가 뒤따르는 법.
치솟는 집값..
카트리나 이전보다 확대된 빈부격차는 서민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카트리나 10년이 재기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음악의 도시 뉴올리언스가 기로에 서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월드 리포트] 카트리나 10년, 악몽은 이제 그만
-
- 입력 2015-09-12 08:56:26
- 수정2015-09-12 14:23:53
<앵커 멘트>
미국 동남부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인명 피해만 2천 5백명이 넘는 엄청난 피해가 난 미국 최악의 재난이었죠.
허리케인의 직격탄을 맞은 뉴올리언스에서는 탈출하는 주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미국 정부 책임론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습니다.
당시 파괴의 흔적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어 악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몰락했던 지역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립니다.
재건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젊은 인구의 유입과 함께 투자도 크게 늘었습니다.
10년 전 악몽을 떨치고 다시 일어선 뉴올리언스에 이주한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뉴올리언스 도심 외곽의 카트리나 기념관.
허리케인에 속절없이 당한 주민들과 신원 미상의 희생자들까지..
10년전 가슴 아픈 기억이 아로 새겨져 있습니다.
2005년 8월 29일, 쿠바와 바하마 등 중미 지역을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시속 250킬로미터의 빠른 속도로 미 남부지역을 덮쳤습니다.
아름다운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는 시내 한복판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심의 80%가 물에 잠겼습니다.
카트리나로 어머니와 손녀를 잃은 올해 60살의 로버트 그린 씨.
집안 한켠에는 떠나보낸 어머니와 손녀의 당시 사진이 걸려있고, 앞 마당에는 소박한 추모비가 고인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그는 이웃들의 재건사업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그린(뉴올리언스 주민/48년 거주) : "왜 돌아왔냐고요? 간단해요. 여기는 내 집이거든요. 미국의 꿈이 담겨있는 집이에요. 우리를 위해 어머니는 이 집을 1967년에 사셨어요."
카트리나가 닥쳤을 당시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던 교민 천 여명은 미리 대피해 다행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물이 빠진 지 한달 여만에 다시 찾은 세탁소에는 악취가 진동했고, 장비와 세탁물 어느 하나도 성한 게 없었습니다.
<인터뷰> 박연희(세탁소 업주) : "(물이 어느 정도 들이 찼었나요?) 11피트? 이 정도 될 거에요. 바로 지붕 아래까지 물이 들어 왔어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 우울증도 얻었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간신히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때의 악몽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인터뷰> 박연희(세탁소 업주) : "시신 썩는 냄새보다 더 지독해요. 10년이 됐는데도 비가 오거나 눅눅해지면 그 냄새가 올라와요"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등 미국 동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2천 5백 여명의 희생자,
천 8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피해로 미국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됐습니다.
뉴올리언스 곳곳에는 아직도 10년 전의 흉물스런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카트리나 강타 이후 밀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했던 병원은 이후 문을 닫았고, 덩그러니 남은 집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버려진 흉가도 쉽게 눈에 띱니다.
10년 전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 집만 보더라도 기둥 곳곳이 썩어 있고요.
바닥은 푹 꺼졌지만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희망의 불씨는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부터 미 연방 재난 관리청을 중심으로 뉴올리언스 재건 사업이 본격화됐고, 도로와 교량, 학교와 병원 신축에 710억 달러를 쏟아 부었습니다.
대형 피해의 근원지였던 하천 제방은 더욱 길고 단단해졌습니다.
<인터뷰> 제프리 허버트(뉴올리언스시 재개발국) : "(시 전체에 큰 벽을 쌓은 셈이어서) 허리케인이나 태풍이 오면 문을 닫고 그 장벽이 태풍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피해를 입은 13만 4천여 채의 주택 가운데 80%가 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가장 피해가 컸던 뉴올리언스 외곽의 로우어 나인스 워드..
흑인 밀집지역으로 카트리나 피해 복구가 특히 더딘 곳이지만 미국 전역에서 달려든 자원 봉사자들의 땀과 눈물은 마을을 순식간에 탈바꿈시켰습니다.
