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16 ‘막말’ vs 1987 ‘광고’

입력 2016.04.04 (16:12) 수정 2016.04.0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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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이른바 '막말' 발언 파문이 끝이 어디인지 모를 만큼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주 "어떤 식으로든 낙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 뒤 공화당 내부는 물론 민주당 경쟁자들, 여성계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심해지자 "낙태에 대한 법적인 책임은 의사에게 있다"고 발언을 정정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낙태 처벌' 발언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트럼프의 막말은 대부분 일관성이 없다. 때와 장소에 따라 수시로 자신의 말을 바꿔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건 트럼프의 막말 중 일관성이 있는 부분이 딱 한 분야가 있다. 바로 동맹국들에 대한 비용 부담 요구이다.

[연관 기사]☞ 트럼프 “한국과 전쟁 나도 미국과 무관”

지금부터 28년 전인 1987년 9월로 돌아가 보자. 당시 41세였던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에 불과했다. 그런 트럼프가 미국의 유수 신문이었던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 그리고 보스턴 글로브 등 3대 신문 전면 광고에 갑자기 등장한다.

이 광고를 내는데 트럼프는 10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9만 4천8백 달러를 지출했다고 당시 AP 통신은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1987년 미국 3대 신문에 낸 광고 (출처: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 페이스북)도널드 트럼프가 1987년 미국 3대 신문에 낸 광고 (출처: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 페이스북)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들을 보호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지원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트럼프의 공개편지라는 광고에서 트럼프는 '미국 국민들에게'라는 말로 시작한다.

트럼프는 "수십 년 동안 일본과 다른 나라들은 미국을 이용해왔다. 미국은 원유 공급 과정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페르시아만을 미국이 지키는 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과 다른 나라들은 원유 공급 과정에서 미국이 지키는 수송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들 나라는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감수하고 있는 막대한 비용과 인명피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어 "미국 손에 존립 자체가 달린 사우디가 걸프만을 지키는데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세계가미국은 소유하지도 않은 배를 보호하고 필요하지 않은 원유 공급을 지켜주고 있다고 미국 정치인들을 비웃고 있다"고 썼다.

트럼프는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미국이 일본의 방위 비용을 공짜로 제공함에 따라 방위비에 대한 부담 없이 유례없이 엄청난 흑자를 기록한 덕에 강하고 활기찬 경제를 건설했다. 미국이 방위비용을 부담해줌으로써 일본은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상황이 이런 만큼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방위비용 부담 능력이 있는 여러 나라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게 하자. 그 돈으로 엄청난 재정적자를 타개하자. 그 돈으로 미국 농민들을 돕고 병든 사람과 집 없는 사람들을 돕자"며 미국 방위 정책의 대 전환을 촉구했다.

트럼프는 "미국 국민이 아닌 다른 나라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미국 경제를 성장시키고 위대한 미국이 다시는 비웃음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말로 광고 편지를 끝맺었다.

트럼프는 이 광고를 게재할 당시 트럼프는 뉴욕시장, 주지사, 상원 의원 등 다양한 선출직 자리에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트럼프는 광고 게재 직후인 1987년 10월 뉴햄프셔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뉴햄프셔 지역은 미국 대선후보들의 경선이 시작되는 상징적인 장소로 당시 미국 언론계에서는 트럼프가 이듬해인 1988년에 치러질 대선 출마를 암시하는듯한 행보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 [바로가기] 광고 게재 당시 뉴욕타임스 트럼프 관련 기사

1987년 10월 도널드 트럼프가 탄 헬기가 뉴햄프셔의 한 헬기장에 착륙하고 있다. (출처: Politico)1987년 10월 도널드 트럼프가 탄 헬기가 뉴햄프셔의 한 헬기장에 착륙하고 있다. (출처: Politico)


트럼프는 방문 당시 그곳에 있는 로터리 클럽 회원들 앞에서 사실상 그의 정치적인 첫 대중연설을 했는데 ,핵심 내용 역시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당시 우방 국가들과 월가, 워싱턴 정치인 등에 대한 맹비난이었다.

1987년 8월 트럼프가(오른쪽) 자신의 뉴햄프셔 방문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Politico)1987년 8월 트럼프가(오른쪽) 자신의 뉴햄프셔 방문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Politico)


1987년 상황을 다시 거론한 건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트럼프의 '우방'에 대한 막말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동맹국의 방위 분담 요구는 30년 가까이 유지되고 강화돼온 그의 오래된 '소신'이라는 점이다.

1987년 트럼프가 낸 광고는 2016년 트럼프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과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단지 보상을 받아야 할 나라가 추가됐을 뿐이다. 1987년 광고를 게재할 당시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 두 나라만 대가를 치러야 할 나라로 명시됐지만 최근에는 그 대상에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독일과 30년 동안 경제가 급성장한 한국, 두 나라가 더 늘어났다.



미국민들을 상대로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말도 똑같다. 미국인들의 다른 우방들을 지켜주는 비용을 댐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나라에서 돈을 받아 미국 경제를 되살리자는 말도 거의 비슷하다.



