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에 판정에 ‘엉엉’…눈물겨운 본선 도전기

입력 2016.01.27 (17:20) 수정 2016.01.2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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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축구가 전 세계 쟁쟁한 축구강국들도 넘지 못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신기록을 달성하는 동안 태극전사들은 1945년 광복 직후부터 그라운드에 뜨거운 땀과 눈물을 흘려왔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27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4강전에서 카타르를 3-1로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 이번 대회 3위까지 주어지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이로써 한국 축구는 오는 8월 개막하는 리우올림픽까지 합쳐 통산 10차례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게 됐다.

전 세계를 통틀어 올림픽 남자 축구 본선 진출 횟수가 두자릿수를 기록한 나라는 12개국밖에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가 15차례 본선 진출로 역대 최다이고 미국(14회), 브라질(13회), 프랑스(12회), 멕시코, 이집트, 유고슬라비아(이상 11회), 한국, 일본, 영국, 스페인, 스웨덴(이상 10회)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올림픽 최다 연속 출전 기록은 지난 런던 대회 한국과 이탈리아가 나란히 '7회 연속'으로 공동 1위를 달렸다.

이번 리우올림픽은 이탈리아가 유럽예선에서 탈락한 가운데 신태용호가 출전 티켓을 차지하고 연속 8회 본선 진출을 기록,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이렇듯 한국 축구는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이 처음 올림픽 무대를 두드린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이다. 당시 올림픽 축구는 예선 없이 본선에 참가할 수 있었다.

조선축구협회(현 대한축구협회)는 1948년 5월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했고, 그해 7월 런던 올림픽 무대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런던까지 가는 교통수단이 제대로 없었던 터라 선수들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홍콩에 도착한 뒤 비행기를 타고 방콕, 바그다드, 카이로, 아테네, 암스테르담 등을 경유해 런던에 도착하는 '죽음의 여정'을 견뎌야 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한국은 1차전에서 멕시코를 5-3으로 꺾고 '올림픽 첫 승리'의 기록을 남겼다.

한국 축구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무대에는 서지 못했다.

6·25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선수단을 헬싱키까지 보낼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참가 신청만 하면 나설 수 있었던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은 기존 대회와 달리 대륙별 지역 예선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멜버른 올림픽 아시아예선은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이 '홈 앤드 어웨이'로 치러졌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본 선수단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 통에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치러졌다.

1차전에서 0-2로 패한 한국은 2차전에서 2-0으로 이겼다.

1승1패로 승부를 내지 못한 두 나라는 연장전까지 치렀지만 승패를 가르지 못했다.

결국 규정에 따라 동전 던지기를 실시한 끝에 한국은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한국의 올림픽 암흑기는 1960년 로마 대회 예선까지 이어졌다. 한국은 1차 예선에서 일본을 꺾은 뒤 대만과 2차 예선을 치렀다.

하지만 대만이 한국에서 벌어진 4·19 혁명을 이유로 방한을 거부, 어쩔 수 없이 타이베이 원정으로 1, 2차전을 치러야만 했다.

1차전에서 승리한 한국은 2차전에서 페널티킥 판정 문제로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허무하게 실격패를 당해 본선 진출권을 포기해야 했다.

한국이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선 것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이었다.

태극전사들은 아시아 1차 예선에서 4년전 악몽을 경험한 대만과 다시 만나 1승1패를 기록했지만 대만이 3차전을 포기해 2차 예선에 진출했고, 2차 예선 상대인 필리핀마저 기권해 손쉽게 본선 무대에 오랐다.

여전히 약체였던 한국은 도쿄 올림픽 본선에서 3경기 동안 무려 20골을 내주는 처참한 결과만 떠안고 눈물을 흘리며 귀국했다.

당시 조별리그 3차전 상대인 아랍공화국(현 이집트)에 0-10으로 패한 것은 한국 축구 역대 최다 실점패로 기록됐다.

이후 한국은 1968년 멕시코 대회부터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까지 5회 연속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변방에 머물렀다.

한국 축구와 올림픽의 인연은 1988년 안방에서 열린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이어졌다.

개최국 자격으로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축구는 이후 올해 리우 올림픽까지 8회 연속 본선 진출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특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처음 8강에 진출했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감격적인 첫 동메달을 획득했다.

