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옴표 제목, 왜?

입력 2015.10.04 (17:09) 수정 2015.10.0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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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요즘 신문이나 방송 뉴스 제목에, 취재원의 말을 직접 인용한 큰 따옴표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을 놓고 어느 한 쪽의 의견만을 제목으로 부각시키는 경우도 있고,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일부 발언을 제목으로 쓰기도 하는데요.

때문에, 오히려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디어인사이드. 오늘은 먼저 인용 제목, 얼마나 많이 쓰이고, 문제는 없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박현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박 기자. 실제 사례부터 좀 살펴볼까요? 직접 인용 제목, 어떤 경우에 많이 쓰던가요?

<답변> 네. 정치, 경제, 사회 등 특정 분야를 가리지 않고 따옴표 제목이 등장하는데요.

특히 이해 관계자의 입장이 엇갈리는 경우나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에 직접 인용 제목이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리포트>

<녹취> KBS 뉴스9(9.13) : “노동개혁 방안 도출을 위한 노사정 대표 회의가 조금 전 대타협에 성공했습니다”

지난달 13일, 노사정 대표가 노동시장 구조개편안에 전격 합의하자 언론은 관련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이해 관계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 이 사안을 놓고, 상당수 신문들은 따옴표 제목을 썼습니다.

그런데, 제목의 방향은 서로 달랐습니다.

한 편에선 청년단체와 재계 인사 등의 말을 인용해 주로 긍정적 효과를 강조한 반면,

<녹취> 조선(9.14) : 청년단체들 “고용 절벽 완화하는 양보와 타협 환영” 재계 “경제 위해 한걸음 내딛는 결정...후속 입법 조치 뒤따라야”

<녹취> 동아(9.15) : “청년 일자리 5년간 82만 개 늘 것”

다른 한편에선 노동계와 일부 전문가들의 발언을 부작용을 강조하는 기사 제목으로 활용했습니다.

<녹취> 한국(9.15 3면) : “지도부 사퇴 . 노동 개악...”

<녹취> 경향(9.15 3면) : “일반해고.취업규칙 ‘노사협의’로는 견제장치 안될 것”

이처럼 누구의 말을 따옴표로 제목에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처럼 보이지만, 상당수 신문들은 양쪽의 입장을 담기보다 한편의 입장만을 담은 제목을 뽑았습니다.

<인터뷰>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제목에 특정한 표현이나 입장을 언론사가 직접 제시를 함으로 해서 독자나 일반 대중들한테 그런 구조개혁 방향을 이를테면 지지하거나 아니면 반대하게 하는, 자기가 선호하는 방향성을 제목에, 헤드라인에 분명하게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에도 따옴표 제목은 많이 등장합니다.

지난 4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

당시 불거진 여러 가지 의혹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 그대로 기사 제목으로 쓰였습니다.

이 중에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익명의 관계자의 말도 적지 않았습니다.

<녹취> 중앙(4.13) : "회장님이 메모만 남겼겠나, 관련 서류 분명히 있을 것" 성 전 회장 측근들 잇따른 증언

<녹취> 조선일보(4.11) : 성완종 ‘마당발 인맥’ 여야 안가려 “추가 리스트 있을 가능성”

지난 2013년, 이른바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 사건’을 놓고도 일부 언론은 다양한 취재원의 말을 인용해 내란 음모 혐의를 제기했고, 제목은 이를 더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올해 초, 내란 선동은 인정하되 가장 큰 쟁점이었던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처럼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운 주장과 의혹 제기를 언론이 인용부호를 이용해 제목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민기(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 “제목에 있어서 거두절미하고 자기네들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만 딱 따옴표로 표시를 해주는 거죠.그러면서 한쪽으로 낙인을 찍어서 몰아가는 그 말이 맞고 틀리는 건 우리가 책임지는 게 아니다, 이 사람의 주장이다...라고 무책임하게 빠져나가는 그런 보도들이 많아지는 거죠”

<질문> 네. 또 기사 제목 보다보면 특정인의 자극적인 발언이 그대로 제목으로 인용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던데요,

<답변> 네. 보통 먼저 제목을 보고 기사 본문을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게 되죠.

