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상봉 후유증’ 심각…해법 나오나

입력 2015.12.05 (07:49) 수정 2015.12.0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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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지난 10월 금강산에서 북녘의 가족을 만나고 돌아온 이산가족들이 심각한 상봉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 다시 찾아온 생이별의 고통 속에 불면증에 무력감은 물론 대인기피증까지 호소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다음 주 당국회담을 앞두고 <이슈 앤 한반도>.

오늘은 상봉 행사 당시 화제가 됐던 이산가족들을 만나 근황과 함께 이들이 말하는 개선책을 들어봤습니다.

맹유나 리포터입입니다.

<리포트>

지난 10월, 금강산의 이산가족 상봉장.

<녹취> '애수의 소야곡' :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녹취> "누나 봤다! 누나 봤어, 누나. 누나 봤다!"

죽은 줄만 알았던 누나를 만났고...

얼굴을 꼭 빼닮은 남매도 기적같이 재회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별..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질 듯 한 슬픔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끝난 지도 벌써 40일이 지났습니다.

그 후 이산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적십자사가 상봉 행사에 참석한 전체 이산가족들을 조사해봤더니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상봉 후유증을 호소하며 방문 상담을 원했습니다.

지난해 19차 때 21%에 비하면 2배 이상 크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서울 변두리의 한 주택가.

허름한 현관을 지나자 조그만 방 하나가 나옵니다.

북녘의 여동생을 만났던 87살 김우종 할아버지가 사는 곳입니다.

바깥출입이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졌지만 여동생을 만났던 순간만은 한시도 잊지 못합니다.

<녹취> 김우종(87살/北 여동생 상봉) : "우선 거기 사정을 궁금했던 걸 다 알았으니까 잠이 조금 들긴 들지. 근데 그전처럼 그렇게 깊게 들지 못해. 자꾸 걔들 생각이 나서 잠이 오려고 하면 걔 얼굴이 떠올라."

다시 두고 온 동생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녹취> 김우종(87살/北 여동생 상봉) : "그러니까 걔(동생)도 간절히 내 생각할 거야. 오빠, 작은 오빠 생각이... 내가 걔를 보면 참..."

이번엔 한 여성 봉사자가 어르신을 살핍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심리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겁니다.

<녹취> 박유정(대한적십자사 심리상담사) : "눈물이 날 때가 더 많으세요? 그럴 땐 그냥 혼자 그냥 눈물 훔치시죠?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어요, 어르신."

<녹취> 김우종(87살/北 여동생 상봉) : "그래서 내가 이걸 (그래서 수건이 늘 옆에) 여기다 늘 놓고 자. 늘 놓고 자고..."

전형적인 상봉 후유증입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할아버지의 표정이 한결 밝아집니다.

<녹취> 김우종(87살/北 여동생 상봉) : "(오늘 저랑 또 이야기하고 나니까 마음은 좀 어떠세요, 어르신?) 마음은 편하지. 뭐 이렇게 자주 와주는 것도 위로가 되지, 나는."

상봉 뒤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심리 상담.

후유증에 시달리는 어르신들을 위로하면서 되도록 빨리 마음의 상처가 아물도록 돕는 겁니다.

<인터뷰> 박유정(대한적십자사 심리상담사) :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충격이거나 이런 것들이 좀 진행이 되다가 초기의 2, 3일 정도는 정상적으로 보는데요. 이런 마음이 이제 한 달 넘어가고 세 달 넘어가게 되면 병으로 올 수 있기 때문에 그걸 초기에 예방하기 위해서 저희가 심리적 응급 처치라고 해서 마음을 좀 회복시키게끔 저희가 좀 도움을 드린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북쪽의 누나와 극적으로 상봉했던 삼형제.

그 가운데 첫째인 박용득 할아버지도 상봉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내가 어린 나이에 군대 가서 전쟁하고 가족도 못 만나고 이런 거 할 적에도 눈물이라는 게 내가 없던 사람이야. 그렇게 매섭게 한 놈인데 눈물이 돌아. 지금도 이렇게 얘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몰라. 눈물이 도는 게 이것이..."

이유 없이 눈물만 자꾸 난다는 할아버지는 봉사자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지금도 내가 (눈물이) 돌아. 다른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아닌데, 내가 뭐 생각하는 거 없는데, 내가 왜 이러지...(미련이 많이 남으셨나 봐요?) 그게 있더라고. 이제 그걸 심리 같은 걸 잘 모르겠어. 도대체."

