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수술환자에 용접용 아르곤 가스 주입…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입력 2015.12.25 (14:56) 수정 2015.12.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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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허리에 난 종기를 제거하러 수술대에 오른 47살 조 모 씨. 조씨는 수술 전 마취과정에서 혈액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낮아지며 기도 경련을 일으켰고, 넉 달째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평소 건강하던 조씨가 갑자기 기도 경련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조씨가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산소통에 있었습니다.

■ 산소통에 산소 대신 용접용 ‘아르곤 가스’가…

사고가 나고 이틀 뒤, 병원 측은 산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들어, 의사와 간호사 등을 상대로 실험합니다. 실험 결과, 병원 측은 의료진이 가스를 마셔보니 사고 당시와 비슷하게 혈액 내 산소농도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합니다.

수술실수술실


국과수 분석 결과, 병원이 사용한 산소통에는 산소가 아닌 공업용 '아르곤 가스'가 들어있었습니다. 용접에 주로 쓰이는 아르곤 가스는 산소보다 무거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 밀폐된 곳에서 사용될 경우 질식을 유발하는 기체입니다. 경찰은 가스 충전업체가 산소통에 산소가 아닌 아르곤 가스를 주입했고, 이 산소통이 병원에 그대로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환자에 산소 대신 용접 가스 주입환자에 산소 대신 용접 가스 주입


■ 고압가스 안전 규정 지켜지지 않아

산소가 들어있을 거로 생각했던 산소통에 아르곤 가스가 잘못 주입된 건 고압가스 안전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가스충전 과정에서 공사장에 보내려던 아르곤 가스와 병원에 보내려던 산소가 뒤바뀐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에서는 의료용 산소는 흰색, 공업용 산소는 녹색, 아르곤 가스는 회색 용기에 담도록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가스 충전업체가 용기구분 규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산소통에 아르곤 가스산소통에 아르곤 가스


가스충전업체는 공업용과 의료용을 함께 취급하고 있지만 사실상 제조에서 판매, 납품까지 용기 분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병원 측의 중간 확인 과정도 없었습니다. 경찰은 가스충전업체 대표와 전무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 의료과실 인정했던 병원 ‘나 몰라라’…가족들 고통은 계속

이번 사고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건 환자와 가족들입니다. 애초 의료과실 책임을 100% 인정했던 병원 측은 지금은 말을 바꾸어 가스업체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가족들은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병원 측이 가스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상태에서 '의료사고 확인서'를 써줬기 때문에 마취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아르곤 가스 주입 나몰라라아르곤 가스 주입 나몰라라


KBS가 입수한 수술기록에는 당시 위급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마취를 시작하고 10분 뒤 조 씨의 몸속 산소 포화도는 60%로 떨어지고, 20분 뒤엔 20%까지 떨어져 위급 상황에 빠집니다. 상황이 악화해 기도 경련이 일어나자, 의료진은 기도 확장제를 집중 투입합니다.

수술기록지수술기록지


경찰 조사에서, 병원 측은 20분간 산소인 줄 알고 아르곤 가스를 환자에게 주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처음 10분간은 남아있던 산소가 주입되고 산소가 다 빠진 뒤 밑에 있던 아르곤 가스가 10분간 주입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마취과 의사를 불구속 입건해 과실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아르곤 가스가 주입됐더라도 응급처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조씨가 지금처럼 의식불명 상태로까지 악화하지는 않았을 거라며 병원을 상대로 의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현재 조 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위독한 상태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용 산소를 다루면서도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그런데도 수술을 한 병원, 아르곤 가스를 공급한 가스공급업체 둘 다 선뜻 자기의 잘못이라고 인정을 않고 있습니다. 고압가스 안전 규정을 강화하고 병원 내에서도 공업용 가스통과 의료용 산소통을 분리해 사용하도록 하는 등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책도 시급합니다. 일부 대형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수술실에 설치해 놓은 '가스 분석기'를 모든 병원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연관 기사]