그래서 독자들의 눈길을 최대한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발언을 제목으로 뽑는 경우도 많습니다.

<리포트>

이른바 ‘트렁크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일곤이 검거된 후, 그의 입을 통해 나온 자극적인 발언들은 여과 없이 기사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또, 일부 언론은 김 씨가 개처럼 안락사 시켜 달라며 간호사를 협박했다고 따옴표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동물병원 관계자와 경찰은 김 씨가 개를 안락사 시킨다며 약을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범죄인이나, 유명인의 자극적인 발언은 따옴표 제목으로 자주 인용되는 소잽니다.

<녹취> 동아(5.14) : 난사 최씨 “내일 사격...다 죽여버리고 싶다” 유서

<녹취> 경향(4.21) : 박용성 “목 쳐달라는데..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녹취> 한겨레(5.20) :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오면 뭐하나”

제목을 보고 기사본문을 읽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독자들이 많기 때문에 독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는다는 겁니다.

<인터뷰> 박문홍(한국편집기자협회장) : “뉴스가 과잉 공급된 상황에서 본인이 만든 제품을 눈에 띄게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무나 비슷한 제목이 많이 나가고 있으니까요. 거기서 변별력을 주기 위해서는 인용구가 제일 쉽고 편한 방법이거든요”

자극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정치인이나 기업 총수 등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말은 그 자체로 제목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언 자체를 가장 중요한 뉴스로 삼는 겁니다.

2달여 전 롯데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을 땐, 회장 일가의 발언 하나하나가 곧바로 기사 제목이 됐습니다.

중요한 뉴스 취재원이기는 하지만, 독자들이 무슨 맥락인지 이해하기도 어렵게, 말 한마디 한마디를 중계하듯 제목으로 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녹취> 동아(8.4) : “출장 다녀왔습니다.” “어허, 어디?”

<녹취> 한겨레(8.4) : “귀국 인사에 ‘어허 그러냐’ 말해“ ”나가라 소리쳐“

그렇다면 이런 따옴표 제목은 전체 기사 제목 중 얼마나 될까?

‘미디어 인사이드’가 지난 8월 말부터 한 달간 7개 주요 일간지의 1면 기사를 분석한 결과, 전체 638건의 기사 가운데 31%인 197건이 직접 인용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질문> 그런데, 인용 제목을 쓸 때, 어떤 발언을 그대로 전하는 게 아니라, 자의적으로 편집해서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는 그런 경우도 있죠?

<답변> 네. 직접 인용, 따옴표 제목의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몇 가지 사례별로 정리해 봤습니다.

노동구조 개혁안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달 14일, 한 일간지 기삽니다.

“정규직 노조 탓에 내 자리 없어”라는 제목으로 비정규직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만, 기사 본문 어디에도 제목과 같은 발언은 없습니다.

청년들의 발언 의미를 해석해서 새롭게 만든 말에 직접 인용 부호를 붙인 겁니다.

민주노총 총파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이 기사도 “개혁 일정 산적한 때에 찬물 끼얹나“라며 인용 제목을 썼지만, 이 내용이 정작 본문에는 없습니다.

이 기사는 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습니다.

<녹취> 신문윤리위원회 심의 결정 : “위 기사 제목은 ‘경제계의 우려’라는 막연한 내용이 편집자의 편견이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과장됐다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크다. 이 같은 제목 달기는 보도의 공정성과 신문의 신뢰성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지난 5월, 황교안 당시 총리 후보자에 대한 법조계의 긍정적 평가만을 제목에 담은 기사입니다.

하지만 기사는 첫 문장부터 법조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합니다.

<녹취> 신문윤리위원회 심의 결정 : “위 제목은 일부의 의견을 마치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기사 속 발언 내용을 전혀 다르게 편집해 제목을 단 경우도 있습니다.

