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잦은 비극에도 규제는 제자리…왜?

입력 2015.11.07 (08:28) 수정 2015.11.0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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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8월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잠깐 보시죠.

생방송 중 인터뷰 현장에서 총성이 들리고 카메라가 땅에 떨어지는데요.

화면이 놀란 앵커 얼굴로 급하게 바뀝니다.

해고에 앙심을 품은 용의자가 생방송 중이던 동료 기자를 총으로 살해한 건데, 충격을 받은 미국 사회는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들끓었죠.

하지만 이런 강력 사건이 끊임없이 반복돼도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총기 산업과 단체의 영향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총에 대한 미국인 특유의 인식과 문화 때문입니다.

로스앤젤레스 김환주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난생처음 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는 미국의 총포상입니다.

<녹취> 고객 : "호신용이요."

가게 주인이 난데없이 총기에 얽힌 비극의 과거사를 이야기합니다.

<녹취> "5살배기가 부모 침실에서 찾아내 아래층에 있던 9달 된 동생을 쏜 총이에요."

<녹취> "다루기 쉽고 핸드백에도 넣을 수 있어요. 할인매장에서 2살 난 아들이 엄마에게 이 총을 쐈지요."

이 가게는 총기규제 여론 확산을 위해 시민단체가 만든 위장 총포상이었습니다.

<녹취> "총기 휴대는 우리 권리지만 생각이 바뀌었어요. 총을 가지고 있는 게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하지만 미국인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 들어 지난 달 말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4만 3천 건이 넘습니다.

사망자는 만 천명에 육박합니다.

40분마다 1명씩 총에 맞아 숨진 셈입니다.

다수가 숨진 총기 난사 사건도 2백 80여 건에 달합니다.

참사가 터질 때마다 총기규제 여론은 들끓습니다.

<녹취> 오바마(미국 대통령) : "이제 일상사가 됐습니다. 우리 모두 총격사건 불감증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비탄에 잠긴 사람들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비탄의 자리에서조차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단호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녹취> 부렌(오리건 주 학생) : "총이 더 보급되고 모든 사람이 총 쏘는 법을 배워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이런 참사는 쉽게 피할 수 있을 거예요."

규제는커녕 아예 교사들에게 총기 휴대를 허용하고 사격 훈련까지 시키는 학교도 있습니다.

<녹취> 뉴브리(교사 총기휴대 허용학교장) : "유감스런 일이지만 누군가 총을 들고 학교에 침입했을 때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총뿐이었다는 게 통계상의 결과입니다."

<녹취> 고메즈(교사 총기휴대 허용학교 학생) : "최소한의 안전 보장을 위해 선생님들의 총기휴대를 환영해요. 안전하다고 느껴요."

미국민들은 2억 7천만 정의 총기를 갖고 있습니다.

전 세계 민간인 보유 총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하지만 총기 참사가 날 때마다 총기 판매는 더 늘어납니다.

규제가 시행돼 총을 사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이 일반적인 예상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배경에는 특유의 총기 문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총을 떼어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총은 애국심과 자부심,그리고 자유주의를 의미합니다.

무장한 민병대들이 독립전쟁에 나섰고 총을 앞세워 서부로 땅을 넓혔습니다.

총을 들고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켰습니다.

서부의 역사 박물관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과거의 총기들이 즐비하게 전시돼있습니다.

<녹취> 다커디(오트리 박물관 홍보이사) : "해마다 15만 명이 이곳을 찾습니다. 이 가운데 학생이 4만 명인데 주로 LA 카운티 지역 학생들입니다."

이런 전통은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2조로 명문화됐습니다.

전통과 법의 우산 아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다니며 일찌감치 총 쏘는 법을 배웁니다.

총을 들고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 영화를 보고 자랍니다.

총은 방어의 수단이자 오락이나 여가 생활을 위한 도구로 생활 속에 파고들었고 총기 거래는 일상화됐습니다.

<녹취> "오 예!"

미국 전역에서 한 해 동안 약 5천 회 안팎의 크고 작은 총기 박람회가 열립니다.

주에 따라 범죄 경력 등 신원조회 없이 총을 살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온라인 구매도 가능합니다.

한때 총포상이 식료품 가게보다 더 흔하다는 통계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앞에서 영업하는 총포상도 있습니다.

<녹취> 드레서(총포상 직원) : "초등학교를 포함한 이 지역에 사격훈련을 받은 총기 소지자가 있기 때문에 불상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서 즉각 대응이 가능하니까요."

한 사냥 애호가의 총기고입니다.

장전된 권총부터 조준경이 달린 사냥용 엽총과 자동소총까지 10여 정이 빼곡히 차있습니다.