이 같은 상봉 후유증은 이산가족들에게 닥친 상봉과 작별이란 마음의 충격에서 온다고 하는데요,

적십자사 조사 결과 이산가족 상봉자 4명중 한명이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했고, 그 유형으로는 불면증이나 무력감, 건강악화, 우울감 등의 순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산가족들의 고령화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터뷰> 오상우(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죄책감, 그 다음 내가 조금만 더 뭘 했으면 뭔가 바뀔 수 있었을 건데. 또 왜 이런 오랜 시간 못 보다가 지금에서야 이 사람을 만났을까 하는 그런 후회감 이런 것들이 다 원망스럽죠. 그렇지만 만났던 순간 생각하면 또 기쁘고 이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생기기 때문에 감정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상봉기간 이산가족들은 2시간씩 모두 6차례, 불과 12시간의 만남을 갖게 됩니다.

60년이 넘는 이별의 세월을 감안하면 상봉이라기보다는 면회에 가까운데요.

그나마 600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상봉 대상에 뽑힌 일부의 얘기일 뿐입니다.

이산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개선책은 뭘까요?

딸의 간청에 구슬픈 망향가를 선물했던 리흥종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이별을 앞두고 상봉장에 오지 못한 남녘의 가족들을 위해 영상 편지를 남겼습니다.

<녹취> 리흥종(20차 개별상봉 당시 남긴 영상 편지) : "우리 가족들이 다 기쁨이 넘치는 선물을 이렇게 많이 가져왔으니 난 이런 행복이 다시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너희들하고 편지를 거래할 수 있는 이런 기회는...통일의 문이 열리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런 아버지를 다시 떠나보내면서 유난히 힘겨워했던 딸 이정숙 씨.

친척 외에는 취재진을 포함한 모든 방문객의 만남을 거부한 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적십자사의 심리상담 봉사자가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녹취> "여보세요? 이정숙 님이시죠? 다녀오신 이후에도 지금 마음이 좀 기쁘신지..."

<녹취> 이정숙(68살/北 아버지 상봉) : "갈수록 아버지가 다시 한 번 보고 싶고 그 모습이 항상 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하루에 24시간 같이 계세요, 저하고."

무엇보다 구순의 아버지 소식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한스럽습니다.

<녹취> 이정숙(68살/北 아버지 상봉) : "지금 우리 아버지는 또 건강이 안 좋으시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만난 것도 아버지 기쁘셨겠지만, 또 상처가 많으실 거 아니에요, 헤어진 상처가...(그렇죠.) 그래서 몸은 어떠신지, 그런 게 궁금하니까 하다못해 서신이라도 좀 왕래가 있었으면."

취재진은 이정숙 씨의 상태를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이 씨의 친척을 만나봤습니다.

함께 상봉장에 갔던 사촌 남동생 이인경 씨 입니다.

<녹취> 이인경(이정숙씨 사촌) : "매일 가면 눈이 퉁퉁 붓고 사진만 놓고 이러고 있어요. 약간 좀 멘붕이라고 그러죠. 멘탈 붕괴에요. 지금. 일체 어디 나가지도 않더라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누나를 지켜보면서 상봉의 기회는커녕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더 절감했다고 합니다.

<녹취> 이인경(이정숙씨 사촌) : "갔다 와도 사실은 이렇게 후유증이 많아요. 많지만 일단은 남아 있는 사람들, 남아 있는 사람들, 빨리 한 번이라도 상봉할 수 있게 이것을 못했다면 가족이 살고 있는걸 아는데 보지 못하고 나중에 영영 삶에서 지워져 버린다면 그거만한 한이 또 없을 거 같습니다. 그게 제일 급선무고 정 안되면 상봉하기 전이라고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편지 전화라도 그게 꼭 필요한 거 같아요."

이산가족들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면 상봉도 중요하지만 생사 확인이나 서신교환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2000년 이후 지난 15년 동안 단 스무 차례에 불과했던 이산가족 상봉행사.

여기에 행사 대부분이 일회성, 이벤트성에 그치면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법 모색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성근(대한적십자사 국제남북국장) : "띄엄띄엄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다 보니까 한 번 상봉하는 행사로 끝나고 또 이걸 좀 더 바꿔봐야지 하면서 또 그다음에 되면 그게 그 정도만 합의하고 그게 연속이었죠."

때문에 정부는 다음 주 예정된 당국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논의해, 적십자 본회담 개최로 이어간다는 방침입니다.

<인터뷰> 김성근(대한적십자사 국제남북국장) : "당국 간 회담은 좀 큰 차원의 틀에서 이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나가자 하는 부분에 대해서 상봉 정례화 문제라든지 전면적 생사 확인 문제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면 또 적십자 본회담이 있지 않습니까? 본회담이 열리게 되면 좀 더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 좀 더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나고도 상봉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산가족들.