다시 닥칠지도 모를 수해에 대비하기 위해 주택 바닥 높이를 높였고, 일부 주택은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을 위해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이사를 들어오는 인구도 부쩍 늘었습니다.
<인터뷰> 메리 아로(로우어 나인스 워드 주민/백인) : "환경이 아름답고, 사람들은 강인하면서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는 것으로 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6만 여명의 이재민들이 대피했던 대형 경기장 슈퍼돔. 경기장 주변엔 시신이 방치됐고, 턱없이 부족한 물과 음식, 강력범죄까지..
행정력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그라운드 제로라는 오명을 쓴 이윱니다.
1년여만에 문을 연 슈퍼 돔은 경기 뿐만 아니라 대형 콘서트와 졸업 행사장 등 각종 이벤트가 연중 이어집니다.
시청자 여러분도 이곳을 기억하실 겁니다.
슈퍼돔. 전 세계인들에게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곳인데요.
10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에게 정신적 위안이자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사브리나(슈퍼돔 관계자) :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여 환호하고 즐거워하며 그때의 충격을 잊고 있죠"
총체적 난국을 불러온 재난관리 시스템도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졌습니다.
연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허리케인 재난 발생 부터 대응, 피해자들에 대한 경제지원까지..
뉴올리언스 시내 60여개 유관기관이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재건사업이 본격화되고 안전이 확보되면서 지역 경제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인구의 유입과 함께 기업들의 투자가 늘었고, 그 결과 뉴올리언스 창업률은 미 도시의 평균 창업률보다 67% 더 늘었습니다.
취업률도 7년새 5% 이상 늘었고, 세수는 카트리나 이전보다 30% 증가했습니다.
<인터뷰> 미트 랜드류(뉴올리언스 시장) :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카트리나가 오히려 기회가 된 셈입니다."
양지에는 음지가 뒤따르는 법.
치솟는 집값..
카트리나 이전보다 확대된 빈부격차는 서민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카트리나 10년이 재기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음악의 도시 뉴올리언스가 기로에 서 있습니다.
미국 동남부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인명 피해만 2천 5백명이 넘는 엄청난 피해가 난 미국 최악의 재난이었죠.
허리케인의 직격탄을 맞은 뉴올리언스에서는 탈출하는 주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미국 정부 책임론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습니다.
당시 파괴의 흔적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어 악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몰락했던 지역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립니다.
재건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젊은 인구의 유입과 함께 투자도 크게 늘었습니다.
10년 전 악몽을 떨치고 다시 일어선 뉴올리언스에 이주한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뉴올리언스 도심 외곽의 카트리나 기념관.
허리케인에 속절없이 당한 주민들과 신원 미상의 희생자들까지..
10년전 가슴 아픈 기억이 아로 새겨져 있습니다.
2005년 8월 29일, 쿠바와 바하마 등 중미 지역을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시속 250킬로미터의 빠른 속도로 미 남부지역을 덮쳤습니다.
아름다운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는 시내 한복판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심의 80%가 물에 잠겼습니다.
카트리나로 어머니와 손녀를 잃은 올해 60살의 로버트 그린 씨.
집안 한켠에는 떠나보낸 어머니와 손녀의 당시 사진이 걸려있고, 앞 마당에는 소박한 추모비가 고인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그는 이웃들의 재건사업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그린(뉴올리언스 주민/48년 거주) : "왜 돌아왔냐고요? 간단해요. 여기는 내 집이거든요. 미국의 꿈이 담겨있는 집이에요. 우리를 위해 어머니는 이 집을 1967년에 사셨어요."
카트리나가 닥쳤을 당시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던 교민 천 여명은 미리 대피해 다행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물이 빠진 지 한달 여만에 다시 찾은 세탁소에는 악취가 진동했고, 장비와 세탁물 어느 하나도 성한 게 없었습니다.