집안에 이 정도 규모의 개인 총기고를 갖고 있는 총기 수집가들은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총을 사들이지 않더라도 총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은 많습니다.

LA 도심에 있는 이 실내 사격장은 평일인데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붐빕니다.

<녹취> 알론조(LA 건클럽(Gun Club)) : "바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요. 하루평균 100명 정도 옵니다."

원하는 과녁지와 함께 총과 실탄을 빌려 쏘는데 우리 돈 5만 원 조금 넘게 듭니다.

<녹취> 아밀리아(LA지역 학생) : "아빠와 함께 처음 사격하러 왔어요. 재미삼아서요."

이러다 보니 거듭되는 총기 참사 속에서도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여론과 찬성하는 여론은 50%대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습니다.

<녹취> 케리(LA주민/총기규제 찬성) : "운전면허를 받는 것과 같은 방식을 총기에 적용해야 합니다.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살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녹취> 존(LA주민/총기규제 반대) : "현행 제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총기 자체가 아니라) 누가 총을 갖느냐의 문제 아니겠어요."

규제 찬반 여론과는 별도로 집안에 총이 있어야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미국인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2배를 넘을 정도입니다.

이런 국민 의식의 바탕 위에 거대 총기 산업체들과 미국 최대의 로비 단체인 NRA, 즉 전미 총기협회가 있습니다.

<녹취> 라피에르(전미 총기협회(NRA) 회장) : "NRA에 가입하면 당신의 총과 자유를 앗아가려는 모든 정치인들과 싸우고 있는 저희를 도울 수 있습니다."

<녹취> 베넷(총기폭력반대 여성연합) : "(NRA 같은) 조직들이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뿌려 꼭 필요한 총기규제 입법을 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총기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측은 구매자의 신원조회를 대폭 강화하는 연방정부 차원의 입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총에 대한 많은 미국인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전망은 불투명합니다.

<녹취> 부렌(오리건 주 학생) : "21살만 되면 곧바로 총기 소지 허가를 받아서 (안전을 위해)매일 갖고 다닐 겁니다."

미국 양대 총기제조업체인 스미스 앤 웨슨과 루거의 주식은 증시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습니다.

두 회사의 올해 총기 판매 실적이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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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리포트] 잦은 비극에도 규제는 제자리…왜?
    • 입력 2015-11-07 09:11:54
    • 수정2015-11-07 10:14:1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지난 8월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잠깐 보시죠.

생방송 중 인터뷰 현장에서 총성이 들리고 카메라가 땅에 떨어지는데요.

화면이 놀란 앵커 얼굴로 급하게 바뀝니다.

해고에 앙심을 품은 용의자가 생방송 중이던 동료 기자를 총으로 살해한 건데, 충격을 받은 미국 사회는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들끓었죠.

하지만 이런 강력 사건이 끊임없이 반복돼도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총기 산업과 단체의 영향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총에 대한 미국인 특유의 인식과 문화 때문입니다.

로스앤젤레스 김환주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난생처음 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는 미국의 총포상입니다.

<녹취> 고객 : "호신용이요."

가게 주인이 난데없이 총기에 얽힌 비극의 과거사를 이야기합니다.

<녹취> "5살배기가 부모 침실에서 찾아내 아래층에 있던 9달 된 동생을 쏜 총이에요."

<녹취> "다루기 쉽고 핸드백에도 넣을 수 있어요. 할인매장에서 2살 난 아들이 엄마에게 이 총을 쐈지요."

이 가게는 총기규제 여론 확산을 위해 시민단체가 만든 위장 총포상이었습니다.

<녹취> "총기 휴대는 우리 권리지만 생각이 바뀌었어요. 총을 가지고 있는 게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하지만 미국인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 들어 지난 달 말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4만 3천 건이 넘습니다.

사망자는 만 천명에 육박합니다.

40분마다 1명씩 총에 맞아 숨진 셈입니다.

다수가 숨진 총기 난사 사건도 2백 80여 건에 달합니다.

참사가 터질 때마다 총기규제 여론은 들끓습니다.

<녹취> 오바마(미국 대통령) : "이제 일상사가 됐습니다. 우리 모두 총격사건 불감증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비탄에 잠긴 사람들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비탄의 자리에서조차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단호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녹취> 부렌(오리건 주 학생) : "총이 더 보급되고 모든 사람이 총 쏘는 법을 배워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이런 참사는 쉽게 피할 수 있을 거예요."

규제는커녕 아예 교사들에게 총기 휴대를 허용하고 사격 훈련까지 시키는 학교도 있습니다.

