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왕조…20세기 해태-21세기 삼성

입력 2015.10.0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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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리그를 장기간 지배한 구단의 전성기를 '왕조(dynasty)'라고 부른다.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팀 통산 27차례나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뉴욕 양키스가 왕조를 넘어 '악의 제국'으로 불리고, 일본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22번 우승을 차지하며 왕국을 건설했다.

출범 34년 역사의 한국프로야구에도 2개의 왕조가 있다.

20세기 9차례나 정상에 오른 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와 21세기 들어 7차례 우승을 차지하고 8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컵에 도전하는 삼성 라이온즈다.

물론 해태와 삼성 사이에 현대 유니콘스(1998년·2000년·2003년·2004년)와 SK 와이번스(2007년·2008년·2011년)가 정상을 지켰으나 통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해태와 21세기의 삼성은 왕조를 구축한 팀답게 닮은 점이 많다.

양팀 모두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강력한 마운드'가 최대 강점이었다.

해태는 국보급 투수 선동열을 필두로 김정수, 조계현, 이강철, 문희수 등이 가을만 되면 펄펄 날았고 삼성은 가장 확실한 선발진에 두터운 불펜, 오승환과 임창용으로 이어지는 특급 마무리까지 보유했다.

타선에서도 해태는 최고의 리드오프 이종범이 앞장서고 해결사 능력을 갖춘 김성한, 한대화, 김준환 등이 한국시리즈를 주도했다.

삼성도 박한이, 배영섭, 김상수 등 발빠른 타자에 최형우-박석민-이승엽-야마이코 나바로 등 묵직한 중심타선이 조화를 이룬 팀이다.

그러나 전력 외적으로 보면 해태와 삼성은 체질적으로 다른 팀이다.

1980∼90년대 해태는 KBO리그에서 가장 '배고픈' 구단이었고 삼성은 국내 최고의 재벌기업을 모회사로 둔 구단이다.

해태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은 매번 우승을 차지하고도 연봉 협상이 시작되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했다.

재정이 빈약했던 해태 구단은 광주의 물가가 타지역 보다 싸다는 이른바 '광주 물가론'을 내세워 선수들의 연봉을 후려치고는 했다.

선수들이 오죽했으면 구단주가 주최한 회식에서 항의 표시로 불고기를 먹지 않고 태우는 '화형식'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태 선수들은 가을만 되면 상대팀 선수들을 압도하는 눈빛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호남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반면 어느 구단보다 풍족한 지원을 받았던 삼성의 20세기 야구는 참담했다.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한국시리즈에는 6번 진출해 6번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때문에 몇 차례나 그룹 감사를 받으면서 감독과 코치는 물론 사장, 단장 등 구단 고위층이 줄줄이 해임되는 참사가 이어졌다.

우승에 목마른 삼성은 욕을 먹으면서도 타팀 에이스와 4번타자를 데려오는 '현금 트레이드'를 시도하고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생기자 타구단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거액을 지불해 '돈성'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런 삼성을 일으켜 세운 것은 해태 출신 지도자였다.

삼성은 2001년 해태에서만 9차례 우승한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면서 이듬해인 2002년 LG 트윈스를 물리치고 창단 21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당시 대구구장은 선수, 프런트, 관중 할 것 없이 온통 울음바다였다.

특히 삼성 관계자들이 흘린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토해내는 설움의 눈물이었다.

물꼬를 튼 삼성은 역시 해태 출신인 선동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5년과 2006년에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다소 침체됐던 삼성은 2011년 류중일 감독이 사령탑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왕조의 전성기를 열었다.

류 감독은 선수시절 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였지만 코치를 거치면서 카리스마보다는 형님같이 편안한 스타일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 류 감독이 한국 야구사에서 아무도 이룩하지 못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의 금자탑을 이룩하고 이제 5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더욱이 류 감독은 삼성에서 선수, 코치, 감독을 모두 지낸 순혈 프랜차이즈 스타다.

우승 횟수가 쌓이면서 삼성 구단의 운영 방식도 상당히 달라졌다.

최근에는 현금트레이드나 외부 FA 영입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경산 2군 훈련장을 토대로 끊임없이 유망주들을 발굴해 새로운 '화수분 야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압감에 짓눌렸던 선수와 프런트가 류중일 감독 체제에서는 친근한 소통의 야구를 펼친다는 평이다.

