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강골’ 의회주의자 이만섭 前 국회의장 별세

입력 2015.12.15 (12:18) 수정 2015.12.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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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구, 카랑카랑한 목소리.

어제 별세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입니다.

주변 눈치보지 않는 소신있는 발언과 거침없는 실천으로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죠.

정계에 입문하기 전, 신문기자 시절부터 그랬습니다.

1960년에 자유당 부정선거 책임자들에 대한 구속동의안이 부결될 당시 본회의장 기자석에서 큰 소리로 항의하자, 의장이 "이만섭 기자, 조용히 하시오"라고 말해 국회 속기록에까지 올랐던 말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또 1962년엔 전함 기관실에 몰래 숨어 있다 등장하는 방식으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첫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도 했습니다.

정계에 입문한 뒤에도 정치 행보는 남달랐습니다.

지난 1969년 3선 개헌 파문 당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당시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해임을 요구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장 재임시절엔 날치기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 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살아있을 때까지 바른 소리 하다가 죽을 때는 당당하게 웃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던 특별한 정치인, 원칙과 강골의 의회주의자였던 고인의 생을 김기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83세인 이 전 의장은 30대 초반 신문기자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8선에 두 차례 국회의장 역임 등 화려한 정치 이력을 가졌지만, 3선 개헌 반대 투쟁 시절,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해임을 요구했다가 정치적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국회 의장이었을 때는 통합 선거법 등의 강행 처리, 이른바 날치기를 거부해 여권 핵심부와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습니다.

<녹취> 故 이만섭 前 국회의장(2000년 6월) : "날치기 사회를 거부함으로써 국회의장이 단명으로 끝난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소신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습니다."

정계 은퇴 후에도 사랑과 정치는 계산하면 안된다며 오직 국민만 바라볼 것을 주문하는 등 후배 정치인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녹취> 故 이만섭 前 국회의장(2009년 5월) : "국민을 위해서 올바르게 (정치를) 하면 되지.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나한테 플러스가 되고 대통령한테 잘보이고... 이거 계산하는 친구들은 오래 못간다고요. 겨우 장관 한 번 할까말까 그래요"

영결식은 오는 18일 국회장으로 엄수될 예정인 가운데 빈소에는 정의화 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기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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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쓴소리·강골’ 의회주의자 이만섭 前 국회의장 별세
    • 입력 2015-12-15 12:20:56
    • 수정2015-12-15 13:35:06
    뉴스 12
<앵커 멘트>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구, 카랑카랑한 목소리.

어제 별세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입니다.

주변 눈치보지 않는 소신있는 발언과 거침없는 실천으로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죠.

정계에 입문하기 전, 신문기자 시절부터 그랬습니다.

1960년에 자유당 부정선거 책임자들에 대한 구속동의안이 부결될 당시 본회의장 기자석에서 큰 소리로 항의하자, 의장이 "이만섭 기자, 조용히 하시오"라고 말해 국회 속기록에까지 올랐던 말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또 1962년엔 전함 기관실에 몰래 숨어 있다 등장하는 방식으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첫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도 했습니다.

정계에 입문한 뒤에도 정치 행보는 남달랐습니다.

지난 1969년 3선 개헌 파문 당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당시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해임을 요구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장 재임시절엔 날치기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 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살아있을 때까지 바른 소리 하다가 죽을 때는 당당하게 웃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던 특별한 정치인, 원칙과 강골의 의회주의자였던 고인의 생을 김기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83세인 이 전 의장은 30대 초반 신문기자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8선에 두 차례 국회의장 역임 등 화려한 정치 이력을 가졌지만, 3선 개헌 반대 투쟁 시절,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해임을 요구했다가 정치적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국회 의장이었을 때는 통합 선거법 등의 강행 처리, 이른바 날치기를 거부해 여권 핵심부와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습니다.

<녹취> 故 이만섭 前 국회의장(2000년 6월) : "날치기 사회를 거부함으로써 국회의장이 단명으로 끝난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소신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습니다."

정계 은퇴 후에도 사랑과 정치는 계산하면 안된다며 오직 국민만 바라볼 것을 주문하는 등 후배 정치인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녹취> 故 이만섭 前 국회의장(2009년 5월) : "국민을 위해서 올바르게 (정치를) 하면 되지.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나한테 플러스가 되고 대통령한테 잘보이고... 이거 계산하는 친구들은 오래 못간다고요. 겨우 장관 한 번 할까말까 그래요"

영결식은 오는 18일 국회장으로 엄수될 예정인 가운데 빈소에는 정의화 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기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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