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과 반가워”…위안부 할머니 한 맺힌 ‘눈물’
입력 2016.01.22 (21:44)
수정 2016.01.22 (22:3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광복한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국땅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꽃다운 17살에 끌려와 어느덧 백발의 구순을 바라보게 된 하군자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 소식이 반갑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오세균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가을 무렵.
하군자 할머니는 고향 충남 예산에서 땔감을 구하러 나섰다 17살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왔습니다.
위안소에 처음 도착했을때 기억은 아직도 악몽으로 남았습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일본군한테) 귀싸대기를 맞았어. 벌벌벌 떨면서 오줌을 싸버렸어. 서서 오줌을 싸버렸어."
위안소 생활은 일제 패망으로 끝났지만 굴곡진 삶은 계속됐습니다.
귀국하지 못한 채 딸 셋 딸린 중국인과 결혼했지만 '위안부'라는 딱지는 늘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일 정부의 위안부 협상 타결 소식에 크게 반가워했습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우리 이런 나쁜 짓 한것 일본사람 나빴다, 잘못했다, 그소리를 들으니 참 반가워요. 돈은 둘째예요."
일본의 공식 사과를 기다리다 먼저 간 중국내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섭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죽은 언니들이 죽을때 말했거든 남북 통일되는 것 하고 일본놈들 잘못했단 얘기 못듣고 죽었어요."
하군자 할머니는 자신의 모습이 공개되길 원치 않았습니다.
자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하는 걱정때문입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오세균입니다.
광복한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국땅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꽃다운 17살에 끌려와 어느덧 백발의 구순을 바라보게 된 하군자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 소식이 반갑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오세균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가을 무렵.
하군자 할머니는 고향 충남 예산에서 땔감을 구하러 나섰다 17살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왔습니다.
위안소에 처음 도착했을때 기억은 아직도 악몽으로 남았습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일본군한테) 귀싸대기를 맞았어. 벌벌벌 떨면서 오줌을 싸버렸어. 서서 오줌을 싸버렸어."
위안소 생활은 일제 패망으로 끝났지만 굴곡진 삶은 계속됐습니다.
귀국하지 못한 채 딸 셋 딸린 중국인과 결혼했지만 '위안부'라는 딱지는 늘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일 정부의 위안부 협상 타결 소식에 크게 반가워했습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우리 이런 나쁜 짓 한것 일본사람 나빴다, 잘못했다, 그소리를 들으니 참 반가워요. 돈은 둘째예요."
일본의 공식 사과를 기다리다 먼저 간 중국내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섭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죽은 언니들이 죽을때 말했거든 남북 통일되는 것 하고 일본놈들 잘못했단 얘기 못듣고 죽었어요."
하군자 할머니는 자신의 모습이 공개되길 원치 않았습니다.
자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하는 걱정때문입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오세균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日 사과 반가워”…위안부 할머니 한 맺힌 ‘눈물’
-
- 입력 2016-01-22 21:45:46
- 수정2016-01-22 22:34:23
![](/data/news/2016/01/22/3220332_250.jpg)
<앵커 멘트>
광복한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국땅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꽃다운 17살에 끌려와 어느덧 백발의 구순을 바라보게 된 하군자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 소식이 반갑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오세균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가을 무렵.
하군자 할머니는 고향 충남 예산에서 땔감을 구하러 나섰다 17살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왔습니다.
위안소에 처음 도착했을때 기억은 아직도 악몽으로 남았습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일본군한테) 귀싸대기를 맞았어. 벌벌벌 떨면서 오줌을 싸버렸어. 서서 오줌을 싸버렸어."
위안소 생활은 일제 패망으로 끝났지만 굴곡진 삶은 계속됐습니다.
귀국하지 못한 채 딸 셋 딸린 중국인과 결혼했지만 '위안부'라는 딱지는 늘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일 정부의 위안부 협상 타결 소식에 크게 반가워했습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우리 이런 나쁜 짓 한것 일본사람 나빴다, 잘못했다, 그소리를 들으니 참 반가워요. 돈은 둘째예요."
일본의 공식 사과를 기다리다 먼저 간 중국내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섭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죽은 언니들이 죽을때 말했거든 남북 통일되는 것 하고 일본놈들 잘못했단 얘기 못듣고 죽었어요."
하군자 할머니는 자신의 모습이 공개되길 원치 않았습니다.
자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하는 걱정때문입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오세균입니다.
광복한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국땅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꽃다운 17살에 끌려와 어느덧 백발의 구순을 바라보게 된 하군자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 소식이 반갑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오세균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가을 무렵.
하군자 할머니는 고향 충남 예산에서 땔감을 구하러 나섰다 17살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왔습니다.
위안소에 처음 도착했을때 기억은 아직도 악몽으로 남았습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일본군한테) 귀싸대기를 맞았어. 벌벌벌 떨면서 오줌을 싸버렸어. 서서 오줌을 싸버렸어."
위안소 생활은 일제 패망으로 끝났지만 굴곡진 삶은 계속됐습니다.
귀국하지 못한 채 딸 셋 딸린 중국인과 결혼했지만 '위안부'라는 딱지는 늘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일 정부의 위안부 협상 타결 소식에 크게 반가워했습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우리 이런 나쁜 짓 한것 일본사람 나빴다, 잘못했다, 그소리를 들으니 참 반가워요. 돈은 둘째예요."
일본의 공식 사과를 기다리다 먼저 간 중국내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섭니다.
<인터뷰> 하군자 위안부 할머니 : "죽은 언니들이 죽을때 말했거든 남북 통일되는 것 하고 일본놈들 잘못했단 얘기 못듣고 죽었어요."
하군자 할머니는 자신의 모습이 공개되길 원치 않았습니다.
자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하는 걱정때문입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오세균입니다.
-
-
오세균 기자 sko@kbs.co.kr
오세균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