제목에는 권노갑 상임고문이 문재인 대표에게 서운하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지만, 인터뷰 본문을 보면 호남 지역이 문 대표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권 고문이 전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녹취> 신문윤리위원회 심의 결정 : “위 제목은 편집자의 선입견이나 편견에 따라 사안을 과장하고 왜곡했다는 의심을 살 소지가 크다.”

<질문> 네. 박 기자! 이렇게 따옴표 제목을 남용하는 관행, 좀 개선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답변> 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 인용으로 제목을 쓰는 것은 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 유력 언론의 경우, 이런 따옴표 제목을 거의 쓰지 않고 있다는 점도 한번쯤 되새겨 봐야겠죠.

<리포트>

지난달 30일, 뉴욕타임스 지면에 실린 기사 목록입니다.

큰 따옴표가 붙은 제목은 하나도 없습니다.

워싱턴포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날 뉴욕타임스 139개, 워싱턴포스트 102개의 전체 기사 가운데 직접 인용 제목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인터뷰> 이승선(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전체적으로 이해 관계자들의 취재원 숫자를 늘리면서 뉴스가 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사 본문에서 좋은, 뉴스의 본문을 제대로 반영하는 제목을 외국 언론들의 경우에 뽑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직접 인용의 따옴표 제목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역사적 증언이 있을 때, 누군가의 발언 한 마디가 막중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따옴표 제목은 가능한 쓰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로서 인식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여론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언론 스스로 편집의 기본 원칙을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민기(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 “자극적인 말을 따옴표로 처리해서 눈길을 끌려는 것이 아니라 기사의 핵심이랄까 기사의 요점을 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게끔 전달하는 그게 편집의 기본이었거든요. 그 기본, 언론의 기본, 보도 기사 작성 편집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매일 매일 쏟아지는 기사 속에서 기사 내용을 다 읽지 않고, 제목만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제목 독자’들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언론사들은 손쉬운 따옴표 제목을 남발하기보다, 기사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제목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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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옴표 제목, 왜?
    • 입력 2015-10-04 08:35:19
    • 수정2015-10-04 22:34:49
    미디어 인사이드
<앵커 멘트>

요즘 신문이나 방송 뉴스 제목에, 취재원의 말을 직접 인용한 큰 따옴표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을 놓고 어느 한 쪽의 의견만을 제목으로 부각시키는 경우도 있고,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일부 발언을 제목으로 쓰기도 하는데요.

때문에, 오히려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디어인사이드. 오늘은 먼저 인용 제목, 얼마나 많이 쓰이고, 문제는 없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박현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박 기자. 실제 사례부터 좀 살펴볼까요? 직접 인용 제목, 어떤 경우에 많이 쓰던가요?

<답변> 네. 정치, 경제, 사회 등 특정 분야를 가리지 않고 따옴표 제목이 등장하는데요.

특히 이해 관계자의 입장이 엇갈리는 경우나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에 직접 인용 제목이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리포트>

<녹취> KBS 뉴스9(9.13) : “노동개혁 방안 도출을 위한 노사정 대표 회의가 조금 전 대타협에 성공했습니다”

지난달 13일, 노사정 대표가 노동시장 구조개편안에 전격 합의하자 언론은 관련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이해 관계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 이 사안을 놓고, 상당수 신문들은 따옴표 제목을 썼습니다.

그런데, 제목의 방향은 서로 달랐습니다.

한 편에선 청년단체와 재계 인사 등의 말을 인용해 주로 긍정적 효과를 강조한 반면,

<녹취> 조선(9.14) : 청년단체들 “고용 절벽 완화하는 양보와 타협 환영” 재계 “경제 위해 한걸음 내딛는 결정...후속 입법 조치 뒤따라야”

<녹취> 동아(9.15) : “청년 일자리 5년간 82만 개 늘 것”

다른 한편에선 노동계와 일부 전문가들의 발언을 부작용을 강조하는 기사 제목으로 활용했습니다.

<녹취> 한국(9.15 3면) : “지도부 사퇴 . 노동 개악...”

