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eye] 인권 침해 지탄 갈대 춤 축제

입력 2016.01.09 (08:45) 수정 2016.01.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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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왕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군주국가, 지구 상에 딱 6곳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남동부에 있는 스와질랜드도 전제군주국인데, 이곳에서는 해마다 왕이 여는 특별한 축제가 개최됩니다.

'갈대 춤 축제'라고 하는데, 그런데 축제에 참가하는 어린 소녀들을 상대로 성폭력이 자행되고 있고, 국왕은 이 행사를 축첩의 기회로 삼고 있어 지탄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정민 순회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아프리카 남동쪽에 있는 스와질랜드 왕국.

강원도 만한 크기에 인구가 백만 명을 좀 넘는 이 작은 나라에서는 매년 여름 특별한 축제가 열립니다.

넓은 벌판에 십대 소녀 수만 명이 모였습니다.

울긋불긋한 옷과 장신구로 잔뜩 치장한 소녀들.

차례로 입장하며 전통 노래와 춤을 선보입니다.

축제 기간은 8일이나 되는데 참가 조건이 있습니다.

이른바 '갈대 테스트'.

축제에 앞서 소녀들은 긴 갈대를 스스로 골라 베어와야 하는데, 갈대가 중간에 부러지거나 꺾이면 처녀가 아니라며 축제 참석을 거부당합니다.

갈대 테스트 때문에 이 행사는 '갈대 춤 축제'로 불립니다.

<인터뷰> 스와질랜드 시민 : "'갈대춤 축제'는 굉장히 재미있어요. 꼭 와봐야 할 행사예요."

소녀들이 예쁘게 치장한 이유는 국왕 '음스와티 3세'를 위해서입니다.

전제군주국가 스와질랜드를 30년째 다스리고 있는 왕은 축제 때마다 참가 소녀 가운데 한 명을 뽑아 왕비로 삼고 있습니다.

이렇게 뽑힌 어린 왕비가 무려 15명.

그러니까 이 축제는 '왕비 간택 행사'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음스와티 3세(국왕/2012년) : "이 나라에 꼭 어떤 방식의 결혼을 해야 한다는 식의 법은 따로 없습니다. 각자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게 내가 취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8월.

축제에 가기 위해 14살 캐치웨도 들뜬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친구 세 명이 숨진 겁니다.

<인터뷰> 케치웨 플라미니(학생) : "제대로 학교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요. 친구들이 없어진 게 정말 슬퍼요. 함께 공부하며 사이좋게 지냈는데 더는 볼 수 없으니까요."

정부가 행사용으로 제공한 작은 화물 트럭에 소녀들이 60명씩 타고 있었는데, 안전장치도 없는 트럭이 과속으로 달리다 다른 차와 부딪치자 소녀들은 땅으로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고, 다른 차에 치여 숨지기도 했습니다.

사고 후 발표된 공식 사망자는 13명, 부상자는 109명입니다.

왕실은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내용을 알리지 않았고 생존자들도 그대로 축제에 참석시켰습니다.

<인터뷰> 사고 유가족 : "시신들을 목격하고 행사장에 도착해서도 울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참가자의 숫자가 더 중요했던 거죠."

100년이 넘은 '갈대 춤 축제'.

이 축제에는 사실 에이즈 전염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스와질랜드 정부는 말합니다.

스와질랜드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률은 31%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에이즈 감염을 줄이기 위해 축제에서 여성의 순결을 강조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높은 에이즈 감염률의 핵심인 일부다처제를 축제가 오히려 조장한다는 점.

수만 명의 소녀들이 축제에서 반라 차림을 요구받고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는 점 등은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학부모 : "축제에 참석한 군인이나 다른 남자들이 우리 딸을 성폭행해서 임신이라도 한다면 누구 책임이겠어요? 다 엄마 책임이죠. 만약 성병이라도 걸린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터뷰> 럭키 루클레(스와질랜드 연대 네트워크 홍보국장) : "이 행사는 이제 왕과 그들의 형제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고 왕비를 뽑는 행사로 변질됐어요. 예전에는 고결한 의식이었죠."

이처럼 부조리와 모순에 가득 찬 갈대 춤 축제지만, 잘못을 바로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전제 군주인 국왕 음스와티 3세의 권력이 막강합니다.