그리고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알기 위해 고통의 세월을 이어가고 있는 6만여 명의 이산가족들,

이번에야말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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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한반도] ‘상봉 후유증’ 심각…해법 나오나
    • 입력 2015-12-05 07:58:15
    • 수정2015-12-05 14:55:22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지난 10월 금강산에서 북녘의 가족을 만나고 돌아온 이산가족들이 심각한 상봉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 다시 찾아온 생이별의 고통 속에 불면증에 무력감은 물론 대인기피증까지 호소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다음 주 당국회담을 앞두고 <이슈 앤 한반도>.

오늘은 상봉 행사 당시 화제가 됐던 이산가족들을 만나 근황과 함께 이들이 말하는 개선책을 들어봤습니다.

맹유나 리포터입입니다.

<리포트>

지난 10월, 금강산의 이산가족 상봉장.

<녹취> '애수의 소야곡' :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녹취> "누나 봤다! 누나 봤어, 누나. 누나 봤다!"

죽은 줄만 알았던 누나를 만났고...

얼굴을 꼭 빼닮은 남매도 기적같이 재회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별..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질 듯 한 슬픔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끝난 지도 벌써 40일이 지났습니다.

그 후 이산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적십자사가 상봉 행사에 참석한 전체 이산가족들을 조사해봤더니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상봉 후유증을 호소하며 방문 상담을 원했습니다.

지난해 19차 때 21%에 비하면 2배 이상 크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서울 변두리의 한 주택가.

허름한 현관을 지나자 조그만 방 하나가 나옵니다.

북녘의 여동생을 만났던 87살 김우종 할아버지가 사는 곳입니다.

바깥출입이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졌지만 여동생을 만났던 순간만은 한시도 잊지 못합니다.

<녹취> 김우종(87살/北 여동생 상봉) : "우선 거기 사정을 궁금했던 걸 다 알았으니까 잠이 조금 들긴 들지. 근데 그전처럼 그렇게 깊게 들지 못해. 자꾸 걔들 생각이 나서 잠이 오려고 하면 걔 얼굴이 떠올라."

다시 두고 온 동생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녹취> 김우종(87살/北 여동생 상봉) : "그러니까 걔(동생)도 간절히 내 생각할 거야. 오빠, 작은 오빠 생각이... 내가 걔를 보면 참..."

이번엔 한 여성 봉사자가 어르신을 살핍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심리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겁니다.

<녹취> 박유정(대한적십자사 심리상담사) : "눈물이 날 때가 더 많으세요? 그럴 땐 그냥 혼자 그냥 눈물 훔치시죠?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어요, 어르신."

<녹취> 김우종(87살/北 여동생 상봉) : "그래서 내가 이걸 (그래서 수건이 늘 옆에) 여기다 늘 놓고 자. 늘 놓고 자고..."

전형적인 상봉 후유증입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할아버지의 표정이 한결 밝아집니다.

<녹취> 김우종(87살/北 여동생 상봉) : "(오늘 저랑 또 이야기하고 나니까 마음은 좀 어떠세요, 어르신?) 마음은 편하지. 뭐 이렇게 자주 와주는 것도 위로가 되지, 나는."

상봉 뒤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심리 상담.

후유증에 시달리는 어르신들을 위로하면서 되도록 빨리 마음의 상처가 아물도록 돕는 겁니다.

<인터뷰> 박유정(대한적십자사 심리상담사) :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충격이거나 이런 것들이 좀 진행이 되다가 초기의 2, 3일 정도는 정상적으로 보는데요. 이런 마음이 이제 한 달 넘어가고 세 달 넘어가게 되면 병으로 올 수 있기 때문에 그걸 초기에 예방하기 위해서 저희가 심리적 응급 처치라고 해서 마음을 좀 회복시키게끔 저희가 좀 도움을 드린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북쪽의 누나와 극적으로 상봉했던 삼형제.

그 가운데 첫째인 박용득 할아버지도 상봉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내가 어린 나이에 군대 가서 전쟁하고 가족도 못 만나고 이런 거 할 적에도 눈물이라는 게 내가 없던 사람이야. 그렇게 매섭게 한 놈인데 눈물이 돌아. 지금도 이렇게 얘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몰라. 눈물이 도는 게 이것이..."

이유 없이 눈물만 자꾸 난다는 할아버지는 봉사자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녹취> 박용득(81살/北 누나 상봉) : "지금도 내가 (눈물이) 돌아. 다른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아닌데, 내가 뭐 생각하는 거 없는데, 내가 왜 이러지...(미련이 많이 남으셨나 봐요?) 그게 있더라고. 이제 그걸 심리 같은 걸 잘 모르겠어. 도대체."

