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본질 보도했나?

입력 2016.03.06 (17:11) 수정 2016.03.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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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2일, 국회에서 통과된 테러방지법 만큼 최근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안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법안에 반대하는 야당이 필리버스터, 즉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의 하나인 국회 내 무제한 토론에 나서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들은 이처럼 쟁점이 뚜렷한 사안데 대해 국민들이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을까요?

오늘은 먼저,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박현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질문>
박 기자, 필리버스터라는 용어, 일반인들에게는 좀 생소한 말인데 우선 이것부터 알아볼까요?

<답변>
네. 이 필리버스터라는 건 국회에서 다수당이 수적인 우세를 가지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소수당이 긴 시간 발언을 이어가는 등의 방법으로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는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입니다.

미국에서는 필리버스터가 의회 내 다수파의 독주를 막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수단으로 종종 사용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김대중 당시 의원과 1969년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국회 내 장시간 토론을 이어간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1973년 금지된 무제한 토론은 지난 2012년 국회선진화법 통과로 법제화됐고, 이번이 그 첫 번째 사례입니다.

지난달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당이 제출한 테러방지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 상정했습니다.

<녹취> 정의화(국회의장/2월 23일) : "지금은 국민 안전 비상상황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도 우선하는 가치는 없습니다."

잇단 국제적 테러와 북한의 도발로 국민 안위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 국가 비상사태라는 판단에서입니다.

야당은 이에 반발하며 표결을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에 돌입했습니다.

<녹취> 정청래(더불어민주당 의원) : "북한이 로케트를 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왜 국민의 핸드폰을 뒤지려 합니까? 북한이 미사일을 쐈는데, 왜 국정원은 국민의 계좌를 뒤지려 합니까?"

야당 의원들의 계속되는 발언에 새누리당의 항의도 이어졌습니다.

<녹취> 원유철(새누리당 원내대표) : "(야당은) 국가도 국민도 안보도 없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정치 쇼만 벌이고 있습니다."

언론도 필리버스터 상황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2.24.) : "야당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이틀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2.25) : "새누리당은 노골적인 선거운동이라고 비판했고, 더불어 민주당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자평했습니다."

필리버스터의 단초가 된 테러방지법도 조명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요 포털에서는 관련 검색어가 상위권에 오르고, 국회 안팎에서는 시민들의 발길과 논쟁도 이어졌습니다.

<녹취> "자기가 자신을 감시하고 검열하는 자기 단속 현상으로..."

<녹취> "전문가 집단인 국정원이 대테러 업무를 맡는 게 옳습니다."

총 38명의 야당 의원이 192시간 넘게 진행한 필리버스터는 선거구 획정안 처리와 맞물려 시작 9일 만에 끝이 났고, 테러방지법은 의결됐습니다.

<질문>
테러방지법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필리버스터 때문이기도 한데, 언론들은 이 필리버스터에 대해선 어떻게 다뤘나요?

<답변>
네. 언론들은 필리버스터를 단순히 국회 안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의원들의 발언 시간이나 해프닝 등에 주목했습니다.

이번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평가는 언론사마다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일부 신문은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배경에 주목하면서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또 다른 언론들은 의사 진행 방해 행위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보도량에서도 차이를 보였습니다.

테러방지법이 직권 상정되고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직후부터 닷새 동안 5개 일간지의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필리버스터와 테러방지법을 주로 다룬 기사가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각각 30여건, 조선과 중앙, 동아일보는 각각 10여건이었습니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엔 엿새 동안 메인 뉴스 보도량이 각각 7-8건으로 하루 한건 정도였습니다.

방송들은 주로 필리버스터 진행 상황이나, 정치권의 양분된 주장을 전달했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2.24.) : "야당의 필리버스터, 무제한 토론이 25시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2.24.) :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넘게 연단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녹취> KBS 뉴스9(2.25./이종걸/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 "국정원의 숙원 사업인 무차별 감청 확대는 죽어도 수용할 수 없습니다."

<녹취> KBS 뉴스9(2.25./원유철/새누리당 원내대표) : "일반 범죄 수사보다 훨씬 엄격한 사법부의 통제를 받게 돼 있습니다."

의원들의 발언은 연설 내용보다 단순 해프닝성 사건이나 말이 기사화됐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2.25./이석현/국회 부의장) : "목 운동도 하시고 다리도 풀면서 쉬엄쉬엄 하십시오."

<녹취> SBS 8뉴스(2.24./은수미/더불어민주당 의원) : "시계를 보니 자정을 넘겨서 2시30분인데요. 제가 알람을 맞춰놔서요. 죄송합니다."