정부 수립 초기 힘겨운 환경에서도 그라운드에 열정을 쏟은 선배들이 있었기에 한국 축구는 아시아 최강국으로 도약하며 이제 세계 축구계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구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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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27 17:20:29
    • 수정2016-01-27 17:24:33
    연합뉴스
한국 남자 축구가 전 세계 쟁쟁한 축구강국들도 넘지 못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신기록을 달성하는 동안 태극전사들은 1945년 광복 직후부터 그라운드에 뜨거운 땀과 눈물을 흘려왔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27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4강전에서 카타르를 3-1로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 이번 대회 3위까지 주어지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이로써 한국 축구는 오는 8월 개막하는 리우올림픽까지 합쳐 통산 10차례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게 됐다.

전 세계를 통틀어 올림픽 남자 축구 본선 진출 횟수가 두자릿수를 기록한 나라는 12개국밖에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가 15차례 본선 진출로 역대 최다이고 미국(14회), 브라질(13회), 프랑스(12회), 멕시코, 이집트, 유고슬라비아(이상 11회), 한국, 일본, 영국, 스페인, 스웨덴(이상 10회)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올림픽 최다 연속 출전 기록은 지난 런던 대회 한국과 이탈리아가 나란히 '7회 연속'으로 공동 1위를 달렸다.

이번 리우올림픽은 이탈리아가 유럽예선에서 탈락한 가운데 신태용호가 출전 티켓을 차지하고 연속 8회 본선 진출을 기록,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이렇듯 한국 축구는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이 처음 올림픽 무대를 두드린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이다. 당시 올림픽 축구는 예선 없이 본선에 참가할 수 있었다.

조선축구협회(현 대한축구협회)는 1948년 5월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했고, 그해 7월 런던 올림픽 무대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런던까지 가는 교통수단이 제대로 없었던 터라 선수들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홍콩에 도착한 뒤 비행기를 타고 방콕, 바그다드, 카이로, 아테네, 암스테르담 등을 경유해 런던에 도착하는 '죽음의 여정'을 견뎌야 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한국은 1차전에서 멕시코를 5-3으로 꺾고 '올림픽 첫 승리'의 기록을 남겼다.

한국 축구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무대에는 서지 못했다.

6·25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선수단을 헬싱키까지 보낼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참가 신청만 하면 나설 수 있었던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은 기존 대회와 달리 대륙별 지역 예선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멜버른 올림픽 아시아예선은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이 '홈 앤드 어웨이'로 치러졌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본 선수단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 통에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치러졌다.

1차전에서 0-2로 패한 한국은 2차전에서 2-0으로 이겼다.

1승1패로 승부를 내지 못한 두 나라는 연장전까지 치렀지만 승패를 가르지 못했다.

결국 규정에 따라 동전 던지기를 실시한 끝에 한국은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한국의 올림픽 암흑기는 1960년 로마 대회 예선까지 이어졌다. 한국은 1차 예선에서 일본을 꺾은 뒤 대만과 2차 예선을 치렀다.

하지만 대만이 한국에서 벌어진 4·19 혁명을 이유로 방한을 거부, 어쩔 수 없이 타이베이 원정으로 1, 2차전을 치러야만 했다.

1차전에서 승리한 한국은 2차전에서 페널티킥 판정 문제로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허무하게 실격패를 당해 본선 진출권을 포기해야 했다.

한국이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선 것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이었다.

태극전사들은 아시아 1차 예선에서 4년전 악몽을 경험한 대만과 다시 만나 1승1패를 기록했지만 대만이 3차전을 포기해 2차 예선에 진출했고, 2차 예선 상대인 필리핀마저 기권해 손쉽게 본선 무대에 오랐다.

여전히 약체였던 한국은 도쿄 올림픽 본선에서 3경기 동안 무려 20골을 내주는 처참한 결과만 떠안고 눈물을 흘리며 귀국했다.

당시 조별리그 3차전 상대인 아랍공화국(현 이집트)에 0-10으로 패한 것은 한국 축구 역대 최다 실점패로 기록됐다.

이후 한국은 1968년 멕시코 대회부터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까지 5회 연속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변방에 머물렀다.

한국 축구와 올림픽의 인연은 1988년 안방에서 열린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이어졌다.

개최국 자격으로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축구는 이후 올해 리우 올림픽까지 8회 연속 본선 진출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특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처음 8강에 진출했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감격적인 첫 동메달을 획득했다.

정부 수립 초기 힘겨운 환경에서도 그라운드에 열정을 쏟은 선배들이 있었기에 한국 축구는 아시아 최강국으로 도약하며 이제 세계 축구계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구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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