<인터뷰> 박연희(세탁소 업주) : "(물이 어느 정도 들이 찼었나요?) 11피트? 이 정도 될 거에요. 바로 지붕 아래까지 물이 들어 왔어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 우울증도 얻었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간신히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때의 악몽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인터뷰> 박연희(세탁소 업주) : "시신 썩는 냄새보다 더 지독해요. 10년이 됐는데도 비가 오거나 눅눅해지면 그 냄새가 올라와요"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등 미국 동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2천 5백 여명의 희생자,
천 8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피해로 미국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됐습니다.
뉴올리언스 곳곳에는 아직도 10년 전의 흉물스런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카트리나 강타 이후 밀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했던 병원은 이후 문을 닫았고, 덩그러니 남은 집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버려진 흉가도 쉽게 눈에 띱니다.
10년 전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 집만 보더라도 기둥 곳곳이 썩어 있고요.
바닥은 푹 꺼졌지만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희망의 불씨는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부터 미 연방 재난 관리청을 중심으로 뉴올리언스 재건 사업이 본격화됐고, 도로와 교량, 학교와 병원 신축에 710억 달러를 쏟아 부었습니다.
대형 피해의 근원지였던 하천 제방은 더욱 길고 단단해졌습니다.
<인터뷰> 제프리 허버트(뉴올리언스시 재개발국) : "(시 전체에 큰 벽을 쌓은 셈이어서) 허리케인이나 태풍이 오면 문을 닫고 그 장벽이 태풍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피해를 입은 13만 4천여 채의 주택 가운데 80%가 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가장 피해가 컸던 뉴올리언스 외곽의 로우어 나인스 워드..
흑인 밀집지역으로 카트리나 피해 복구가 특히 더딘 곳이지만 미국 전역에서 달려든 자원 봉사자들의 땀과 눈물은 마을을 순식간에 탈바꿈시켰습니다.
다시 닥칠지도 모를 수해에 대비하기 위해 주택 바닥 높이를 높였고, 일부 주택은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을 위해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이사를 들어오는 인구도 부쩍 늘었습니다.
<인터뷰> 메리 아로(로우어 나인스 워드 주민/백인) : "환경이 아름답고, 사람들은 강인하면서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는 것으로 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6만 여명의 이재민들이 대피했던 대형 경기장 슈퍼돔. 경기장 주변엔 시신이 방치됐고, 턱없이 부족한 물과 음식, 강력범죄까지..
행정력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그라운드 제로라는 오명을 쓴 이윱니다.
1년여만에 문을 연 슈퍼 돔은 경기 뿐만 아니라 대형 콘서트와 졸업 행사장 등 각종 이벤트가 연중 이어집니다.
시청자 여러분도 이곳을 기억하실 겁니다.
슈퍼돔. 전 세계인들에게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곳인데요.
10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에게 정신적 위안이자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사브리나(슈퍼돔 관계자) :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여 환호하고 즐거워하며 그때의 충격을 잊고 있죠"
총체적 난국을 불러온 재난관리 시스템도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졌습니다.
연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허리케인 재난 발생 부터 대응, 피해자들에 대한 경제지원까지..
뉴올리언스 시내 60여개 유관기관이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재건사업이 본격화되고 안전이 확보되면서 지역 경제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인구의 유입과 함께 기업들의 투자가 늘었고, 그 결과 뉴올리언스 창업률은 미 도시의 평균 창업률보다 67% 더 늘었습니다.
취업률도 7년새 5% 이상 늘었고, 세수는 카트리나 이전보다 30% 증가했습니다.
<인터뷰> 미트 랜드류(뉴올리언스 시장) :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카트리나가 오히려 기회가 된 셈입니다."
양지에는 음지가 뒤따르는 법.
치솟는 집값..
카트리나 이전보다 확대된 빈부격차는 서민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카트리나 10년이 재기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음악의 도시 뉴올리언스가 기로에 서 있습니다.
-
-
이주한 기자 juhan@kbs.co.kr
이주한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