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일본에서 되살아난 ‘조선공예’
입력 2016.04.04 (06:54)
수정 2016.04.04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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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민중 예술인 `민예`의 개념을 처음 도입해 세계 최초의 민예예술관으로 문을 열었던 `일본민예관'이 개관 80주년 기념으로 이례적으로 `조선공예전`을 열었습니다.
일본 민예운동의 창시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공예를 통해 민예의 개념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도쿄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도쿄의 주택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세계 최초의 민예예술관,
입구로 들어서자, 한반도 호랑이를 `동`으로 그려넣은 `동화백자`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은은한 `청화초화문각병'은 1914년, `문예운동의 창시자`,`야나기 무네요시`를 처음 조선 공예에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타카시 스기야마(일본민예관) : "(야나기 선생은)조선 도자기에 큰 영향을 받아 민예관을 만들려고 활동을 했습니다."
일제의 `3.1운동` 탄압과 광화문 철거에 반대했던 `야나기` 선생이 모은 조선 공예품은 약 천6백여 점.
일본 민예관은 이 가운데 3백여 점을 개관 80주년 기념으로 특별 전시했습니다.
<인터뷰> 가타오카(관람객) : "(조선 공예품이) 어떻게 일본에 들어왔는지 알게 됐고,역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 공예를 사랑했던 `야나기` 선생은 귀족들의 화려한 고급품 보다는 일반 공예의 아름다움에 더 주목했습니다.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문화재재단이 보전 처리를 돕는 등 적극 후원했습니다.
<인터뷰> 김인규(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일본소장) : "국보급에 해당하는 유물이 많았고, 한일 교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 일본인의 노력으로 한국 공예품들이 일본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민중 예술인 `민예`의 개념을 처음 도입해 세계 최초의 민예예술관으로 문을 열었던 `일본민예관'이 개관 80주년 기념으로 이례적으로 `조선공예전`을 열었습니다.
일본 민예운동의 창시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공예를 통해 민예의 개념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도쿄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도쿄의 주택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세계 최초의 민예예술관,
입구로 들어서자, 한반도 호랑이를 `동`으로 그려넣은 `동화백자`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은은한 `청화초화문각병'은 1914년, `문예운동의 창시자`,`야나기 무네요시`를 처음 조선 공예에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타카시 스기야마(일본민예관) : "(야나기 선생은)조선 도자기에 큰 영향을 받아 민예관을 만들려고 활동을 했습니다."
일제의 `3.1운동` 탄압과 광화문 철거에 반대했던 `야나기` 선생이 모은 조선 공예품은 약 천6백여 점.
일본 민예관은 이 가운데 3백여 점을 개관 80주년 기념으로 특별 전시했습니다.
<인터뷰> 가타오카(관람객) : "(조선 공예품이) 어떻게 일본에 들어왔는지 알게 됐고,역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 공예를 사랑했던 `야나기` 선생은 귀족들의 화려한 고급품 보다는 일반 공예의 아름다움에 더 주목했습니다.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문화재재단이 보전 처리를 돕는 등 적극 후원했습니다.
<인터뷰> 김인규(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일본소장) : "국보급에 해당하는 유물이 많았고, 한일 교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 일본인의 노력으로 한국 공예품들이 일본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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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일본에서 되살아난 ‘조선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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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4-04 06:56:49
- 수정2016-04-04 07:19:12

<앵커 멘트>
민중 예술인 `민예`의 개념을 처음 도입해 세계 최초의 민예예술관으로 문을 열었던 `일본민예관'이 개관 80주년 기념으로 이례적으로 `조선공예전`을 열었습니다.
일본 민예운동의 창시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공예를 통해 민예의 개념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도쿄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도쿄의 주택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세계 최초의 민예예술관,
입구로 들어서자, 한반도 호랑이를 `동`으로 그려넣은 `동화백자`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은은한 `청화초화문각병'은 1914년, `문예운동의 창시자`,`야나기 무네요시`를 처음 조선 공예에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타카시 스기야마(일본민예관) : "(야나기 선생은)조선 도자기에 큰 영향을 받아 민예관을 만들려고 활동을 했습니다."
일제의 `3.1운동` 탄압과 광화문 철거에 반대했던 `야나기` 선생이 모은 조선 공예품은 약 천6백여 점.
일본 민예관은 이 가운데 3백여 점을 개관 80주년 기념으로 특별 전시했습니다.
<인터뷰> 가타오카(관람객) : "(조선 공예품이) 어떻게 일본에 들어왔는지 알게 됐고,역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 공예를 사랑했던 `야나기` 선생은 귀족들의 화려한 고급품 보다는 일반 공예의 아름다움에 더 주목했습니다.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문화재재단이 보전 처리를 돕는 등 적극 후원했습니다.
<인터뷰> 김인규(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일본소장) : "국보급에 해당하는 유물이 많았고, 한일 교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 일본인의 노력으로 한국 공예품들이 일본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민중 예술인 `민예`의 개념을 처음 도입해 세계 최초의 민예예술관으로 문을 열었던 `일본민예관'이 개관 80주년 기념으로 이례적으로 `조선공예전`을 열었습니다.
일본 민예운동의 창시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공예를 통해 민예의 개념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도쿄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도쿄의 주택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세계 최초의 민예예술관,
입구로 들어서자, 한반도 호랑이를 `동`으로 그려넣은 `동화백자`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은은한 `청화초화문각병'은 1914년, `문예운동의 창시자`,`야나기 무네요시`를 처음 조선 공예에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타카시 스기야마(일본민예관) : "(야나기 선생은)조선 도자기에 큰 영향을 받아 민예관을 만들려고 활동을 했습니다."
일제의 `3.1운동` 탄압과 광화문 철거에 반대했던 `야나기` 선생이 모은 조선 공예품은 약 천6백여 점.
일본 민예관은 이 가운데 3백여 점을 개관 80주년 기념으로 특별 전시했습니다.
<인터뷰> 가타오카(관람객) : "(조선 공예품이) 어떻게 일본에 들어왔는지 알게 됐고,역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 공예를 사랑했던 `야나기` 선생은 귀족들의 화려한 고급품 보다는 일반 공예의 아름다움에 더 주목했습니다.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문화재재단이 보전 처리를 돕는 등 적극 후원했습니다.
<인터뷰> 김인규(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일본소장) : "국보급에 해당하는 유물이 많았고, 한일 교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 일본인의 노력으로 한국 공예품들이 일본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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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우 기자 pjw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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