이 같은 상봉 후유증은 이산가족들에게 닥친 상봉과 작별이란 마음의 충격에서 온다고 하는데요,

적십자사 조사 결과 이산가족 상봉자 4명중 한명이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했고, 그 유형으로는 불면증이나 무력감, 건강악화, 우울감 등의 순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산가족들의 고령화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터뷰> 오상우(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죄책감, 그 다음 내가 조금만 더 뭘 했으면 뭔가 바뀔 수 있었을 건데. 또 왜 이런 오랜 시간 못 보다가 지금에서야 이 사람을 만났을까 하는 그런 후회감 이런 것들이 다 원망스럽죠. 그렇지만 만났던 순간 생각하면 또 기쁘고 이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생기기 때문에 감정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상봉기간 이산가족들은 2시간씩 모두 6차례, 불과 12시간의 만남을 갖게 됩니다.

60년이 넘는 이별의 세월을 감안하면 상봉이라기보다는 면회에 가까운데요.

그나마 600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상봉 대상에 뽑힌 일부의 얘기일 뿐입니다.

이산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개선책은 뭘까요?

딸의 간청에 구슬픈 망향가를 선물했던 리흥종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이별을 앞두고 상봉장에 오지 못한 남녘의 가족들을 위해 영상 편지를 남겼습니다.

<녹취> 리흥종(20차 개별상봉 당시 남긴 영상 편지) : "우리 가족들이 다 기쁨이 넘치는 선물을 이렇게 많이 가져왔으니 난 이런 행복이 다시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너희들하고 편지를 거래할 수 있는 이런 기회는...통일의 문이 열리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런 아버지를 다시 떠나보내면서 유난히 힘겨워했던 딸 이정숙 씨.

친척 외에는 취재진을 포함한 모든 방문객의 만남을 거부한 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적십자사의 심리상담 봉사자가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녹취> "여보세요? 이정숙 님이시죠? 다녀오신 이후에도 지금 마음이 좀 기쁘신지..."

<녹취> 이정숙(68살/北 아버지 상봉) : "갈수록 아버지가 다시 한 번 보고 싶고 그 모습이 항상 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하루에 24시간 같이 계세요, 저하고."

무엇보다 구순의 아버지 소식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한스럽습니다.

<녹취> 이정숙(68살/北 아버지 상봉) : "지금 우리 아버지는 또 건강이 안 좋으시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만난 것도 아버지 기쁘셨겠지만, 또 상처가 많으실 거 아니에요, 헤어진 상처가...(그렇죠.) 그래서 몸은 어떠신지, 그런 게 궁금하니까 하다못해 서신이라도 좀 왕래가 있었으면."

취재진은 이정숙 씨의 상태를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이 씨의 친척을 만나봤습니다.

함께 상봉장에 갔던 사촌 남동생 이인경 씨 입니다.

<녹취> 이인경(이정숙씨 사촌) : "매일 가면 눈이 퉁퉁 붓고 사진만 놓고 이러고 있어요. 약간 좀 멘붕이라고 그러죠. 멘탈 붕괴에요. 지금. 일체 어디 나가지도 않더라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누나를 지켜보면서 상봉의 기회는커녕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더 절감했다고 합니다.

<녹취> 이인경(이정숙씨 사촌) : "갔다 와도 사실은 이렇게 후유증이 많아요. 많지만 일단은 남아 있는 사람들, 남아 있는 사람들, 빨리 한 번이라도 상봉할 수 있게 이것을 못했다면 가족이 살고 있는걸 아는데 보지 못하고 나중에 영영 삶에서 지워져 버린다면 그거만한 한이 또 없을 거 같습니다. 그게 제일 급선무고 정 안되면 상봉하기 전이라고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편지 전화라도 그게 꼭 필요한 거 같아요."

이산가족들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면 상봉도 중요하지만 생사 확인이나 서신교환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2000년 이후 지난 15년 동안 단 스무 차례에 불과했던 이산가족 상봉행사.

여기에 행사 대부분이 일회성, 이벤트성에 그치면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법 모색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성근(대한적십자사 국제남북국장) : "띄엄띄엄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다 보니까 한 번 상봉하는 행사로 끝나고 또 이걸 좀 더 바꿔봐야지 하면서 또 그다음에 되면 그게 그 정도만 합의하고 그게 연속이었죠."

때문에 정부는 다음 주 예정된 당국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논의해, 적십자 본회담 개최로 이어간다는 방침입니다.

<인터뷰> 김성근(대한적십자사 국제남북국장) : "당국 간 회담은 좀 큰 차원의 틀에서 이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나가자 하는 부분에 대해서 상봉 정례화 문제라든지 전면적 생사 확인 문제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면 또 적십자 본회담이 있지 않습니까? 본회담이 열리게 되면 좀 더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 좀 더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나고도 상봉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산가족들.

그리고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알기 위해 고통의 세월을 이어가고 있는 6만여 명의 이산가족들,

이번에야말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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