<인터뷰> 베키 가마(프리랜서 기자) : "왕이 우리 나라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어요. 정부며 헌법, 경제...이 나라의 모든 것을 갖고 있죠."

국왕은 이 권력을 기반으로 채찍과 당근을 씁니다.

우선 왕실이 주최하는 행사에 자녀를 보내지 않는 국민에겐 학비 지원이나 일자리 제공을 제한합니다.

반면 갈대 춤 행사에 온 사람에겐 일주일 치 식사와 체재비를 제공합니다.

국민 70%가 하루 1달러로 살아가야 하는 아프리카 최빈국 스와질랜드에서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인터뷰> 스와질랜드 시민 : "이제 나이가 들었지만 저도 축제에 갔어요. 소녀들에게 옷을 입혀주고 예쁘게 보이도록 하는 일을 했죠."

최근 스와질랜드 왕실은 다른 나라 지도자들을 축제에 초청하는 등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와질랜드 왕실은 이 갈대 춤 행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대표적인 국가의 문화행사로 널리 홍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4만 명 넘는 여성들이 화려한 옷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아프리카의 대표적 문화행사라며 관광 상품화하고 있습니다.

축제에 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친구들을 잃은 소녀 14살 캐치웨에게 왕비로 뽑히고 싶냐고 물어봤습니다.

<인터뷰> 캐치웨 플라미니(학생) : "왕비가 되고 싶어서 축제에 가려는 건 아니에요. 거기 가면 선물도 주고 여럿이 어울려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요."

캐치웨의 학교 선생님은 가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이 나라에서, 축제에 참가하려는 소녀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착잡해 합니다.

<인터뷰> 음감파라라(초등학교 교사) : "축제에 참가하는 아이들 상당수가 시골 출신이에요. 가난 때문에 어디 가지를 못하니 멀리 여행해 즐기고 싶은 거죠. 잠시라도 집을 벗어나 고생을 잊고 싶은 거예요."

국민의 가난을 거름 삼아 나날이 성대함을 더해 가고 있는 갈대 춤 축제.

왕정의 횡포 속에 스와질랜드 국민과 어린 소녀들은 이상한 선택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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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eye] 인권 침해 지탄 갈대 춤 축제
    • 입력 2016-01-09 09:07:21
    • 수정2016-01-09 11:12:3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왕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군주국가, 지구 상에 딱 6곳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남동부에 있는 스와질랜드도 전제군주국인데, 이곳에서는 해마다 왕이 여는 특별한 축제가 개최됩니다.

'갈대 춤 축제'라고 하는데, 그런데 축제에 참가하는 어린 소녀들을 상대로 성폭력이 자행되고 있고, 국왕은 이 행사를 축첩의 기회로 삼고 있어 지탄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정민 순회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아프리카 남동쪽에 있는 스와질랜드 왕국.

강원도 만한 크기에 인구가 백만 명을 좀 넘는 이 작은 나라에서는 매년 여름 특별한 축제가 열립니다.

넓은 벌판에 십대 소녀 수만 명이 모였습니다.

울긋불긋한 옷과 장신구로 잔뜩 치장한 소녀들.

차례로 입장하며 전통 노래와 춤을 선보입니다.

축제 기간은 8일이나 되는데 참가 조건이 있습니다.

이른바 '갈대 테스트'.

축제에 앞서 소녀들은 긴 갈대를 스스로 골라 베어와야 하는데, 갈대가 중간에 부러지거나 꺾이면 처녀가 아니라며 축제 참석을 거부당합니다.

갈대 테스트 때문에 이 행사는 '갈대 춤 축제'로 불립니다.

<인터뷰> 스와질랜드 시민 : "'갈대춤 축제'는 굉장히 재미있어요. 꼭 와봐야 할 행사예요."

소녀들이 예쁘게 치장한 이유는 국왕 '음스와티 3세'를 위해서입니다.

전제군주국가 스와질랜드를 30년째 다스리고 있는 왕은 축제 때마다 참가 소녀 가운데 한 명을 뽑아 왕비로 삼고 있습니다.

이렇게 뽑힌 어린 왕비가 무려 15명.

그러니까 이 축제는 '왕비 간택 행사'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음스와티 3세(국왕/2012년) : "이 나라에 꼭 어떤 방식의 결혼을 해야 한다는 식의 법은 따로 없습니다. 각자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게 내가 취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8월.