☞ 환자에 ‘산소’ 대신 ‘용접 가스’ 주입…중태(2015.12.18.)
☞ 산소통에 ‘아르곤 가스’…가스 용기 구분 무시(2015.12.19.)
☞ 아르곤 가스 주입…과실 인정해 놓고 ‘나 몰라라’(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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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수술환자에 용접용 아르곤 가스 주입…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 입력 2015-12-25 14:56:08
    • 수정2015-12-25 14:56:46
    취재후
지난 8월 허리에 난 종기를 제거하러 수술대에 오른 47살 조 모 씨. 조씨는 수술 전 마취과정에서 혈액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낮아지며 기도 경련을 일으켰고, 넉 달째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평소 건강하던 조씨가 갑자기 기도 경련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조씨가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산소통에 있었습니다. ■ 산소통에 산소 대신 용접용 ‘아르곤 가스’가… 사고가 나고 이틀 뒤, 병원 측은 산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들어, 의사와 간호사 등을 상대로 실험합니다. 실험 결과, 병원 측은 의료진이 가스를 마셔보니 사고 당시와 비슷하게 혈액 내 산소농도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합니다.
수술실
국과수 분석 결과, 병원이 사용한 산소통에는 산소가 아닌 공업용 '아르곤 가스'가 들어있었습니다. 용접에 주로 쓰이는 아르곤 가스는 산소보다 무거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 밀폐된 곳에서 사용될 경우 질식을 유발하는 기체입니다. 경찰은 가스 충전업체가 산소통에 산소가 아닌 아르곤 가스를 주입했고, 이 산소통이 병원에 그대로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환자에 산소 대신 용접 가스 주입
■ 고압가스 안전 규정 지켜지지 않아 산소가 들어있을 거로 생각했던 산소통에 아르곤 가스가 잘못 주입된 건 고압가스 안전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가스충전 과정에서 공사장에 보내려던 아르곤 가스와 병원에 보내려던 산소가 뒤바뀐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에서는 의료용 산소는 흰색, 공업용 산소는 녹색, 아르곤 가스는 회색 용기에 담도록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가스 충전업체가 용기구분 규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산소통에 아르곤 가스
가스충전업체는 공업용과 의료용을 함께 취급하고 있지만 사실상 제조에서 판매, 납품까지 용기 분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병원 측의 중간 확인 과정도 없었습니다. 경찰은 가스충전업체 대표와 전무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 의료과실 인정했던 병원 ‘나 몰라라’…가족들 고통은 계속 이번 사고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건 환자와 가족들입니다. 애초 의료과실 책임을 100% 인정했던 병원 측은 지금은 말을 바꾸어 가스업체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가족들은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병원 측이 가스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상태에서 '의료사고 확인서'를 써줬기 때문에 마취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아르곤 가스 주입 나몰라라
KBS가 입수한 수술기록에는 당시 위급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마취를 시작하고 10분 뒤 조 씨의 몸속 산소 포화도는 60%로 떨어지고, 20분 뒤엔 20%까지 떨어져 위급 상황에 빠집니다. 상황이 악화해 기도 경련이 일어나자, 의료진은 기도 확장제를 집중 투입합니다.
수술기록지
경찰 조사에서, 병원 측은 20분간 산소인 줄 알고 아르곤 가스를 환자에게 주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처음 10분간은 남아있던 산소가 주입되고 산소가 다 빠진 뒤 밑에 있던 아르곤 가스가 10분간 주입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마취과 의사를 불구속 입건해 과실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아르곤 가스가 주입됐더라도 응급처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조씨가 지금처럼 의식불명 상태로까지 악화하지는 않았을 거라며 병원을 상대로 의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현재 조 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위독한 상태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용 산소를 다루면서도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그런데도 수술을 한 병원, 아르곤 가스를 공급한 가스공급업체 둘 다 선뜻 자기의 잘못이라고 인정을 않고 있습니다. 고압가스 안전 규정을 강화하고 병원 내에서도 공업용 가스통과 의료용 산소통을 분리해 사용하도록 하는 등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책도 시급합니다. 일부 대형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수술실에 설치해 놓은 '가스 분석기'를 모든 병원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연관 기사] ☞ 환자에 ‘산소’ 대신 ‘용접 가스’ 주입…중태(2015.12.18.) ☞ 산소통에 ‘아르곤 가스’…가스 용기 구분 무시(2015.12.19.) ☞ 아르곤 가스 주입…과실 인정해 놓고 ‘나 몰라라’(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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