<녹취> 경향(9.15 3면) : “일반해고.취업규칙 ‘노사협의’로는 견제장치 안될 것”

이처럼 누구의 말을 따옴표로 제목에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처럼 보이지만, 상당수 신문들은 양쪽의 입장을 담기보다 한편의 입장만을 담은 제목을 뽑았습니다.

<인터뷰>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제목에 특정한 표현이나 입장을 언론사가 직접 제시를 함으로 해서 독자나 일반 대중들한테 그런 구조개혁 방향을 이를테면 지지하거나 아니면 반대하게 하는, 자기가 선호하는 방향성을 제목에, 헤드라인에 분명하게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에도 따옴표 제목은 많이 등장합니다.

지난 4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

당시 불거진 여러 가지 의혹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 그대로 기사 제목으로 쓰였습니다.

이 중에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익명의 관계자의 말도 적지 않았습니다.

<녹취> 중앙(4.13) : "회장님이 메모만 남겼겠나, 관련 서류 분명히 있을 것" 성 전 회장 측근들 잇따른 증언

<녹취> 조선일보(4.11) : 성완종 ‘마당발 인맥’ 여야 안가려 “추가 리스트 있을 가능성”

지난 2013년, 이른바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 사건’을 놓고도 일부 언론은 다양한 취재원의 말을 인용해 내란 음모 혐의를 제기했고, 제목은 이를 더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올해 초, 내란 선동은 인정하되 가장 큰 쟁점이었던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처럼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운 주장과 의혹 제기를 언론이 인용부호를 이용해 제목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민기(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 “제목에 있어서 거두절미하고 자기네들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만 딱 따옴표로 표시를 해주는 거죠.그러면서 한쪽으로 낙인을 찍어서 몰아가는 그 말이 맞고 틀리는 건 우리가 책임지는 게 아니다, 이 사람의 주장이다...라고 무책임하게 빠져나가는 그런 보도들이 많아지는 거죠”

<질문> 네. 또 기사 제목 보다보면 특정인의 자극적인 발언이 그대로 제목으로 인용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던데요,

<답변> 네. 보통 먼저 제목을 보고 기사 본문을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게 되죠.

그래서 독자들의 눈길을 최대한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발언을 제목으로 뽑는 경우도 많습니다.

<리포트>

이른바 ‘트렁크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일곤이 검거된 후, 그의 입을 통해 나온 자극적인 발언들은 여과 없이 기사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또, 일부 언론은 김 씨가 개처럼 안락사 시켜 달라며 간호사를 협박했다고 따옴표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동물병원 관계자와 경찰은 김 씨가 개를 안락사 시킨다며 약을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범죄인이나, 유명인의 자극적인 발언은 따옴표 제목으로 자주 인용되는 소잽니다.

<녹취> 동아(5.14) : 난사 최씨 “내일 사격...다 죽여버리고 싶다” 유서

<녹취> 경향(4.21) : 박용성 “목 쳐달라는데..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녹취> 한겨레(5.20) :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오면 뭐하나”

제목을 보고 기사본문을 읽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독자들이 많기 때문에 독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는다는 겁니다.

<인터뷰> 박문홍(한국편집기자협회장) : “뉴스가 과잉 공급된 상황에서 본인이 만든 제품을 눈에 띄게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무나 비슷한 제목이 많이 나가고 있으니까요. 거기서 변별력을 주기 위해서는 인용구가 제일 쉽고 편한 방법이거든요”

자극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정치인이나 기업 총수 등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말은 그 자체로 제목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언 자체를 가장 중요한 뉴스로 삼는 겁니다.

2달여 전 롯데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을 땐, 회장 일가의 발언 하나하나가 곧바로 기사 제목이 됐습니다.

중요한 뉴스 취재원이기는 하지만, 독자들이 무슨 맥락인지 이해하기도 어렵게, 말 한마디 한마디를 중계하듯 제목으로 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녹취> 동아(8.4) : “출장 다녀왔습니다.” “어허, 어디?”