김응용 감독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선수들의 독기 어린 눈빛으로 가을을 제패했던 해태와는 전혀 다른 구단 문화인데 어쩌면 세상이 그만큼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태와 삼성은 체질적으로 분명히 다른 팀이지만 섣불리 넘볼 수 없는 왕조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는 똑같이 야구팬들의 기억에 명문팀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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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닮은 듯 다른 왕조…20세기 해태-21세기 삼성
    • 입력 2015-10-06 09:18:43
    연합뉴스
프로 리그를 장기간 지배한 구단의 전성기를 '왕조(dynasty)'라고 부른다.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팀 통산 27차례나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뉴욕 양키스가 왕조를 넘어 '악의 제국'으로 불리고, 일본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22번 우승을 차지하며 왕국을 건설했다. 출범 34년 역사의 한국프로야구에도 2개의 왕조가 있다. 20세기 9차례나 정상에 오른 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와 21세기 들어 7차례 우승을 차지하고 8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컵에 도전하는 삼성 라이온즈다. 물론 해태와 삼성 사이에 현대 유니콘스(1998년·2000년·2003년·2004년)와 SK 와이번스(2007년·2008년·2011년)가 정상을 지켰으나 통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해태와 21세기의 삼성은 왕조를 구축한 팀답게 닮은 점이 많다. 양팀 모두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강력한 마운드'가 최대 강점이었다. 해태는 국보급 투수 선동열을 필두로 김정수, 조계현, 이강철, 문희수 등이 가을만 되면 펄펄 날았고 삼성은 가장 확실한 선발진에 두터운 불펜, 오승환과 임창용으로 이어지는 특급 마무리까지 보유했다. 타선에서도 해태는 최고의 리드오프 이종범이 앞장서고 해결사 능력을 갖춘 김성한, 한대화, 김준환 등이 한국시리즈를 주도했다. 삼성도 박한이, 배영섭, 김상수 등 발빠른 타자에 최형우-박석민-이승엽-야마이코 나바로 등 묵직한 중심타선이 조화를 이룬 팀이다. 그러나 전력 외적으로 보면 해태와 삼성은 체질적으로 다른 팀이다. 1980∼90년대 해태는 KBO리그에서 가장 '배고픈' 구단이었고 삼성은 국내 최고의 재벌기업을 모회사로 둔 구단이다. 해태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은 매번 우승을 차지하고도 연봉 협상이 시작되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했다. 재정이 빈약했던 해태 구단은 광주의 물가가 타지역 보다 싸다는 이른바 '광주 물가론'을 내세워 선수들의 연봉을 후려치고는 했다. 선수들이 오죽했으면 구단주가 주최한 회식에서 항의 표시로 불고기를 먹지 않고 태우는 '화형식'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태 선수들은 가을만 되면 상대팀 선수들을 압도하는 눈빛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호남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반면 어느 구단보다 풍족한 지원을 받았던 삼성의 20세기 야구는 참담했다.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한국시리즈에는 6번 진출해 6번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때문에 몇 차례나 그룹 감사를 받으면서 감독과 코치는 물론 사장, 단장 등 구단 고위층이 줄줄이 해임되는 참사가 이어졌다. 우승에 목마른 삼성은 욕을 먹으면서도 타팀 에이스와 4번타자를 데려오는 '현금 트레이드'를 시도하고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생기자 타구단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거액을 지불해 '돈성'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런 삼성을 일으켜 세운 것은 해태 출신 지도자였다. 삼성은 2001년 해태에서만 9차례 우승한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면서 이듬해인 2002년 LG 트윈스를 물리치고 창단 21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당시 대구구장은 선수, 프런트, 관중 할 것 없이 온통 울음바다였다. 특히 삼성 관계자들이 흘린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토해내는 설움의 눈물이었다. 물꼬를 튼 삼성은 역시 해태 출신인 선동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5년과 2006년에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다소 침체됐던 삼성은 2011년 류중일 감독이 사령탑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왕조의 전성기를 열었다. 류 감독은 선수시절 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였지만 코치를 거치면서 카리스마보다는 형님같이 편안한 스타일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 류 감독이 한국 야구사에서 아무도 이룩하지 못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의 금자탑을 이룩하고 이제 5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더욱이 류 감독은 삼성에서 선수, 코치, 감독을 모두 지낸 순혈 프랜차이즈 스타다. 우승 횟수가 쌓이면서 삼성 구단의 운영 방식도 상당히 달라졌다. 최근에는 현금트레이드나 외부 FA 영입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경산 2군 훈련장을 토대로 끊임없이 유망주들을 발굴해 새로운 '화수분 야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압감에 짓눌렸던 선수와 프런트가 류중일 감독 체제에서는 친근한 소통의 야구를 펼친다는 평이다. 김응용 감독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선수들의 독기 어린 눈빛으로 가을을 제패했던 해태와는 전혀 다른 구단 문화인데 어쩌면 세상이 그만큼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태와 삼성은 체질적으로 분명히 다른 팀이지만 섣불리 넘볼 수 없는 왕조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는 똑같이 야구팬들의 기억에 명문팀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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