이처럼 트럼프는 여러 곳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심지어 그가 외교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는 자질론에 휩싸여 있지만, 그의 외교 정책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모든 정책을 사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이 같은 발언이 나오는 걸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폭스TV에서 자신의 주장을 "상식이며 거래(trade)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는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한 고도의 전략적 발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자신의 주된 지지기반인 백인 저소득층과 근로자 계층의 표심에 호소하기 과정에서 이보다 훌륭한 소재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한 건 이런 주장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한 장기 경기침체에 분노와 상실감을 느껴온 백인 보수층의 심리를 자극하면서 "남의 나라의 방위까지 챙겨줘야 하느냐?"는 지지층의 '속내'를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트럼프의 집권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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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2016 ‘막말’ vs 1987 ‘광고’
    • 입력 2016-04-04 16:12:20
    • 수정2016-04-04 17:17:41
    취재K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이른바 '막말' 발언 파문이 끝이 어디인지 모를 만큼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주 "어떤 식으로든 낙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 뒤 공화당 내부는 물론 민주당 경쟁자들, 여성계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심해지자 "낙태에 대한 법적인 책임은 의사에게 있다"고 발언을 정정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낙태 처벌' 발언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트럼프의 막말은 대부분 일관성이 없다. 때와 장소에 따라 수시로 자신의 말을 바꿔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건 트럼프의 막말 중 일관성이 있는 부분이 딱 한 분야가 있다. 바로 동맹국들에 대한 비용 부담 요구이다.

[연관 기사]☞ 트럼프 “한국과 전쟁 나도 미국과 무관”

지금부터 28년 전인 1987년 9월로 돌아가 보자. 당시 41세였던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에 불과했다. 그런 트럼프가 미국의 유수 신문이었던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 그리고 보스턴 글로브 등 3대 신문 전면 광고에 갑자기 등장한다.

이 광고를 내는데 트럼프는 10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9만 4천8백 달러를 지출했다고 당시 AP 통신은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1987년 미국 3대 신문에 낸 광고 (출처: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 페이스북)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들을 보호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지원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트럼프의 공개편지라는 광고에서 트럼프는 '미국 국민들에게'라는 말로 시작한다.

트럼프는 "수십 년 동안 일본과 다른 나라들은 미국을 이용해왔다. 미국은 원유 공급 과정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페르시아만을 미국이 지키는 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과 다른 나라들은 원유 공급 과정에서 미국이 지키는 수송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들 나라는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감수하고 있는 막대한 비용과 인명피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어 "미국 손에 존립 자체가 달린 사우디가 걸프만을 지키는데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세계가미국은 소유하지도 않은 배를 보호하고 필요하지 않은 원유 공급을 지켜주고 있다고 미국 정치인들을 비웃고 있다"고 썼다.

트럼프는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미국이 일본의 방위 비용을 공짜로 제공함에 따라 방위비에 대한 부담 없이 유례없이 엄청난 흑자를 기록한 덕에 강하고 활기찬 경제를 건설했다. 미국이 방위비용을 부담해줌으로써 일본은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상황이 이런 만큼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방위비용 부담 능력이 있는 여러 나라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게 하자. 그 돈으로 엄청난 재정적자를 타개하자. 그 돈으로 미국 농민들을 돕고 병든 사람과 집 없는 사람들을 돕자"며 미국 방위 정책의 대 전환을 촉구했다.

트럼프는 "미국 국민이 아닌 다른 나라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미국 경제를 성장시키고 위대한 미국이 다시는 비웃음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말로 광고 편지를 끝맺었다.

트럼프는 이 광고를 게재할 당시 트럼프는 뉴욕시장, 주지사, 상원 의원 등 다양한 선출직 자리에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트럼프는 광고 게재 직후인 1987년 10월 뉴햄프셔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뉴햄프셔 지역은 미국 대선후보들의 경선이 시작되는 상징적인 장소로 당시 미국 언론계에서는 트럼프가 이듬해인 1988년에 치러질 대선 출마를 암시하는듯한 행보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 [바로가기] 광고 게재 당시 뉴욕타임스 트럼프 관련 기사

1987년 10월 도널드 트럼프가 탄 헬기가 뉴햄프셔의 한 헬기장에 착륙하고 있다. (출처: Politico)

트럼프는 방문 당시 그곳에 있는 로터리 클럽 회원들 앞에서 사실상 그의 정치적인 첫 대중연설을 했는데 ,핵심 내용 역시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당시 우방 국가들과 월가, 워싱턴 정치인 등에 대한 맹비난이었다.

1987년 8월 트럼프가(오른쪽) 자신의 뉴햄프셔 방문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Politico)

1987년 상황을 다시 거론한 건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트럼프의 '우방'에 대한 막말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동맹국의 방위 분담 요구는 30년 가까이 유지되고 강화돼온 그의 오래된 '소신'이라는 점이다.

1987년 트럼프가 낸 광고는 2016년 트럼프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과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단지 보상을 받아야 할 나라가 추가됐을 뿐이다. 1987년 광고를 게재할 당시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 두 나라만 대가를 치러야 할 나라로 명시됐지만 최근에는 그 대상에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독일과 30년 동안 경제가 급성장한 한국, 두 나라가 더 늘어났다.



미국민들을 상대로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말도 똑같다. 미국인들의 다른 우방들을 지켜주는 비용을 댐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나라에서 돈을 받아 미국 경제를 되살리자는 말도 거의 비슷하다.



이처럼 트럼프는 여러 곳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심지어 그가 외교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는 자질론에 휩싸여 있지만, 그의 외교 정책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모든 정책을 사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이 같은 발언이 나오는 걸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폭스TV에서 자신의 주장을 "상식이며 거래(trade)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는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한 고도의 전략적 발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자신의 주된 지지기반인 백인 저소득층과 근로자 계층의 표심에 호소하기 과정에서 이보다 훌륭한 소재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한 건 이런 주장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한 장기 경기침체에 분노와 상실감을 느껴온 백인 보수층의 심리를 자극하면서 "남의 나라의 방위까지 챙겨줘야 하느냐?"는 지지층의 '속내'를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트럼프의 집권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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