<녹취> 한겨레(8.4) : “귀국 인사에 ‘어허 그러냐’ 말해“ ”나가라 소리쳐“

그렇다면 이런 따옴표 제목은 전체 기사 제목 중 얼마나 될까?

‘미디어 인사이드’가 지난 8월 말부터 한 달간 7개 주요 일간지의 1면 기사를 분석한 결과, 전체 638건의 기사 가운데 31%인 197건이 직접 인용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질문> 그런데, 인용 제목을 쓸 때, 어떤 발언을 그대로 전하는 게 아니라, 자의적으로 편집해서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는 그런 경우도 있죠?

<답변> 네. 직접 인용, 따옴표 제목의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몇 가지 사례별로 정리해 봤습니다.

노동구조 개혁안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달 14일, 한 일간지 기삽니다.

“정규직 노조 탓에 내 자리 없어”라는 제목으로 비정규직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만, 기사 본문 어디에도 제목과 같은 발언은 없습니다.

청년들의 발언 의미를 해석해서 새롭게 만든 말에 직접 인용 부호를 붙인 겁니다.

민주노총 총파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이 기사도 “개혁 일정 산적한 때에 찬물 끼얹나“라며 인용 제목을 썼지만, 이 내용이 정작 본문에는 없습니다.

이 기사는 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습니다.

<녹취> 신문윤리위원회 심의 결정 : “위 기사 제목은 ‘경제계의 우려’라는 막연한 내용이 편집자의 편견이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과장됐다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크다. 이 같은 제목 달기는 보도의 공정성과 신문의 신뢰성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지난 5월, 황교안 당시 총리 후보자에 대한 법조계의 긍정적 평가만을 제목에 담은 기사입니다.

하지만 기사는 첫 문장부터 법조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합니다.

<녹취> 신문윤리위원회 심의 결정 : “위 제목은 일부의 의견을 마치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기사 속 발언 내용을 전혀 다르게 편집해 제목을 단 경우도 있습니다.

제목에는 권노갑 상임고문이 문재인 대표에게 서운하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지만, 인터뷰 본문을 보면 호남 지역이 문 대표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권 고문이 전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녹취> 신문윤리위원회 심의 결정 : “위 제목은 편집자의 선입견이나 편견에 따라 사안을 과장하고 왜곡했다는 의심을 살 소지가 크다.”

<질문> 네. 박 기자! 이렇게 따옴표 제목을 남용하는 관행, 좀 개선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답변> 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 인용으로 제목을 쓰는 것은 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 유력 언론의 경우, 이런 따옴표 제목을 거의 쓰지 않고 있다는 점도 한번쯤 되새겨 봐야겠죠.

<리포트>

지난달 30일, 뉴욕타임스 지면에 실린 기사 목록입니다.

큰 따옴표가 붙은 제목은 하나도 없습니다.

워싱턴포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날 뉴욕타임스 139개, 워싱턴포스트 102개의 전체 기사 가운데 직접 인용 제목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인터뷰> 이승선(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전체적으로 이해 관계자들의 취재원 숫자를 늘리면서 뉴스가 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사 본문에서 좋은, 뉴스의 본문을 제대로 반영하는 제목을 외국 언론들의 경우에 뽑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직접 인용의 따옴표 제목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역사적 증언이 있을 때, 누군가의 발언 한 마디가 막중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따옴표 제목은 가능한 쓰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로서 인식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여론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언론 스스로 편집의 기본 원칙을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민기(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 “자극적인 말을 따옴표로 처리해서 눈길을 끌려는 것이 아니라 기사의 핵심이랄까 기사의 요점을 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게끔 전달하는 그게 편집의 기본이었거든요. 그 기본, 언론의 기본, 보도 기사 작성 편집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매일 매일 쏟아지는 기사 속에서 기사 내용을 다 읽지 않고, 제목만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제목 독자’들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언론사들은 손쉬운 따옴표 제목을 남발하기보다, 기사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제목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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