신문도 필리버스터 발언 시간을 중계하며 부수적인 내용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미디어인사이드 분석 결과 신문의 경우 관련 기사의 48%가 주로 필리버스터 상황을 단순 전달하거나 대통령과 정치권의 입장을 보도한 반면, 필리버스터의 의미와 테러방지법의 쟁점을 분석한 기사는 28%에 그쳤습니다.

방송의 경우엔 전체의 83%가 상황 중계와 정치권 주장을 전달한 기사였습니다.

<인터뷰> 김윤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필리버스터의 상황을 전달하기만 하는 데에 좀 치중한 것 아니냐. 몇 시간을 했다라든지 뭐 기록을 깼다라든지 그래서 자칫하면 좀 흥미 위주식의 보도인 것처럼도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양태들을 보였고 (전체적인) 맥락들을 짚어주는데 까지 나가지는 좀 못한 것 아닌가."

<질문>
네. 그런데 사실 필리버스터를 하게 된 계기는 테러방지법 아닙니까?

그렇다면 테러방지법안 자체에 대한 언론 보도는 어땠습니까?

<답변>
네. 상당수 언론들은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그간에 제기돼온 정치권의 주장을 되풀이 하는데 그쳤다는 지적입니다.

테러방지법의 주요 쟁점을 정리한 기사입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테러 관련 정보의 수집과 조사 권한을 국가정보원에 주는 것.

이에 대해 여야의 입장을 내세워 법 제정의 필요성이나 국정원 권한 비대에 따른 부작용 우려 등을 비교적 알기 쉽게 정리했습니다.

또 각 쟁점별로 전문가의 해석을 곁들인 분석 기사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다수 언론 보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편의 자극적인 주장이나 발언을 제목으로 싣거나

조선일보(2.24.) : 야, 테러 한 번 당해보고서야 테러방지법 통과시킬건가

한겨레(2.29.) : "사찰.공작.선거개입...국정원, 무고한 국민 잡는 괴물 될 것"

종합적인 분석보다는 정치인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는 데 그쳤습니다.

<인터뷰> 홍원식(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 "서로 다른 정당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건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우리 언론들이 그 정파적 견해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마치 대리전을 치르듯이 정당의 정치적 견해들을 단지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상파 방송 뉴스의 경우에도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테러방지법과 관련해 등장한 취재원은 정치인이 절대 다수였습니다.

또 테러방지법 자체의 논란을 다루기에 앞서, 국회의장이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한다며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한 게 정당한지에 대한 논쟁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보도는 많지 않았습니다.

<질문>
박 기자! 이번 사안들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에도 종전과 좀 다른 움직임이 있었는데 만족스럽지 못한 언론의 역할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닙니까?

<답변>
네, 그렇게 보는 견해도 있는데요.

시민들은 주류 매체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정보를 직접 찾아내 유통시키는 등 새로운 방식의 여론 형성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일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이어졌습니다.

<녹취> MBN 뉴스8(2.27./기자) : "회의장 밖에는 방청을 위한 대기자들이 50여 명에 이릅니다."

<녹취> MBN 뉴스8(2.27./시민) : "왜 이 현상이 일어났고 이러한 일이 과거에 없었고 후에도 없을 수도 있겠지만 없길 바라면서 그런 것도 참관하려고 왔습니다."

필리버스터 상황을 생중계한 국회방송 시청률이 올랐고, 방송을 보며 실시간 댓글로 소통할 수 있는 '마이국회텔레비전'이라는 패러디물까지 등장했습니다.

또 누리꾼들이 직접 필리버스터와 테러방지법 관련 내용을 모아서 보여주는 사이트의 방문자 수는 40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언론 보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부분들을 시민들이 채우려는 노력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인터뷰> 홍원식(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 "(기존 언론을 통하지 않고도) 다양한 정보들이 유통되고 있고 그것을 통제하기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양한 견해들이 서로 맞물리고 부딪쳐가는 가운데 국민적인 합의를 이루는 것은 이 주요 공론장의 공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책임은 여전하다는 거죠."

오히려 이번 기회를 뉴스 소비자들의 생각을 충실히 읽어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오동석(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여야가 타협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거기에 대한 해법이나 국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좀 듣고 그런 것들을 오히려 권력이나 정치권에다 전달해주는 역할들, 그러면서도 그게 단순히 전달자의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중요한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국민들하고 고민할 수 있는 이런 여러가지 측면들을 좀 제공해줬으면 좋겠다..."