<녹취> 뉴브리(교사 총기휴대 허용학교장) : "유감스런 일이지만 누군가 총을 들고 학교에 침입했을 때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총뿐이었다는 게 통계상의 결과입니다."

<녹취> 고메즈(교사 총기휴대 허용학교 학생) : "최소한의 안전 보장을 위해 선생님들의 총기휴대를 환영해요. 안전하다고 느껴요."

미국민들은 2억 7천만 정의 총기를 갖고 있습니다.

전 세계 민간인 보유 총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하지만 총기 참사가 날 때마다 총기 판매는 더 늘어납니다.

규제가 시행돼 총을 사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이 일반적인 예상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배경에는 특유의 총기 문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총을 떼어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총은 애국심과 자부심,그리고 자유주의를 의미합니다.

무장한 민병대들이 독립전쟁에 나섰고 총을 앞세워 서부로 땅을 넓혔습니다.

총을 들고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켰습니다.

서부의 역사 박물관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과거의 총기들이 즐비하게 전시돼있습니다.

<녹취> 다커디(오트리 박물관 홍보이사) : "해마다 15만 명이 이곳을 찾습니다. 이 가운데 학생이 4만 명인데 주로 LA 카운티 지역 학생들입니다."

이런 전통은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2조로 명문화됐습니다.

전통과 법의 우산 아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다니며 일찌감치 총 쏘는 법을 배웁니다.

총을 들고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 영화를 보고 자랍니다.

총은 방어의 수단이자 오락이나 여가 생활을 위한 도구로 생활 속에 파고들었고 총기 거래는 일상화됐습니다.

<녹취> "오 예!"

미국 전역에서 한 해 동안 약 5천 회 안팎의 크고 작은 총기 박람회가 열립니다.

주에 따라 범죄 경력 등 신원조회 없이 총을 살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온라인 구매도 가능합니다.

한때 총포상이 식료품 가게보다 더 흔하다는 통계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앞에서 영업하는 총포상도 있습니다.

<녹취> 드레서(총포상 직원) : "초등학교를 포함한 이 지역에 사격훈련을 받은 총기 소지자가 있기 때문에 불상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서 즉각 대응이 가능하니까요."

한 사냥 애호가의 총기고입니다.

장전된 권총부터 조준경이 달린 사냥용 엽총과 자동소총까지 10여 정이 빼곡히 차있습니다.

집안에 이 정도 규모의 개인 총기고를 갖고 있는 총기 수집가들은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총을 사들이지 않더라도 총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은 많습니다.

LA 도심에 있는 이 실내 사격장은 평일인데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붐빕니다.

<녹취> 알론조(LA 건클럽(Gun Club)) : "바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요. 하루평균 100명 정도 옵니다."

원하는 과녁지와 함께 총과 실탄을 빌려 쏘는데 우리 돈 5만 원 조금 넘게 듭니다.

<녹취> 아밀리아(LA지역 학생) : "아빠와 함께 처음 사격하러 왔어요. 재미삼아서요."

이러다 보니 거듭되는 총기 참사 속에서도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여론과 찬성하는 여론은 50%대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습니다.

<녹취> 케리(LA주민/총기규제 찬성) : "운전면허를 받는 것과 같은 방식을 총기에 적용해야 합니다.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살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녹취> 존(LA주민/총기규제 반대) : "현행 제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총기 자체가 아니라) 누가 총을 갖느냐의 문제 아니겠어요."

규제 찬반 여론과는 별도로 집안에 총이 있어야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미국인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2배를 넘을 정도입니다.

이런 국민 의식의 바탕 위에 거대 총기 산업체들과 미국 최대의 로비 단체인 NRA, 즉 전미 총기협회가 있습니다.

<녹취> 라피에르(전미 총기협회(NRA) 회장) : "NRA에 가입하면 당신의 총과 자유를 앗아가려는 모든 정치인들과 싸우고 있는 저희를 도울 수 있습니다."

<녹취> 베넷(총기폭력반대 여성연합) : "(NRA 같은) 조직들이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뿌려 꼭 필요한 총기규제 입법을 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총기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측은 구매자의 신원조회를 대폭 강화하는 연방정부 차원의 입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총에 대한 많은 미국인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전망은 불투명합니다.

<녹취> 부렌(오리건 주 학생) : "21살만 되면 곧바로 총기 소지 허가를 받아서 (안전을 위해)매일 갖고 다닐 겁니다."

미국 양대 총기제조업체인 스미스 앤 웨슨과 루거의 주식은 증시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습니다.

두 회사의 올해 총기 판매 실적이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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