축제에 가기 위해 14살 캐치웨도 들뜬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친구 세 명이 숨진 겁니다.

<인터뷰> 케치웨 플라미니(학생) : "제대로 학교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요. 친구들이 없어진 게 정말 슬퍼요. 함께 공부하며 사이좋게 지냈는데 더는 볼 수 없으니까요."

정부가 행사용으로 제공한 작은 화물 트럭에 소녀들이 60명씩 타고 있었는데, 안전장치도 없는 트럭이 과속으로 달리다 다른 차와 부딪치자 소녀들은 땅으로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고, 다른 차에 치여 숨지기도 했습니다.

사고 후 발표된 공식 사망자는 13명, 부상자는 109명입니다.

왕실은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내용을 알리지 않았고 생존자들도 그대로 축제에 참석시켰습니다.

<인터뷰> 사고 유가족 : "시신들을 목격하고 행사장에 도착해서도 울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참가자의 숫자가 더 중요했던 거죠."

100년이 넘은 '갈대 춤 축제'.

이 축제에는 사실 에이즈 전염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스와질랜드 정부는 말합니다.

스와질랜드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률은 31%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에이즈 감염을 줄이기 위해 축제에서 여성의 순결을 강조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높은 에이즈 감염률의 핵심인 일부다처제를 축제가 오히려 조장한다는 점.

수만 명의 소녀들이 축제에서 반라 차림을 요구받고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는 점 등은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학부모 : "축제에 참석한 군인이나 다른 남자들이 우리 딸을 성폭행해서 임신이라도 한다면 누구 책임이겠어요? 다 엄마 책임이죠. 만약 성병이라도 걸린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터뷰> 럭키 루클레(스와질랜드 연대 네트워크 홍보국장) : "이 행사는 이제 왕과 그들의 형제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고 왕비를 뽑는 행사로 변질됐어요. 예전에는 고결한 의식이었죠."

이처럼 부조리와 모순에 가득 찬 갈대 춤 축제지만, 잘못을 바로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전제 군주인 국왕 음스와티 3세의 권력이 막강합니다.

<인터뷰> 베키 가마(프리랜서 기자) : "왕이 우리 나라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어요. 정부며 헌법, 경제...이 나라의 모든 것을 갖고 있죠."

국왕은 이 권력을 기반으로 채찍과 당근을 씁니다.

우선 왕실이 주최하는 행사에 자녀를 보내지 않는 국민에겐 학비 지원이나 일자리 제공을 제한합니다.

반면 갈대 춤 행사에 온 사람에겐 일주일 치 식사와 체재비를 제공합니다.

국민 70%가 하루 1달러로 살아가야 하는 아프리카 최빈국 스와질랜드에서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인터뷰> 스와질랜드 시민 : "이제 나이가 들었지만 저도 축제에 갔어요. 소녀들에게 옷을 입혀주고 예쁘게 보이도록 하는 일을 했죠."

최근 스와질랜드 왕실은 다른 나라 지도자들을 축제에 초청하는 등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와질랜드 왕실은 이 갈대 춤 행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대표적인 국가의 문화행사로 널리 홍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4만 명 넘는 여성들이 화려한 옷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아프리카의 대표적 문화행사라며 관광 상품화하고 있습니다.

축제에 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친구들을 잃은 소녀 14살 캐치웨에게 왕비로 뽑히고 싶냐고 물어봤습니다.

<인터뷰> 캐치웨 플라미니(학생) : "왕비가 되고 싶어서 축제에 가려는 건 아니에요. 거기 가면 선물도 주고 여럿이 어울려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요."

캐치웨의 학교 선생님은 가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이 나라에서, 축제에 참가하려는 소녀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착잡해 합니다.

<인터뷰> 음감파라라(초등학교 교사) : "축제에 참가하는 아이들 상당수가 시골 출신이에요. 가난 때문에 어디 가지를 못하니 멀리 여행해 즐기고 싶은 거죠. 잠시라도 집을 벗어나 고생을 잊고 싶은 거예요."

국민의 가난을 거름 삼아 나날이 성대함을 더해 가고 있는 갈대 춤 축제.

왕정의 횡포 속에 스와질랜드 국민과 어린 소녀들은 이상한 선택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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