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나타난 살인범…“아! 공소시효가 안 끝나다니…”

입력 2016.01.15 (17:31) 수정 2016.01.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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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범행 현장과 용의자 수배 사진19년 전 범행 현장과 용의자 수배 사진


촉망 받던 양궁선수, 살인범이 되다.

1996 년 봄, 대구 달서구에 살던 22 살 주 모 씨는 장래가 촉망되던 실업팀 소속 양궁선수였다.오랜 합숙훈련을 해왔던 주 씨는 간식 등 생필품 구입을 위해 기숙사 주변 수퍼마켓에 자주 드나들게 됐다. 그러던 중 평소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던 수퍼마켓 여주인 29 살 유 모 씨와 내연관계를 맺게 됐다.두 사람의 불륜 사실은 얼마 안가 유 씨의 남편 박 모 씨(34살)에게 들통이 났다.

남편 박 씨의 호된 추궁과 폭력이 이어졌고 여주인 유 씨는 남편의 폭행을 내연남인 주 씨에게 고백했다.이에 격분한 주 씨는 96 년 12 월 초, 남편 박 씨를 대구 달성군 현풍면의 한 주차장으로 불러냈다. 주 씨는 남편 박 씨에게 부인과 이혼할 것을 요구하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면서 몸싸움이 시작됐고 결국 주 씨는 남편 박 씨를 목졸라 살해했다. 주 씨는 남편 박 씨의 시신을 트럭에 싣고 대구 달성군 옥포면 구마 고속도로변 수로에서 소각해 유기했다. 이후 7 개월이 지난 97 년 6 월말 시신 유기현장 주변을 지나던 등산객에 의해 남편 박 씨의 훼손된 시신이 발견됐다. 피해자 신원을 확인한 경찰은 즉각 수사를 시작했으나 용의자 주 씨와 부인 유 씨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19년 전 범행현장19년 전 범행현장


중국으로 밀항…19 년 간 도피 생활

내연관계인 두 남녀는 범행 직후인 97 년 1 월 인천부두에서 국적 불명의 화물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밀항했다. 그러나 두 남녀의 밀항 사실을 모르는 경찰은 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렸다. 아무리 탐문수사를 해도 두 사람의 행적이 포착되지 않자 경찰은 97 년 8 월 TV 공개수배 프로그램을 통해 대대적으로 방송을 내보내며 두 사람을 추적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사건 발생 15 년이 지난 2011 년 12 월 7 일,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경찰은 이 사건을 미제 사건으로 종결했다. 또 사건 관련 기록과 문서들도 보존기간이 만료돼 대부분 폐기 처분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4 년이 더 흐른,지난 2015 년 11 월 뜻밖의 반전이 중국에서 일어났다. 공소시효가 끝난 것으로 판단한 두 남녀는 중국 상해시 공안국에 자수했다. 자신들이 한국에서 밀항한 불법 체류자 신분이니 한국으로 추방해 달라는 것이었다. 중국 공안국은 즉각 이들을 현장에서 체포했고 간단한 조사를 거쳐 두 달간 구류처분을 내렸다. 두 달간의 구류 처분이 끝나자 주 씨와 유 씨는 지난 연말과 올 초 각각 국내로 강제추방됐다.

용의자 현상수배 사진용의자 현상수배 사진


“아! 공소시효가 안 끝났다니…”

인천국제공항에서 주 씨와 유 씨의 신병을 넘겨받은 경찰은 일단 이들을 <밀항단속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그리고 이들을 상대로 밀항 동기와 경위 등을 추궁했다. 또 이들의 주민등록원부 등 공문서를 조회해 보니 유 씨의 남편 박 씨가 19 년전 피살돼 사망했고, 유 씨는 장기 실종신고에 따른 사망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단서로 경찰은 19 년전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퇴직 경찰관과 피해자 가족, 주변 인물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재조사를 실시했다. 또 당시 남편 박 씨의 시신에서 DNA 검사를 실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시신을 부검한 경북대 법의학교실 등을 찾아다니며 당시 사건 기록들을 어렵게 찾아냄으로써 범행의 전모를 다시 밝혀낼 수 있었다. 아울러 <형사소송법 제 253 조 3 항> 에 따라 " 범인이 형사 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는 사실을 확인했고, 따라서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묵비권… 거짓말… 마침내 자백



국내로 송환된 직후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남녀는 진술을 완강히 거부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특히 중국의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며, 19 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여부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또 해외 도피 기간이 공소시효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중국 밀항 시점을 지난 1997 년이 아니라 2014 년이라고 번복했다. 그 이전에는 국내에 은닉해 있었으므로 공소시효가 끝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범행은 인정하더라도 공소시효가 끝났으니 처벌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다시 이들의 가족과 친인척들을 상대로 폭넓게 탐문 수사를 벌였고, 97 년 1 월 이후 이들의 국내 행적이 전혀 없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부인 유 씨가 97 년 남편 사망 이후 장기간 실종신고가 돼 있다가 사망 처리된 사실도 확인했다. 아울러 97 년 이후 이들이 국내에서 금융거래를 한 흔적이나 각종 세금을 납부한 기록, 전기,가스,상수도 등 공과금을 납부한 기록이 전혀 없음을 확인했다.

즉 19 년간 국내에 체류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경찰은 이같은 정황 증거들을 제시하며 이들을 끈질기게 추궁하자 마침내 두 남녀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경찰은 일단 주 씨를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하고 부인 유 씨에 대해선 범행 가담과 공모 여부 등을 추가 조사하고 있다. 영원히 미궁 속에 빠질 뻔 했던 20 년전 장기 미제 사건이, 범인들 스스로 얄팍한 잔꾀를 부리다가 결국 제 발등을 찍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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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6-01-15 18:04:11
    취재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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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 받던 양궁선수, 살인범이 되다.