이번처럼 정치적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 사안일수록 팩트, 즉 사실에 근거해서, 사안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묻는 것, 그것이 언론의 역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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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본질 보도했나?
    • 입력 2016-03-06 17:20:52
    • 수정2016-03-06 17:44:00
    미디어 인사이드
<앵커 멘트>

지난 2일, 국회에서 통과된 테러방지법 만큼 최근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안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법안에 반대하는 야당이 필리버스터, 즉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의 하나인 국회 내 무제한 토론에 나서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들은 이처럼 쟁점이 뚜렷한 사안데 대해 국민들이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을까요?

오늘은 먼저,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박현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질문>
박 기자, 필리버스터라는 용어, 일반인들에게는 좀 생소한 말인데 우선 이것부터 알아볼까요?

<답변>
네. 이 필리버스터라는 건 국회에서 다수당이 수적인 우세를 가지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소수당이 긴 시간 발언을 이어가는 등의 방법으로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는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입니다.

미국에서는 필리버스터가 의회 내 다수파의 독주를 막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수단으로 종종 사용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김대중 당시 의원과 1969년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국회 내 장시간 토론을 이어간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1973년 금지된 무제한 토론은 지난 2012년 국회선진화법 통과로 법제화됐고, 이번이 그 첫 번째 사례입니다.

지난달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당이 제출한 테러방지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 상정했습니다.

<녹취> 정의화(국회의장/2월 23일) : "지금은 국민 안전 비상상황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도 우선하는 가치는 없습니다."

잇단 국제적 테러와 북한의 도발로 국민 안위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 국가 비상사태라는 판단에서입니다.

야당은 이에 반발하며 표결을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에 돌입했습니다.

<녹취> 정청래(더불어민주당 의원) : "북한이 로케트를 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왜 국민의 핸드폰을 뒤지려 합니까? 북한이 미사일을 쐈는데, 왜 국정원은 국민의 계좌를 뒤지려 합니까?"

야당 의원들의 계속되는 발언에 새누리당의 항의도 이어졌습니다.

<녹취> 원유철(새누리당 원내대표) : "(야당은) 국가도 국민도 안보도 없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정치 쇼만 벌이고 있습니다."

언론도 필리버스터 상황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2.24.) : "야당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이틀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2.25) : "새누리당은 노골적인 선거운동이라고 비판했고, 더불어 민주당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자평했습니다."

필리버스터의 단초가 된 테러방지법도 조명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요 포털에서는 관련 검색어가 상위권에 오르고, 국회 안팎에서는 시민들의 발길과 논쟁도 이어졌습니다.

<녹취> "자기가 자신을 감시하고 검열하는 자기 단속 현상으로..."

<녹취> "전문가 집단인 국정원이 대테러 업무를 맡는 게 옳습니다."

총 38명의 야당 의원이 192시간 넘게 진행한 필리버스터는 선거구 획정안 처리와 맞물려 시작 9일 만에 끝이 났고, 테러방지법은 의결됐습니다.

<질문>
테러방지법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필리버스터 때문이기도 한데, 언론들은 이 필리버스터에 대해선 어떻게 다뤘나요?

<답변>
네. 언론들은 필리버스터를 단순히 국회 안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의원들의 발언 시간이나 해프닝 등에 주목했습니다.

이번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평가는 언론사마다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일부 신문은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배경에 주목하면서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또 다른 언론들은 의사 진행 방해 행위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보도량에서도 차이를 보였습니다.

테러방지법이 직권 상정되고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직후부터 닷새 동안 5개 일간지의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필리버스터와 테러방지법을 주로 다룬 기사가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각각 30여건, 조선과 중앙, 동아일보는 각각 10여건이었습니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엔 엿새 동안 메인 뉴스 보도량이 각각 7-8건으로 하루 한건 정도였습니다.

방송들은 주로 필리버스터 진행 상황이나, 정치권의 양분된 주장을 전달했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2.24.) : "야당의 필리버스터, 무제한 토론이 25시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2.24.) :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넘게 연단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녹취> KBS 뉴스9(2.25./이종걸/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 "국정원의 숙원 사업인 무차별 감청 확대는 죽어도 수용할 수 없습니다."

<녹취> KBS 뉴스9(2.25./원유철/새누리당 원내대표) : "일반 범죄 수사보다 훨씬 엄격한 사법부의 통제를 받게 돼 있습니다."

의원들의 발언은 연설 내용보다 단순 해프닝성 사건이나 말이 기사화됐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2.25./이석현/국회 부의장) : "목 운동도 하시고 다리도 풀면서 쉬엄쉬엄 하십시오."

<녹취> SBS 8뉴스(2.24./은수미/더불어민주당 의원) : "시계를 보니 자정을 넘겨서 2시30분인데요. 제가 알람을 맞춰놔서요. 죄송합니다."

