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좌절…파란만장한 정치 역정
입력 2015.11.23 (06:29)
수정 2015.11.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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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곧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축이라 불릴만큼 파란만장했습니다.
숱한 영광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고인의 삶을 김기현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멸치잡이 선주의 외아들로 태어난 소년의 꿈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중학 시절 이미 책상엔 '미래 대통령은 김영삼'이라는 글귀를 적었다고 했습니다.
1954년 3대 총선에서 만 25세의 최연소 당선후 9선 의원에 당총재만 5차례를 지낼 정도로 숱한 정치 신기록을 쏟아냈습니다.
<녹취> 김영삼(대통령 당선 당시 회고) : "저는 25살 젊은 나이에 정계에 투신한 이후 30년이 훨씬 넘는 오늘까지 길고도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만 45세 땐, 최연소 야당 총재로 등극하며 줄기차게 유신 반대 투쟁을 벌였습니다.
의원직 제명까지 감수한 끝에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지만, 신군부가 강제한 가택 연금의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김 전대통령은 민주화 투쟁으로 직선제가 실시된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활로 모색에 부심하다 노태우 대통령,김종필 총재와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마침내 1992년 그토록 꿈꿨던 대통령에 당선돼 한때는 90%가 넘는 지지도를 자랑했지만 임기말 터진 아들과 측근비리 그리고 IMF 외환 위기로 쓸쓸하게 정치무대에서 공식 퇴장했습니다.
KBS 뉴스 김기현입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곧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축이라 불릴만큼 파란만장했습니다.
숱한 영광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고인의 삶을 김기현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멸치잡이 선주의 외아들로 태어난 소년의 꿈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중학 시절 이미 책상엔 '미래 대통령은 김영삼'이라는 글귀를 적었다고 했습니다.
1954년 3대 총선에서 만 25세의 최연소 당선후 9선 의원에 당총재만 5차례를 지낼 정도로 숱한 정치 신기록을 쏟아냈습니다.
<녹취> 김영삼(대통령 당선 당시 회고) : "저는 25살 젊은 나이에 정계에 투신한 이후 30년이 훨씬 넘는 오늘까지 길고도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만 45세 땐, 최연소 야당 총재로 등극하며 줄기차게 유신 반대 투쟁을 벌였습니다.
의원직 제명까지 감수한 끝에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지만, 신군부가 강제한 가택 연금의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김 전대통령은 민주화 투쟁으로 직선제가 실시된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활로 모색에 부심하다 노태우 대통령,김종필 총재와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마침내 1992년 그토록 꿈꿨던 대통령에 당선돼 한때는 90%가 넘는 지지도를 자랑했지만 임기말 터진 아들과 측근비리 그리고 IMF 외환 위기로 쓸쓸하게 정치무대에서 공식 퇴장했습니다.
KBS 뉴스 김기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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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과 좌절…파란만장한 정치 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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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11-23 06:33:19
- 수정2015-11-23 09:46:11
<앵커 멘트>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곧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축이라 불릴만큼 파란만장했습니다.
숱한 영광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고인의 삶을 김기현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멸치잡이 선주의 외아들로 태어난 소년의 꿈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중학 시절 이미 책상엔 '미래 대통령은 김영삼'이라는 글귀를 적었다고 했습니다.
1954년 3대 총선에서 만 25세의 최연소 당선후 9선 의원에 당총재만 5차례를 지낼 정도로 숱한 정치 신기록을 쏟아냈습니다.
<녹취> 김영삼(대통령 당선 당시 회고) : "저는 25살 젊은 나이에 정계에 투신한 이후 30년이 훨씬 넘는 오늘까지 길고도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만 45세 땐, 최연소 야당 총재로 등극하며 줄기차게 유신 반대 투쟁을 벌였습니다.
의원직 제명까지 감수한 끝에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지만, 신군부가 강제한 가택 연금의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김 전대통령은 민주화 투쟁으로 직선제가 실시된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활로 모색에 부심하다 노태우 대통령,김종필 총재와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마침내 1992년 그토록 꿈꿨던 대통령에 당선돼 한때는 90%가 넘는 지지도를 자랑했지만 임기말 터진 아들과 측근비리 그리고 IMF 외환 위기로 쓸쓸하게 정치무대에서 공식 퇴장했습니다.
KBS 뉴스 김기현입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곧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축이라 불릴만큼 파란만장했습니다.
숱한 영광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고인의 삶을 김기현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멸치잡이 선주의 외아들로 태어난 소년의 꿈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중학 시절 이미 책상엔 '미래 대통령은 김영삼'이라는 글귀를 적었다고 했습니다.
1954년 3대 총선에서 만 25세의 최연소 당선후 9선 의원에 당총재만 5차례를 지낼 정도로 숱한 정치 신기록을 쏟아냈습니다.
<녹취> 김영삼(대통령 당선 당시 회고) : "저는 25살 젊은 나이에 정계에 투신한 이후 30년이 훨씬 넘는 오늘까지 길고도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만 45세 땐, 최연소 야당 총재로 등극하며 줄기차게 유신 반대 투쟁을 벌였습니다.
의원직 제명까지 감수한 끝에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지만, 신군부가 강제한 가택 연금의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김 전대통령은 민주화 투쟁으로 직선제가 실시된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활로 모색에 부심하다 노태우 대통령,김종필 총재와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마침내 1992년 그토록 꿈꿨던 대통령에 당선돼 한때는 90%가 넘는 지지도를 자랑했지만 임기말 터진 아들과 측근비리 그리고 IMF 외환 위기로 쓸쓸하게 정치무대에서 공식 퇴장했습니다.
KBS 뉴스 김기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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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기자 kimk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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