1996 년 봄, 대구 달서구에 살던 22 살 주 모 씨는 장래가 촉망되던 실업팀 소속 양궁선수였다.오랜 합숙훈련을 해왔던 주 씨는 간식 등 생필품 구입을 위해 기숙사 주변 수퍼마켓에 자주 드나들게 됐다. 그러던 중 평소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던 수퍼마켓 여주인 29 살 유 모 씨와 내연관계를 맺게 됐다.두 사람의 불륜 사실은 얼마 안가 유 씨의 남편 박 모 씨(34살)에게 들통이 났다.

남편 박 씨의 호된 추궁과 폭력이 이어졌고 여주인 유 씨는 남편의 폭행을 내연남인 주 씨에게 고백했다.이에 격분한 주 씨는 96 년 12 월 초, 남편 박 씨를 대구 달성군 현풍면의 한 주차장으로 불러냈다. 주 씨는 남편 박 씨에게 부인과 이혼할 것을 요구하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면서 몸싸움이 시작됐고 결국 주 씨는 남편 박 씨를 목졸라 살해했다. 주 씨는 남편 박 씨의 시신을 트럭에 싣고 대구 달성군 옥포면 구마 고속도로변 수로에서 소각해 유기했다. 이후 7 개월이 지난 97 년 6 월말 시신 유기현장 주변을 지나던 등산객에 의해 남편 박 씨의 훼손된 시신이 발견됐다. 피해자 신원을 확인한 경찰은 즉각 수사를 시작했으나 용의자 주 씨와 부인 유 씨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19년 전 범행현장


중국으로 밀항…19 년 간 도피 생활

내연관계인 두 남녀는 범행 직후인 97 년 1 월 인천부두에서 국적 불명의 화물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밀항했다. 그러나 두 남녀의 밀항 사실을 모르는 경찰은 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렸다. 아무리 탐문수사를 해도 두 사람의 행적이 포착되지 않자 경찰은 97 년 8 월 TV 공개수배 프로그램을 통해 대대적으로 방송을 내보내며 두 사람을 추적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사건 발생 15 년이 지난 2011 년 12 월 7 일,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경찰은 이 사건을 미제 사건으로 종결했다. 또 사건 관련 기록과 문서들도 보존기간이 만료돼 대부분 폐기 처분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4 년이 더 흐른,지난 2015 년 11 월 뜻밖의 반전이 중국에서 일어났다. 공소시효가 끝난 것으로 판단한 두 남녀는 중국 상해시 공안국에 자수했다. 자신들이 한국에서 밀항한 불법 체류자 신분이니 한국으로 추방해 달라는 것이었다. 중국 공안국은 즉각 이들을 현장에서 체포했고 간단한 조사를 거쳐 두 달간 구류처분을 내렸다. 두 달간의 구류 처분이 끝나자 주 씨와 유 씨는 지난 연말과 올 초 각각 국내로 강제추방됐다.

용의자 현상수배 사진


“아! 공소시효가 안 끝났다니…”

인천국제공항에서 주 씨와 유 씨의 신병을 넘겨받은 경찰은 일단 이들을 <밀항단속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그리고 이들을 상대로 밀항 동기와 경위 등을 추궁했다. 또 이들의 주민등록원부 등 공문서를 조회해 보니 유 씨의 남편 박 씨가 19 년전 피살돼 사망했고, 유 씨는 장기 실종신고에 따른 사망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단서로 경찰은 19 년전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퇴직 경찰관과 피해자 가족, 주변 인물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재조사를 실시했다. 또 당시 남편 박 씨의 시신에서 DNA 검사를 실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시신을 부검한 경북대 법의학교실 등을 찾아다니며 당시 사건 기록들을 어렵게 찾아냄으로써 범행의 전모를 다시 밝혀낼 수 있었다. 아울러 <형사소송법 제 253 조 3 항> 에 따라 " 범인이 형사 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는 사실을 확인했고, 따라서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묵비권… 거짓말… 마침내 자백



국내로 송환된 직후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남녀는 진술을 완강히 거부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특히 중국의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며, 19 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여부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또 해외 도피 기간이 공소시효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중국 밀항 시점을 지난 1997 년이 아니라 2014 년이라고 번복했다. 그 이전에는 국내에 은닉해 있었으므로 공소시효가 끝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범행은 인정하더라도 공소시효가 끝났으니 처벌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다시 이들의 가족과 친인척들을 상대로 폭넓게 탐문 수사를 벌였고, 97 년 1 월 이후 이들의 국내 행적이 전혀 없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부인 유 씨가 97 년 남편 사망 이후 장기간 실종신고가 돼 있다가 사망 처리된 사실도 확인했다. 아울러 97 년 이후 이들이 국내에서 금융거래를 한 흔적이나 각종 세금을 납부한 기록, 전기,가스,상수도 등 공과금을 납부한 기록이 전혀 없음을 확인했다.

즉 19 년간 국내에 체류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경찰은 이같은 정황 증거들을 제시하며 이들을 끈질기게 추궁하자 마침내 두 남녀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경찰은 일단 주 씨를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하고 부인 유 씨에 대해선 범행 가담과 공모 여부 등을 추가 조사하고 있다. 영원히 미궁 속에 빠질 뻔 했던 20 년전 장기 미제 사건이, 범인들 스스로 얄팍한 잔꾀를 부리다가 결국 제 발등을 찍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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