신문도 필리버스터 발언 시간을 중계하며 부수적인 내용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미디어인사이드 분석 결과 신문의 경우 관련 기사의 48%가 주로 필리버스터 상황을 단순 전달하거나 대통령과 정치권의 입장을 보도한 반면, 필리버스터의 의미와 테러방지법의 쟁점을 분석한 기사는 28%에 그쳤습니다.

방송의 경우엔 전체의 83%가 상황 중계와 정치권 주장을 전달한 기사였습니다.

<인터뷰> 김윤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필리버스터의 상황을 전달하기만 하는 데에 좀 치중한 것 아니냐. 몇 시간을 했다라든지 뭐 기록을 깼다라든지 그래서 자칫하면 좀 흥미 위주식의 보도인 것처럼도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양태들을 보였고 (전체적인) 맥락들을 짚어주는데 까지 나가지는 좀 못한 것 아닌가."

<질문>
네. 그런데 사실 필리버스터를 하게 된 계기는 테러방지법 아닙니까?

그렇다면 테러방지법안 자체에 대한 언론 보도는 어땠습니까?

<답변>
네. 상당수 언론들은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그간에 제기돼온 정치권의 주장을 되풀이 하는데 그쳤다는 지적입니다.

테러방지법의 주요 쟁점을 정리한 기사입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테러 관련 정보의 수집과 조사 권한을 국가정보원에 주는 것.

이에 대해 여야의 입장을 내세워 법 제정의 필요성이나 국정원 권한 비대에 따른 부작용 우려 등을 비교적 알기 쉽게 정리했습니다.

또 각 쟁점별로 전문가의 해석을 곁들인 분석 기사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다수 언론 보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편의 자극적인 주장이나 발언을 제목으로 싣거나

조선일보(2.24.) : 야, 테러 한 번 당해보고서야 테러방지법 통과시킬건가

한겨레(2.29.) : "사찰.공작.선거개입...국정원, 무고한 국민 잡는 괴물 될 것"

종합적인 분석보다는 정치인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는 데 그쳤습니다.

<인터뷰> 홍원식(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 "서로 다른 정당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건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우리 언론들이 그 정파적 견해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마치 대리전을 치르듯이 정당의 정치적 견해들을 단지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상파 방송 뉴스의 경우에도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테러방지법과 관련해 등장한 취재원은 정치인이 절대 다수였습니다.

또 테러방지법 자체의 논란을 다루기에 앞서, 국회의장이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한다며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한 게 정당한지에 대한 논쟁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보도는 많지 않았습니다.

<질문>
박 기자! 이번 사안들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에도 종전과 좀 다른 움직임이 있었는데 만족스럽지 못한 언론의 역할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닙니까?

<답변>
네, 그렇게 보는 견해도 있는데요.

시민들은 주류 매체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정보를 직접 찾아내 유통시키는 등 새로운 방식의 여론 형성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일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이어졌습니다.

<녹취> MBN 뉴스8(2.27./기자) : "회의장 밖에는 방청을 위한 대기자들이 50여 명에 이릅니다."

<녹취> MBN 뉴스8(2.27./시민) : "왜 이 현상이 일어났고 이러한 일이 과거에 없었고 후에도 없을 수도 있겠지만 없길 바라면서 그런 것도 참관하려고 왔습니다."

필리버스터 상황을 생중계한 국회방송 시청률이 올랐고, 방송을 보며 실시간 댓글로 소통할 수 있는 '마이국회텔레비전'이라는 패러디물까지 등장했습니다.

또 누리꾼들이 직접 필리버스터와 테러방지법 관련 내용을 모아서 보여주는 사이트의 방문자 수는 40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언론 보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부분들을 시민들이 채우려는 노력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인터뷰> 홍원식(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 "(기존 언론을 통하지 않고도) 다양한 정보들이 유통되고 있고 그것을 통제하기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양한 견해들이 서로 맞물리고 부딪쳐가는 가운데 국민적인 합의를 이루는 것은 이 주요 공론장의 공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책임은 여전하다는 거죠."

오히려 이번 기회를 뉴스 소비자들의 생각을 충실히 읽어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오동석(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여야가 타협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거기에 대한 해법이나 국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좀 듣고 그런 것들을 오히려 권력이나 정치권에다 전달해주는 역할들, 그러면서도 그게 단순히 전달자의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중요한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국민들하고 고민할 수 있는 이런 여러가지 측면들을 좀 제공해줬으면 좋겠다..."

이번처럼 정치적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 사안일수록 팩트, 즉 사실에 근거해서, 사안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묻는 것, 그것이 언론의 역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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